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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행기가 한참 늦었습니다. 정기산행이 아니어서 꼭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다 보니 차일피일 미룬 탓도 있지만, 저의 정규직 근무 시절 마지막 가을을 빈둥빈둥 보내지 않고 알차게 즐기려다 보니 글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돌발 변수(아는 분은 아실 겁니다)까지 생겨 이제사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안 올릴까도 생각했다가 알 대장 권고도 있고, 암세포와 오랜 사투를 벌이느라 눈으로만 산행을 즐기고 계신 만사지당 형님과 태평양 건너 멀리서 고국의 가을 풍경을 궁금해하실 헬렌 누님을 위해 어렵사리 짬을 냈습니다. 재미없어도 어여삐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였습니다. 동행자들은 자신의 등장 대목이 적거나 마음에 들지 않게 묘사됐다고 여겨도 그러려니 생각하기 바랍니다. 팩트 오류를 지적하면 흔쾌히 바로잡겠습니다.
분량이 많아 스크롤 압박이 심할 겁니다. 보시기에 지루할까 봐 중간에 사진을 몇 장 넣으려다가 용량 때문에 나눠서 올려야 하기에 포기했습니다. 어차피 사진은 단톡방에서 미리 보셨으니 머릿속으로 장면을 상상하며 읽으시기 바랍니다.
인월로 떠난 희망과용기 산바람 알자지라 뜬구름
10월 19일(토) 청계산 정기산행을 마치고 옛골 두부 전문점에서 가볍게 뒤풀이까지 치른 뒤 알자지라 대장, 뜬구름 총무, 그리고 저 3명이 청계산입구역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철역 물품보관함에 넣어둔 배낭을 찾으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알 대장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쳐가는데 뜬 총무가 "시간이 지난 모양이네. 4시간 넘었으니 돈을 더 넣어야겠네"라고 말합니다. 아침에 배낭을 맡길 때도 보관함 번호를 먼저 누르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순서를 몰라 헤맸죠. 무인 자동화는 노인뿐 아니라 환갑 전인 저희에게도 불편합니다.
신분당선 전철을 타고 양재역에 내린 뒤 3호선으로 환승해 남부터미널역으로 향합니다. 참으려고 했는데 저절로 불만 섞인 목소리가 제 입에서 또 튀어나옵니다. "애초에 양재역에서 만나자고 했으면 아침에 만원버스 안 타도 되고, 남부터미널 갈 때도 훨씬 편했을 텐데." 알 대장이 제 눈을 피합니다.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산바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지리산 번개산행을 알 대장이 제안했을 때 제가 먼저 손을 들었고 산바람이 20일(일) 저녁에 귀경하는 조건으로 동행 의사를 밝혔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뜬 총무가 합류했습니다.
저는 사실 알 대장과 둘만 가면 보조를 맞추지 못할까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도상거리로 봐도 노고단대피소에서 출발해 만복대와 바래봉 거쳐 하산하는 지리산 서북능선 길이 20㎞가 넘습니다. 알 대장은 "남 선배도 갔으니까 형도 갈 수 있을 거예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남 회장은 산행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몇날며칠 걸어도 지칠 줄 모르는 '인간 낙타'인데 어떻게 저와 비교합니까. 첫날 청계산, 둘째날 반야봉에 이어 3일째 지리산 서북능선을 걸어야 한다니 더욱 걱정이 앞섭니다. "너무 힘에 부치면 중간에 내려오자고 해야지"라고 마음먹고 "가는 데까지 가보자"라고 말했습니다.
멈출 줄 모르는 알 대장의 헛다리
전북 남원시 인월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8시 20분쯤 됐습니다. 마트라고 쓰인 슈퍼마켓에 들러 라면, 누룽지, 김치, 돼지고기, 수제비, 소주 등을 산 뒤 인근 식당에 들렀습니다. 돼지 등뼈를 넣은 우거지해장국이 주메뉴인데 한 그릇밖에 안 남았다고 해서 곰탕, 된장찌개를 함께 시켜 나눠 먹습니다. 푸짐해서 반주를 곁들이기에 제격이더군요. 어차피 오늘은 자는 일만 남았으니 부담이 없어 술잔을 여러 순배 돌립니다.
이튿날 아침식사 해결할 곳을 알아보니 터미널 맞은편의 분식집만 문을 연다고 하네요. 라면에 김밥을 먹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버스편을 알아보는데 뱀사골 입구 반선 가는 노선이 없네요. 알 대장의 당초 계획은 오전 6시 30분에 버스를 타는 것이었죠. 남원 시내버스가 그리로 가긴 하는데 그 시간에는 운행을 안 한다고 합니다. 우리 일행이 4명이니까 택시를 타기로 합니다.
