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조폭들의 본거지를 무작정 쳐들어가 우여곡절끝에 무사히 돈을 찾아나온 수혁은
되찾은 돈과 목걸이를 연신 쓰다듬으며 비맞은 중놈마냥 구더덩거린다.
"에고~~!! 식겁해뿟네....까딱하믄 서울에 오자마자 거렁뱅이될뻔했다아이가~~"
서울온 첫날부터 황당한 난리부르스를 치른 수혁은 앞으로 살아갈 서울에서의 삶이
아득하고 우려스럽지않은것은 아니었으나.....
부산을 떠나올때 어머니 영희가 들려준 눈물어린 당부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려잡는다.
서울역인근이 꺼림칙하게 느껴진 수혁은 버스를 잡아타고 동대문에서 내린뒤
인근의 허름한 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던 수혁의 눈에 처음으로 띈 일자리는 세차장이었다.
세차장 입구에 "세차원 구함. 경력 무관....20~50대의 근면성실한 남녀" 라고 써붙인 구인광고를 보고
세차장 사무실을 찾아들어가니 세차장 사장인 50대남자는 수혁의 첫인상이 마음에 든듯
아주 흡족한 표정이었다.
"부산서 올라왔다고?....좋아....세차일이야 2~3일해보면 금방 익힐테고....인상도 좋고
몸도 다부진것이....딱 내 스타일이야.....내일부터 출근해~~!!"
세차장사장은 수혁의 손을잡아 악수를 나누며 흔쾌히 채용해주었다.
그런데....다음날 아침 출근시간에 늦지않도록 서둘러 세차장으로 나가니....
사장은 뭔가 매우 난처한듯 딴소리를 하는거였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수혁씨를 채용못하게됐어...."
"와예? 갑자기 무신일임니꺼?....."
그러나 세차장사장은 자세한 이야기없이 자꾸 미안하다고만 하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란다.
실망스럽긴하지만 어쩔수없는 일이었다.
그 이상한 일은 세차장에서 끝난것이 아니었다.
수혁이 두번째로 찾아간 건축공사장에서도....
세번째로 찾아간 이삿짐센타에서도....
일단 출근을 허락했다가 다음날 일하러가면 특별한 이유없이 퇴짜를 놓는거였다.
참으로 미치고 팔딱 뛸일이 아닐수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헛탕을 친 수혁은 여관방에 돌아와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도대체 이게 무신일이고?.....첨엔 다들 좋다고 해쌋터마는....나중에 딴소리하는것이....
혹시...서울사람들이 알아보는거 아닐까?? 잘하는게 술처묵고 쌈질하는거밖에 없다는걸.....
수혁은 온갖 쓸데없는 잡생각이 다 들면서 좀체로 잠을 이룰수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동안 일자리도 못구하고 먹고 쓰기만하다보니 부산서 올라올때 가져온
알토란같은 밑천이 반절이상 거덜이났기때문이었다.
다음날 동대문시장일대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던 수혁은 시장상인들로부터
물건을 받아 오토바이나 자전거에 잔뜩싣고 어디론가 배달을 하는 인부들을 자세히 살펴보다
그중 한사람이 쉬고있는 틈을 타 은근슬쩍 접근하여 물어본다.
"성님예....이 물건들은 어디로 배달하능교? 그라고.....이런일 지도 할수있겠능교?...."
"허~~참....이 일이 아무나 하는일이면 개나 소나 다하게? 일자리 찾으려거든 딴데가서 알아보슈...."
그럼에도 수혁이 자리를 뜨지않고 인부의 짐나르는 일도 거들어주어가며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하자
"이거 왜 이래?... 이래봤자 소용없다니까 그러네~~"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배달부는
수혁이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혁은 막무가내로 사내를 따라다녔다.
알량한 돈 다떨어지기전에 무슨일이든 하지않으면 안되는 현실이 수혁의 마음을
조급스럽게 압박해왔기때문이었다.
저녁무렵까지 수혁이 줄기차게 따라다니자 사내는 두손들었다는듯 수혁에게 말한다.
"당신 고집도 참 어지간하구려....정 해보구싶으면 낼부터 나 따라다니면서 일을 익히슈~~
일은 좀 힘들어도 굶어죽을 염려는 없을테니까"
"네~~!! 고맙십니더....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심더....잘 부탁드림니데이..."
