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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은아는 동운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그런 주사가 있다고요?”
“응.”
“그래서요?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동운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비밀리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쉽게 잡히지 않을 것 같아.”
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존댓말 할 건데? 아직도 내가 불편해?”
은아가 그를 바라보았다.
“저에 대해 모르는 편이 나았을 거예요. 어쩌자고 위험한 곳에 발을 디딘 거예요?”
“목숨을 담보로.”
“네?”
잠시 후 정윤이 그에게 어떻게 했는지 들은 은아가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말도 안 돼.. 아니.. 내가 결혼 못해서 안달이 난 것도 아닌데 협박을 했단 말예요?”
“널 사랑하시니까. 널 아끼고, 보호하고 싶으니까.. 나도 그렇고.”
동운이 조용히 다시 식사를 하자 은아가 그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알아.”
“미안해요.”
“네가 뭘 미안해.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야.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녀가 피식 웃으며 그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일을 하게 된 거예요? 가족 때문에?”
“처음엔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 헌터들이 와서 동생의 시신을 수습해갔고. 엄마는..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시고 스스로.. 강에 뛰어드셨어.”
은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1년 쯤..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 헌터들이 찾아왔어.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는 바로 본부에 들어가 훈련을 받았고.”
“복수.. 하기 위해서..?”
“뭐.. 처음엔 그랬었지. 시계가 무용지물이 되면서 지금은 박형사님 도와 실마리조차 얻기 힘든 사건을 조사하고 있지만.”
“미안해요.. 아픈 기억을.. 건드려서..”
동운이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 사실.. 아무한테도 말 못했어. 말하기 싫기도 했고, 말해도 내 동생이 어떻게 생겼는지,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할머니는 모르셔. 그냥.. 바빠서 못 오는 줄 아시지.”
은아가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손위에 살며시 올렸다.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네.. 왜 예전 모습이랑 느낌이 많이 달라졌는지 이제.. 알았어.”
그가 새끼손가락으로 그녀의 검지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슬픈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집에 돌아와 창턱에 앉아 있는 은아가 한 숨을 내쉬었다.
“알약이 아니라.. 주사라고..?”
****
수호가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려는 류의 손목을 잡았다.
“치워.”
“식사를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치우라는 소리.. 안 들려?”
류가 방을 나가 힘겹게 계단 난간을 잡고 올라가 방문을 세게 닫았다. 수호가 전화를 걸자
수하들이 들어와 기절한 여자를 데리고 나갔다. 수호가 계단을 올라가 그가 있는 방문을 열었다.
바닥에 힘겹게 앉아 있는 그의 셔츠에 벌어진 상처에서 새어나온 피가 배었다. 수호가 놀라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죽으실 생각이십니까?”
“시끄러워..”
수호가 턱에 힘을 주었다.
****
은아가 쉬는 날이었다. 점심시간쯤에 동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침 먹었어?>
“너는 먹었어?”
<지금이 몇 시인데.. 나와. 점심 먹자.>
은아가 전화를 끊고 나갈 준비를 했다.
****
코피가 멈추지 않는 여자의 뒤를 누군가 따라갔다. 여자가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은 채 고개를 돌렸다.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골목에서 불쑥 나온 검은 장갑을 낀 손에 잡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
사건현장에 차가 멈추자 정윤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넌 차에 있어.”
“네.”
동운이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차에서 내렸다. 은아는 배가 불러 기분좋은 한 숨을 내쉬며 시트에 머리를 기대었다. 차에서 내린 정윤과 동운이 가까이 가자 박형사가 손을 들었다.
“왔냐? 뭐야.. 둘만 회식한 거냐?”
박형사가 그들 뒤에 서 있는 차에 앉아 있는 은아를 바라보다 정윤과 동운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뭐하는 거냐? 한 여자 사이에 두고 싸우는 거냐?”
“아니거든요? 피.. 있어요?”
정윤이 박형사를 지나치며 말했다.
“있어.”
정윤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박형사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그럼 여기에서 듣죠.”
“저기 백선생 오네. 여기!”
