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말씀의 향기♣ No3909
7월5일[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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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를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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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방송미사**
https://youtu.be/TU1YctpbYbA
[서울대교구 김준휘 토마스데아퀴노(논현동본당 부주임) 신부님 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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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고작 24세의 나이에! 참으로 대단하신 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1821~1846)의 축일입니다. 그간 배출된 한국인 사제 숫자는 7천명을 넘어 섰는데, 신부님은 1호 사제로서, 한국 모든 사제들의 맏형이요 모델이십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생애를 묵상할 때마다 우선 드는 느낌은 안쓰럽고 짠한 느낌입니다. 사제직을 꿈꾸며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 소년 김대건은 물설고 낯선 곳에서 8년 세월을 고생한 끝에 부제품을 받게 됩니다.
사제직을 준비 중이던 청년 김대건 안드레아의 조국과 동포를 향한 사랑은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조국의 동포를 향한 안타까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자 없이 살아가는 조선 천주교 교우들을 향한 연민의 정도 컸습니다.
이런 이유로 신학생 김대건 안드레아는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이 안전하게 입국할 수 있는 길을 뚫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그가 21세이던 1841년 연말 마침내 의주를 통해 밀입국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은 한양으로 향하던 길목에서 눈물을 머금고 멈춥니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무렵 김대건 안드레아는 부친 김제준의 순교 소식과 어머니 고 우르술라가 어린 동생과 함께 머물 곳이 없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참으로 가슴 찢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같았으면 부모님과 가족이 저 지경인데 사제는 무슨 사제, 하며 다 팽개치고 어머니를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
1844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학생은 드디어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습니다. 보다 안전하게 조선 입국로를 뚫기 위한 그의 노력은 점점 배가되었습니다. 드디어 1845년 1월 꿈에 그리던 입국이 성사됩니다.
천주교 박해가 한창이던 시절이었기에, 육로를 통한 정식 입국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청년 김대건 안드레아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국경에 도달한 그였지만, 여권이 없었습니다. 기지를 발휘해 아슬아슬하게 국경을 통과했지만, 가는 곳마다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홀로 밤길을 걷고 또 걸었습니다. 큰길로는 걷지 못하고 숲이 무성한 산길로만 걸으니, 그 여정이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날씨는 한겨울, 눈은 펑펑 오지, 먹은 것은 없지, 결국 그는 눈 위에 쓰러져 정신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조선지목구장 페레올 주교와 파리외방선교회 사제들을 조선으로 모셔오기 위한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고초는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상해에서 출발한 라파엘호는 큰 바다를 건너다니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연안에서 조기잡이 정도나 할 수 있는 작은 황포돛배였습니다. 바닷가에 살다 보니 바다의 위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그리 잔잔했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돌변해서 무섭고 거친 모습입니다. 그런 날 황포돛배를 타고 큰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상해 바로 건너편은 제주도입니다. 따라서 선장 김대건 신부의 계획은 인천과 가까운 산동 반도 쪽으로 올라가서 한강 하구를 통해 입국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친 파도와 풍랑에 떠 밀려 정처 없이 흘러가던 라파엘호는 제주도 앞까지 떠내려갔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새 사제의 전도 여행길은 거의 목숨을 건 여행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분의 여정이 마치 바오로 사도의 여정과 흡사합니다. 고작 24세의 나이에!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모습 앞에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외국말로 그 어려운 신학 공부한다고 10년 가까이 쌩고생했지, 입국로 뚫는다고 거의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갔었지, 뱃길로 선교사 동반하려다 죽을 고생한 새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를 고작 24세의 나이로 당신 나라에 데려가셨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조국과 동포를 향한 극진한 사랑, 선교사 영입을 위한 불굴의 의지, 목숨을 내건 선교 열정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부족한 사제들의 수호자시니, 천상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계속 격려하고 계심을 굳게 믿습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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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강론 동영상)
https://youtu.be/jkODc89ai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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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님의 모범으로 보는 '사제직 수행의 목적'>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기념일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동상이 성 베드로 대성당 외벽에 커다랗게 세워진 것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교회가 성장하였고 또 김대건 신부님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김대건 신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범을 명확히 알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을 동상으로 외국에 보내놓고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격이 될 것입니다. 성인은 본받자고 정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우리가 성인으로 칭하지 않아도 이미 하느님께 성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생각할 때는 단 한 가지 모범밖에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물론 많은 일을 하기는 하셨지만, 결국 한 가지 목적이셨습니다. 그분이 어렸을 때 먼 길을 걸어가셔서 공부하시고 조선 땅을 밟기 위해 육로로, 또 해로로 길을 개척하시며 하신 고생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고생하셨을까요? 당신만으로는 조선의 모든 신자의 배를 불릴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왜 신자들의 배를 불리려 하셨을까요? 그래야 착해지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데 뮈세는 ‘5월의 밤’이라는 시로 유명합니다. 이 아름다운 시 속에 어미 새 펠리칸이 등장합니다. 어미 새 펠리칸은 갓 낳은 굶주린 새끼 새들을 해변에 놓아두고 먹이를 구하러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오랜 여행에도 어미 새는 단 한 줌의 먹이도 구하지 못하고 되돌아오고 맙니다. 여행에 지친 어미 새 펠리칸이 돌아올 때 엄마를 본 굶주린 새끼 떼들은 어미 새에게 몰려갑니다. 그걸 본 어미 새는 날개 속으로 새끼들을 포옹합니다. 그리고 어미 새는 그 자리에 누운 채 부리로 자기 가슴을 쪼아서 자기 피와 심장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어놓습니다. 어미 새는 새끼들이 엄마의 피를 마시고 엄마의 살을 먹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서서히 숨을 거두고 맙니다.