이제 민박집을 찾아나섰습니다. 알 대장이 위치를 아는 것처럼 자신 있게 걷기에 졸졸 따라갔는데 10여 분간 뺑 돌아 제자리로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오전 청계산 산행 때의 기억이 되살아나 짜증이 밀려옵니다. 알 대장은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물어본 뒤 걸어가다가 다시 되돌아오며 전화를 또 겁니다. "그러니까 우측이 아니라 좌측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
참다 못한 제가 "네가 산행대장이긴 해도 너 혼자만 민박집 주인에게 듣고 알아서 찾아가려고 하지 마라. 벌써 두 번이나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느냐. 이젠 우리한테도 정보를 알려주고 집단지성으로 해결하자"고 권유합니다. 뜬 총무도 "주소를 알려 달라고 하소. 스마트폰 맵에 찍어서 찾아가게요." 그러나 역시 알 대장은 황소고집입니다. 한참을 걸어가니 민박집 주인 아저씨가 큰길가에 나와 있습니다. 아저씨를 따라 골목길을 돌아돌아 가는데, 만일 아저씨가 안 나왔으면 한참을 더 헤맬 뻔했습니다.
민박집은 가격(2실 7만 원)에 비해 방이 넓고 깨끗합니다. 침대방을 동기인 저와 산바람이 쓰기로 하고 온돌방에는 후배인 알 대장과 뜬 총무가 짐을 풉니다. 몸을 씻은 뒤 마당으로 나오니 아래로 누운 하현달이 교교한 빛을 내뿜습니다. 이곳 지명이 달빛을 끌어들인다[引月]는 뜻이어서 더 밝아 보이는 듯합니다. 고려 말 이성계가 달밤에 왜구와 황산전투를 벌일 때 달이 지려 하자 신통력으로 달빛을 끌어들여 적을 섬멸했다고 그런 지명이 붙었답니다. 근처에는 달궁마을도 있어 이래저래 달과 관계가 깊은 고장입니다.
온돌방에 모여 술판을 벌이며 이튿날 계획을 짭니다. 5시 30분에 일어나 6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합니다. 마트에서 사온 짐을 배분하는데 산바람이 "몸무게에 비례해 짐을 나눠 지자"고 제안합니다. 역도나 권투 등의 스포츠 종목도 몸무게에 따라 체급을 나눠 경기한다는 보충설명도 덧붙이더군요. 가장 무거운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없죠. "내 한 몸도 지탱하기 어려운데 짐까지 무거우면 어떡하란 말이냐? 경마는 잘 뛰는 말에 핸디캡(부담중량)을 부과한다. 산길을 잘 걷는 알 대장이나 내일 하루만 걸어도 되는 산바람이 더 무겁게 짐을 지고 가는 게 맞다"고 맞섰습니다.
그때 누가 무슨 짐을 챙겼는지는 일일이 확인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짐을 꺼낼 때 보니 김치와 돼지고기와 수제비 등 무거운 건 알 대장과 뜬 총무가 졌고, 저는 누룽지와 라면 등 부피 큰 걸 넣었고, 산바람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쨌든 짐 문제로 티격태격하며 즐겁게 술잔을 비우다 보니 이튿날 마실 술병까지 바닥을 보입니다.
아침에 산바람이 먼저 일어나 부스럭부스럭 짐을 챙깁니다. 저도 따라 일어나 씻고 배낭을 꾸렸습니다. 6시 조금 넘어 밖으로 나와 보니 뜬구름도 일어나 준비하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알 대장이 안 보입니다. 문을 열고 뜬 총무에게 물어 보니 "화장실에 없나요?"라며 되묻습니다.
전화를 걸자 터미널 근처에 있다고 합니다. 평소 그리하듯 새벽에 산보 겸 나섰다가 아침 먹을 곳을 알아봤다는 겁니다. "책임감이 앞서서 식당 알아본 것은 좋은데, 말은 하고 가지 그랬어. 출발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 돼 가는데"라고 제가 핀잔을 주자 "뜬구름이 곤하게 자고 있어 금방 깰 기색이 아니었는데"라고 의아해하며 곧 오겠다고 합니다. 이어 "분식집이 문을 열 기미가 없어요. 반선에 가서 식당을 알아봐야겠어요"라고 덧붙입니다.
알 대장이 온 뒤 택시를 불러 타고 갑니다. 날이 희부윰하게 밝아옵니다. 반선 식당가에 도착하니 문을 연 곳이 없습니다. 택시 기사가 아는 음식점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깨웁니다. 어둡던 식당에 불이 켜집니다. 기사가 아니면 한참을 기다리든가 불을 피워 산에서 먹을 양식으로 아침을 해결할 뻔했습니다.
