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ET병으로 만든 다림질 필요없는 옷, '이것이 지속 가능 패션'
'지속 가능 경영' 15년 스웨덴 H&M의 도전
때 덜 타는 디자인으로 세탁비 절약
매장 전구 바꿔 소비 전력 절반으로 CO₂ 배출량 5년 새 32% 줄여
기업의 성장을 환경 보전과 사회 발전이라는 이슈와 접목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지속 가능 경영(sustainable management)'이 산업계의 화두로 등장한 것이 벌써 3~4년 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제대로 실천하는 기업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업마다 눈앞의 생존에 대한 문제가 더 크게 부각되면서 지속 가능 경영이 사치스러운 개념이 되어 버린 탓도 있지만, 경험이나 방법론이 일천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환경보호나 사회공헌이라는 막연한 개념만 가지고 직원들을 주말에까지 불러내 각종 사회 공헌 활동에 내몰거나, 값비싼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법인 차량으로 도입하는 것이 고작이다.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리포트를 내고 있는 국내 기업 중 경영 전반에 걸쳐, 그리고 지속적으로 환경 보전 노력을 하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CEO가 바뀌면 하루아침에 방향이 뒤집히거나, 관련 부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도 부지기수다. 지속 가능 경영 자체가 지속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스웨덴의 의류업체인 H&M의 행보는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1990년대 중반 지속 가능 경영에 뛰어들어 15년 이상 꾸준하게 비즈니스 전반에서 일관성 있게 지속 가능 경영을 실천해 왔다. H&M은 에너지와 자원 사용량이 많은 중공업이나 첨단 산업 중심으로 주로 이야기되던 지속 가능 경영이 패션 업종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지속 가능 패션(sustainable fashion)'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 지속 가능 패션의 시작은 소재에서
지난달 25일 찾아간 H&M의 지속 가능 경영 담당 부서는 직원이 83명에 달했다. 본사 직원 1000여명 중 약 8%에 해당한다. H&M의 홍보담당자 제니 타퍼-호엘씨는 "스톡홀름뿐만 아니라 상하이(上海)와 홍콩에도 사무실이 있다"면서 "전 세계 37개국의 H&M 비즈니스 모든 부분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지속 가능 경영이라는 형태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이들의 일"이라고 했다.
H&M의 지속 가능 경영은 원료 획득에서부터 재료 가공과 의류 생산, 운송 및 판매와 의류의 실제 착용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공급 체인(supply chain) 전반에 걸쳐 실행된다. 이는 크게 세 가지의 범주로 나뉜다. 첫째, 건강하고 환경 친화적인 원료이다. 둘째, 환경에 대한 영향이 적은 생산 방식이다. 셋째, 완성된 제품의 친환경적인 판매와 이용이다.
먼저 원료 부분을 살펴봤다. 의류 산업의 원료는 섬유다. 대중적 의류를 생산하는 H&M은 면(綿)의 비중이 50% 이상으로 가장 많고, 폴리에스테르(polyester)나 나일론(nylon) 같은 합성섬유와 양모(羊毛)가 그 뒤를 잇는다.
H&M이 가장 공을 들이는 소재는 면이다. H&M의 환경코디네이터 헨릭 람파(Lampa)는 "면화(綿花)는 재배 과정에서 다량의 농약과 화학 비료가 사용되면서 심각한 토양 및 수질 오염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는 소비자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H&M은 그래서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쓰지 않은 '유기농 면(organic cotton)'의 사용을 크게 늘리는 한편, 나머지 일반 면에 대해서도 그에 맞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면화 농민들에게 보다 친환경적인 경작법을 보급하는 것이다.
H&M측은 이를 통해 농약과 비료 등 화학물질의 사용량은 50~90%, 물의 사용량은 3분의 2를 줄일 수 있는 데다, 농민들의 삶의 질까지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래서 지역 농민들의 호응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인도와 아프리카 등 면화를 생산하는 개발도상국에서는 다달이 드는 농약과 비료 값이 가장 큰 부담이다. 그런데 농약과 비료를 덜 쓰니, 그만큼 소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H&M은 2004년부터 WWF(세계자연보호기금)의 '더 나은 면화 계획(Better Cotton Initiative·BCI)'에도 참여하고 있다. BCI는 20여개 회원 기업과 단체들이 낸 기부금으로 파키스탄과 인도, 서부 아프리카 말리, 브라질 등에서 친환경 면화 재배법을 교육하고 있다. H&M 외에도 나이키·아디다스·리바이스 등 세계적 의류업체들이 동참하고 있다. 아직 국내 기업 중엔 회원사가 없다.
H&M은 플라스틱 음료수병(PET병)을 재활용한 재생 폴리에스테르나 재생 나일론 같은 재생 소재의 사용량도 늘리고 있다.