새 중에서 가장 모성애가 강한 새가 펠리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펠리칸은 새끼 새들이 병약하고 아플 때 부리로 자기 힘줄을 터뜨려 피를 먹이고 배고플 때는 가슴을 쪼아 살을 뜯어 먹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미가 그렇게 해서 새끼들도 커서 그렇게 자기 새끼들에게 할 수 있습니다. 잘 먹는 새끼들은 어미를 믿기에 악해지지 않습니다.
반면 뻐꾸기를 생각해봅시다. 뻐꾸기는 어미에게 사랑받지 못합니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날아가 버립니다. 그러면 새끼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몸집이 크니까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해야 하고 먹이를 더 많이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알들을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리고 자기만 어미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소유욕, 식욕, 권력욕이 자기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주위에 있는 것들은 목숨을 잃습니다. 나중에 새들이 회의하면 제일 먼저 쫓겨날 새가 뻐꾸기일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제는 인간에게 하느님과의 통로를 제공하여 하느님의 생명 양식과 가르침으로 신자들이 더는 세상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세속-육신-마귀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종교만 버리면 돈도 많이 주고 결혼도 시켜주고 높은 벼슬도 주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김대건 신부님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런 편지를 남깁니다.
“마음으로 사랑해서 잊지 못할 신자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어려운 시절을 만나 부디 마음을 허실(虛失)하게 먹지 말고, 밤낮으로 주님의 도우심(主佑)을 빌어, 마귀와 세속과 육신의 세 원수(三仇)를 대적하십시오. 박해를 참아 받으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여러분의 영혼을 위한 큰일(靈魂大事)을 경영하십시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한국교회에 천국의 음식을 전할 길을 준비하다가 붙잡혀 순교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새끼들이 뻐꾸기가 아니라 펠리칸이 되게 하려는 이유였습니다. 사람은 받은 사랑만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사제가 무엇 하는 사람인지 명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돈 좋아하면 안 되고 십일조 내라고 하면 반발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또 이런 것 때문에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제들도 있습니다. 이는 김대건 신부님을 수호자로 둔 사제들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습니다. 오히려 세속-육신-마귀와의 싸움이 더 격해졌고 더 많이 지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마지막으로 신자들에게 가르치려 했던 가장 중요한 교리가 삼구와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를 위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면서까지 하늘 양식을 전해주는 길을 트기 위해 노력하셨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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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오늘은 한국 교회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축일입니다. 1845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굳건한 믿음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확고한 용기로 순교의 화관을 받았습니다. 비록 1년의 짧은 사목이었지만 신부님이 뿌린 씨앗은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로 열매 맺었습니다. 드디어 2009년에는 5000번째 사제가 탄생했습니다.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은 후 164년 만의 일입니다. 제가 있는 댈러스의 한인 성당도 주보성인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입니다. 해외에 있는 많은 공동체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주보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태어난 곳은 솔뫼입니다. 솔뫼는 소나무 숲이 청청하다는 뜻을 지닌 송산(松山)의 우리말입니다. 한국을 방문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솔뫼를 방문하셨습니다. 성지는 2004년에 복원한 성인의 생가와 함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관, 소나무 그늘 아래 서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 및 기념탑 등으로 조성됐습니다. 기념관은 성당을 비롯해 성인의 생애와 사목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김대건관, 대전교구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내포교회관, 기증 유품실, 소영상관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김대건 성인의 삶과 신앙을 보고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솔뫼에서 태어난 성인이 순교로 생을 마감한 곳은 서울 새남터입니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분은 김대건 신부님뿐만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낳은 순교 성직자 14명 가운데 11명이 이곳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11명 가운데 8명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성 앵베르 주교와 성 모방 그리고 성 샤스탕 신부님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새남터에는 현재 이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전통 한옥 양식으로 세워진 새남터성당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은 2006년 문을 연 '새남터 기념관'입니다. 모두 4개 공간으로 이뤄진 기념관에서 '도입 공간'(입구)은 새남터성지 역사와 103위 성인 성화를, '전시 공간'은 천주교 수용과 창설, 박해 및 순교과정 유물들을 전시했습니다. 또 '추모의 장'은 김대건 신부 등 성직자 14인의 흉상과 부조 및 추모대가 있습니다. '체험 및 교육 공간'은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유해를 모신 조배실과 영상물 상영실, 박해 체험 공간 등으로 꾸며졌습니다. 경기도 안성 산골짜기에 있는 미리내는 성인이 묻힌 곳입니다. 당시 대역죄로 처형당한 김 신부님의 유해를 거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성인이 순교한 지 40일이 지난 후 목숨을 걸고 성인 유해를 거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민식 빈첸시오(1829∼1921)입니다. 미리내는 다름 아닌 이민식의 고향입니다. 성인이 미리내에 묻힌 사연입니다.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는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신자들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이 달빛 아래 냇물과 어우러져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당 앞에 있는 네 개의 묘 가운데 성인의 묘는 왼쪽에서 두 번째입니다. 성인의 왼쪽은 강도영 신부, 오른쪽은 차례대로 페레올 주교ㆍ최문식 신부의 묘입니다. 