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野壇法席)
야외의 단에서 베푸는 설법의 자리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시끌벅적한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野 : 들 야
壇 : 단 단
法 : 법 법
席 : 자리 석
본래는 부처님이 대중들에게 설법을 베풀기 위해
야외에 설치한 법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쓰는 경우는 없다.
대신 부처님 설법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썩하던 모습에서 비롯되어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서로 다투고 떠들고 시끄러운 모습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인다.
그런데 이는 옳은 설명이 아니다.
법석(法席)은 역시 설법을 베푸는 경건한 자리이다.
사실 우리가 '야단법석을 떠는구나' 라고 할 때의
야단법석은 한자가 다르다.
'법석(惹端)'이라고 쓰니까 한자+한글인 복합어인 셈이다.
이때의 야단법석은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굶'이란 의미를 갖는다.
사전에 따라서는 이때도
법석을 法席이라는 한자로 쓰기도 한다.
불교에서 최초로 법석을 편 것은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득도한지 21일 후인
기원전 527년 12월29일 녹야원(鹿野苑)에서였다고
한국고사성어(임종대 편)는 설명한다.
녹야원은 수풀과 꽃과 열매가 우거지고 새들이
떼 지어 노래하는 곳이라는데 처음 법석에 참여한 사람은
가섭(迦葉)을 비롯한 다섯 비구였던 것이
점차 500, 5000 비구로 늘어났다.
이후 석가가 영축산(靈鷲山)
( 鷲는 '독수리 취'로 읽지만 불교선 '축')에서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설법했을 때는
20만 명이, 법화경(法華經) 때는 300만 명이 모였다고 했다.
이런 군중이 모이면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다.
'야단법석을 친다', '야단법석을 부린다' 등으로
쓰일 때의 야단이 야기요단(惹起鬧端)의
준말이라는 설명이 또 있다.
일이나 사건 따위를 일으켜 시끄럽게 만든다는 말이다.
시끄러울 료(鬧)를 쓴 요단은
시끄러움이 더할 수 없는 것을 나타낸다.
부수로 쓰이는 鬥(싸울 투, 각) 안에
저잣거리 市(시)가 들었으니 시끄러움을 알겠다.
야기요단의 준말로 야료(惹鬧)도 있는데
까닭 없이 트집을 잡고
함부로 떠들어 대는 것을 말한다.
야단(野壇)의 법석이나
야단(惹端)의 법석이나
떠들썩한 것은 어금버금하다.
그렇다고 어느 법석은 좋고
어느 법석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장판의 야단이라도 시끄러움의 원인을 밝히는
시비의 분별이 진리에 접근하는
기초가 된다고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나라에서 항상 시끄럽고
언제나 야단법석인 곳인 민의의 전당에서
시시비비가 명확히 가려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러고 보니 야단법석이란 표현이
매우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앞으로는 야단법석 떨지 말고 조심해 쓰자.
-옮긴 글-
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학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