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력하여 선을 이룸 바울은 디모데에게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복음의 진리가 한 세대에 끝나는 지식이 아니라, 충실한 자들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해져야 함을 강조한다. 진정한 복음은 한 세대적이 아니라 전 세대적이다. 한 세대에 종말이 올 것을 추측하고 불발이 되자, 어쩔수 없이 겹세대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여러 세대에 걸쳐 복음이 전해져, 결국 어느 때에 이르러서 복음이 반드시 실현될 것을 내다 보아야 하는 것이다. 복음은, 하느님의 속성이 온 우주에 온전히 표현되는 과정에서 먼저 인류 사회가 정의와 질서가 충만하고, 민생고가 해결되며, 노화와 질병을 극복하여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포함한다. 이 과정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자연 내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속성과 능력은 오로지 자연을 통해 실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한 세대나 시대에서, 자연 외적인 초월적 방식에 의해, 순식 간에 모든 것이 바뀌고 로또 복권에 당첨되듯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우연히 부자가 되겠다는 도박의 심리에 불과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계를 진행시킨다는 신념을 굳게 가질 때, 우리는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 합력하여 마침내 온전한 선에 도달될 것이다. 이러한 결실을 가져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세 가지 기조는 여러 차례 언명한 바와 같이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하여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될 것이다. 첫째, 모든 일의 동기는 선을 지향하는 것이다. 즉 우리와 우리의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일하며, 나아가 전 인류의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아브라함의 복을 실현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둘째, 근면해야 한다. 근면성은 우리의 신체적 노동을 통하여 기능을 발전시키며 제조와 생산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휴식과 업무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학문에 매진해야 한다. 우리의 제조와 생산이 가장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사물의 원리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첫째 신념이 부족하다면 행복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염두에 두게 되며, 다른 사람의 유익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기보존에도 실패하여 불행하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만일, 둘째 신념이 부족하다면 실현할 수 없는 공허한 관념만 가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은 강대국이 되었을 때, 자기들은 더 큰 것을 하기 위해 설계와 같은 머리 쓰는 일만 하고 제조나 생산은 후진국에 맡기면 될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러한 생각은 38조 달러나 되는 엄청난 빚을 안게 되었고 반도체나 자동차와 같은 산업에서 1위 자리를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내주고 말았다. 그러므로 제조와 생산에 필요한 기능면이 머리 쓰는 일에 앞서야 하는 것이다. 만일, 셋째 신념이 부족하다면 강한 나라가 되지 못한다. 지식은 곧 힘인 것이다. 자기 나라의 자원에 의존하는 중동여러 국가나 베네수웰라 같은 나라들을 보라 그 많은 자원을 가지고도 경제난에 허덕이게 된다. 그들은 지식을 추구하여 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후진국의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을 보라 좁은 땅 덩어리에 부지기 수의 인구를 가지고, 자원 하나 없는 나라지만, 자식들을 공부시키는데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오늘날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서게 된 것이다. 성서에서도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라고 기록될 정도로 지식은 국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자연의 실체이시며, 자연을 진행시키는 주체라는 굳은 인식 아래서, 세대에 세대를 이어 합력하여 세 가지 실천 사항들을 끈끈히 이어간다면 반드시 결실을 보게 될 것이며, 우리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