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당 국민소득과 기도
H 권사 . 평생 주일 예배 거의 빠진 적이 없다. 새벽기도회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안 빠진다. 모태 신자로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소리를 듣는 그는 특히 기도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 등 기도에 열심이다. 자신과 가족을 위한 기도만이 아니라 다른 교인이나 친척들을 위한 기도까지 두루 한다. 기도의 제목도 다양하다. 교회, 나라와 민족 그리고 세계를 위한 기도도 쉬지 않는다.
기도의 제목이 다양하고 범위도 넓지만 , 그 권사의 기도 내용은 단순하다.2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예수 믿고 내세 천국 가게 해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땅에서 건강하고 부자 되고 높아지게 해달라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그가 집중하는 기도는 따로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의 자식들과 손자들을 위한 거다. 자식 5남매와 사위, 며느리들 그리고 손주들의 번성과 성공을 날마다 빈다. 남보다 높아지고 부자 되길 간절히 빌고 또 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자세는 늘 당당하다. 그 당당함의 근거는 성경 말씀이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천지가 무너져도 그가 굳게 믿고 있는 약속의 말씀이 있기에 그는 당당하게 기도한다. 작년 봄 서울 00동 달동네 집을 놓고 7일 금식기도할 때도 그는 하나님께 떳떳하게 요구했다. 그 집은 큰 아들이 10년전 투기를 목적으로 사 놓은 집이다. 그런데 재개발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집값만 절반으로 뚝 떨어져 손실을 보고 있어 자존심이 상했다. 믿는 자를 부유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는 신자로서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래서 물만 먹으며 7일간, 재개발을 빨리 추진해 주시던지, 아니면 제값 받고 그 집을 매매하게 해 달라고 떼를 쓰며 기도했다. 또 작년 일천번제 기도를 할 때엔 당당하게 기도해서 소원성취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기도 제목은 둘째 아들의 승진이었다. 공무원인 둘째 아들은 어머니의 기도 덕분인지(?) 부수입이 이전보다 더 많은 부서로 승진했다. 그 바람에 신이 난 H 권사는 교인들 앞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며 간증을 하였고,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목사에게 양복을 사주었다. 그가 기도할 때마다 자신 있게 하나님께 들이대는 성경 말씀은 이것이다. 이는 그가 줄줄, 달달 외우는 말씀이다. 주일학교 시절부터 교회에서 배운 말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7:7-11)
'맥락 없이' 성경을 읽으면 가룟 유다처럼 실족한다. 성경 전체의 흐름을 외면하고 성경을 읽으면 아전인수격으로 성구를 악용하게 되고 결국은 미신에 빠진다. 인간의 육신적 욕심을 위해 성경구절을 단편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습관화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령을 거스르는 종교생활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예수 믿지 않는 기독교인'이 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교회에서 인간이 신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어처구니없는, 저주스런 수렁에 빠지고 만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신으로 믿고 춤추며 섬긴 것 같이 말이다.(H권사는 최근 자신의 기도생활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고 회개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 그릇되고 헛된 기도생활에 대해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기도에 대한 성경 말씀의 맥락은 무엇인가?
초등학생도 금방 알 수 있는 맥락이 있다. 기도에 관한 위의 말씀(마7:7-11)과 반드시 연관시켜 받아야할 말씀이 위 말씀 바로 앞(마태 6:31-33)에 있다. 예수께서 산 위에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 하신 기도에 관한 말씀엔 맥락이 있었다. 구하는 기도에는 먼저 구할 것과 나중 구할 것이 있는 것이요, 구할 것과 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이다. 구하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의 결어라 할 수 있는 다음 말씀을 들어보자. 이 말씀은 기도의 맥락을 잡아주는 열쇠 말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31-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여기서 그의 나라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상태를 말한다.'나라'는 통치 개념이다. 그의 의는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보다 앞서 구해야 할 것은 H 권사가 구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면 H권사가 구한 것은 굳이 구할 필요가 없다.
성경에는 기도에 관한 올바른 가르침을 주신 예수께서 실현하신 하나님 나라의 본을 소개해주고 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의 성령이 주도하시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이룬 초대교회 공동체가 그것이다. 그 공동체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 먼저 구하고 실현한 하나님 나라의 한 본이었다. 처음 교회 신자들이 구하여 이룬 공동체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자세히 전해준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정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백성에서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더라."(사도행전 2:44-47)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사도행전 4:32-35)
이 처음 공동체는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간구하며 지향해야할 삶이요 인류가 바라보고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는 단지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룩할 삶이 이니라 이 세상 한복판에서 보통 사람들이 이루어야 할 사회다. 이는 인간의 마음과 세계,우주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새로운 사회와 세상을 미리 보여준 꼴이다. 그 공동체의 특징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데 있다. 바람같은 성령 안에서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가 넘치는 사회다. 예수의 성령은 이런 공동체를 지구촌에서 보편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쉼 없이 일하신다.
오늘 한국사회는 하나님 나라와 얼마나 닮아 있고, 얼마나 어긋나 있는가?
1인당 국민소득 28,000 달러(2014년 기준)인 우리 사회는 하나님 나라와 거리가 꽤 멀다. 한국의 경제규모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지만(GDP 세계 11위), 하나님의 의와는 거리가 멀다. 평균적인 국민소득은 3만 달러에 육박하지만 우리 사회는 심히 기운 운동장이다.1:99 사회라 할 만큼 기울어 있다. 갈수록 국민이 땀 흘려 맺은 열매들을 소수의 사람들이 독식하는 불의하고 불평등한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재벌 100 대 기업은 고용은 고작 4%만 하면서 나라 전체 순이익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100 대 대기업이 쌓아놓은 돈은 1000조원이 넘는데 반해 가계의 빚은 1200 조가 넘었다. 한국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불평등한 나라인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하다.