다음날부터 임씨라는 배달인부를 따라다니며 물건주문받는 요령과 배달할때의 주의사항등을
꼼꼼히 첵크해가며 배달일을 전수받은 수혁은 사흘뒤부터 정식으로
동대문시장의 직물원단을 배달하는 배달부가되어 일을 시작했고
배달일을 위해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중고오토바이도 한대 장만했다.
어떻게보면 수혁에게 딱 맞는 일인듯도 싶었다.
무사히 물품을 배달하고나면 운반비를 즉석에서 현금으로 받을수있는데다
힘쓰는 일만큼은 자신이있었던 수혁은 남들보다 두세배의 짐을 거뜬히 받아싣고
서울거리를 부지런히 누비고 다녔기땀시.....
그렇게 수혁이 동대문시장의 배달일을 시작한지 보름째로 접어들던 어느날
수혁은 또 한번의 황당한 일을 겪게된다.
물품에 적힌 고유번호주소를 찾아 원단을 배달해주고 오토바이 세워둔곳으로 돌아오니....
수혁의 오토바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거다.
오토바이 뒷짐칸에 잔뜩 실려있던 의류원단까지 통째로.....
바쁘게 서둘다보니 늘 하던대로 오토바이 키를 뽑지않고 원단을 나르는동안
어느놈이 수혁의 오토바이를 몰고 달아난것이다.
알량한 밑천털어 장만한 오토바이는 차치하고라도....짐칸에 잔뜩 실려있던 비싼 원단값을
수혁이 고스란히 물어주게 생겼으니.....
수혁은 하늘이 노오래지는듯한 현기증을 느끼며 그자리에 덜퍽 주저앉는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길바닥에 멍하니 퍼질러 앉아있는 수혁을 지나치다가
"어?.... 너 부산 촌놈아냐? 여긴 왠일이냐?" 하고 아는체를한것은.....
내가 저인간을 어디서봤더라? 수혁이 가만히 생각하니
조폭들 사무실로 돈과 목걸이찾으러 처들어갔을때 봤던 작달막한 사내였다.
"여긴 왠일이슈? 나 시방 당신이랑 얘기할 상황이 아닌게....싸게 사라지슈~~"
"그놈 말버릇 건방진건 여전하구나....어디 뭔일인지 얘기좀 들어보자"
"어떤 쳐죽일놈이 내 밥벌어먹는 오토바이랑 배달원단을 훔쳐달아났당게라...."
"쯔쯧~!! 촌놈이 서울와서 애로사항이 많구나...걱정말고 낼 우리 사무실로 찾아와!
내가 해결해줄테니까....."
"됐수~~!! 깡패들 도움은 사양하겠수다~~!!"
"짜식이~~!! 말버릇하군..... 잘 생각해봐.....똥고집 피우지말고...."
별다른 도리가없었다.
배달을 맡긴 원단도매점 사장들을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선처를 바랄수밖에.....
그런데.... 원단도매점 사장들에게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도 수혁의 사정을 봐주긴 커녕
수혁이 원단을 빼돌려 팔아먹으려고 거짓으로 도둑맞았다고 쑈를한다고 몰아부치며
백만원이 넘는 원단값에다 수혁때문에 신용이 떨어진 손해까지 배상하지않으면
당장 절도죄로 경찰에 고소해서 콩밥을 멕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것이아닌가
아는이 한사람없는 서울바닥에서 꼼짝없는 진퇴양난에 빠져버린 수혁은
고민을 거듭하다 어쩔수없이 조폭들의 사무실을 다시 찾아갈수밖에없었다.
수혁이 그때 당했던 황당한 곤경의 자세한 내막을 알게된것은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난뒤였다.
수혁이 취직하려는 일자리마다 뒤따르던 조폭들이 사장들을 협박해서
수혁이 취업을 못하도록 방해하고.... 수혁의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뒤
원단 도매점 사장들과 사전에 입을 맞춰 수혁을 곤경에 몰아넣은등등의 일들이
모두가 두목 양철환의 지시로 수혁을 조폭조직으로 끌어들이기위해 꾸며낸
작전이었다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