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해방일지
/양혜정
오후 3시, 이직을 위해 4차 임원면접을 끝낸 큰애를 데리고 평소에 다니던 아차산 암자를 찾았다. 올해도 몇 번의 면접을 보느라 지쳐 있는 그에게 '힐링'을 시켜줄 생각이었다. 집에 있으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골똘히 생각하느라 심장은 점점 조여 올 테고 마음은 칼날 위에 서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오후 3시, 체내의 천연 진통제 엔도르핀이 높아지는 시간을 택했다.
'적막이 찾아오거든 차를 끓이세요. 적막이 떠난 척하거든 미친 척 노래를 부르세요, 적막이 또다시 찾아오거든 이번에는 익숙하게 차를 끓이세요. 적막이 또다시 떠난 척하거든 역시 모른 체하고 익숙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세요. 적막과 숨바꼭질하듯 사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르니까요.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라도 힘든 시간을 극복해 나가라는 의미겠지.
그는 거의 6년 동안 가고 싶은 회사에 이직하고자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책상에 앉았다. 여러 해, 봄이 꽃을 피우며 지나가도, 얄궂은 황사 바람이 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직 준비에 사투를 벌였다. 가족들과 외식 한번 편히 하지 않더니 가족사진에 그는 늘 빠져 있었다. 한가하게 앉아서 밥 먹고 차 마실 시간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어느 해는 면접 3~4차에서 떨어지면 그도 나도 우울함이 찾아오는지 말이 없었다. 그 정도로 기대를 했기 때문이겠지. 둘 다 각자 방 안으로 들어가서 행적도 말도 감춰버렸다. 그러다가 며칠 지나면 같이 방문을 열고 나와 둑길 산책을 한다든지, 한강 드라이브하고 다시 시작했다.
내가 나의 아픈 손가락(?)에게 쩔쩔매는 것도 이유가 있다. 대학 4학년 때 공부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집안 형편상 반대를 했던 게 마음에 걸렸다. 가족들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지금 있는 회사도 괜찮으니 정 붙이고 다니라고, 서른셋 젊음이 아깝다고 하면, 원하는 곳 들어가기 전까지는 소개팅도 여행도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다 자제할 거라고 선언했다.
지금 도전해 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내가 왜 그렇게 외국기업체에 집착하느냐고 물으면 "그런 글로벌 직장들은 한국에서 다룰 수 없는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을 배울 수 있고, 본인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경력 개발에 도움이 되는 부서로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 장비업체에 엔지니어로 있는 그의 목표는 외국 최고의 업체들만이 가진 반도체 제작을 위한 핵심 기술 원서를 읽는 게 꿈이란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작년부터 여친이 생긴 작은 녀석은 눈치 없이 하루에 두 시간째 전화 놀음하기에 바쁘고 큰애에게 눈치가 보인 나는 그 녀석에게 주의하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목소리가 높아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면 그는 '귀마개' 끼고 공부하니깐 신경 쓰지 말라고 우리를 안심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