묘역 위편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어머니 故 우술라와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순교하실 때, 오늘날 이렇게 많은 사제가 배출되고, 신앙인이 많아지고, 신앙의 자유가 생기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박해의 칼이 너무 강하고,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순교자들의 피와 땀 위에 이렇게 아름다운 한국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순교자들의 피와 땀 위에 세워진 교회를 발전시키고,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순교자들의 피와 땀이 무색할 정도로 나약하고,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잠시의 편안함과 육신의 자유보다는 영원한 삶과 그 영원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참된 신앙을 선택하였고 그래서 오늘 우리 한국 천주교회 성직자의 수호성인이 되셨고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존경하는 성인이 되셨으며 천국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편안하고 쉬운 길보다는 어렵고 힘든 길 그러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길은 때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줍니다. 하지만 그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그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키워주고 그러한 끈기는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희망을 낳습니다. 또한, 그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 걸어가신 신앙의 길, 희생의 길, 순교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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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마태 10,17-22: 박해를 각오하여라.
한국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울술라 사이에서 출생하셨다. 6살 때 박해를 피해 경기도 용인시 남곡리의 골배마실로 이사를 하고 1836년 은이공소에서 세례를 받으셨다. 그해 12월 모방 나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 유학길에 오르니 16세였다.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조국에 몰래 입국하였다가 다시 4월에 주교와 신부를 영입하기 위하여 10여 일의 항해 후 상해에 도착한다. 1845년 8월17일 상해 근처 김가항에서 페레올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니 한국교회 최초의 사제가 되었고 그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해 10월 12일 주교와 신부를 모시고 충청도 나바위에 무사히 입국하였다. 8개월 동안 국내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중 1846년 6월 5일 몰래 출항하려다 황해의 순위도 부근에서 체포되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참수되어 군문 효수 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 26세에 불과하였다. 1925년 비오 11세에 의해 로마에서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서울에서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싸움을 준비시키신다. 그분 때문에 신앙 때문에 제자들은 부당한 대우와 형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신다.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17절) 유다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일인 양, 회당에서 그들을 채찍질 할 것이다. 기도와 찬양을 바치고 성경을 읽는 그곳에서 사도들을 처벌할 것이다. 사실 사도들이 겪은 고통은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19-20절)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위안을 주시는 말씀이다. “말하는 이는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라고 하셨다. 즉 사도들은 하느님의 영 없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21절) 한 집안의 가족들이 서로 다툴 것이다. 이것은 꼭 가족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인간은 부모와 친척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에는 사람들이 일치하고 있었지만, 이 믿음 때문에 사악한 믿음과 충돌한다는 뜻이다. 그 사악한 믿음 앞에서 우리의 신앙을 증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 앞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은 아마 이러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시작은 많이 하지만 끝에까지 가는 이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은총으로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으니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우리의 마지막을 생각하라고 하신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22절)라 하시는 이유이다.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의 신앙을 묵상하고 항구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김대건 신부님은 인간의 본 모습을 잘 깨닫고, 알고 사랑한 분이시며,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한 죽기까지 효애를 드린 분이시다. 끝까지 항구한 분이시다. 우리도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과 같은 항구한 믿음과 온갖 박해도 이길 수 있는 주님의 은총을 청하도록 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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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대전교구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창세 18,23-26) 소돔 땅을 두고 시작된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이 대화에서 의인의 숫자가 쉰 명에서 열 명까지 점점 줄어듭니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18,32) 이 대화에서 우리는 중요한 신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의인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여 주시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이 신비가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을 통하여 그대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당신께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우리가 기도할 때, 미사를 드릴 때, 신앙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오늘 복음이 알려 주는 이 신비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 있는 믿음을 보시고 누군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찾으며 십자 성호를 긋는 순간, 그와 동시에 죄인들을 향한 자비와 용서도 함께 쏟아져 나옵니다. 기도가 메말라 갈 때마다, 신앙생활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마다 오늘 복음이 알려 주는 이 신비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님을 찾으며 드린 그 한 번의 기도 안에는 누군가가 죄를 용서받게 되는 은총이 담겨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 모습 안에는 누군가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자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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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지금 이 시대에도 순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17-22)
