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단두대의 기원을 프랑스 대혁명 때로 알고 있지만 단두대는 이미 그 이전 스코틀랜드에서 1564년에서 1710년 사이에 "Maiden"이란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이전에도 독일이나 13세기의 이탈리아에서도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단두대라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인물이 프랑스의 Joseph Ignace Guillotine박사인데,그는 처음 이 기구를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 1789년에 사형수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기구라며 단두대 사용을 적극 권장한 인물입니다. 문학 교수이며 외과의사인 Guillotine박사는 원래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던 사람으로 사형제를 폐지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자 가장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사형시켜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참수형 이전의 사형방법은 교수형,능지처참형,화형 등이었고 가장 덜 고통스러운 참수형은 귀족들만이 받을 수 있는 형벌이었습니다. Guillotine 박사는 어느 책에 그려진 1702년 이태리 밀라노의 처형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이 단두대의 활용을 적극 권장했습니다. 실제 Guillotine 박사가 단두대를 만들어보라고 정부로부터 명령을 받은 것은 1791년 말인데 그가 이 사형기구를 만든 것은 아니고 그가 속해있던 사형기구 제작을 위한 모임에 속한 또 다른 외과의사인 앙트완 루이가 Guillotine박사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단두대를 발명한 후 시체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실험을 거듭한 후에 1792년 4월 25일 처음으로 악명높은 도둑 한 명을 대상으로 단두대로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단두대는 처음엔 앙투완 루이의 이름을 따 "루이제트"로 불렸으나 단두대 도입에 앞장섰던 Guillotine의 이름을 따서 "La Guillotine"이름으로 불리우게 됐습니다. Guillotine박사는 사형제 폐지를 적극 주장했던 자신의 이름이 사형도구의 이름으로 사용되자 평생을 가슴 아파했고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유족들은 단두대 명칭을 변경해 달라는 청원을 냈으나 거절당하자 성씨를 아예 바꿨다고 합니다. Guillotine 박사가 단두대로 처형됐다고 잘못 알려졌는데 그는 1814년 74세의 나이로 자연사합니다. 프랑스에서는 1939년까지 공개처헝 방식으로 단두대를 사용했으며,1977년 강간범의 처형을 끝으로 단두대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고,1981년 10월 10일 프랑스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되면서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