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393) - 옛 동료들과 함께 한 남도문화탐방
가을이 짙어가는 계절, 누렇게 익은 벼 수확이 한창이고 단풍이 고운 빛을 뽐낸다. 금강산에서 65년 만에 만난 가족들이 기약 없는 작별에 눈물 흘리는 날(10월 22일), 옛 체신부와 정보통신부 은퇴자들의 모임이 주관한 문화탐방행사에 동참하였다. 광주에서 출발하여 광양 이순신대교를 거쳐 여수 향일암과 국가지정 1호 순천정원공원을 다녀오는 코스. 지명처럼 밝은 빛, 맑은 물, 하늘 뜻이 잘 드러난 명소들이다.
오전 8시 50분, 100여명의 회원들이 두 대의 버스로 광주 상록회관을 출발하였다. 순천방향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좌우에 안개가 짙게 깔려 주변경관이 흐릿하다. 한 시간쯤 달려 주암 휴게소에서 잠시 머문 버스는 광양제철을 지나 이순신대교에 오른다. 한적한 어촌들이 세계유수의 제철과 석유화학 공장지대로 탈바꿈한 산업현장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몇 년 전 성대하게 치른 여수엑스포 전시장을 거쳐 돌산대교를 건넌 버스는 30여분을 더 달려 11시 30분 경 향일암이 있는 임포항에 도착하였다. 여수는 30대 중반에 2년여 전화국장으로 일한 추억이 서린 곳, 지나온 길목의 방죽포해수욕장에서는 20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와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도 하였다.
경관이 빼어난 한려수도의 여러 명승지 중 앞자리에 드는 향일암 주변은 돌산갓김치 생산지로도 유명한 곳, 가파른 비탈길을 돌계단 따라 올라가는 길목에 해물과 갓김치 가게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암자까지는 15분 거리, 몇 년 전 큰 화재로 전소한 암자를 새로 지어 일부는 낯설기도 한데 수직절벽을 따라 관음전에 이르니 원효대사가 수련했다는 넓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여러 해 전 향일암을 찾았을 때 산 정상에 올라 ‘금오산 향일암의 유래’를 살핀 적이 있다.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향일암(向日庵)은 서기 644년(신라 선덕여왕 13년), 원효대사가 원통암(圓通庵)이란 이름으로 창건한 암자다. 고려 광종 9년(958년, 과거제도를 시행한 해이기도 하다), 윤필대사가 금오암(金鼇庵)으로 개칭하여 불리어 오다가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르는 해돋이 광경이 아름다워 조선 숙종 41년(1715년), 인묵대사가 향일암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과 싸웠던 승려들의 근거지이기도 한 향일암은 해안가 수직 절벽위에 건립되었으며 기암절벽 사이의 울창한 동백나무 등 아열대 식물들과 잘 조화되어 이 지역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한 시간여 암자를 돌아본 일행은 여수수산특화시장 2층의 식당에서 싱싱한 회를 곁들인 점심을 맛있게 들고 순천으로 향하였다. 국가지정 1호의 순천만국가정원은 대한민국대표공원을 자랑하는 새로운 명소, 가까운 곳에 있어도 초행이다. 인근의 순천만생태공원을 여러 차례 찾은 것과는 반대인 셈, 미리 다녀온 이들의 반응이 호불호로 엇갈려 실제 모습이 궁금하였는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한 번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두 시간여로 살피기에는 부족한 편, 기회가 닿으면 다시 와 보리라.
일행 중에 전화국에서 함께 일한 동료와 대학의 제자도 있다. 엑스포전시장과 돌산대교를 비롯하여 환골탈태한 시가지를 접한 동료는 상전벽해의 고사를 실감하는 듯 동의를 구한다. 나의 대답,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수십 년이 흘렀으니 그렇기도 하겠지요. 구내우체국장으로 근무하며 야간으로 학위를 딴 제자는 어느새 정년을 맞아 시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89세의 시아버지는 오래 전 우체국장을 지낸 원로, 경내가 넓은 공원을 걷기 힘들다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참가자 가운데 80세가 넘은 노장들이 꽤 많다. 작년에 참석했던 이 중 고인이 된 분도 더러 있고. 옆 자리에 앉은 이가 버스에 동승한 영양제 판매원에게 상당액의 상품을 주문하며 하는 말, 연금을 받으니 이 정도는 부담되지 않아요. 평생을 열심히 일한 노장들이여, 남은 때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시라.
* 이번 달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의 시니어인문학강좌의 주제는 행복한 노년기, 강사인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최혜경 씨의 강의노트에서 발췌한 부분을 소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달라이 라마 등 여러 현자들이 설파한 내용을 강사 나름의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다.
'늙어감의 행복 - 6가지 요인
1. 관용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며 감싸주라. 작은 것에도 소중함을 느끼는 여유와 풍요로움을 가지라.
2. 인정
자신과 주변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라. 자신이 겪어야했던 역경을 잘 이겨낸 것을 대견하게 여겨라.
3. 해방감
욕심을 버리고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억울함이나 이해관계를 벗어나 자유로워지라.
4. 관조
세상의 격식과 세속적인 기준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스런 삶을 누리라.
5. 평온
정신적, 정서적으로 삶에 대한 깊은 내적 성찰을 통해 평온함을 유지하라.
6. 죽음의 수용
죽음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연의 일부로 순응하는 마음을 가지라.'
첫댓글 이번엔 여수에 다녀오셨군요?
^^돌산갓김치의 알싸한 맛과 여수밤바다의 풍경이 무척 그리워 집니다.
인문학강좌의 주제였다던 행복한 노년기를 읽으면서 늙어감의 행복중 관용이라는 글귀에 마음이 머무네요.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며 감싸주라!
실은...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큰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수님 덕분에 사색하기 좋은 가을밤입니다.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