1) 이 말씀 바로 앞에는,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라는 말씀이 있고, 바로 뒤에는,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마태 10,23ㄱ)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7절-22절의 말씀은, 신앙인들이 이리 떼 가운데에 놓여 있는 양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을 때 슬기롭고 순박하게 그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라는 말씀은, 신앙을 지키고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순교’는 신앙생활의 목적이 아니라, 신앙을 증언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순교가 가장 거룩하고, 가장 위대한 방법이긴 합니다. 그렇긴 하지만 순교 자체가 신앙생활의 목적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그 나라에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2) “사람들을 조심하여라.”는, “사람들이 미워하고 박해하더라도 신앙을 잃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적인 욕망들을 멀리하십시오.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1베드 2,11-12)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그러나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선한 처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여러분을 중상하는 바로 그 일로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보다 낫습니다.”(1베드 3,15-17)
이리 떼 가운데에서 양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온유함과 선으로 이리들을 감화시켜서 양들로 변화시키는 것뿐입니다. 만일에 ‘양’이 양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이리’로 전향하거나, ‘이리’ 편에 선다면, 육신의 목숨은 지킬 수 있겠지만, 영혼의 생명은 잃게 됩니다. 이리를 양으로 변화시켜야만 양과 이리가 모두 살게 되고, 모두가 함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사실 바로 그것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에서,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은 박해를 참고 견디는 일, 또는 순교를 가리키는 말이고,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은 악인이 지옥에서 처벌받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3) 예수님 말씀에서 ‘증언할 것이다.’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입니다.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는 “인간적인 말재주로 신앙을 증언하려고 하지 마라.”입니다.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는, “모든 것을 성령의 인도에 맡겨라.”입니다. 여기서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이라는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박해자들에게’ 말씀하신다는 뜻이고, 그들에게 맞설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용기를 성령께서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에서 ‘끝까지’는 ‘죽을 때까지’입니다.
4) 박해가 항상 신체적인 폭력의 모습인 것은 아닙니다. 노골적인 것이든 은밀한 것이든 ‘유혹’도 심각한 박해입니다. 신앙을 크게 흔든다는 점만 생각하면, 사실 유혹이 더 위험한 박해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신앙인들도 옛날의 신앙인들 못지않게 고난과 시련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 집요하고, 더 끈질기고, 더 강렬한 유혹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옛날의 순교 성인들의 신앙과 희생과 헌신을 본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옛날의 순교 성인들만 현양하면서,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전부 다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다는 고정관념이나 열등감에 빠져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늘날의 신앙인들 중에도 훌륭하고 위대한 신앙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배운 대로 믿고, 믿는 대로 실천하고, 어떤 유혹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고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누구든지 순교의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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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님]
예수님의 제자들은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의회에 넘겨져 회당에서 채찍질을 당할 뿐만 아니라,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갈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족들의 미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벌어지는데, 그분의 참된 제자라면 끝까지 스승이신 예수님을 버리지 않고 증언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젊은 나이에 순교한 것도 이런 제자로서의 사명 때문입니다.
교회는 김대건 신부처럼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의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들의 피로 양육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언한 신앙 선조들의 모범을 따라, 그들이 걸어간 십자가의 길에 동참합니다. 그러나 종종 십자가 밑에서 주님을 증언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환난 중에 내버려 두시는 분도, 우리를 박해하는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분도 아니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박해하는 이들을 결코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또한 당신의 이름 때문에 박해받는 이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큰 사랑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주님의 제자들은 환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희망은 그들을 결코 부끄럽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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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님]
누군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유일한 생명의 가치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 순교는, 신앙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것으로서 가장 숭고한 신앙의 증거로 받아들여집니다.