현주가 다가오자 정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동운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현주가 그들에게 다가오다
차에 있는 은아를 보고 처음에는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정윤과 동운을, 특히 정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피해자는?”
“28세 여성. 사망시간은 1시간에서 2시간 전으로 예상. 신분증을 어제 새로 발급받았는데 현재 모습이나
예전 신분증과 사진이 다른 것으로 보아 최근 성형수술 받은 것으로 추정. 부검해봐야 알겠지만
간이 파괴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 나머진 부검해보고 박형사님께 보고서 제출할 테니 그거 봐.”
현주가 걸음을 옮겨 자신의 차에 오르자 박형사가 정윤을 바라보았다.
“싸웠냐?”
“뭐.. 간이 파괴되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근처에서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손수건이 발견되었어. 코피가 멈추지 않았던 것 같아.”
정윤이 인상을 찡그렸다.
“간이 기능을 제대로 못해서 그런 증상이 나타난 겁니까?”
박형사가 그들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주사 부작용인 것 같아.”
정윤과 동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동운을 은아와 함께 집으로 보내고, 정윤은 현주에게 갔다. 심호흡을 하고 부검실에 들어가자 현주가 부검을 하느라 그녀의 장갑낀 손에 피가 뭍어 있었다.
“미안.”
정윤이 몸을 돌려 부검실을 나가자 현주가 “흥..” 소리를 내며 다시 고개를 돌려 부검을 계속했다. 잠시 후 부검을 마치고 나온 현주의 손에 따뜻한 커피를 건네주었다.
“내가 모르는 제자라고 했던가?”
“미안해..”
“보호자 노릇은 그만 둔 거야? 동운이한테 인수인계 한 건가?”
현주가 비아냥 거리듯 말하자 정윤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현주가 그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뭐!”
정윤이 피식 웃었다.
“나는 너한테 혼나는 게 왜 그렇게 좋냐..”
“변태.. 나중에 보고서로 봐.”
현주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자 정윤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안 놔?”
“어허! 오빠한테 이게 뭐하는 짓이지?”
“오빠같은 소리 하고 있네.”
현주가 팔꿈치로 정윤의 배를 때리자 정윤이 헉..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장난 그만하고 일어나.”
하지만 정윤이 가만히 있자 현주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의 몸을 돌렸다. 정윤이 그녀를 올려다보자 현주가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때렸다.
“놀랐잖아!”
“용서해주라. 잘못했어.”
“뭘. 뭘 잘못했는데?”
“윽.. 정답을 맞춰야하는데..”
정윤이 심사숙고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현주가 눈을 흘겼다.
“일어나.”
정윤이 일어나 몸을 털었다. 현주가 걸음을 옮기자 정윤이 그녀의 뒤를 따라 걸음을 걸어가며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내가 애냐?”
“부검 끝나면 새콤, 달콤한 거 먹어야 하잖아. 포도맛이야.”
현주가 못이기는 척 그가 껍질을 벗긴 사탕을 내밀자 받아서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어물쩡 넘어가려고 하지 마. 나 화 안 풀렸어.”
“그래그래..”
두 사람은 그녀의 상담실로 들어갔다. 손을 다시 씻은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
“응?”
“선배 말이 맞은 것 같아. 알약에서 주사로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는 말. 부작용이야. 그 주사를
어떤 경로로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 주사를 맞으면 그들처럼 변할 수 있어. 하지만 오랜시간 모습을
변화시켰을 경우 신체의 리듬이 무너져 내리는 거야. 비장, 심장, 신장, 간.. 모든 기능이 파괴되기
시작하는 거지. 특히 간이 제일 손상정도가 심했어. 처음엔 가벼운 코피로 시작되었을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기를 멈추지 않으면 점점 코피가 멈추는 시간이 길어지겠지.
코피를 멈추기 위해 병원에 간다면 자신들이 이상한 주사를 맞았다는 것을 들킬까봐 코피에
좋다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연근, 쑥, 부추, 무.. 뭐 그런거.. 하지만 점점 코피가
멈추지 않는 것에 겁을 먹고 더 확실히 도움이 되는 음식을 찾았을거야.”
“그게 뭔데?”
“간.”
