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의 장애와 신이 내린 재능을 동시에 지닌 서번트에 관한 연구가 완성되는 날, 우리는 비로소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대럴드 트레퍼트Darold A. Treffert-
드라마 <굿닥터>의 주인공은 ‘서번트’
최근 드라마 <굿닥터>에서 주인공이 가진 장애와 특별한 두뇌 능력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소아자폐증, 지체장애 등의 중증 장애를 안고 있는 동시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이들을 ‘서번트’라 부릅니다.
1998년 개봉한 영화 <레인맨>은 경이로운 기억력을 소유한 자폐증을 가진 형(더스틴 호프먼)과 이기적인 동생(톰 크루즈)의 형제애를 다룬 휴먼 드라마로 바로 ‘서번트’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실제 레인맨의 모델이던 킴 픽Kim Peek은 책을 한 장씩 넘기면서 읽으면 모두 기억하는 놀라운 두뇌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심각한 중증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서 일부 나타나는 이른바 ‘이디엇 서번트idiot savant’는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 100명가량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번트신드롬을 가진 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이로 불린 이는 레슬리 렘케Leslie Lemke라는 인물로, 청각장애, 정신지체, 뇌성마비의 3가지 장애를 동시에 지녔는데, 열 살 때 난생처음 들은 차이콥스키의 협주곡을 그 자리에서 완벽히 연주했고, 아무리 복잡한 곡이라도 100% 똑같이 연주해냈으며, 심지어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편곡하기도 합니다.
알지도 못하는 그리스어로 부른 노래를 자신의 절대음감을 이용해 피아노 연주곡으로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어로 완벽히 재현해내기도 합니다. 보통의 서번트신드롬을 가진 이들이 모방의 단계를 벗어나 시간이 흐르면서 창조적 단계로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주목할 것은 ‘재능’이 아닌 그것을 꽃피우기 위한 ‘과정’
하지만 이러한 것을 ‘재능’이라고 부르기엔 서번트들이 안고 있는 커다란 장애가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서번트 대부분이 좌뇌 측두엽의 장애를 안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좌우 뇌가 가진 유기적인 협력 체계에 따라 좌뇌의 손상으로 인해 우뇌 특정 영역의 능력이 발현되었다는 것이 서번트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의 주된 얘기입니다.
이들 서번트들에게서 주목할 것은 신이 내린 재능(?)이라기보다 그들이 불치의 장애를 딛고 그 재능을 꽃피우기까지의 과정입니다. 인간으로서 쉽게 범접하지 못할 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들도 보통의 사람들처럼 그 재능을 보이기까지 수많은 고난과 인내가 있었음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서번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냅니다. 자신이 가진 장애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스스로가 할 수 있는 하나에 온전히 집중합니다. 그들은 도전하고 또 도전합니다. 서번트들은 한 사람이든 수천 명의 관중이든 언제나 모든 에너지를 쏟습니다. 마치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에 보여주는 신성한 의식처럼 그렇게 행동합니다. 그들에게는 명예도 재물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을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서번트의 장애와 비범한 능력, 인간 본질에 대한 자성 들려줘
오늘날 서번트에 대한 치료 방향은 기존 장애를 치료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에서, 재능을 더욱 키우는 쪽에도 무게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재능을 꽃피우는 것이 장애를 보완하는 지름길임이 지난 오랜 기간의 연구 결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아니, 모두가 장애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지 그 크기와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살아가며 대부분의 사람은 장점을 키우기보다 단점을 부각하고, 타인의 장점을 부러워하지만 자신의 장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번트들은 다릅니다. 비범한 서번트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뇌 능력을 보이기까지의 과정은 그것이 단순히 장애로 인해 발현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가 가진 뇌의 잠재성을 일깨우는 험난한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특별한 서번트에게는 모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굿닥터>의 원장(천호진 역)과 같은 인물이지요.
자신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채, 그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과 훈련을 통해 재능을 무한대로 확장시켜왔습니다. 장점을 부각하는 것이 곧 단점을 보완하고 오히려 승화시키는 것임을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서번트들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치의 장애와 신이 내린 재능을 동시에 갖고 있는 서번트들이 보여주는 절대적 믿음과 끊임없는 도전 정신은 뇌가 가진 창조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더불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