나뭇잎과 하늘이 연출하는 배색의 조화
산채 백반으로 든든히 속을 채우고 소주까지 새로 사서 생수 병에 채운 뒤 길을 나섭니다. 저는 1989년 뱀사골로 내려온 뒤 30년 만에 걷는 길입니다. 산바람은 초행이라고 합니다. 초입부터 한참 위까지 나무테크를 깔아놓아 걷기가 참 편합니다.
계곡이 길고 깊은 만큼 요룡대, 탁룡소, 병풍소, 제승대, 병소, 간장소 등 물줄기와 바위가 빚어낸 절경과 명소가 즐비합니다. 위로 오를수록 초록빛 나뭇잎이 노랑과 빨강으로 바뀌어갑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갈색 나무줄기, 파란 못과 하얀 포말 등 자연이 연출하는 배색의 조화도 아름답습니다.
처음 코스를 잡을 때 알 대장은 “저도 안 가본 길”이라면서 “뱀사골로 올라오다가 간장소에서 산비탈로 길을 잡아 심마니능선으로 오른 뒤 반야봉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심원마을에서 자고 반야봉으로 막바로 올랐을 때도 그 길은 비법정탐방로였고, 지난 5월에 갔을 때도 주능선에서 오는 길 반대편은 막아놓았더라”고 말했죠. 그래도 알 대장은 계획을 바꿀 생각이 없었습니다. 제가 검색을 해보니 국립공원 탐방로에는 나와 있지 않은데 그 길로 다녀온 산행기는 눈에 많이 띄더군요. 현장에 가서 판단할 수밖에요.
간장소에 이르기 전 안내판을 보니 우리가 가려는 길은 비법정탐방로임에 분명했습니다. 50만 원 이하의 벌금까지 명시해놓았더군요.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알 대장은 간장소 오른쪽으로 난 길을 발견하고는 혼자 얼마간 걷다가 돌아옵니다.
“안전을 보장하기 힘드네요. 중간에 일부러 등산로를 막아놓았어요. 그냥 화개재로 올랐다가 주능선에서 반야봉을 다녀와야겠어요.” 알 대장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한데, 능선길이 험할까봐 걱정하던 산바람은 잘됐다는 표정입니다.
반선에서부터 9.2㎞를 4시간여에 걸쳐 오르자 마침내 주능선 화개재(1,316m)입니다. 남원 운봉 지역 사람들이 소금을 구하러 넘나들던 고개랍니다. 고단했을 삶의 무게가 어렴풋이 짐작됩니다. 저희에게는 마침내 한 고비 넘었다는 성취감과 함께 확 트인 조망과 시원한 바람이 느껴질 뿐입니다.
전망대 벤치에 앉으니 옆 벤치에 초등학생 남매를 데리고 온 아저씨가 있습니다. 단체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며 물어보니 아침에 성삼재에서 출발해 저녁에는 연하천대피소에서 묵을 예정이랍니다. 아이들도 대견하지만 아빠도 대단합니다. 저는 초등학생 오누이를 데리고 한라산 백록담에 올랐다가 아이들이 “다시는 아빠랑 산에 안 간다”고 하는 바람에 여태 가족 등반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반야봉은 역시 조망의 끝판왕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삼도봉에 오릅니다. 해발 1,550m여서 계단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합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 가운데 아마도 가장 가파른 길이 계속되는 구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반야봉(1,732m)에 오르려면 미리 고도를 높여놓는 게 낫겠다고 여기며 한발한발 내딛습니다.
삼도봉에 오르니 경남(하동), 전북(남원), 전남(구례) 경계를 알리는 상징물을 세워놓았습니다. 멀리 노고단이 바라보이고 가까이서 반야봉이 손짓합니다. 민주지산의 삼도봉은 충북(영동), 전북(무주), 경북(김천)의 꼭짓점이니 거기가 충청 경상 전라의 진정한 삼도봉인 듯싶습니다.
이제 내리막길로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반야봉으로 향합니다. 오르막길 200m를 더 가니 삼거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배낭을 내려놓고 알 대장 배낭에만 점심 해먹을 도구(코펠 버너 가스)와 재료(전투식량 컵밥) 등을 넣고 다시 출발합니다. 짐을 지키는 이는 없지만 자기 배낭도 무거운데 누가 가져가겠습니까.
올라갈수록 나무 높이가 낮아지더니 조망이 시원해집니다. 천왕봉, 노고단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꼽힐 만합니다. 정상석 주변에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빼곡합니다. 제가 다섯 달 전에 본 대로 출입금지를 알리는 플래카드와 함께 줄이 쳐져 있습니다.
그래도 취사할 만한 곳을 알아보려고 제가 줄을 넘자마자 한 남성이 제지합니다. 옆에 있던 알 대장이 “소변 보려고요”라고 둘러댑니다. 알고 보니 국립공원공단 직원이었습니다. 만일 알 대장 말대로 능선을 타고 반대편에서 반야봉에 올랐다면 정통으로 걸릴 뻔했습니다.
