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 (마르13,33-37) 반영억 라파엘 신부 |
복음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당신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해 줄 주님을 기다리지만, 실은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우리가 문을 열어주기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이 시간 기다림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길 바랍니다.
대림절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 대림절은 우리의 구세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탄 전 4주간을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이 되어 기다리고, 신약의 백성으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 번 오신 예수님과 다시 오실 예수님 사이에서 설렘과 감사함으로, 긴장으로 기다립니다.
대림초가 4개 꽂혀 있습니다. 4개는 4주간을 뜻하지만 본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세주, 메시아가 오심을 기다린 세월이 약 4,000년이 됩니다. 그 4,000년을 4주간으로 상징화해서 네 개의 초에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또한, 네 개의 초는 예수님께서 동서남북 온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의미합니다. 초를 장식하기 위해서 둥글게 만들기도 하는데, 바로 온 우주를 상징합니다. 그래서‘대림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탕을 녹색으로 꾸미는 것은 생명의 푸르름을 나타냅니다. 또한, 색깔을 보면 어두운 자색으로 시작해서 점점 밝은색으로 불이 밝혀지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시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마음도 맑고 또 밝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맑고 밝아진다는 것은 우리의 허물을 벗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초의 색깔과 제의 색깔이 자색인데 자색은 바로 회개와 보속의 의미를 담은 색깔입니다. 그것은 외적인 화려한 트리를 장식하고 구유를 준비하는 것보다도 몸과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에 들도록 목욕재계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초대입니다. 회개한 마음 안에 아기 예수님을 낳아드리도록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기다림에 걸맞은 준비가 필요한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이사64,7). 하느님의 작품으로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성탄을 준비하는 기초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외침에는‘저희가 회개할 테니 저희에게 오십시오. 저희가 당신이 늘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맑은 마음으로 아버지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는 은혜가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에 어떤 귀한 손님이 오신다면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기도 하며 준비할 것입니다. 기다림이 간절하면 그 기다림의 여정에 따르는 모든 수고는 기쁨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더욱 예수님을 기다린다면 기다림이 간절한 만큼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일상 안에서 손님을 모시려 할 때,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부산을 떠는데 예수님을 모시길 원하면서 그만한 준비가 없어서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깨어 있어라”(마르13,33.37).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영적인 깨어있음을 말합니다.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부끄러워 숨었을 때 “너 어디 있느냐?”(창세3,9) 찾아 나서시던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하고자 모세를 선택하신 분이 하느님이시고(탈출3장 참조),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탈출 13,22)으로 함께하심을 드러내시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시며(탈출15,22-27)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부르게 먹게 하신 분도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49,1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묵시록에는“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3,20).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깨어있을 때 우리를 위한 주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알게 되면 우리의 처신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이 바뀝니다.
그러나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를 찾으시는 하느님을 뵐 수 없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결국 주님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깨어있으십시오. 깨어있다는 것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왜 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받는 작품으로 무엇을 하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경계하는 마음을 늘 지녀야 합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철저히 단호하게 거부되어야 합니다. 내가 너보다 더 낫다는 마음으로 거들먹거리거나 자만자족하는 태도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주 하느님의 눈으로 이웃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가운데 기쁨을 간직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사랑이신 예수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은 하느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인 만큼 사랑할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사랑할 때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 후회할 일을 줄여야 하겠습니다.
믿는 이들은 과거에 매이지 않습니다. 지난 일은 하느님의 자비에 맡깁니다. 그렇다고 현세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약속된 천상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날을 보고 전진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현재를 모른 체 하면서 미래 속에서만 산다면 비현실적인 세상에 산다는 뜻입니다. 현재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지금은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주님의 마음에 들도록 활용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동경 없이 현재에만 집착하여 산다는 것은 아무런 발전도 없이 어중간한 상태에서 평범하게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신앙에는 어중간은 없습니다. 양다리도 없습니다. 천상을 희망하는 만큼 선물로 주어진 오늘에 충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기보다 주님께서 우리를 더 기다리십니다. 성경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열어주기를 기다리십니다. 감실 안에서 당신을 경배하는 이들을 기다리시고, 기도하는 이들을 보고 싶어 하시며,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기다리십니다. 고해소 안에서 큰 자비와 사랑으로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주님을 외롭게 해 드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거룩함으로, 깨어있음으로 주님을 만나는 한 주간 되시길 희망합니다. “주님, 제가 당신의 구원을 기다립니다”(창세49,18).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출처 :신을 벗어라 원문보기▶ 글쓴이 : rapha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