우리나라 경제는 지난1994년까지 계획경제였다. 그 때까지 라면이나 목욕탕 요금까지 정부가 정하는 경제로서 정경유착이 심했다. 대다수 국민은 단지 소수를 위해 동원되는 수단일 뿐이었고 소외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에 비하면 불평등이 덜 심했다. 1995년 이후 우리 사회에 시장경제가 도입되었지만 자유시장경제가 아니라 독점자본 자유경제다. 지금 경제권력은 정부에서 독점자본으로 옮겨간 상태다. 이제 독점자본이 정부, 관료들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을 주무르면서 나라 전체의 성장 열매를 독차지하는 천박한 사회로 거침없이 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경제는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정부의 세수는 그 성장률에 못 미치고 가계의 소득은 그 성장률에 훨씬 못 미친다. 오로지 소수 대기업들만이 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소득을 움켜쥐었다. 한마디로 말해 경제성장은 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가난해지고 소수 부자들만 배가 터지게 된 꼴이다. 이 정글같은 사회구조가 체질화되어 세습되고 있다. 자산의 불평등만이 아니라 소득의 불평등 구조가 체질화되고 심화되는 추세다.전혀 공정하지 않은 과정을 통해 생긴 불평등 구조가 굳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회의 균등이나 공정한 자유 경쟁은 말뿐이고 자유민주주의는 형식적이다. 북한은 수령주의적 왕조체제가 주민들을 매가 먹잇감을 발로 밟듯 누르며 다스리고 ,남한은 자본권력이 대다수 국민을 맘껏 조종하며 제어하고 착취한다. 수령주의적 전체주의 사회 못지않게 돈이 왕 노릇하는 사회도 바람같이 자유롭게 활동하시는 예수의 성령을 심히 거스른다. 두 사회 모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을 원천적으로 방해한다.
이 사회에서 많은 국민은 단지 독점자본의 논리를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한다. 제도권 교육만이 아니라 대다수 언론 매체 그리고 종교, 교회들은 돈이 왕노릇하는 사회 구조에 순응하는 인간상을 만드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백인교회가 흑인 노예들에게 그랬듯이 세뇌와 우민화 작업을 위한 도구 노릇을 톡톡히 한다. 많은 교회들이 돈우상이 던져주는 떡 부스러기를 경쟁적으로 받아먹으면서 돈우상에게 굽신거리며 절한다. 돈신과 접신하며 엑스터시 희열에 취해 산다.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무슨 기도를 해야 할까?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소명을 받은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슨 기도를 먼저 해야 하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무슨 소망을 품고 기도해야 할까? 무슨 비젼을 갖고 기도할까? 어떤 미래를 위해 긍정의 힘을 발휘하고 적극적 사고력을 쏟을까?
모든 가정, 월 소득 9백만원
1인당 국민소득 28,000 달러! 1달러를 1천원씩만 잡아도 1인당 연 2,8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다.4인 가족이라면, 1년 가계 소득이 1억 1천만원이 넘는다.한 달 가계 소득은 약 900만원이다. 한 달 가정 소득으로 900만원을 줄 수 있는 능력을 한국사회는 갖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근면하고 부지런한 사람들도 지구촌에 없다. 경제성장의 열매는 그런 국민 모두가 일해 얻은 결실이다. 그 열매는 그물처럼 얽혀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든 실과다. 어린이나 노인은 물론 식물인간으로 연명하고 있는 사람도 이 결실에 기여한 몫이 있다. 기여한 몫만이 아니라 열매를 분배받을 몫이 또 따로 저마다 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씀은 노예주(귀족)처럼 착취하는 일에 몰두하는 자들을 겨냥한 말씀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사회.' 그 사회는 고도로 진보된 사회다.인류의 정신- 의식이 매우 고양되어야 가능한 사회다. 그 사회는 사회 구조적인 악만이 아니라 병적인 자기애와 이기심 그리고 탐욕까지 예수를 힘입어 죽이는 신인류가 탄생할 때에나 도래할 사회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 죽음의 은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로마서6장) 지금 그 사회는 우리에게 한낱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기복신앙에 푸욱 빠진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다 뒤덮는다 해도 그 사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훼방하는 세력일 뿐이다.
내가 지금 구하는 것은 착취가 없는 사회다. 저마다 일한 자신의 정당한 몫을 받는 일이다. 모든 생산과 성장의 주체인 노동자들( 2천만명, 그 중 비정규직이 절반)이 제 일한 몫을 제대로 받는 일이다. 구조적인 착취에 근거한 야만스런 소득분배구조를 지양하고 인간다운 소득분배가 이루어지는 사회를 바라며 기도한다. 보다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나눔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구한다. 공정한 분배로 촉진되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갈구한다. 공정한 소득분배로 말미암은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를 바란다. 재벌 100 대 기업이 나라 전체 순이익의 60%를 차지하는 사회보다 노동자 2천만이 그 60%를 받아 누리는 사회가 훨씬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과학적이다. 미래지향적이다.
얼마전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독점자본에 수종드는 독선적인 정권(정당)을 국민이 심판하고 새로운 정당구도를 만들었다.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정한 소득분배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으련다. 부부(비정규직)가 일벌처럼 성실하게 일하지만 두 자녀와 함께 살면서 늘 쪼들리기만 하는 K집사 가정이 한 달에 900만원 소득을 얻는 날을 그리며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빵의 정의로운 나눔에 사랑이 있고 생명과 평화가 있다. 영생도 있다.그 나눔의 일이 성사聖事(Sacrament)다.
김달성목사(평안감리교회 .'교회에서 신을 만드는 사람들'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