뒤따라온 산바람과 뜬구름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황당하고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그러면 그렇지”라며 혀를 끌끌 찹니다. 점심 때를 넘겼지만 과자로 간단하게 요기하고 왔던 길을 내려갑니다. 내려올 때는 알 대장이 진 배낭을 뜬구름이 멥니다. 이래저래 후배들 신세를 많이 지네요.
삼거리에서 배낭을 다시 메고 200m를 더 내려간 뒤 노루목에서 주능선과 합류했습니다. 표지판에는 노루목에서 주능선을 따라 700m 더 가야 반야봉 갈림길이 나오는 것으로 표시돼 있습니다. 제가 뜬구름에게 설명합니다. “삼각형의 두 변의 합은 나머지 한 변보다 커야 하는데 위에 두 변이 각각 200m, 밑변은 700m로 나와 있지.”, “거리 표시가 잘못됐네요.”, “평면으로 보면 삼각형의 공리를 어긴 셈이지만 입체로 보면 맞을 수도 있어.”, “아하! 그러네요.”
사시사철 물이 콸콸 나오는 임걸령 샘에서 다리쉼을 하며 속을 채우기로 하고 부지런히 걷습니다. 배가 고프니 기력이 떨어지는데도 발걸음은 빨라집니다. 노고단에서 노루목까지가 걷기는 편한데 경치는 별로입니다. 세석산장에서 장터목까지가 걷기는 힘들어도 조망이 멋지죠.
노고낙조 배경 삼아 화려한 만찬
임걸령에 이르자 오후 3시쯤 됐습니다. 알 대장이 “사람도 없는데 근처에 취사할 만한 곳을 찾아볼까요?”라고 합니다. 제가 “그러다 걸리면 돈도 돈이지만 망신스럽지 않냐”라고 만류합니다. 저녁 기차표를 끊어놓은 산바람은 시간이 지체될까 걱정스러운지 “조금만 더 참고 갔다가 노고단대피소에서 남은 거 다 때려먹자”라고 제안합니다.
쉬는 김에 제가 1980년대 말 장승 한 쌍을 임걸령 삼거리에 세우려고 했다가 돼지평전 근처 길에 세웠고, 나중에 개신교 신도로 추정되는 사람들에 의해 장승이 잘렸다는 얘기를 들려줍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3자 정상회담을 지리산 봉우리에서 한 뒤 ‘노고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유래를 설명하자 모두 허탈해하며 빨리 길을 가자고 재촉합니다.
노고단대피소까지 남은 거리는 3.5㎞. 앞서 걸은 알 대장은 안 보입니다. 산바람이 지쳤는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제가 바로 뒤에서 노래를 부르며 응원합니다.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한발두발 한숨만 나오네/ 아하~ 뜬구름 하나~” 바로 앞에 뜬구름이 보입니다. 저는 지나는 등산객도 없고 길도 평탄해 생각나는 대로 산길에 어울리는 가요와 가곡을 읊조리며 걷습니다.
어느덧 노고단고개에 이르렀습니다. 알 대장은 자취도 없습니다. 나머지 셋이서 돌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가니 알 대장은 나무탁자에 자리를 잡고 코펠을 꺼내놓은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둘러 버너와 가스를 꺼낸 뒤 불을 피워 돼지고기부터 구웠습니다. 참기름도 소금도 없는데 맛이 기가 막힙니다. 고기가 얼마 남지 않자 나머지를 물에 넣고 묵은 김치와 함께 끓였습니다. 햇반을 곁들여 먹으니 무려 11시간 만에 곡기를 받아들인 위장이 황감해합니다. 김치찌개에 라면도 하나 넣어 나눠 먹었습니다.
오늘도 제 할 일을 마친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웁니다. 반야낙조(般若落照)와 노고운해(老姑雲海)가 지리십경(智異十景)에 든다고 하지만 숙박시설도 없고 야영도 못하게 하는 반야봉에서는 낙조를 즐기기 힘들죠. 노고낙조도 그에 못지않다고 여기고 일몰을 바라보며 성대한 만찬을 즐깁니다.
생수 병에 담아온 소주를 마시려는데 공단 직원의 눈초리가 매서워 보입니다. 주변에도 술을 마시는 일행이 안 보이는 듯합니다. 조심조심 전전긍긍하며 은근슬쩍 잔에 따라 홀짝홀짝 마십니다. 고교 시절 화장실에서 숨어 피우는 담배가 맛있듯이 감시의 눈길을 피해가며 마시는 술이 입에 짝짝 달라붙습니다.