정윤이 놀란 표정으로 현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람의 간을 구하기 쉽지 않으니까 곧 더 큰 사건들이 생길지도 몰라.”
“코피를 멈추게 하기 위해.. 사람이.. 사람을 죽일수도 있다는 거야? 간을.. 먹기 위해서?”
“내 생각은 그래.”
정윤이 마른 침을 삼켰다.
“먹으면.. 치료가 돼?”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틀렸어. 간 말고도 다른 장기들도 제 기능을 못하게 되거든.”
“그 주사를 맞는다면.. 죽는다는 거야?”
“응.”
“이런 일이.. 왜..”
정윤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말해 봐. 동운이랑 은아.. 왜 엮어주려고 하는지. 아무도 모르게 하고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다가 왜 동운이만 패스야?”
정윤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모르는 게 좋아.”
“오빠.”
정윤이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듯 쥐었다.
“널 보호하려고 하는 거야.”
현주가 그의 손을 밀어내며 말했다.
“난. 내가 보호해. 무슨 일인지.. 말 안 해?”
정윤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은아가 동운의 차에서 내렸다.
“난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
“응. 데려다 줘서 고마워. 조심해서 가.”
“응.”
그의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본 은아가 몸을 돌려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 들어간 그녀는 냉장고에서
식빵을 꺼내 토스터기에 넣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식빵에 땅콩버터를 바르고 돌돌 말아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위해 접시를 들었다. 창턱에 앉아 식빵을 먹었다.
“심각해 보이던데.. 무슨 일일까..”
그녀가 숨을 내쉬었다.
****
정윤에게 전화를 하고 동운은 현주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들어가자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동운이 조용히 들어가 소파에 앉자 현주가 그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너도 알아? 알겠지. 그러니까 선배 대신 보호자가 된 거야. 그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
동운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주를 바라보자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성기 대고 말해?”
“아무리 선배님이라고 해도 확성기에 대고 단 한마디라도 말하도록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동운이 냉정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하자 현주가 정윤을 흘기듯 바라보았다. 정윤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현주를 바라보았다.
“말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거든, 내가.”
“자알~ 한다. 내가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아.”
정윤과 동운이 흠칫 놀랐다.
“뭘 확인해?”
“정말인지 아닌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어디 살아?”
“왜 이래~. 그러지 마라.”
현주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
병원을 나오며 동운이 정윤을 바라보았다. 정윤이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걱정하지 마라. 혼자 허튼 짓을 할 녀석은 아니니까.”
“네. 정말 그 주사가 이런 부작용을 일으킨 걸까요?”
“음..”
“그들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세계정복?”
동운이 정윤을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힘 있는 것들은 죄다 정복하고 싶은 욕구가 큰 법이잖아. 세계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나라, 우리 인간들을 지배하고 싶어서겠지. 어쩌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인간이 살기 위해 같은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 거니까.”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더 이상 그 주사를 맞는 사람들이 없게 만들어야겠지. 하지만 어떤 경로를 통하는 건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은아랑은 어떻냐?”
“조금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 천천히 가자.”
“네.”
두 사람이 걸음을 옮겼다.
****
다음 날 아침에 은아가 집을 나가자 동운이 그녀를 향해 손을 들었다. 은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차에 올랐다.
“아침 먹었어?”
“아니.”
“그럼 카페 들러서 아침 먹자.”
동운이 그녀를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아침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사?”
“응. 네가 목격자였던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
“어떻게?”
“아침 식사하면서 하기엔 좀 그렇다. 장소도 그렇고.”
“응.”
은아가 포크로 소시지를 찍어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 근처에서 내려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수고해.”
“너도.”
은아가 몸을 돌려 가게로 뛰어갔다. 동운이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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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아의 개인실로 영헌이 들어와 그녀의 책상 위에 그녀가 주었던 봉투와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언니 말대로 내가 사온 도시락이 아니니까 이 돈은 못 받아.”
“아니야. 네가 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힘 내서 일하지 못했을 거야. 고맙게 생각해.”
“정말? 정말 날 용서해 주는 거야?”
