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도 가을 어느 주말.
집에서 이삿짐을 싸고 있는데 긴급한 연락이 왔다.
회사 차량이 동작대교에서 추락했다는 것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서둘러 동작대교 북단 고수부지로 달려갔다.
사고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한강은 잔잔해 보이지만 강 속은 전혀 딴판이다.
유속이 세고, 혼탁해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다리 아래 교각부근엔 각종 철근, 파이프, 위험한 폐기물, 그물, 녹슨 철제물 등이 어지럽게 뒤엉켜있어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매우 위험하고 어지럽다.
그래서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서도 안 된다.
절친했던 직장 동료 두 명은 그 사고로 한순간에 유명을 달리했다.
처참하게 찌그러진 봉고차는 몇 시간 후에 대형 크레인으로 바로 인양했으나 차 안에 동료들의 시신은 없었다.
승합차가 난간을 들이받고 강물위로 떨어지는 순간, 그 엄청난 충격으로 튕겨져 나간 것이었다.
처음엔 스쿠바 장비로 수색했으나 넓은 지역을 샅샅이 훑기엔 역부족이라 전문 머구리를 불렀다.
극한 직업에 속하는 머구리들도 시신을 찾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통상, 차는 무게 때문에 추락지점 부근에 위치하지만 시신은 빠른 유속의 영향으로 하류쪽으로 떠내려 간다.
군대시절에 강도높은 수중훈련을 많이 받았고, 라이프 가드 자격증을 갖고 있었던 나는,
전문 머구리들과 함께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수색에 온 힘을 쏟았다.
이미 어두워진 세상.
한낮에도 희뿌연 시야로 물체를 분간하기 힘든 수중인데, 밤에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사람은 익사하면 굳어진 사체와 물의 밀도 차이로 인해 대개 강이나 호수 바닥에 가라앉는다.
그러나 2-3일 후 미생물로 인해 사체가 부패되면서 몸속에 가스가 차고, 시신이 불어 비대해 지면 부력이 발생하여 대부분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어슴프레한 새벽녘.
싸늘한 주검으로 올라온 두 명의 동료들.
나는 작은 보트위에서 맨 처음으로 그들을 보았고, 머구리가 올려주는 그들을 보트위로 끌어올렸으며, 한강 한 가운데서 그들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형제들은 이미 시강현상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오래되고 낡은 차가 동작대교 난간을 치고 추락할 때, 그 찰라의 순간에 얼마나 극심한 공포와 충격을 받았겠는가?
시강이 일어난 시신은, 그 처참했던 공포와 충격을 여과없이 대변해 주고 있었다.
진정으로 슬프고 애통한 밤이었다.
온 몸이 추락의 충격으로 성한 데가 하나도 없었다.
붓고, 터지고 몸 천체가 깊은 멍으로 뒤덮혀 있었다.
운전했던 형제는 운전대를 잡고 있던 바로 그 모습으로, 옆에 타고 있던 동료는 유리창 위 천정쪽에 달려있는 안전손잡이를 잡고 있던 바로 그 모습으로, 그렇게 시간이 정지되어 있었다.
영혼이 떠나버린 싸늘한 몸뚱아리.
황망하게 떠나간 사랑하는 두 형제(화식, 기수)를 부여잡고, 한강 둔치에서 얼마나 목놓아 울부짖었는지 모른다.
수면으로의 추락은 물놀이의 익사와는 확연히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호흡을 하지 못해 죽는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며칠 전인 7월 26일.
남성연대의 대표 성 모씨가 마표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했다.
어려운 남성연대 형편을 세상에 알리고, 모금운동을 하기 위해 기획된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나는 그 사람을 전혀 모른다.
그가 투신 퍼포먼스를 계획한 것으로 볼 때 추측컨대 그는 수영을 조금 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무서운 '물'의 실체를 몰랐다.
한강은 사이판이나 세부같이 맑고 깨끗한 바닷물이 아니다.
본디 유속도 빠른 데다가 7월은 장마철이라 수량이 엄청났다.
높은 다리에서 투신해 익사한 사체들을 검시해 보면 물에 닿는 순간의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갈비뼈가 부러져 장기를 찌르거나 목뼈, 척추가 부러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골절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실신하게 된다.
그로 인해 물 속에서 호흡이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몸동작 등 육신의 기본적인 작동이 순간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극히 짧은 시간, 그런 혼절 상태로 단말마적인 극한의 발버둥을 치다가 그대로 죽는다.
물은 알면 알수록 무섭다.
시계가 나쁜 것도 그렇지만, 빠른 유속과 극심한 온도차도 매우 위험하다.
(물속에 냉수대가 존재함)
물속에도 유속차가 있으며, 도도하게 휘감기며 흐르는 대류는 전문 머구리들도 두려워한다.
갑작스런 심장마비는 거론할 여지도 없다.
오랫동안 단련된 군인들도 높은 함상에서의 이함훈련(직립 다이빙)은 두려움의 대상인데 하물며 물의 진정한 공포를 모르는 민간인들이야 그 엄청난 충격과 실제적인 무서움을 어찌 잘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끝내 그의 시신은 투신 4일만에, 투신지점 1.4킬로미터 하류에서 떠올랐다.
심해같았으면 높은 수압이나 해류 때문에 영영 시신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일어난다.
모르는 그 사람을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물 앞에서는 늘 겸손하게 임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살면서 무슨 일을 당할지, 어떤 상황에 처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수중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으로도 잘 준비하고 심신을 단련해야겠지만, 수영을 조금 한다고 해서 위험을 자초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원래 물에 자신 있다고 큰소리 치는 사람들이 물에서 죽으며, 산을 조금 아는 사람들이 산에서 죽는다.
그건 정말로 바보같은 행동이며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무언가를 조금 알거나 해 본, 어설픈 <검은띠>가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거친 자연앞에선 늘 겸손하고 사려 깊에 행동했으면 좋겠다.
자연의 특성과 위험요소를 잘 알아야 뜨겁게 도전도 하는 것이다.
무모함이 용기는 아니며, 절제되지 않은 저돌성이 도전의 바로미터도 아니다.
내 자신도 지금까지 거친 자연속에서 숱하게 훈련을 했었고, 온 몸을 내던지며 뜨겁게 부대껴 보기도 했지만, 정녕 자연은 알수록 두렵다.
물은 더욱 그렇다.
단지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지루한 장맛비가 드디어 멎었다.
된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한여름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물을 찾고있다.
적어도 물앞에서는 주의 깊게 행동하고 적절하게 대비하여 이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시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각자 승리하시길.
파이팅.
(덧붙임)
20년 전에 동작대교에서 자동차 추락사고로 황망하게 우리곁을 떠나간 사랑하는 두 형제들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영면하소서.
(사진 위 : 생산부 강촌 MT 때, 뒷줄 좌측 2번째가 화식이, 우측 2번째가 기수)
(사진 아래 : 투신 직전의 남성연대 성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