한국 교회는 이렇게 순교자들의 피로 세워졌고, 그들의 숭고한 신앙의 증거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뿌리와도 같은 순교자들은 분명 희망을 간직한 이들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순교자들을 기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지금 우리’입니다. 순교자를 현양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하게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겪는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물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 맞고 피 흘리는 박해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는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흔드는 다른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이 우리를 미워하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 다른 이유 때문에 신앙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순교자를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은 그들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렬히 복음의 가치를 실천하고, 믿음을 통하여 얻는 기쁨을 위하여 다른 것들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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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최종훈 토마스 신부님]
가끔 삶의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그 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적응된 일에만 익숙해져 쉽게 판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실망스러워 절망하기도 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더라도 피곤하고 힘든 과정을 다시 걸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를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위 사람에게 상처받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였을 때, 열심히 한 일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하였을 때,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이들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우리는 실망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또한 그 길을 가고자 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사제로 살아 온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러한 장벽과 걸림돌에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길을 잃고 헤매야 할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또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그런 실망과 후회를 견디어 낼 수 있을지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하고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전하는 삶 자체가 어쩌면 처음부터 넘어지고 채찍질당하며,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견디어 내라.’, ‘걱정하지 마라.’ 하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시지만, 그래도 늘 걱정이 앞섭니다.
십사 년 전 오늘, 저는 이 길에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어떠한 사제가 되겠다는 다짐이나 창대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쁘고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던 첫 마음을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걱정과 두려움이 닥치더라도 당당히 맞서 나아가려 합니다.
견디기 쉽지 않을 때마다 첫 마음을 기억하며 예수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첫 마음으로 삶의 어려움을 견디어 내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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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고난수도회 김준수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은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오늘 신심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인께서 순교로써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 그 열정으로 이 땅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 특히 사제들이 성인의 삶의 모범과 얼을 본받아 김대건 신부님처럼 단 하루를 살아도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은 사제의 삶을 살아가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1984년 5월 6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비롯한 이 땅의 103위 시성식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순교자들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닮은 것은, 그들의 죽음도 새 생명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새 생명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당한 그들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남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와 증인들의 산 공동체로서의 교회 안에 누룩이 된 것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는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의 격언이 우리 눈앞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제3대 조선 대목구장을 지낸 페레올 주교님의 서한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마지막 순교 장면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새남터의 군문효수 형장에서 김대건 신부님은 큰 소리로 외치십니다.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이하였으니 여러분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을 한 것은 내 종교를 위해서였고 내 천주를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천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천주께서는 당신을 무시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6년 6월 5일 체포되시어 순교 때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문초를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순교의 길을 용감히 걸으셨습니다. 그분 순교의 피가 이 땅에 흘러 소중한 신앙의 꽃이 피어난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제의 길을 걷는 방인 사제들이 피 흘림의 순교는 하지 못할망정, 자신들의 삶을 통해서 착한 목자로서 자신들의 사제직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착한 목자이신 주님, 주님께서는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고 파견하시어 구원과 생명의 열매가 날로 풍성하도록 이끄시나이다. 수선 탁덕 김대건 사제를 본받아 이 땅에서 사제로 뽑힌 사제들이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섬기러 오신 주님을 닮아가며, 매일의 삶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복음을 증거하는 거룩한 열정으로 가득 차게 하소서. 또한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과 하나 되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는 사명에 헌신하여 가난한 이들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게 하소서. 주님, 청하오니 모든 이 땅의 사제들과 함께 하시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살게 하소서. 이 땅의 첫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한국 순교 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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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인기 강사로 잘 나가던 강사가 어느 순간에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가 없어서 그럴까 싶어서 전보다 유머를 더 많이 사용했지만, 점점 불러 주는 곳이 줄어들 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속담처럼, 인기 강사라는 사람들의 인기가 어느 한순간 사라지더라는 것이지요. 그의 스승님을 찾아가서 왜 그런지를 여쭈었습니다.
다음은 그 스승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유명 강사들이 오래도록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크라테스가 인기 없어지는 것 봤어?”
“아니요.”
“소크라테스가 아니라서 인기가 없어지는 거야.”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지혜가 워낙 깊기에 그 인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지요. 잔재주로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깊이 있는 내용으로 다가서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기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예수님 가르침의 깊이로 인해 인기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즉, 방법의 문제가 아닌, 깊이의 문제였습니다.
