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지산과 금용산을 오르기 전에 들머리 바로 옆의 정묘사를 먼저 답사한다
하마정 교차로 도로변의 하마비(下馬碑)
고려 시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동래 정씨 시조 묘 앞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 머물라는 의미를 담은 지명으로
말이 주요한 교통수단이 되던 전근대 시기에
말을 타고 지나갈 때 말에서 내리라는 의미의 하마비(下馬碑)를 세우고
말에서 내려 머무는 곳을 하마정(下馬停)이라고 하였다
하마비는 왕이나 성현 또는 명사, 고관의 출생지나 분묘 앞에 세워져
선열에 대한 숭앙의 표시로 말에서 내려 예를 표하도록 하는 표식이었다
동래 정씨는 고려의 문벌 귀족으로, 이후 명문 가문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동래 정씨의 시조인 정문도(鄭文道)의 묘소가 있는 화지산 자락 아래의 정묘사(鄭墓寺)를 지날 때
경의를 표하고 가라는 의미에서 하마비를 세우게 되었고
여기서 하마정(下馬停)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화지공원
동래정씨회관(東萊鄭氏會館)
화지공원 정문인 현경문(顯景門)
추원사(追遠祠)
화지 공원 내에 있는 동래 정씨 문중의 시조 사당으로
본래는 추원당이 있었으나, 2003년 옛 건물을 헐고 그해 8월 13일 착공하여
2004년 12월 11일 추원사(追遠祠)를 준공하였다
동래 정씨 가문에서는 매년 4회의 향사(享祀)를 지내는데 추원사에서는 동지에 향사를 지낸다
추원사의 내역을 적은 추원사기(追遠祠記) 비석
추원사의 정문인 경모문(敬募門)
동쪽 문인 감로문(感露門)
천연기념물 제168호인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와 정묘(鄭墓)
정묘(鄭墓)는 고려 중엽에 동래 동평현(東平縣)의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동래 정씨 2대 시조 정문도(鄭文道)의 묘이고
배롱나무(나무 백일홍)는 정묘(鄭墓) 앞 좌우에 각각 1그루씩 심었는데
원줄기는 죽고 주변 가지들이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하며
이 배롱나무의 추정나이를 800여 년으로 보고 있다
정묘(鄭墓) 아래의 연못
추원사의 동쪽 문인 감로문(感露門)을 지나 조금 오르면
화산재(華山齋)와 화지사(華池寺) 앞의 화지(華池) 연못이 나온다
화지(華池)
연못 가운데는 조그만 섬이 있고 건너가는 돌다리도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겨울이라 그런지 물이 다 빠지고 없지만 물이 가득차 있을 때는 산수경(山水景)의 아름다운 풍치를 보이겠다
화지 바로 뒤에는 재실(齋室)인 화산재(華山齋)의 대문인 둔산루(屯山樓)가 있다
둔산루의 문이 잠겨있어 돌아서 화지사로 가본다
화지사(華池寺)
화지사(華池寺)는 고려 시대의 유서 깊은 사찰로서
부산 동래 지역의 토착 세력인 동래 정씨(東萊鄭氏) 시조를 봉안한 사당으로
동래 정씨 2대 시조 정문도(鄭文道)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고려 중기에 창건되었다
본래의 이름은 영호암(永護庵)이었으며, 이후 만세암(萬世庵), 정묘사(鄭墓寺)로 불리기도 하였고
최근에는 화지사라고 바뀌었다
그렇지만 부산사람들에게는 화지사 보다는 아직도 정묘사(鄭墓寺)라는 이름으로 친숙하게 불리고 있다
1969년도에 친구를 따라 정묘사 인근에 살던 친구 형의 집으로 갔을때가 있었는데
그때에는 정묘사에는 담장도 없었고 산기슭에 뛰엄뛰엄 민가가 있었던게 기억이 난다
범종각
화지사 대웅전
현재 화지사는 동래 정씨 문중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상주하는 승려는 1명이고
동래 정씨의 명복과 후손들의 복록을 기원하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을 위한 사찰의 본래 기능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산신각
요사채를 지나 끝쪽으로 가니 화산재로 들어가는 사잇길이 있다
화산재 경내 전경
화수정(花樹亭)
재실(齋室)인 화산재(華山齋)
화산재 담 너머로 보이는 화지(華池) 연못
화지사를 나와 추원사(追遠祠) 뒷 언덕으로 가면
추원사(追遠祠)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그곳에는 동래정씨 득관대조(得貫大祖)와 기세조(紀世祖)의 비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