이제 산바람이 내려갈 시간입니다. 당초 산바람은 “성삼재휴게소까지 함께 내려가서 막걸리를 곁들여 이별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저와 알 대장은 “산길 2.6㎞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무리”라며 반대했죠. 결국은 성삼재휴게소에서 술을 팔지 않는 데다 오후 6시까지만 영업한다는 사실이 확인돼 산바람의 제안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산바람은 혼자 걸어내려가 성삼재휴게소 주차장으로 부른 택시를 타고 구례구역으로 가서 KTX와 SRT를 이용해 귀경했죠. 남은 셋은 밥상과 짐을 정리하고 취침 모드에 들어갔습니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빈자리가 많네요. 8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온종일 20㎞가량을 걸은 탓인지 금세 잠에 빠졌습니다.
만복대에서 본 장엄한 일출
알 대장은 오전 3시 30분에 일어나 4시에 출발하자고 우리와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2시 55분에 누가 발목을 잡아당겨 다른 사람이 착각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5분 뒤 또 잡아당기는데 알 대장이었습니다. 서둘러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와보니 출발 준비를 마친 알 대장은 “뜬구름은 깨웠더니 신경질을 내더라고요. 시간 다 됐는데”라고 투덜댑니다. 제가 “3시 30분에 일어나기로 했잖아”라고 하니 “그랬나요? 3시 아니었어요?”라고 합니다.
얼마 뒤 뜬구름도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3시 20분에 길을 나섭니다. 오락가락하는 알 대장의 기억 덕분에 시간을 벌었네요. 기온이 낮은데도 바람이 불지 않아 그리 춥지 않습니다.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도 두어 팀이 올라옵니다. 밤기차로 구례구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성삼재에 오른 뒤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객들입니다. 대단한 정성입니다. 아마 그들도 우리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성삼재휴게소에 거의 다와 가는데 뜬구름이 고통을 호소합니다. 등산화 신은 발이 아프다며 운동화로 갈아 신겠다고 합니다. 그저께 집을 나설 때 신발 한 켤레를 여벌로 갖고 왔다가 짐스러워서 아톰 편에 운동화를 보내려고 했는데, 그랬다면 낭패를 볼 뻔했습니다. 신발을 갈아 신으니 날아갈 듯하다고 합니다. 등산화는 어차피 발에 맞지 않으니 버리기로 했다가 혹시 누가 필요로 할지 모른다며 성삼재 주차장 길 한켠에 얌전히 놓아두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지리산 서북능선 산행입니다. 여명이 시작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맨 뒤에 처진 저는 뒤쫓아가기 바쁩니다. 산바람이 있을 때는 뒤처질 걱정이 없었는데 없으니 아쉽습니다. 길도 제대로 안 보여 몇 번을 헤맸습니다.
첫 봉우리인 고리봉(1,208m)에 도착했습니다. 사방이 트여 있는 듯한데 컴컴해서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인증샷 찍을 것도 없이 하산을 재촉해 다음 목표물로 향합니다. 하산길도 발을 헛디딜까 조심스러워 따라가기 힘겹습니다. 뜬구름은 그래도 중간중간 저를 기다려주는데 알 대장은 좀처럼 모습을 안 보입니다. 묘봉치(1,089m)에 이르렀는데 아무도 없습니다. 한참을 더 가니 전망대에서 알 대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제가 “원래 묘봉치에서 아침 먹으면서 기다리다가 일출 보기로 한 거 아냐?”라고 물으니 알 대장이 “아직 묘봉치 안 지났는데요”라고 답합니다. “내가 오다가 표지판 봤어”라고 하자 “그런가요? 그럼 만복대 가다가 보죠”라고 하더군요. 이런 대장을 믿고 따라가도 괜찮을까요?(이건 농담. 알 대장 삐치면 안 되니까)
날은 훤해지고 만복대(1,433m)가 코앞에 있습니다. 만복대 뒤편으로 하늘이 붉게 물듭니다. 마음이 바빠집니다. 만복대 동쪽 사면을 오르는 길이라면 오르다가 일출을 볼 수도 있는데, 길이 서쪽 사면으로 나 있어 늦으면 일출 장면을 놓칠 수도 있거든요.
걸음을 빨리 해 뜬구름도 제치고 만복대에 오르니 다행인지 불운인지 해는 공제선 위로 짙게 깔린 구름 속에 숨어 있더군요. 얼마 후 모습을 드러내며 붉은 햇살을 쏟아냅니다. 지난 5월 천왕봉 일출을 본 뒤 다섯 달 만에 감상하는 지리산 일출입니다. 그때보다는 못해도 일출은 여전히 감동적입니다. 우리 말고는 삼각대를 준비해온 사진쟁이 한 명밖에 없는 것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만복대 바로 아래 바위굴에 자리를 잡고 취사를 준비합니다. 누룽지를 물과 함께 먼저 끓인 뒤 건더기를 건져 먹고 그 물에 라면을 끓입니다. 면발과 함께 걸쭉한 국물까지 들이켜니 속이 든든해집니다. 저를 뺀 둘은 맹물을 끓여 커피까지 타서 마십니다. 만족스러운 아침식사입니다.
