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 마가복음 16장 11~18절
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2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말씀을 우리에게 보낼 때 제자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부활 주님을 믿지 않으므로 전부 예수를 배신해서 사는 것입니다. 삼 년 동안 예수님을 좇아 다녔고, 삼 년 동안 기적을 보았고, 삼 년 동안 예수님이 하신 일을 다 보았는데도 십자가 상에서 도망간 그런 믿음들이 오늘날 교회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고 무슨 일이 안 생기며 좋은 일이 있으면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겨서 어려운 일만 생기면 그대로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들은 미리 말씀을 보냈는데도 그 말씀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16:14)”
제자들은 삼 년 동안 예수를 보았고 말씀을 들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믿음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믿음이 없으면 그 마음이 완악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이 완악합니다. 자기 방법으로 살아갑니다. 바꿔 말하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모자라든지 죄를 짓든지 간에 상관없이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오늘도 부족해서 다른 사람과 싸우는 죄를 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이 죄를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고 나를 치료하시고 죄를 고백함으로 하나님이 용서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만 있으면 이 사람은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나 같은 게" 하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가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를 바라보는 믿음이 있으면 죄가 없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으면 죄를 달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내가 오늘 죄를 져도 죄인이 아닌 것입니다. 죄를 져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서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내게 말씀을 보내도 붙잡고 일어서지 못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반대로 항상 죄를 지을 수 있는 의심이 생기게 됩니다. 믿음과 의심은 백지장 하나 차이로서, 믿음을 잃어버리는 순간 의심이 들어오게 됩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
성경은 말하기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면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는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이 믿음이 생기면 반드시 역사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죄 사함 즉 영혼의 구원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천국에 가는 구원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삶(환경)에서의 구원이 있습니다. 죄 사함의 구원을 받았는데 환경이 지옥 같으면 그 사람은 신앙생활하기가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삶의 모든 환경에서 구원 받는, 구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마14:28-30)”
베드로에게 오라는 주님의 말씀이 떨어졌습니다. 베드로가 가진 것은 믿음이며, 그 믿음을 가지므로 걷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을 가질 때는 걸었는데, 바람을 보고 의심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
그래서 말씀을 믿지 못하는 만큼 인생은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가 소리 지를 때의 그 구원은 죄 사함의 구원이 아니고, 환경에서 삶의 육체가 죽어 갈 때의 구원입니다. 결국 예수 믿는 사람은 삶의 환경에서도 일어나는 구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마14:31)”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매일 의심하고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의심하고 사는, 죄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인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말은 삶에 무엇을 가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으로 일어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말씀을 보냈을 때 방주를 예비한 자가 사는 것이고 방주를 예비하지 않는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 구원이 들어 있는 것이며, 내가 할 일은 그 말씀에 더 가감하지 말고 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그 들음이 잘 되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기적을 보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2:5)”
믿음이 있으면, 믿음의 행위를 하면 죄가 없어집니다. 그 말 자체가 무슨 죄인지 말을 다 안 해도 믿음이 있으면 죄가 없어집니다. 야고보서 1장 6절 보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약1:6)”
믿음이 적을수록 의심하는 것이고 믿음이 커질수록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절대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도 내가 오늘 믿음을 가지면 역사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7-8)”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믿음과 의심이 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함이 없다는 것 즉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하신다는 믿음이 있는 순간에 죄가 무엇이든지 그 죄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5:15)”
일으키시는 것은 주님이고, 내가 가져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문제를 바라보고 실망하지 말고 그 문제를 향해서 나는 믿음의 기도를 하는 것이며 그 역사를 이루시는 이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믿음 있는 자리는) 혹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구원을 얻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정죄함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수많은 죄의 구렁텅이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십자가를 세워서 내 죄를 용서하셨고 오늘도 그분이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은 그 사람을 구원으로 일으키는 줄로 믿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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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는 것은 귀신이 듦으로 말미암아 내 삶의 모든 것을 결박할 수 있는 것을 내가 믿음을 가짐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고 있는 것들을 쫓을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적은 ‘은사자’가 하는 게 아니고 믿음을 가진 자는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새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그 입에는 ‘된다!’, ‘감사해!’, ‘기뻐!’등의 하늘나라의 방언을 쓰게 됩니다.
새 방언은 권세 있는 새 교훈이기 때문에 그 말대로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 이름을 사용해서 묶은 것을 푸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그 말이 확실히 달라지게 됩니다. 성령 받으면 그 말에 능력의 권세가 생긴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일어나야 합니다. 육체의 고난을 통해서 깨닫게 하는 기회는 있어도, 훈련을 위해서 인생 밑바닥으로 밟는 일은 있어도,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절대로 독의 영향을 받게는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능력이 없어서 나아만에게 일곱 번 들어갔다 나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만이 일곱 번 들어가는 순종을 통해 구원 받을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병 낫는 것으로 구원을 못 받습니다. 구원 받을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믿고 선포해 보세요. 믿는 자에게 표적이 따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믿음 없었음을 회개하고 큰 믿음을 가져서, 죽어 가는 것에 다시 소성함을 일으키는 복 있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 고맙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