“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단지.. 나한테 사소한 비밀을 말하지 않고 수호씨와의 약속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 뿐이잖아.”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난 언니한테 미움받는 줄 알고..”
“괜찮아. 오늘 도시락도 잘 먹을게.”
“그런데 언니..”
영헌이 그녀를 바라보자 은아가 고개를 들어 영헌을 바라보았다.
****
가게를 나온 은아가 택시에 올랐다. 동운이 급하게 출발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동운의 핸드폰이 울리자 그가 받았다.
“어디 가는 거야?”
<미안해. 고객님이 부르셔서 가야하는 걸 깜박 잊고 있었어. 오늘 저녁은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선생님께는 잘 데
려다줬다고 말해주고. 내일.. 보자..>
“그래.”
전화를 끊은 동운이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전화를 걸었다.
“선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저녁엔 못 데려다줄 것 같아요.”
<무슨 일?>
“저도 모르죠. 고객이 불러서 간다는데.. 아닌 것 같거든요.”
<뭐 탔어?>
“택시요.”
<쫓아가서 어디로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나한테 다시 전화해.>
“네.”
전화를 끊은 동운이 차를 출발해 택시를 따라갔다.
****
김박사가 류를 살피고 일어나 수호를 바라보았다.
“식사를 안 하셨습니까?”
수호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빨리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김박사가 나가자 수호가 류를 바라보았다. 류가 눈을 뜨고 수호를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 안 죽는다..”
“죄송합니다.”
류가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소리야..”
수호가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가자 류는 진통제가 약효를 발휘하자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밖으로 나온 수호는 김박사의 차가 출발하고 얼마 후 택시가 멈추는 것을 바라보았다. 택시에서 내린
은아가 현관벨을 누르기 전에 문을 열었다.
“아저씨 어때요?”
“어서 오세요.”
은아가 안에 들어가자 수호가 문을 닫았다.
“많이.. 많이 아파요?”
은아가 떨리는 손을 잡으며 말하자 수호가 진지하면서도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방으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수호가 앞장서자 은아가 목도리를 벗으며 따라갔다. 수호가 문을 열자 침대에 누워있는 류가 보였다.
“왜.. 다.. 다쳤어요..? 어떻게..”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렀습니다. 수술을 하셨는데.. 식사를 안 하셔서..”
“어떻게..”
은아가 마른 침을 삼켰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해요? 그냥.. 옆에 있으면 되나요..?”
수호가 은아를 바라보았다.
****
코트를 벗고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은 채로 그녀가 침대로 걸음을 옮겼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그의 침대 옆으로 다가가 섰다. 눈을 감고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치료를 위한 거야.. 아저씨를 낫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이불을 조금 들어올렸다. 그의 셔츠에 배어있는 피를 보자 이불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가 턱에 힘을 주고 그의 옆에 누웠다. 그의 팔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그녀를 끌어당겨 안았다.
밀어내면 그의 상처에 닿을까봐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 아래에 검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핼쑥해져 있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왜 다치고 그래요? 왜.. 다른 여자의 기를 마시지 않는 건데요?”
그의 눈이 스르륵 떠지고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통제 약에 취해 그의 눈동자가 초점이 명확하지 않았다.
“은아..”
“그래요..”
“은아야..”
“그래요.. 저예요..”
그녀가 그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조금 몸을 일으켜 그의 얼굴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볼을 감쌌다. 그가 손을 들어 그녀의 등을 쓸었다. 그가 눈을 감고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의 등을 타고 올라온 그의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듯 쥐고 천천히 내렸다. 그녀의 고개가
아래로 내려가자 그녀는 그의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 천천히 눈을 뜬 그가 조용히 말했다.
“부족해.. 더.. 더 가까이 와..”
그녀가 눈을 감으며 그의 입술을 찾자 그녀의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동운이 차를 세운 곳 옆에 오토바이가 멈추었다. 정윤이 내리자 동운도 차에서 내렸다.
“여기라고?”
“네.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
정윤이 고개를 돌려 동운을 바라보았다.
“넌.. 그만 가 봐.”
“선배. 저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넌.. 감당할 수 없을 거야.”