그런데 준비해온 가스가 모자라 걱정입니다. 제가 쓰다 남은 것 두 개를 가져왔거든요. 노고단에서 하나를 살 걸 그랬습니다. 점심 해먹을 일이 걱정입니다. 뜬구름은 정령치휴게소에서 팔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알 대장은 “그렇지 않아도 컵밥이나 전투식량 먹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 정령치휴게소에서 햇반 데워 달라고 해서 가져가자”고 합니다. 저는 “이왕 준비해온 거 먹는 게 낫지 않냐”고 하며 정령치에서 결정하자고 결론냈습니다.
뜬구름의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내리막길을 걸을 때 무릎이 아프다는 겁니다. 제가 가져온 무릎보호대를 채워주니 한결 낫다고 하네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정령치(1,172m)로 가는 길에서 처음 등산객을 만났습니다. 월요일이어서 그런지 정말 길이 호젓하네요.
한 명씩 차례로 사라지는 멤버들
정령치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성삼재휴게소처럼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곳입니다. 주차장에 차 두어 대가 보입니다. 취사를 할 수 있는 대피소가 아니어서인지 가스는 안 팔더군요. 난감해하고 있는데 더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뜬구름이 더는 걷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그래도 여기서는 차를 타고 내려갈 수 있지만 더 가면 하산길이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제가 “우리도 함께 하산해야 하자 않을까?”라고 하자 뜬 총무는 “그러면 제가 형들한테 미안해서 안 되죠”라며 만류합니다. 알 대장도 “이왕 가기로 한 거 가시죠”라고 합니다. 저도 ‘이번에 안 가면 언제 서북능선을 주파하겠는가’라는 생각에 뜬구름 혼자 내려보내기로 합니다. 둘만 남았으니 점심은 행동식으로 때우기로 합니다. 승용차 한 대가 막 출발하려고 해 택시 다니는 곳까지 태워 달라고 부탁합니다. 다행히 운전자는 선선히 승낙합니다.
경황이 없어 제대로 못봤는데 뜬구름이 떠난 뒤 능선을 바라보니 경치가 끝내줍니다. 왼쪽부터 중봉 천왕봉 촛대봉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의 연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뒤에서부터 앞으로 우리가 걸어온 능선이 줄이어 있습니다. 성삼재나 한계령보다 훨씬 조망이 낫습니다. 다음에 혹시 승용차를 몰고 근처에 올 일이 있으면 꼭 한번 올라오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제 알 대장과 둘이 걷는 길입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면 그룹사운드 멤버가 한 명씩 이탈하는데 우리 일행을 연상케 합니다. 공포영화를 봐도 한 명씩 사라지죠. 그것도 꼭 말이 많거나 혼자 자리를 비우는 등장인물부터 악령이나 킬러에게 희생됩니다. 그래서 혼자 화장실에 간다거나 “왠지 기분이 으스스한데 뭐가 나올 것 같지 않니?”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이제 제가 없어질 차례인가요? 왠지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식은 땀이 흐르는 듯합니다. 흐흐흐!
정령치에서 바래봉까지는 9.4㎞. 거기서 용산리까지 또 4㎞ 남짓 내려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10㎞에 이르죠. 5시간 넘게 걸어왔는데 앞으로도 7시간 가까이 걸어야 합니다. 알 대장을 쫓아가지 못할까봐 걱정스럽긴 하지만 지리산은 위험한 구간도 없고 길 잃을 염려도 적으니 인내와 끈기로 버텨보자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알 대장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혼자 걷습니다. 저도 제 페이스대로 터벅터벅 걷습니다. 모처럼 긴 산길을 혼자 걷는 기분입니다. 큰고리봉(1,305m)에 이르니 알 대장이 웃통을 벗고 햇빛을 쬐고 있습니다. 저도 맨몸을 드러내고 바람을 쏘입니다. 등산객이 없으니 좋은 점이 많군요. 초콜릿 바와 초코파이로 속을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다음은 세걸산(1,216m)입니다. 다른 곳은 끝에 봉이나 대나 단이 붙었는데, 홀로 떨어진 봉우리도 아니고 특별히 더 높지도 않으면서 여기만 왜 산이라고 하는지 의아합니다. 이제 바래봉(1,167m)이 훤히 보입니다. 그 사이로 작은 봉우리와 고개가 겹쳐 있지만 그리 힘들어 보이진 않습니다.