■ 협력 업체 대상의 별도 감사 조직도
다음 단계는 천을 만드는 직조(織造)와 이를 옷으로 만드는 재봉(裁縫)이다. H&M은 이 과정에서 유해 화학 물질의 사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H&M은 자체 공장이 없다. 전 세계 17개국 700개에 달하는 1차 협력업체들이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옷을 공급한다. 그런데 이들 협력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H&M은 총 270여종의 금지 화학 물질 리스트를 제시하고, 이들 물질을 사용한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그러면 이들 1차 협력업체들뿐만 아니라, 천·단추·지퍼·봉제사 등을 공급하는 2차 협력업체들까지 생산 과정에서 화학약품의 사용을 줄이게 된다. H&M은 협력업체에 폐수 처리 시설을 갖추는 것도 의무화하고 있다.
의류 생산 과정에서 가장 환경오염이 심한 부분은 표백·염색·세탁 공정이다. 엄청난 양의 화학 약품이 사용되고, CO₂ 배출량도 많다. H&M은 그 개선책으로 복잡한 염색 공정을 단순화하고, 투입되는 약품의 양을 줄이거나, 환경에 대한 영향이 적은 대체물을 쓰는 등 총 40여개의 방법을 정리한 '청정 직물 생산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를 지난 2000년부터 2차 협력업체인 직물 생산업체들에 전수하고 있다. H&M의 청정 직물 생산 담당자 하르샤 바이단(Vardhan)은 "공정 개선으로 인한 비용 절감으로 새 설비에 투자한 돈을 2년 만에 모두 회수한 기업도 있다"고 했다.
H&M은 협력업체들이 H&M의 지속 가능 패션 정책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60여명에 이르는 감사 인력을 전 세계에 파견하고 있다. H&M의 환경감사원 아리프 아메드(Ahmed)는 "공장의 폐수 처리 시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혹시 폐수가 새어 공장 주변의 논밭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지 않는지를 확인한다"고 했다.
■ 매장 디자인까지 지속가능하게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티셔츠의 라이프사이클에서 CO₂가 가장 많이(전체의 50% 이상) 배출되는 과정은 옷을 소비할 때라고 한다. 옷을 빨고, 다리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CO₂ 배출량도 급증한다는 것이다.
H&M은 소비자들이 보다 환경친화적이고 탄소 발생량이 적은 방식으로 옷을 세탁해 입을 수 있도록 안내 팸플릿을 만들어 매장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잦은 물빨래를 줄이는 법, 낮은 온도에서도 잘 녹는 세제를 사용하기, 한 번에 충분한 양의 빨래를 모아서 하기, 드라이클리닝 횟수를 줄이는 법 등이 안내되어 있다. H&M은 또 전 세계 2000여 군데 매장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기존 백열전구나 할로겐 전구를 HID 전구로 교체하는 중이다. HID 전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많이 쓰이는 고효율 조명으로, 같은 밝기에 최대 80%까지 에너지 사용이 줄어든다. H&M측은 "H&M 매장 한 개당 보통 400여개의 전구가 쓰인다"면서 "전구 교체만으로 매장 전체의 소비 전력을 최대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지속 가능 패션은 디자인 단계에도 적용된다. 때가 덜 타고, 주름이 지지 않는 디자인을 하면 세탁과 다림질로 인한 CO₂ 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생산 공정을 단순하게 하고, 재생 소재를 많이 사용하는 디자인도 권장되고 있다.
한 벌의 옷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순간부터,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 닳아 없어지는 순간까지 일관되고 집요하게 환경과 건강이라는 요소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H&M이 말하는 지속 가능 패션의 개념이었다. 그 성과에 대해 H&M은 "CO₂ 감축량을 기준으로 보면 2004년부터 2009년 새 매출 대비 CO₂ 배출량이 32% 줄었다"고 밝혔다.
1947년 에르링 페르손(Persson)이 창업한 스웨덴의 세계적 의류업체. 현재 전 세계 27개국 2000여개 매장에서 남·여 캐주얼 및 아동복을 판매하고 있다. 디자인부터 생산·제조, 유통·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맡아서 하는 의류 제조·직매 업체(SPA)로 분류된다.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유행에 민감한 옷을 주로 만들어 ‘패스트 패션(fast fashion·패스트푸드에 빗댄 말)’ 기업으로도 불린다.
현재 창업자의 아들인 스테판 페르손이 회장을, 손자인 칼-요한 페르손이 CEO를 맡아 3대째 경영을 하고 있다. 직원 수는 7만6000여명이며, 2009년 매출은 1187억크로나(178억달러)에 달했다. 우리나라에는 서울 명동에 매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