“누군데요. 설마.. 은아가 좋아한다는 남자가 사는 곳인가요? 선배도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는 거예요? 그 남자 정도는 제가 감당할 수 있어요.”
“네가 그 녀석을 어떻게 알아?”
“예전에 한 번 봤어요. 마르고 허여 멀건해서 병자처럼 보였어요.”
정윤이 턱에 힘을 주고 마른 침을 삼켰다.
“구미호다.. 그가 그런 모습으로 숨어있었던 모양이지.”
동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마.. 말도 안 돼..”
“저 녀석이 구미호인줄 모르고 좋아하게 된 거야. 내가 가서 데리고 나올게.”
“혼자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날 해치지 않을 거다. 그런 놈은.. 아니야.”
“그들을.. 믿어요?”
“지금은 은아를 무사히 데리고 나오는 게 목적이야. 섣불리 달려들었다가는 모두 죽는다.”
정윤이 몸을 돌려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동운도 함께 걸어갔다. 벨을 누르자 수호가 나왔다. 정윤 뒤에 서 있는 동운을 바라본 수호가 다시 정윤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은아 데리러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모시고 가실 수 없으십니다.”
동운이 주먹을 쥐고 수호에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았다.
“무슨 소리야. 은아 어딨어!”
“인마.”
정윤이 동운을 수호에게서 떼어냈다. 그리고 수호의 옷 매무새를 바로잡아주며 예의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은아를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나중에 제가 안전히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정윤이 턱에 힘을 주었다.
“은아..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오늘은.. 빈손이 아니거든요.”
수호가 정윤이 손에 든 단검을 보고 뒤로 물러났다. 수호의 눈이 금빛으로 반짝이자 동운이 턱에 힘을 주었다. 집에 들어가자 정윤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은아야! 집에 가자! 은아야~!”
은아의 기를 빨아들일수록 류의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그의 손길에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가 풀어져 있었고,
그녀의 머리카락은 풀어져 흘러내려져 있었다. 그의 손바닥이 그녀의 맨살을 파고들어 어루만지고 있었다.
은아가 정윤의 목소리를 듣고 류의 입술에서 고개를 들었다. 류가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감싸듯 쥐었다.
“꿈인가..”
“아저씨..”
류가 벌떡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았다. 은아는 블라우스 앞을 여미고 드러난 피부를 가렸다. 침대에서 내려간 류가 비틀거리며 벽을 손으로 집었다.
“너.. 여기에서 뭐하는 거야..”
“뭐하긴요..”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그에게 말했다.
“은아야~! 집에 가자~!”
밖에서 다시 정윤의 목소리가 들리자 류가 턱에 힘을 주고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하지..”
은아는 떨리는 손으로 블라우스 단추를 잠그고 옷매무새를 바로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자 방이 빙글 돌고 어지러웠다. 그녀가 다시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은아가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배를 감싸듯 쥐었다. 류가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호 이 자식을 내가 죽여 버리겠어.”
은아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수호씨가 그럼 어떻게 해요? 아저씨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나요? 그리고.. 제가 하겠다고 한 거예요.”
“제 정신이야? 내가 너를..”
류는 잠깐 사이에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뼈와 피부만 남은 것 같이 마른 그녀를 보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은아는 그의 표정을 읽어내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가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휘청거리자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 다시 그녀의 기가 그의 손을 타고
그에게 들어오자 그가 손을 떼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내 생기가 마음에 들어서 잠깐 갖고 논 거라면서요.. 왜 마음아파 하는 건데요? 도시락은 왜 보냈어요? 정말.. 날 좋아하지 않아요? 너무 쉬운 여자라서?”
그녀의 떨리는 손이 그의 다친 가슴위에 닿자 그가 턱에 힘을 주었다. 떼어내기 위해 손을 들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손을 타고 들어오는 그녀의 생기가 주는 힘에, 그녀에게서 나는 달콤한 향기에
그는 그녀를 당겨 안으며 그녀의 머리에 얼굴을 묻었다.
“도망치라고 했잖아.. 멀리..”