마지막 고지가 바로 눈앞에
세동치와 부운치를 지나니 팔랑치가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마지막 목표물인 바래봉까지는 큰 나무도 없고 숲도 없어 시야가 훤합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 표지판이 보이지만 여기서 하산할 순 없죠.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산길을 오릅니다.
억새밭에서 국립공원공단 직원 일행을 만나 기념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 뒤 모처럼 대화를 나눕니다. “어디서 출발하셨어요?”, “노고단대피소에서요.”, “성삼재도 아니고 노고단대피소라니. 새벽부터 걸으셨겠네요?”. “중간에 밥해 먹을 데가 없어 배가 고프네요.”(물론 만복대 아래서 취사했다는 말은 안 했습니다), “안 그래도 여기에 대피소를 지으려고 합니다. 그때 또 오세요.”, “네, 고맙습니다.”
조금을 더 걸으니 용산리로 내려가는 길과 바래봉으로 오르는 길의 갈림길이 나옵니다. 알 대장이 제안합니다. “용산리로 내려가는 길은 돌과 시멘트로 돼 있어 발바닥에 불이 납니다. 차라리 바래봉 넘어서 구인월로 내려가면 어떨까요? 거기서부터 5㎞니까 거리도 많이 차이 안 나거든요.” 제가 단호히 답했죠. “발바닥이 아파도 길이 넓게 나 있다면 내려가는 시간은 짧지 않겠냐. 그리고 여기에 배낭을 내려놓고 맨몸으로 오르려고 했는데 희망을 꺾지 마라. 원래 계획에 맞춰 체력을 온통 쏟고 있기 때문에 코스를 더 늘리면 내가 못 견딘다.”
배낭를 벗으니 홀가분합니다. 나무계단을 오르는데 알 대장이 바래봉 정상 바로 아래 전망대에서 또 웃통을 벗습니다. 제가 지나쳐 오르려 하니 “여기나 거기나 전망은 똑같아요”라며 말립니다. “그래도 정상석에서 기념사진은 찍어야지”라며 올라가자 마지못해 옷을 챙겨 뒤따라옵니다.
마침내 바래봉 정상입니다. 11시간가량 걸린 겁니다. 나무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봅니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듭니다. 알 대장에게 “네 덕분에 서북능선을 주파할 수 있었네”라고 사의를 표하니 “제가 형에게 고마워해야죠. 저도 혼자서는 올 마음을 못 내잖아요”라며 겸손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제 정말 내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그 유명하다는 바래봉 샘물을 마신 뒤 배낭을 메고 돌길을 내려갑니다. 바닥이 딱딱해 불편하지만 그래도 길이 넓고 사람이 없으니 둘이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 좋습니다. 알 대장은 평소 말수가 적어 속마음을 알기가 어려운데 모처럼 소중한 기회입니다.
용산리 주차장에 이르니 4시가 넘었습니다. 알 대장은 인월에서 동서울터미널 가는 버스가 오후 4시 10분에 있는데 놓쳐서 5시 10분 차를 타야 한다며 안타까워합니다. 저는 밥 먹을 시간이 생겨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인월에 도착해 둘러보니 마땅한 식당이 눈에 띄지 않아 그저께 저녁에 들른 음식점에서 곰탕에 소주를 곁들여 먹습니다. 이번에도 거의 10시간 만에 제대로 먹는 끼니입니다.
버스에 타자마자 알 대장이 말합니다. “버스가 함양 마천터미널에 15분 섰다가 가는데 그 사이에 먹는 잔치국수가 끝내줍니다.”, “촉박하지 않을까?”, “지난번에 늦어서 버스 기사에게 혼나긴 했는데 괜찮을 거예요.”, “근데 우리 방금 밥도 먹었잖아.”, “안 드시면 후회할 텐데요.”
대식가는 아니어도 맛집에 관심 많고 욕심 많은 알 대장의 고집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5시 44분께 마천터미널에 버스가 서자마자 국숫집으로 뛰어갔습니다. 잔치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니 주인아주머니가 버스 탑승시간을 물어봅니다. 6시 서울행이라고 하자 손사래를 칩니다. “그카다 차 놓치뿌면 우짤라꼬예. 물 낋이는 시간도 있고, 국수 삶는 시간도 있고. 안 됩니다.”
알 대장은 몇 번 더 간청하다가 포기하고 도토리묵과 소주를 주문합니다. 도토리묵을 몇 점 집어먹다가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다시 한 번 애원하니 못 이긴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국수를 만들어 한 그릇 내옵니다. 면발도 쫄깃하고 국물도 깊은 맛이 있습니다. 고명으로는 부추를 올렸는데 이게 특색이 있더군요.
