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별빛 / 박남준
별을 보며 길을 묻던 날이 있었다
반짝이는 것을 생각한다 어린 날에 달음질로 두근거리다
가까이 가면 이내 빛을 거두고 말던 사금파리나 유리 조각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이 반짝일 수 있다니 별처럼
무지개를 좇아 얼마나 숨차게 안타까웠던가 살아 있다는
일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만큼의 거리로 아른거리며 달아난다는
신기루 같다 툇마루에 나앉은 햇살이 어느새 마당으로
내려선다 제 속에 지닌 수분을 남김없이 토해내기까지
형벌처럼 매달린 빨래들이 좀처럼 평행이 되지 않는 외줄을
타며 가는 햇살에 몸을 뒤척인다
이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듯 삶의 구비구비에 이미 묻어
두었으나 아련한 것들이 몽유로 서성인다 그때마다
침엽의 숲속이 마른 바람에 젖어 잠겨간다 문득 풍경 소리
마당을 가르는 개울물 소리
날개 없는 것들이 비누 방울처럼 허공을 달고 반짝인다
모든 것이 반짝이다니 쓰러진 것들이 구천 저자 거리를
떠돈다 떠도는 것들이 저물 녘마다 제 이름 부르며
별빛을 보고 길을 묻던 옛날을 더듬는다
미루나무가 쓰러진 길 / 박남준
꿈을 꾸었다 꿈을 꾸는 동안 바람이 불고 나무가 쓰러지고
큰비가 내렸다 꿈 밖은 아직 여전한데 쓰러진 나무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낯익은 길을 베고 저 세상의 길을 떠난다
잔 바람에도 미루나무는 얼마나 반짝이는 푸른 손짓으로
바람을 불러모았던가 나무가 누워 있는 동안 이 산길
미루나무의 노래는 다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바람의 나무,
바람의 손바닥들이라 부르던 저 쓰러진 나무와 다 버릴
수 없어 허리를 자른 나무들 사이에 나는 오래 망설인다
나무에 등 기대어 거기 스스로를 가두고 나무처럼 쓰러져
있다고 여긴, 나무가 쓰러지며 지워버린 한평생 저 허공 중의
길과 내가 한때 쓰러졌다 여긴 이 길위에서 나의 오늘을
물어본다
유목의 꿈 / 박남준
차마 버리고 두고 떠나지 못한 것들이 짐이 된다
그의 삶에 질주하던 초원이 있었다
지친 것들을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것들도 생각한다
한 꽃이 지며 세상을 건너듯이
산다는 일도 때로 그렇게 견뎌야 하겠지
버릴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일까
떠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한때 머물렀던 것들이 병이 되어 안긴다
아득한 것은 초원이었던가
그렇게 봄날이 가고 가을이 갔다
내리 감긴 그의 눈이 꿈을 꾸듯 젖어 있다
몸이 무겁다
이제 꿈길에서도 유목의 길은 멀다
[출처] 몽유별빛 외 / 박남준|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