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문학을 살펴봅시다. 1.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년 ~ 1832년)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태어났다. 귀족 가문이 출생이다.그는 천재 교육을 받았고, 어린 나이에 신년시를 쓸 만큼 문학적 재능을 타고났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는 법률 사무소 견습생일 때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지는데, 이때 체험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을 썼다. 그는 1775년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고급 관리일을 했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 1794년 실러를 만나 함께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1796년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썼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1), [이탈리아 기행』(1829) 등 완성했다. 스물네 살 구상하기 시작하여 생을 마감하기 바로 한 해 전에 완성한 역작 [파우스트]를 마지막으로 1832년 세상을 떠났다.
한편 초기 바이마르의 이 10년간은 궁정생활의 중압으로 마음의 안정을 빼앗겨 정돈된 창작활동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으므로 1년반에 걸쳐서 이탈리아로(1786년-1788년) 여행을 떠났다. 이에 관해서는 후일 《이탈리아 기행》(1816)과 《제2차 로마 체재》(1829)에 자상하게 기술되어 있다. 괴테는 1788년 6월 무렵에 독일로 귀국, 1789년 7월 14일에 발발된 프랑스 혁명으로 괴테는 1792년에는 아우구스트 공을 따라 제1차 대프랑스 전쟁[1]에 종군하여 발미 전투(1792년 9월)와 마인츠 포위전(1793년 4월-1793년 7월)에 참전했다.
1794년에 괴테가 실러를 만났다. 상봉이었다. 1805년의 실러 죽을 때까지 친교를 계속했다. 양자간에 교환된 서한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가장 귀중한 자료로 되어 있다. 실러와 사귀는 동안에 저술된 주요작품에는 교양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5/1796)이다.
궁정극장의 감독으로서 경영·연출·배우 교육 등 전반에 걸쳐 활약했다. 1806년에 《파우스트》제1부를 완성했고 별세 1년전인 1831년에는 제2부를 완성했으며, 연극을 세계적 수준에 올려놓았다.
괴테는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리스본 지진(1755)과 7년 전쟁(1756-1763)을 계기로 신앙에 회의를 가졌다. 1782년 괴테는 "난 반 기독교인이나 말뿐인 기독교인(un-christian)이 아니라 비 기독교인이다."라고 말했다.
(*리스본 대지진 사건 1755 -- 1755년 리스본 지진(영어: 1755 Lisbon earthquake)은 1755년 11월 1일 9시 40분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대지진이다. 리스본과 그 일대 지역의 4분의 3이 파괴되었다. 오늘날의 지진학자들은 리스본 대지진의 모멘트 규모를 8.5 ~ 9.0 정도로 보고 있다. 지진의 충격파는 영국, 덴마크, 오스트리아, 베네치아 등 전 유럽에서 느낄 수 있었다.
리스본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적게는 1만 명에서 많게는 10만 명 정도로 추정되어[7] 역사상 가장 사망자 수가 많은 지진 중 하나로 기록되고있다. 리스본에 있던 건물 85퍼센트가 무너졌으며 많은 예술품과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이 지진은 유럽의 지식인에게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라는 회의를 일으켜서, 종교로루터 멀어지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2. 그림 형제 그림 형제를 조금 깊이 다루는 이유는 동화의 발생과 관계있고, 민담이 문학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림 형제는 독일의 야코프 그림(1785-)과 빌헬름 그림(1786-)의 형제를 말한다. 두 형제는 모두 언어학을 전공했고, 함께 여러 동화를 썼다. 독일 민중들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편집한 《그림동화》로 유명하다. 언어학을 전공한 학자이다. .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 개구리 왕자, 브레멘 음악대와 같은 작품이 있다.
생애 고향에서 목가적인 생활을 하던 그림 일가는 아버지가 1790년 한센 공 수하의 일자리를 얻어 도시로 이사하였다. 1796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이곳 저곳을 전전하였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양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림 형제는 체록한 이야기를 윤색하지 않고 그대로 출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들은 이야기가 교훈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전해온 그대로 기록되어야 가장 사실적인 이야기를 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
1812년 그림 형제는 그 동안 수집한 이야기들을 묶어 첫 번째 이야기 집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를 발간하였다. 이 이야기 책에는 그들이 농부와 마을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들과 함께 다른 언어로 이미 출간되어 알려져 있던 샤를 페로의 이야기 같은 것들도 수록되었다. 야코프는 학문적 연구를 보다 중요시 한 반면 동생 빌헬름은 아동에게 알맞은 문학적 요소를 보다 강조하였다. 그 후 2년간의 작업을 거쳐 그림형제는 독일의 전설과 초기 문학을 묶어 두 번째 이야기집을 펴냈다.
