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프랑스 제 3공화국 외교부 차관 앙리 티리에
청나라 방문 했을 때 조선까지 돌아보고 간 후 남긴 기록
"땅은 척박하고, 국토의 절반은 험난한 산지며 백성들은 수백년 된 고난과 배고픔에 허덕이며 힘을 쓰지 못한다. 귀족들과 왕실은 부패해서 무너뜨리긴 쉬울 테지만 조선을 획득하는 것은 우리 나라에 아무런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우리는 인도차이나 반도와 특히 베트남에서의 영향력 획득에 집중해야지 아무 이득 없는 조선에 개입하여 일본제국과의 분쟁을 만들 필요가 없다."
1899년, 대영제국 공작이자 왕립연합해군 5함대장 로버트 세실
"조선은 러시아 제국을 견제하는 항구의 용도를 제외하면 딱히 전략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가치가 없다. 이미 오랜 기간 청나라에 종속되었던 힘 없는 왕국이라 종극엔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곧 러시아나 일본의 일부가 되거나 혹은 제3국의 완충지대로 전락할 것이다. 영국은 개입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을 놓고 소모전을 펼쳐주는 것이 좋다."
1901년, 주 도쿄 독일제국 총공사 고트리프 야고프
"조선을 얻는 것은 경제적 메리트가 하나도 없는 일이다. 세계에 수출할 토착 특산물도 없고, 자원을 투입하여 크게 진흥시킬 산업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 상황이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청나라나 베트남과 비슷하지만 국토의 곤궁함과 피폐함은 그 두 나라 이상이다. 기회를 봐서 조선과의 국교는 단절하는 것이 옳다."
1905년, 미국 철도사업가 퍼시벨 로웰
"불쌍한 나라다. 세계 이곳 저곳에 왕국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려보고자 도움을 요청하고 있으나 이미 늦었다. 그들은 본인들이 처한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미, 영, 프, 독 그 어느 나라도 조선 식민지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결국 각자의 목적으로 관심이 있던 유일한 두 나라, 러시아 제국 (부동항 확보 및 동남아의 영프 견제) 과 일본제국 (식민지 확보) 의 대결에서 일본이 승리한 이후 조선은 일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