저도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얼마나 깊은 묵상으로 강론과 강의를 준비했었는지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사람은 말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깊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없는 깊이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역시 진실된 마음으로 깊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 믿음, 희망을 세상의 말로만 외치는 것이 아닌, 깊이 있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께 잊히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는 사제로서는 아주 짧은 시간을 사셨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로 오랫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깊이 있는 삶, 주님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박해자의 칼날에 큰 두려움 속에 떨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주님께 최선을 다하는 삶 안에서 끝까지 견디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주님의 말씀처럼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다시금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면서 얼마나 깊이 있는 삶을 사셨습니까? 그 삶이 우리의 구원을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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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억하며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새롭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784년 최초의 영세자를 탄생시킨 한국천주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1794년 12월23일 비로소 한국 땅에 처음으로 주문모 신부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후 1835년 조선에 입국한 모방 신부님은 방인 성직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1836년 최양업, 최방제, 김대건 세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최방제는 그곳에서 병사하였고 김대건과 최양업은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은 서양 학문을 정식으로 익힌 첫 조선인으로서 최고의 지성인답게 당시 조선 왕국의 국가 정세와 교회 사정 및 민생상태에 관하여 예리하게 관찰하였습니다. 두 분은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유창한 라틴어로 써서 스승 신부님들께 보고하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46년까지 21통의 편지를 썼는데 대부분 사제 서품 전에 쓴 것이고 그중 한문과 한글로 쓴 편지가 각각 한 통씩이고 그 외에는 모두 라틴어로 썼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1842년부터 1860년까지 19통의 편지를 전부 라틴어로 썼는데 사제 서품 후에 쓴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1845년 8월17일에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0월에 배를 타고 조선의 충청도 해안에 상륙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안타깝게도 1846년 5월12일 순위도에서 잡혀 9월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가운데 서품을 받고 조선에 입국하였지만 아깝게도 겨우 13개월 동안만 사제로 살았습니다. 그나마 2개월은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황해 바다 위에서 보냈고 또 4개월은 감옥에서 지내다가 순교하셨으니 사목활동은 거의 하지 못하였습니다.
한국 땅에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84년, 지금부터 약 239년 전입니다. 당시 사회는 유교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이 구별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으며 조상 제사에 대한 관습과 예절이 철저했던 때입니다. 이때 천주교회의 기본 교리는 신분 계급과 조상제사라는 두 부분에 큰 충돌을 가져왔습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양반 상놈 차별을 거부하며 우상 숭배의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03년 동안(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산발적인 박해 속에 살아야 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 첫 사제가 나왔지만 13개월 만에 목자를 잃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이 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생각은 분명 다릅니다. 지나고 보니 신부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신앙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출생하신 솔뫼, 순교하신 새남터, 묻히신 미리내는 오늘도 우리에게 신앙의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몫을 여전히 하고 계십니다. 신부님은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위하여 죽으니 내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시작할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에 대한 희망이 신부님을 지켜 주었습니다.
오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편지를 한 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편지를 통해 그분의 믿음과 하느님과 그 백성을 위한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였는지 묵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스물한 번째 편지는 옥중에서 쓰신 마지막 회유문(1846년 8월말) 입니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 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하느님)을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님의 은총으로 세상에 나고 주님의 은총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님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배반하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니 주님의 은혜만 입고 주님께 죄를 더하면 아니 남만 못하리.
이러한 어려운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주님의 영광을 위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공덕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가르쳐 성교회의 영광을 더하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의로운 아들)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다) 하실 때를 기다리라.”하시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큰 어려움도 역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너희가 감수 인내하여 주님을 위하고 오직 주님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하느님께서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과 믿음을 지키라는 간곡한 호소를 담았습니다. 혹 우리에게도 힘에 겨운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으로 주님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농부가 수확을 기다리며 온갖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듯이 우리도 참고 견디며 천상 것에서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17-22)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1-4) 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삶의 여정을 보면, 열심히 산다고 하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실망과 좌절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고 그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다가오는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의 안배와 섭리를 찾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할 때 새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의 뜻과 세상의 일이 서로를 거스를 때 우리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련 속에서, 억울함 안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 앞에서 끝까지 견디며 하느님을 먼저 선택하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더 좋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만하면 됐지.’ ‘나도 사람인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이것이 유혹입니다. 사실 천상을 바라보고 사는 이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인내가 행복입니다. 언젠가 천국에서 누릴 영광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는 수고의 땀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도 눈물과 피로써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 걸어가셨는데 우리가 아무런 수고 없이 공짜로 천국을 얻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내에 인내를 더 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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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한마디 말>
마태오 9,9-13 (마태오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한 마디 말>
“나를 따라라.”(마태 9,9)
외로운 벗에게
“내가 있잖아”라는
한 마디 말이면
넉넉할지 모릅니다
말 못하는 벗에게
“내가 들어줄게”라는
한 마디 말이면
넉넉할지 모릅니다
올 수 없는 벗에게
“내가 갈게”라는
한 마디 말이면
넉넉할지 모릅니다
아파하는 벗에게
“나도 아파”라는
한 마디 말이면
넉넉할지 모릅니다
보잘것없는 벗에게
“내가 보고 있잖아”라는
한 마디 말이면
넉넉할지 모릅니다
두려워하는 벗에게
“내가 함께할게”라는
한 마디 말이면
넉넉할지 모릅니다
먼 길 떠나는 벗에게
“내가 기다릴게”라는
한 마디 말이면
넉넉할지 모릅니다
밀려나는 벗에게
“내가 잡아줄게”라는
한 마디 말이면
넉넉할지 모릅니다
거부당한 벗에게
“내가 부르잖아”라는
한 마디 말이면
넉넉할지 모릅니다
길 잃은 벗에게
“나를 따라와”라는
한 마디 말이면
넉넉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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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순교적 삶>
“섬겨라, 희망하라, 견뎌라”
오늘 우리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봉헌합니다. 2019년까지 대축일로 지내오다 주교회의 2019년 추계정기총회의 결정에 따라 2020년부터 신심미사로 봉헌합니다.