도토리묵은 몇 점 남겼지만 국수는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들이마신 뒤 차에 올랐습니다. 다행히 출발 시간 전입니다. 이제 눈 붙였다가 일어나면 서울이겠죠. 의자를 뒤로 한껏 젖혀 곤한 몸을 눕히니 어제 오늘 걸으며 본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동서울터미널에 내리니 9시가 넘었습니다. 두어 시간만 일찍 도착했다면 제가 한잔 더 하자고 졸랐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제 정신이 돌아와 내일 출근할 걱정이 앞섭니다. 피로감도 갑자기 엄습합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또다른 대학 동창들과 5일 뒤 토요일 검단산으로 정기산행을 다녀왔다가 하루 쉬고 월~화요일 설악산과 오대산으로 번개 여행을 갈 꿈이 부풀어오르고 있습니다. 지난달 문경새재길을 걸을 때 경영학과 동기 친구가 제게 묻던 말이 생각납니다. “너 퇴직하면 뭐할 거니?”, “일단 좀 쉬면서 놀러 다니려고.”, “뭐? 지금도 뻔질나게 다니잖아. 백수도 너만큼 놀러가는 친구 잘 없어.” (끝)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ㅎㅎ, 산행기 재밌네요, 멋진 지리산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늘 지리산을 그리워 하지만 산장 예약이 힘들어서 엄두를 못 내는데, 덕분에 대리만족!!
반응이 너무 미지근하다고 희망과용기 형이 부끄러워 합니다. 열렬한 댓글 바랍니다. 전 개인적으로 너무 흠 잡을 데가 없어, 천의무봉이라 감히 적을 엄두가 안 나더라는.
마치 앵벌이해 댓글 받은 느낌. 그래도 무플보단 낫군. 고마워
저는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기억력 대단하시네요. 산행은 미완주이지만, 산행기 읽으니 저도 완주한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산행기 예정에 없으셨으니 메모도 안 하셨을 터인데 희용 형, 대단하십니다.
'노고단 정상회담' 부분에서 저는 재밌어라 웃었는데, 요즘 아그들은 춥다면서 성질부린다데요. ㅎㅎ
정성 들여 쓰신 산행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참, '초코릿 바'가 브랜드명인가요? 초코릿==> 초콜릿이 맞는데요. ^^
꼼꼼한 지적에 감사. 브랜드는 '가나' 뭐시기였던 듯
@희망과용기 저는 형이 초콜릿을 모르실 리가 없으니 고유명사, 브랜드인 줄 알았어용.
그리고 또, 남원군은 시 승격했는디...^^
@오솔길 내가 모를 리가 없다고? 모르는 것도 많고 알아도 실수하는 경우가 있지. 남원군도 착각이라기보다는 무심코 쓰다 보니. 깨알 지적 고마워.
중편소설 한편 읽은 느낌
글쓴이의 정성이 가득찬 느낌
나는 그동안 정신이 없어 못 읽었는데, 내가 인간 낙타여? 멀쩡한 사람 짐승 만들어놨네...ㅎ 왠지 딱히 좋은 것만은 아닌 듯. 나도 이제 지리산을 다시 갈 수 있을까 싶다. 큰산이 주는 넉넉함을 한번은 더 느낄 수 있어야 할 텐데.. 길게 쓰느라 애썼다. 재미있에 읽었고,.. 알아. 반성 좀 해라. 선배들 골탕 먹이지 말고...ㅋㅋㅋ.
'인간 낙타'는 존경과 선망과 찬탄의 뜻을 담은 표현입니다. 부디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 주소서.
@희망과용기 사실은 너보다 알이 더 괘씸해~~ㅋ 토씨를 '도'를 쓰지 않았겠냐? 내가 비록 산행 때 속도에서 민폐를 끼친다고는 해도 말이야~~
한국에 다니러 간 아들 몫까지 하느라 경황이 없어 이제야 카페에 들어와봅니다. 나레이션 하듯 써나간 글이 마치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는 듯 즐겁게 만들어 새삼 희용씨의 왕팬임을 확인하게 되네요 .^^
부끄럽습니다
이제사 읽었습니다. 형 글발이야 새삼 말할 필요도 없고. 언제 또 지리를 만날 수 있을지. 문장 하나하나 그 길을 떠올리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야 읽는군요 두번을 꼼꼼히 보고 앞으로도 머리속에 담아놓고 읽을 것 같습니다.글발과 문장의 제왕이네요 기억력은 하늘의 선물이고요 글 곳곳에 색감이 잔뜩 묻어 있군요 파스텔화를 연상시킵니다. 그 어려운 곳을 네분이서 세분이서 두분이서 걷는 정경을 떠올리니 무척이나 정겹습니다 티격태격은 재미를 한층 강화시킵니다 지리산길은 저에게는 언감생심! 숱하게 등장하는 봉우리들이 약간은 혼란을 안깁니다. 정성과 노력이 가득 담긴 좋은 산행기 굿입니다 어디 출품해도아깝지 않을 기록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