은아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그를 안았다. 그가 그녀를 밀어내자 그녀가 기운이 없어 비틀거렸다. 그가 손을 내밀
어 그녀를 잡아 침대에 앉히고 다시 손을 뗐다. 그녀가 그의 손을 잡으려고 하자 그가 뒤로 물러났다.
“더 이상 날 만지지 마.”
은아는 상처받은 얼굴로 두 팔로 자신을 안았다.
“난 다친 상태고, 식사를.. 안 한지 오래되어서.. 널..”
은아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젠장..”
그가 몸을 돌리자 은아가 그에게 말했다.
“사랑해요..”
문고리를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랑해요..”
“다시는.. 오지 마.”
류가 문을 열고 나가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류가 밖으로 나가자 정윤과 동운이 그를 바라보았다. 정윤은 그의 상처를 살피듯 바라보았고, 동운은 놀란 표정으로 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큰 소리야.”
“은아 어딨어.”
“나올 거야. 나오면 제발 데리고 나가서 다른 곳으로 가라고.”
몸을 돌리던 류가 정윤의 손에 들린 단검을 보고 다시 몸을 돌려 천천히 다가가며 날카로운 눈동자로 정윤을 바라보았다.
“내 집에 다시 그 물건을 들고 오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네 기를 남김없이 쪽쪽 빨아먹어 버릴거야. 알았어?”
류가 시선을 돌려 동운을 바라보았다.
“저건 뭐하는 놈이지? 너도 헌터냐? 뭐.. 저 바보랑 잘 어울리겠네.”
동운이 인상을 찡그리며 류에게 다가가려는데 문이 열리고 은아가 나왔다. 기운이 없어 비틀거리는 은아에게 정윤이 달려가 부축했다. 동운은 처음 보는 은아의 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정윤이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배가 고파서 그래요..”
동운이 마른 침을 삼키며 다가가 은아를 부축하자 정윤이 단검을 들고 류를 향해 달려갔다.
“너 이 자식. 은아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은아가 정윤에게 있는 힘껏 소리쳤다. 하지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왔다.
“선생님! 그러지 마세요.. 제가.. 아저씨가 안 불렀는데 제가 온 거예요. 아저씨는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제가 한 거라고요. 아저씬.. 아무 잘못 없어요.”
“은아야..”
“제발.. 그냥 가요. 네..?”
정윤이 한숨을 내쉬고 단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은아를 부축했다. 정윤이 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류가 한숨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내 말이.”
수호가 문을 열자 정윤과 은아가 걸음을 옮겼다. 수호가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자 은아가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수호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동운이 류를 바라보다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동운의 차에 은아가 오르자 정윤이 말했다.
“일단 은아 집으로 가자. 가는 길에 내가 먹을 것 좀 사 갈게.”
“네.”
동운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자 은아가 고개를 돌려 그의 집을 바라보았다. 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윤의 오토바이가 출발하고 은아는 수호를 향해 손을 들었다. 수호가 다시 고개를 숙이자 동운이 차를 출발시켰다.
“저기.. 미안해..”
“말하지 마. 너 곧 기절할 것 같으니까.”
“응.. 나 좀.. 누울게..”
은아가 뒷자리에 눕자 동운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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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가 문을 닫고 들어오자 류가 그를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널.. 어떻게 할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부른 건 아니었습니다.”
류가 고개를 돌려 수호를 바라보았다.
“부른 게 아니야? 내가 바보로 보이나? 그녀가 찾아오도록 만들었지. 누가! 네가! 왜! 나를 살리기 위해! 내가 너한테 그럴 권리를 주기라도 했나?”
“류님..”
수호가 고개를 숙이고 떨었다.
“난.. 쉽게 죽지 않아.”
“죄송합니다.”
“그녀를.. 죽일 뻔했다. 그녀인줄도 모르고, 꿈인지 현실인지도 구분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의 기를.. 남김없이 다.. 빨아들일 뻔 했단 말이다.”
류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그가 몸을 돌렸다.
“떠나야겠다. 그녀는 떠나지 못할 거야. 그러면.. 내가 떠나야겠지. 준비해라.”
“네.”
류가 방에 들어가 문을 닫자 수호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