본격적 강론에 앞서 몇가지 일화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엊그제 교황님과 이민자들과 만남을 주선했던 마티아 신부의 두 고백입니다.
“교황님은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했고 그들이 행하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모든 이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교황님은 그들을 ‘계속 나아가라’(to keep going)고 격려했다.” 교황님의 ‘계속 나아가라(to keep going)’는 특징적 말마디는 좌절함이 없이 줄기차게 계속 살아가라는 격려입니다. 또 하나의 고백도 깊은 묵상감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이민자들을 구출하고 환영했을 때, 우리를 구원한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 역경에 처한 이들을 구원함이 바로 자신에게도 구원이 된다는 말마디입니다. 어제 읽은 ‘교부들의 발자취’에서 프랑스 출신의 놀라의 성 파울리누스(355-431) 주교의 말씀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인간은 먼지요 그림자다.”
“나에게 유일한 예술은 신앙이요, 그리스도는 나의 시(詩)입니다.”
오늘 옛 어른이 말씀도 새롭습니다.
“세상은 나에게서 비롯되고, 나는 공부에서 비롯된다. 나를 닦는 공부의 길은 세상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다.”<다산>
‘공부하다 죽어라’는 고승의 말도 생각납니다. 공부의 궁극목표는 결국 이웃을 향하고 있음을 봅니다.
“자로가 군자를 묻자 공자가 답했다. ‘자기 몸을 닦아서 공경하는 것이다.’ ‘자기 몸을 닦아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요순임금에도 어렵다.’” 역시 수신의 궁극 목표도 이웃을 향하고 있음을 봅니다.
어제의 두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흡사 세월 흐름의 빠르기가 기차를 타고 갈 때 휙휙지나는 풍경 모습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지나고 나면 한 순간 같습니다. 또 하나의 깨달음은 신독과 더불어 떠오른 생각입니다.
“신독(愼獨), ‘홀로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언행을 삼간다’는 뜻입니다. 어느 자리에서도 인간의 품위, 존엄, 분별력을 지녀야 비로소 인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새삼 귀결되는 물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만25세까지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100여년간 박해로 한반도에서 순교한 신자들이 만여명이 된다 하니 가톨릭 교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성인의 삶이 요약된 최민순 신부 작사, 이문근 신부 작곡의 성가 287장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감동입니다.
얼마나 많이 살았느냐의 ‘삶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의 ‘삶의 질’이 문제입니다. 참으로 치열했던 성인의 짧은 생애는 보통 사람의 몇배는 산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 젊은 나이에 어쩌면 그리도 의연하고 담담할 수 있는지 우리의 왜소한 믿음이 부끄럽게 생각됩니다.
죽어서만 순교가 아니라 살아서도 순교적 삶이 있습니다. 잘 깊이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모두가 힘든 순교적 삶을 살아갑니다. 순교적 삶을 위한 세 지침을 소개합니다.
첫째, “섬겨라!”입니다.
사랑의 섬김, 겸손의 섬김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당신의 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라 정의합니다. 평생 주님을 배우며 섬기며 살아가는 평생 배움의 여정, 섬김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잘 배우고 섬기는 일은 복음적 삶의 핵심요소입니다. 바로 이를 위해 잘 듣는 경청이 우선입니다. 우리의 침묵도 결국은 경청과 섬김, 겸손과 순종을 위함입니다. 오늘 역대기 하권의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이점에서 완전 실패했습니다.
