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끔씩 눈팅만 하곤 했는데 이제 어엿한 곽함사 회원이 되었습니다. 사실 가입만 안 했었지 맘은 곽함사였었어요^^
어제 감님의 2심 공판 소식을 들으며 작년 8월26일부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던 우리의 현실과 감님의 고난의 무게가 다시금 생생하게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제가 이러저러하게 썼던 잡문이 꽤 되네요. 그런데 어제의 공판 소식을 접하면서 작년 여름 이후 썼던 글들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 글들부터 올리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읽으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냥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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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과 드레퓌스
1894년 반유대주의를 이용해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몰았던 프랑스 권력의 만행, 그 만행을 준엄하게 꾸짖고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려 했던 프랑스의 양심과 지성 덕분에 프랑스 사회의 수준은 한 단계 높아졌다.
물론 그 싸움은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기다려 끝이 났지만 진실을 집요하게 찾으려는 노력은 결국 진실의 승리로 열매를 거두었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보며 왜 자꾸 100년도 전에 일어났던 드레퓌스 사건이 떠오르는 것일까? 노골적으로 음흉하게 웃으며 드레퓌스에게 돌을 던졌던 권력을 쥔 세력은 차치하고 진실의 객관적 실체에 눈감은 채 드레퓌스를 물어뜯었던 광기의 여론이 어찌나 그렇게 소름끼치게 닮아 있는지.
진실을 붙잡고 10년을 버텨냈던 드레퓌스와 진실 앞에 당당했던 프랑스 지성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곽노현 교육감 사건은 드레퓌스 사건에 비해 더 간교한 적들과 맞서 있으며 더 큰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어쩌면 더 어려운 싸움이고 그래서 그만큼 더 가치로운 투쟁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저들은 단지 곽노현으로 대표되는 진보세력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더러운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 위기를 넘기기 위해 이 사건을 최대한 이용해 먹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의 보수들보다 훨씬 세련되어진 것이다. 여야 정치인들이 연루되어 있고 2억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금이 오고 간 박태규 사건은 어디로 갔는가? 지금 그 사건은 이름 없는 어느 노인의 부고 기사만도 못하게 슬그머니 관심 밖에서 어물쩡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곽노현 교육감은 그렇게 더러운 사건을 감추는 희생양이 되기에는 너무나 맑은 사람이다. 그는 정치공학적인 어떤 대응도 거부하고 오로지 진실을 구명하기 위해 정공법을 택했다.
그는 진실규명에서 더 나아가 ‘사람을 살리는 법’에 대해 모두에게 아픈 질문을 던지기 위해 얄팍한 권력에 기대어 구린내를 풍기는 협잡꾼들과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법의 본질에 대해 우리 모두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던지고 있다. 법 정신의 확장과 그 법 적용에서의 정의의 문제로부터 우리 모두 더 이상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그 싸움이 어려운 줄 알면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 그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드레퓌스이자 동시에 ‘나는 고발한다’를 써 프랑스 지성과 양심을 깨웠던 에밀졸라이기도 하다.
우리 현대사에 드레퓌스가 어찌 한 명뿐이던가? 그러나 곽노현은 그들과 다르다. 이전의 드레퓌스들이 대부분 권력의 마수를 피해 최대한 몸을 숙이고 자신의 소신을 위해 실천하다가 그 마수에 걸려들어 싸웠던 이들이라면 그는 몸을 숙이지 않고 저들이 범법이라 쪼아대는 행위를 더 크고 당당하게 스스로 밝히면서 정면승부하고 있다. ‘고해주의’에 입각한 진실 투쟁이라 했던가?
그가 검찰이 밝힌 1억3천 보다 더 많은 돈을 주었다고 발표하는 순간 이미 그는 실정법을 넘어 선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투쟁을 우리에게 던진 것이다.
그의 맞은편에는 누구의 눈에도 분명한 부패한 권력과 공권력이라는 적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 있다. 어쩌면 그 자신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사건이 한국판 드레퓌스라 함은 그가 한국의 모든 지성과 양심이라 자처한 이들에게 보다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현해야 할 최소한의 도덕은 어디까지인지, 정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삶의 본질은 무엇인지.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법의 심판을 기다릴 것인가 그 전에 도덕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인가 혹은 곽노현의 ‘선의’를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2억을 선거 경쟁자였던 이에게 준 것이 합법인가 불법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나 자신 잠시지만 그가 대의를 위해 살신성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진보진영에게 도덕적 명분을 주고 사퇴함으로써 다가올 선거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국면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몫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채 전술적 유불리를 따지고 계산하는 우리 같은 범부들에게는 문제의 본질과 대면하는 것이 두렵고 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 앞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가 그 싸움의 최전선에 선 지금 더 이상 우리 스스로를 변명하고 합리화할 논리를 찾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비록 다가올 선거에서 설혹 그것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게 될지라도 긴 싸움에서 우리는 훨씬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드레퓌스와 에밀졸라의 투쟁이 결국 프랑스 사회에 양심의 각성, 정의에 대한 성찰을 가능케 해 프랑스 사회를 일보 전진시켰던 것처럼 곽노현이 선택한 투쟁과 그 투쟁을 지지하는 깨어 있는 양심들의 동참은 우리 사회를 일보 전진시킬 것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답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법’인가 ‘사람을 죽이는 법’인가, 그리고 그 선택과 결정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가에 대해.
2011. 9. 5 (글 : 북서울중학교 교사 강민정)
첫댓글 강민정 학생 글인줄알고 순간 소름돋으며 나 자신의 무지함을 책망했음;;;
저도요 ㅋㅋ
저도요.
개념들 잘읽었습니다.
곽교육감님 지지하고있습니다. 쫄지마시고 힘 더욱더 내시길 바랍니다.
아마도 미권스 회원들도 똑같이 교육감님 지지할겁니다. 화이팅~~
판결이 아니예요 판결은 판사가 하는거죠 검찰과 언론이 너무 작위적으로 기사를 써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