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 요한복음 6:9
우리는 살면서 때로는 우리 자신이 중요하지도 않고 쓸모없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보다 월등
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면 우리가 약할 때에는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하겠지 하면
서 뒤로 물러섭니다. 우리가 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정당화시킵니다.
우리는 주님이 수천명의 사람을 먹이는데 사용하신 오병이어의 진리를 망각합니다(요 6:1-14). 우리
모두는 주님이 중요하게 쓰시도록 드릴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이클 코스타 경이 합창이 중간에 들어있는 오케스트라의 연습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힘찬 트럼펫
의 소리와 울리는 북소리와 풍부한 멜로디의 바이올린이 연주되며 연습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에 피콜
로를 부는 사람이 혼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무슨 소용이 있지? 연주를 하지 않아도 되겠
어. 아무도 내 연주를 듣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그는 악기를 입에 대기만 하고 소리를 내지 않았습
니다. 그러자 바로 그때 지휘자는 “중지! 중지! 피콜로는 어디 갔어?”하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피콜로의 소리가 없다는 것을 그곳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알았던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우리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타고난 재능이 크든 작든 우리
가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할 때까지 연주는 끝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생각되어도 우리가 가진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주님은 이땅에서 그의 자녀들을 사용하여 일하십니다.
주님께 최선을 다하고 전부를 드리십시오.
“선애야, 도시락 갖고 가야지.”
엄마는 오늘도 정신없이 나가는 내게 도시락을 건네주신다. 보온밥통의 온기가 내 맘속까지 전해오는
것 같다. 나는 유치원 때부터 엄마가 싸 주시는 도시락을 먹었다. 그러니까 10년 넘게 엄마의 도시락
을 먹고 자란 셈이다.
엄마는 내 도시락을 싸기 위해 늘 새벽에 일어나신다. 엄마는 항상 아침에 새로 지은 밥으로 도시락
을 싸 주신다. 전날 저녁에 해 놓은 밥이 한 솥 가득 있어도 꼭 새로 밥을 지으신다. 이 법칙은 10년
동안 하루도 깨지지 않았다. 그런 탓에 갓 나온 급식 밥보다 도시락 밥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엄마는 반찬도 아침에 만든 것만 도시락에 담아 주신다. 인스턴트 식품은 피하고 주로 엄마의 손길을
여러 번 거친 반찬들로만 가득 채워진다. 가끔은 김밥이나 유부초밥 같은 특별 메뉴도 나온다. 그런
때는 꼭 네모난 도시락에 넣어 주신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네모난 도시락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렇듯 맛있는 도시락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단연 오색볶음밥. 이 볶음밥은 정말 오색으
로 되어 있다. 완두콩, 버섯, 옥수수, 피망 등이 골고루 들어간 밥은 엄마의 신비한 솜씨로 볶아져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으로 완성된다.
친구들은 내게 도시락을 들고 다니는 게 귀찮지 않으냐고 묻는다. 하지만 난 전혀 그렇지 않다. 엄마
의 정성과 애정이 듬뿍 담긴 도시락을 먹는 게 얼마나 행복한일인지 친구들은 아마 모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