이들은 주 하느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우상들을 섬겼으며,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예 무지에 귀가 멀어 듣지 못했고 마침내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 예언자를 죽입니다. 그의 마지막 두 말마디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둘째, “희망하라!”입니다. 주님을 희망하는 것입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제2독서 바오로의 고백도 믿음과 더불어 희망이 그 중심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선물같은 희망이 우리를 살게하는 힘입니다. 바오로 말씀처럼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받았습니다."(로마 8,24)
희망의 하느님, 희망의 여정, 희망의 힘, 희망의 빛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느님의 사랑이 희망의 원천입니다. 사랑의 샘에서 샘솟는 희망입니다. 이런 희망이 희망의 순례자가 되어 구원을 앞당겨 살게 합니다. 희망과 꿈이 실종된 시절, 주님 ‘희망의 표지’로 살아갈 때 이보다 이웃에 좋은 선물도 없습니다.
셋째, “견뎌라!”입니다.
끝까지 견뎌내는 인내의 사람이 궁극의 승리자가 됩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인내입니다. 인내의 침묵, 인내의 겸손, 인내의 지혜, 인내의 사랑, 인내의 믿음, 인내의 정주, 결국 인내는 모든 것이 됩니다. 이런 인내가 깨어있게 하고 매사 조심하게 합니다. 이런 인내의 믿음이 불안이나 두려움, 걱정도 사라지게 합니다.
새삼 이런 인내심과 인내력 역시 성령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인내의 선택, 인내의 훈련, 인내의 습관 역시 절실합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하고,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성규 72,4-5) 말씀도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도 인내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참으로 끝까지 견뎌내고 버텨내는 인내의 믿음, 정주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순교적 삶은 결국 신망애(信望愛)의 삶으로 요약됩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끝까지 견뎌내고 버텨내는 정주의 믿음, 끊임없이 샘솟는 희망의 힘, 주님과 이웃을 향한 섬김의 사랑이 자발적 기쁨으로 한결같이 순교적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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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10,22ㄴ)
<장한 순교자!>
오늘 복음(마태10,17-22)은 '사도들의 파견사화로써 박해를 각오하여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사제이십니다. 참고로 저 이병우루카 사제는 4155번째 사제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1821년 8월21일 충남 솔뫼에서 태어나셨고, 7세 무렵에 경기도 용인 땅 골배마실 산골로 이주해 오셨습니다. 경기도 용인 골배마실과 은이와 한덕골 성지는 신부님의 성소가 쌓던 곳이고, 신부의 사제서품 후 사목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까운 미리내성지는 신부님의 어머니이신 고 우르술라 함께 묻혀 계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스물한 통의 편지를 남기셨는데, 스무 번째 편지까지는 주교님이나 신부님께 쓰신 편지였고, 마지막 스물한 번째 편지는 옥중 편지로써, 신자들에게 보내신 유언의 편지였습니다.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 내용입니다.
"우리는 미구(未久)에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마음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너의 이런 난시(難時)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우를 빌어 삼구(三仇)를 대적하고 군난을 참아 받아 여등(汝等)의 영원 대사를 경영하라. ... 할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바란다."
오늘 제2독서(로마5,1-6)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3-5ㄱ)
'끝까지 견디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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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시녀회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youtu.be/b0rr-gXxc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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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걱정하지 마라."(마태 10, 19)
성직자의
생명은
치열함과
열정에 있다.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삶에 있다.
청춘이
아팠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피와 눈물이
한국 성직자들의
밑거름이다.
부끄러운
시간들을
비추어주는
은총의
첫사제이시다.
이 땅의
첫사제는
끝까지
사제직에
충실하셨다.
새로운 길은
아프다.
뿌리내리는
진통이 매섭다.
쪼개지고
부서지며
푸른 정신이
되셨다.
사제 정신을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뼈아프게
반성한다.
좋은 성직자는
먼저
좋은 사람이다.
외롭고 지칠때
찾을 수 있는
사람이다.
몸집만
커져버린
우리 교회의
현실이다.
더 뜨겁게
살아가야 할
성직자들의
삶이다.
기도를
떼어놓고
첫 사제를
말 할 수 없다.
오늘도 나는
당신을 죽이며
살고있는
부끄러운
삶이다.
사제직은
멈출 수 없다.
부단한
자기 혁신이
필요한 삶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회가 있고
사제가 있다.
아름다운 삶을
첫사제처럼
치열하게
살아야 할
우리는 이 땅의
가톨릭 사제이다.
안정된 길이 아닌
십자가의
치열한 길이다.
사제는
사제다워야
한다.
첫사제시여
사제의 삶을
비추어주소서.
축복처럼
은총처럼
김대건 안드레아
첫 사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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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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