천재 작가로 불리는 이상(본명 김해경)은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어 26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천재 작곡가’, ‘피아노의 시인’ 쇼팽 역시 폐병으로 인해 젊은 나이인 39세에 유명을 달리했고요. 이처럼 폐병을 앓다가 요절한 두 천재의 일생을 통해 폐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근대의 천재 작가 이상과 폐병 ‘오감도’, ‘날개’ 등으로 유명한 이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입니다. 어린 나이에 생부모를 떠나 백부 김연필에게 입양된 그는 강원도 강릉에서 성장했습니다. 생부모가 있는데도 백부와 백모를 부모라고 불러야 했기에 사춘기 때 방황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1931년에 처녀시 〈이상한 가역반응〉, 〈BOITEUX·BOITEUSE〉, 〈파편의 경치〉 등을 발표했고, 이어 단편소설 《지도의 암실》,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면서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작가 활동을 했습니다. 이상(李箱) 그는 시인이면서 소설가였지만 건축가이기도 했는데요. 조선총독부 건축기술직을 맡고 있던 1933년 폐병으로 인한 객혈로 일을 그만두게 됩니다. 여자와 술을 좋아했던 그는 기생 금홍을 만나 함께 다방 '제비'를 운영하게 됩니다. 이때 폐병이 가져다주는 고통과 절망을 이겨내려고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게 되죠. 이상은 폐병으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시 <아침>에 드러내기도 합니다. ‘캄캄한空氣(공기)를마시면肺(폐)에害(해)롭다.肺壁(폐벽)에끌음이않는다.밤새도록나는몸살을앓는다.밤은참많기도하더라.(후략)’ 신문에 <오감도>를 연재했다가 독자들로부터 ‘난해한 시’라는 항의를 받아 중단하는 일도 생기지만, 그는 <지주회시>, <날개>, <동해> 등을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이어가는데요. 그러던 그가 폐병 말기쯤 되었을 때, 단편소설 <종생기>를 통해 유서를 쓰듯 죽음에 대한 예감을 써내려갑니다. 실제로 이 소설을 쓴 뒤 이상은 폐병이 악화되어 1937년에 만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종생기>는 이상이 사망한 직후에 발표됐고요. 동료 문인인 박태원은 이상에 대해 추억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그렇게 계집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이상의 이번 죽음은 이름을 병사에 빌었을 뿐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일종의 자살이 아니었든가 - 그러한 의혹이 농후하여진다.” 이상이 조금이라도 제 몸을 아껴 건강관리에 신경을 썼다면 좀 더 많은 작품을 남겼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천재 음악가 쇼팽과 폐병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그는 한마디로 신동이었습니다. 6세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7세부터 작곡을 했다고 합니다. 8세에는 첫 연주회를 열었다고 해요. 그가 성장한 후에는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요. 절친한 친구인 프란츠 리스트가 소개해준 당대의 여류작가 조르주 상드를 만나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됩니다. 조르주 상드(George Sand)의 초상 쇼팽은 성인기 내내 (결핵으로 추정되는) 폐병을 앓았다고 하는데요. 상드는 폐병으로 지쳐있는 쇼팽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그런 덕분인지 쇼팽의 음악 세계는 더욱 성숙해져 <폴로네이즈>, <발라드>, <녹턴> 등 훌륭한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했죠. 이때가 쇼팽의 음악적인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쇼팽의 <강아지 왈츠>도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피아노곡으로 만들어 달라’는 상드의 부탁을 받아 즉흥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의 초상 한번은 쇼팽이 요양을 위해 상드와 함께 에스파냐의 마주르카 섬에 갔는데요. 숙소의 집주인이나 이웃들이 폐병에 전염될까봐 쇼팽을 쫓아냈다고 합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어느 수도원로 옮겨갔다고 해요. 쇼팽은 그곳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를 만나게 되는데요. 이때 상드는 먼 곳으로 출타한 상태였기 때문에 홀로 비 오는 풍경을 보며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전주곡 제6번 <빗방울>을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상드와의 관계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둘은 극심한 성격 차이로 다툼이 잦았고, 쇼팽이 상드의 아이들과 마찰이 있었다고 해요. 결국 쇼팽은 37세에 상드와 헤어졌고, 폐병은 더욱 악화되어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매년 10만 2천여 명의 결핵 진료 인원 발생 쇼팽이 앓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결핵. 이 질환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계속 진행된다고 해서 ‘하얀 죽음’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결핵’ 진료 인원은 10만 6,931명이었습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평균 진료 인원을 계산해보면 매년 10만 2천여 명의 진료 인원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됩니다. 결핵을 두고 과거에 유행했던 질환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텐데요. 국제보건기구(WHO)는 아직도 전 세계에서 매년 870만 명의 활동성 결핵 환자가 발생하고, 140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했습니다. (2011년 기준) 예나 지금이나 결핵은 조심해야 할 질환임이 틀림없습니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70세 이상, 50대, 40대 순으로 진료 인원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쇼팽이 결핵을 앓았던 시기인 20~30대의 진료 인원도 그리 적지는 않았습니다.
폐 건강을 지키는 방법 쇼팽이나 이상처럼 폐병으로 고생하지 않으려면 미리부터 폐 건강을 지켜야 할 텐데요. 아래의 예방법을 기억해, 꾸준히 실천하셨으면 좋겠네요. 참고_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자료, 국가건강정보포털 ‘폐렴, 폐기능검사’, 이태훈, <끌리다 거닐다 홀리다>, 21세기북스 박중요, <세상의 모든 클래식>, 마고북스, 모리모토 마유미, <에피소드로 엮은 클래식 음악 100>, 반디출판사, 김원구, <음악의 역사>(음악사 대도감), 한국사전연구사, 상허학회, <한국현대문학의 정치적 내면화>, 깊은샘, 위키백과 ‘이상’, ‘쇼팽’ |
출처: 심평원 블로그 원문보기 글쓴이: 심평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