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외 2편) / 권혁웅
지금 애인의 울음은 변비 비슷해서 두 시간째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몸 안을 지나는 긴 울음통이 토막 나 있다
신의주찹쌀순대 2층, 순대 국을 앞에 두고
애인의 눈물은 간을 맞추고 있다
그는 눌린 머릿고기처럼 얼굴을 눌러
눈물을 짜낸다
새우젓이 짜부라든 그의 눈을 흉내 낸다
나는 당면처럼 미끄럽게 지나간
시간의 다발을 생각하고
마음이 선지처럼 붉어진다 다 잘게 썰린
옛날 일이다
연애의 길고 구부정한 구절양장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빨래판에 치댄 표정이 되었지
융털 촘촘한 세월이었다고 하기엔
뭔가가 빠져 있다
지금 마늘과 깍두기만 먹고 견딘다 해도
동굴 같은 내장 같은
애인의 목구멍을 다시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버릇처럼 애인의 얼굴을 만지려다 만다
휴지를 든 손이 변비 앞에서 멈칫하고 만다
요단강
췌장암이라 했다 발견한 지 세 달 만에 그는 요단강을 건넜다 동맥이 암세포를 실어나르는 곳이어서 나루가 아니라 전진기지라 했다 정신 나간 돌연변이 세포들이 인해전술을 흉내 내며 바글바글 흩어졌다…… 여호수아가 언약궤를 앞세워 요단강에 발을 들이자 강물이 멈춰 서서 맨 땅이 드러났다 맨 처음 여리고 성으로 그다음엔 아이 성으로 쳐들어갔다…… 수술 칼이 뱃전을 둘로 가르니, 핏물이 옆구리 양쪽으로 달아났다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났다 췌장을 이자라고도 부른다 개복해보니 이자가 자본주의처럼 불어나 있더라 했다……여호수아는 강을 건넌 후에, 그 땅의 원주민을 싸그리 죽였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소와 양과 나귀를 가리지 않고 죽였다 물건은 빼앗아 가졌다…… 석 달 동안 그가 안 해본 것은 없었다 다행히 전이되는 속도가 가산탕진의 속도보다 빨랐다 푸닥거리로 의사의 언약을 이길 수는 없었다 여기는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구나 암세포들이 환호하며 발광했다……여호수아는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했다 레위 지파만 빼고 열두 지파가 골고루 땅을 나눠 가졌다……그도 요단강을 건넜으나 혼자 분깃이 없었다 무배당 암보험 하나 들어두지 못했다 후손들은 레위 지파처럼 제사나 지내며 살 팔자였다 그는 하필이면 꽝을 뽑았다
오호십육국 시대
1. 오호(五胡)
해내(海內)에 다섯 민족이 있다
첫째가 베드타운인 (人)이다 수렵과 채집을 위주로 이리저리 옮겨다녀서 자는 곳과 먹는 곳이 일정치 않다 둘째가 아파트족(族)이다 혈거생활을 하는데 일사불란이면서도 위아래 양옆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한다 위에서 어린 것이 쿵쾅거릴 때에만 부족이 융성함을 짐작할 뿐이다 코시아인(人)이 셋째다 어족의 갈래가 분명치 않으며 이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중국어와 같은 고립어여서 조사가 없다 넷째를 수로부인(人)이라 하는데 평야에 물길을 내어 벼농사를 짓고 산다 이촌향도 현상 때문에 아파트족과 베드타운인으로 편입되는 이들이 늘어서 존망의 위기를 맞고 있다 마지막을 삐끼족(族)이라 부른다 상업에 종사하는 해양민족으로 구전의 소중함을 알아 복리이자처럼 날로 불어나는 중이다
2. 십육국(十六國)
해외(海外)에 열여섯 나라가 있다
동해 너머 광장국(廣場國)에는 몸의 앞쪽 절반만 있는 사람들이 산다 큰 수레를 밀며 길을 가는데 음주가무를 좋아해 노래가 끊이지 않는다 그 동쪽 여고국(女高國) 사람들은 번데기처럼 변태를 한다 춘분과 추분 그리고 등하교 때가 되면 큰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불사인들이다 대리국(代理國)이 여고국의 옆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눈이 올빼미처럼 크고 고개가 360도로 돌아가며 남의 집 처마 아래서 잠을 잔다 동쪽 끝에 이르면 해가 뜨지 않는 나라가 있는데 이를 피씨국(彼氏國)이라 한다 이곳 사람들은 무릎이 좌우 안으로 굽어 바로 설 수 없으며 팔이 셋인데 그 중 하나는 마우스다 서해에서 처음 만나는 나라는 초식국(草食國)이다 이곳 사람들은 전부 남자들이며 모든 이가 다 어금니다 반면에 건너편 여인국(女人國) 사람들은 전부 여자들이다 이곳의 주식은 보리 음료와 건어물이며 무릎 나온 바지를 입고 산다 서쪽으로 더 가면 엄친국(嚴親國)이 나온다 이곳 사람들은 자웅동체여서 후손을 낳을 때가 되면 혼자서 자기 방에 들어간다 이 방을 선우 혹은 두오라 부른다 서쪽 끝은 늘 해가 지는 곳인데 누저국(陋低國)이 인근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키가 오 척을 넘지 않으며 반지하에서 살고 궁기로 치장하기를 좋아한다 남해로 나가면 처음 만나는 나라가 삽질국(揷質國)이다 해내로 자식을 위장전입 보낸 아비 하나가 그리움에 못 이겨 큰 삽으로 흙을 퍼 서해를 메우려 하고 있다 그 너머에 고소영국(高所嶺國)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다리가 넷이요 집이 여섯이며 군이 면제다 강부자국(江富子國)이 인근에 있는데 둘이 같은 나라라 말하는 이도 있다 어린지국(漁鱗支國)이 그 남쪽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몸에 어린이 돋아서 민망한 짓을 잘하며 그 말은 짖다 만 영어 같다 남해의 끝은 태양에 가까워서 사철 물이 끓고 비가 많다 북벌국(北伐國)이 이곳에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머리가 호두만 하고 팔이 넷인데 각 팔에 창과 검과 활과 화살을 들고 태어난다 동족을 먹을거리로 여겨 나면서부터 형제끼리 싸운다 북해의 밖에 안습국(雁濕國)이 있다 이 나라에는 아이를 낳으면 부인을 딸려 원방에 보내는 관습이 있어 아비의 눈물이 마를 날 없다 북으로 더 가면 명퇴국(名退國)이 나온다 이곳 사람들은 목 위가 없어서 젖꼭지로 보고 배꼽으로 숨을 쉰다 말을 할 때에는 숨을 멈추어야 한다 그 옆에 계약국(契約國)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2년이다 백일에 결혼하고 첫돌에 아이를 낳으며 500일에 은퇴한다 북해의 끝은 사철 춥고 밤이 길다 이곳에 십장생국(十長生國)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불로인들이어서 내내 청년으로 산다 칠순에 취업을 하고 미수에 은퇴를 하는데 그 후에도 십년을 더 산다
3. 시대(時代)
닭의 모가지를 비틀면 그냥, 닭이 죽는다
새벽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시집『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2013)에서
권혁웅 : 1967년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시집『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소문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