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토) 시편 112:1-10 찬송 112장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3.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4.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5.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6.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억되리로다
7.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8.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
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
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
(개역 개정)
- 의인이 받을 축복 -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완전한 지혜인가를 강조하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을 열거하고 있는 본시는
제 1, 14편 등과 같이 시편 분류상 ‘지혜시’로 분류된다.
이러한 세 편의 지혜시를 비교할 때 그 본의(本意)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먼저 제 1편이 여호와께 상반된 자세를 가진 의인과 악인의 모습과
그 운명을 객관적으로 비교 제시함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고 의인의 길을 가도록 촉구하고 있다면
제 14편은 악인들의 궁극적 운명 곧 그들의 비극적이고도 초라한 멸망을
강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인본주의적 삶을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본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누릴 지고의 축복을 보다 강조함으로써
듣는 이로 하여금 신본주의적 삶을 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본시는 그 형식면에 있어 앞의 제 111편과 같이
각행의 첫머리가 히브리어 알파벳 순으로 구성된 답관체 시이다.
특히 본시는 그 내용면에 있어 제 111편의 마지막 절을 그대로 받아
마치 주석을 하는 것처럼 그 내용을 보다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설명하며 반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이 두 편의 시를 한 쌍의 시로 보기도 한다.
다만 제 111편이 ‘정직한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 그리고 인자하심을 노래했다면,
본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 그리고 인자하심으로부터 나오는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정직한 자’들이 누릴 복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시는 제 111편의 보충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본시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전반부 1절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여부에 따라 의인과 악인이 구분되고
의인에게는 축복이 악인에게는 멸망이 있음을 피력하는
히브리인들의 언약 사상(言約思想)에 근거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의인에게는 복이 있을 것을 선포한다.
이어 후반부 2-10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의인들이 받게 되는 하나님의 축복과
여호와를 거스리는 악인들이 받게 될 심판을 날카롭게 대조함으로써
회중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촉구한다.
이러한 본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이 어떠하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다는 성경적 인생관을 제시해 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지금 가고 있는 삶의 길이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길인가를 돌이켜 보게 해준다.(빌2:12)
실로 참된 복의 궁극적인 근원은 하나님 경외에 있으며,
이에 그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야말로
진정 지혜로운 자라 할 수 있다.(신6:24; 잠9:10)
5절)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에게 베푸는 일에 인색하다.
베풀기는 베푸는데,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거나
어떤 이해득실의 계산을 염두에 두고 베푸는 경우도 있다.
베풀기보다 움켜쥐고 더 많이 차지하려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은 베풀라고 하신다.
즉 인간의 속성을 거스르라는 것이다.
그리고 베푸는 자가 잘되고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신15:10-11)
또한 시인은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가 잘된다고 하였고(5절)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준 자는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중에 들릴 것이라고 말한다.(9절)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말로서,
초기 로마 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적 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로마 시대에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고
이것은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어 자발적이고 경쟁적이기까지 하였다.
특히 귀족 등의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더욱 확고했는데
일례로 한니발이 카르타고와 벌인 16년 간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최고 지도자인 콘술(집정관)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에 이르렀다.
바로 이것이 로마를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잡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통한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실천하도록 명령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귀한 신분으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각양의 은총을 입은 자들로서
마땅히 가난한 자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하셨다.(레19:9-10)
이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의 소유자들로서,
또 당신의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은 자들로서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베풀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혼란과 반목에 휩싸이는 것은
많이 받아 누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고
사람들을 위한 봉사와 구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씀처럼 은혜를 베풀고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을 사랑으로 구제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다윗은 베푸는 자의 자손이 걸식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그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했다.(시37:25-26)
이 사실을 기억하고 남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움켜쥐면 사라지지만 베풀면 베풀수록 풍성하여지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이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11: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