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N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미생>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케이블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방송 4회 만에 5%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상파 미니 시리즈들조차도 10%대를 넘기기 힘든 작품이 많은 것을 고려할 때 이는 아주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대기업 신입 사원의 치열한 직장 내 성장기를 그리고 있는 드라마 <미생>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법한 사건과 인간 군상, 전문적인 업무 내용 등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원작이 되는 웹툰 <미생>은 우리나라 최고의 웹툰 작가로 손꼽히는 윤태호 씨의 작품이다. 바둑만 두다가 결국 입단에 실패한 장그래가 후견인의 도움으로 종합상사 인턴으로 들어가면서 겪는 일들을 사실감 있게 그려내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2012년 1월 포털 사이트 다음을 통해 웹툰으로 첫 선을 보인 뒤 같은 해 9월 단행본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는데, 총 9권으로 지난해 10월 단행본이 완간 되자마자 50만 부가 판매되는 등의 인기를 얻었다. 최근 드라마의 영향으로 단행본 판매 부수가 더욱 늘어나 만화가 아닌 단일 작품으로도 달성하기 힘은 100만 부 판매를 돌파하기까지 했다.
이 작품은 1989년 조훈현-녜웨이핑 9단과의 결승 대국을 장그래의 직장생활과 결합시켜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나가는데 여기서 '미생'이란 아직 대마의 삶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바둑용어를 뜻한다. 윤태호 작가는 무역회사 업무는커녕 직장 생활 한 번 해보지 않았지만 매우 방대한 분량의 정보 수집과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매우 세밀하고 사실적인 등장인물과 사건들을 탄생시켰다.
드라마 미생은 취업 준비생 장그래를 비롯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각 세대별 직장인들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시청자들에게 동질감을 부여하고 있다. 원작 웹툰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 살린 것도 크게 눈여겨볼만한 요소이다. 원작 콘텐츠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 중에는 불필요한 러브 라인이나 신파적인 설정 등으로 원작의 작품성을 크게 훼손하고 오히려 안 만드는 게 나았다는 평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의 사랑, 법정 드라마에서는 변호사와의 사랑,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는 본부장님과의 사랑을 빼놓을 수 없듯이 로맨스가 주된 요소를 이루지만, 드라마 <미생>은 원작의 흐름을 고스란히 매우 현실적으로 옮겨왔다.
잃어버린 보안 문서를 회사 전무가 발견해 나무라고, 입사 시험에서 청심환을 먹지 않아 실수를 연발하는 등 어찌 보면 하찮아 보이는 장면에서 드라마의 극적 긴장은 최고조에 이른다. 치열하고 긴박한 회사를 마치 CCTV로 들여다보는 듯해서 실제로 무역업에 종사한다는 어떤 직장인은 "미생을 보고 있으면 마치 회사 일을 다시 하는듯한 기분이 든다"고도 말을 할 정도이다.
비록 브라운관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지만, 매일 전쟁터가 벌어지는 무역상사 안에서 뛰어다니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우리 소시민들의 모습 그 자체이다. 최근 한국 드라마들은 소시민과는 거리가 먼 판타지라고 해도 무방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재벌가 2세들의 연애 이야기나 사랑 하나만으로 화려한 상류사회로 너무도 쉽게 편입되는 신데렐라 이야기들. 이에 비해 전무님의 낙하산이라 해서 처음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지만 학벌도 경력도, 기타 스펙도 아무것도 없는 장그래의 실체를 알자마자 차갑게 등을 돌려버린 회사 사람들은 얼마나 냉정하고 현실적인가.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고 서툴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장그래의 진심은 동료와 상사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주어진 운명을 따라가기만 하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장그래에게 우리는 어쩌면 우리 모습을 투영하면서 그를 응원하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막장과 판타지 속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너무도 쉽게 대리만족 시켜준 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미생은 단연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첫댓글 현실속에 드라마 드라마같지않은 드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