그림 형제는 그림 법칙을 비롯한 독일어 연구를 계속하였고 1830년 괴팅겐 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6] 야코프는 1830년 괴팅겐 대학교의 언어학 교수이자 도서관장으로 취임하였고 빌헬름은 1835년 교수가 되었다. 말년의 그림 형제는 독일어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하여 1854년 출간하였다.
1859년 12월 16일 동생 빌헬름이 베를린에서 사망하였다. 형 아코프는 1863년 11월 20일 사망하였다.
그림 동화
그림 형제는 1807년부터 민담을 수집하기 시작하면서 민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812년 그림 동화로 널리 알려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가 출간되게 되었다. 그림 동화는 대부분 독일 여러 지역에서 전해오던 민담이나 위그노의 구전 설화나 프랑스에서 전해온 이야기 등도 수록되어 있다.
그림 형제보다 100년 전에 이미 프랑스에서는 샤를 페로가 《옛날이야기와 교훈》을 발표하였고 그림 동화에 실린 이야기 가운데 8편이 페로의 것과 유사하다.
1812년 그림형제는 86 편의 이야기를 담은《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초판을 출간하였고 1814년 70 편 의 이야기를 추가하여 156편으로 구성된 증보판을 출간하였다. 1816년과 1818년에는 585 편의 전설을 수록한 《독일 전설》을 출간하였다. 《독일 전설》에 수록된 많은 이야기들은 각 종 연대기의 기록과 관련이 있으며, 드베르그, 거인, 괴물과 같은 가공의 생명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독일 전설》은 동화집에 비해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림 형제는 1819년부터 1822년까지 보다 많은 민담을 수집하여 170여 편을 수록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2판을 출간하였다. 그림 형제가 살아있는 동안 이 동화집은 제 5판까지 증보되었다. 그림 형제가 수록한 민담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어린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견해는 줄곧 있어왔다. 방대한 규모의 독일 민담을 채집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것으로는 그림 형제의 동화집이 최초라 할 수 있다.
3. 안데르센(1805-1875) (*안데르센은 덴마크 작가이지만, 여기서 소개합니다.)
덴마크에서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렸어도 일을 하러 갔다. 안데르센은 어린나이에 공장에서 일하고, 할머니는 병원 청소부로, 어머니는 빨래를 해주는 일을 했다. 가난 때문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서 문법과 맞춤법이 엉망이어서 마음의 고통에 시달렸다. 다행히 작가로서의 그의 재능을 알아본 덴마크 의회 의원인 요나스 콜린의 후원으로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으나, 5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교장이 시를 강요했으므로) 1828년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몇 편의 희곡, 소설을 쓰고, 시집 ‘즉흥시인’으로 문학계의 호평을 받았다. 1835년부터 본격적인 동화 저작에 들어갔는데, 어른들도 읽을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일부 문학비평가들은 "《즉흥시인》을 쓸 정도로 뛰어난 작가가 어린이를 속이는 이야기나 쓴다."는 가혹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
1872년까지 발표한 총 160여편의 동화 작품은 모두 유명해져서 연금 수령, 안데르센의 그림이 들어간 우표 발행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1875년 수도인 코펜하겐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에는 덴마크 국왕과 왕비가 참석하였다.
안델센이 데뷔할 때는 덴마크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유럽의 다른 여러나라에서 유명작가가 되자, 덴마크에서도 높이 평가했다 한다.
*주요 작품 즉흥시인 빨간 구두 눈의 여왕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벌거숭이 임금님 미운 오리 새끼 엄지 공주
안데르센 문학에는 어린 시절의 고생이 작품 속에 많이 나타난다. 안데르센 문학은 안데르센이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라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하게 자라서 구걸까지 해야 했던 안데르센의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눈의 여왕'이 데려가는 것으로 생각한 어린시절의 기억이 소재가 되었으며, 《미운 오리 새끼》는 안데르센이 작가로 데뷔한 후에도, 그의 출신 때문에 홀대를 받은 상처가 문학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동화에는 일반적으로 민화적, 교훈적 요소가 강하다. 안델센은 이런 전통에서 벗어나서 불행하고, 소외된 계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표현하였다. 언어도 일상으로 사용하는 ‘구어’를 사용하여 친근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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