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있어도 가난한 속성만을 지닌 오늘의 한국인
한국이나 일본은 시기적 차이는 있으나 경제성장의 궤도는 비슷한 사회적 환경에서 출범했다.
일본은 패전의 암울함에서 한국전쟁으로, 한국은 동족상잔으로 삼천리 국토만 남은 상태에서 베트남 전쟁, 독일 광부 등 인력 수출로 불씨를 살렸다.
반면, 중국은 공산주의의 몰락 속에도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1978년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룬다.
한국의 경제산업 발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다면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극심한 정치, 경제적 혼란 속에서도 시장경제만은 제한적으로 도입한 덩샤오핑 주도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중국의 오늘로 성장시켰다.
최근 들어 일본은 경제적 침체기가 10여 년 이상 지속되고 있으며 중국도 경제적 위기와 부동산 침체, 청년 실업 등이 중국을 주춤거리게 하고 있다. 위기의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2025년을 ‘신품질 생산력’과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강조하면서 외부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동력으로 새 지평을 열겠다고 설계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국가적 방향의 풍향은 풀잎 사이로도 솔솔 불게 하는 것이 중국의 정치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위기설에 의한 긴축이나 특별한 대책 등은 없이 온종일 정치판의 난장판만 거듭하고 있다.
이미 동력이 꺼진 상태에서 난파선처럼 너울에 몸 싣고 방향감각도 없이 떠다니는 형국이다.
극우, 극좌세력으로 갈라져 세력 몰이를 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거부권과 탄핵소추를 남발하면서 일거에 끝장을 내려는 듯 매몰찬 단절의 입방아만 찧어댄다.
비상대책위원회나 분야별 국가자문회의 등은 일년내내 향기도 없이 꽃을 피우고 있는 조화처럼 붙박이로 있을 뿐이다. 급조된 캠프, 급조된 정책들은 등불 곁에서 소란스럽게 밤을 지새우지만, 아침결에는 모두 땅을 어지럽혀 놓고 죽어가는 불나비일 뿐이다.
지방은 소멸하여 가고, 거리에서 아이들 만나기가 강아지보다 어렵고, 신생아를 받을 산부인과나 분만실조차 부족한 현실이다. 늙은 인생들은 좀비처럼 살아가야 하고 그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국민 보건 체육시설조차 마땅치 않다.
자식은 어떠한 노력보다는 부모의 권력으로 만들어준 직장으로 출근하면 그만이다. 기술을 배우려 하지도 않고 그저 부모의 돈으로 비트코인, 마약에 취해 유튜브와 눈으로 이야기만 할 뿐이다.
기업들은 사람 구하기 어렵고 꼬박꼬박 봉급을 타는 사람들은 이국땅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특별 안전진단을 받았어도 사고는 여전히 발생하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있어도 인사 사고는 지속되고 있다. 대기업들의 사외이사는 꼭두각시가 되어 환경시설, 재난방지, 기술개발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독려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정치권은 국민에게 협조와 희생만을 요구하면서 소통을 통한 오늘과 미래를 염려하는 정치적 행동은 여전히 변명으로 일관한다. 유튜브를 통해 전파되는 것은 누군가를 비방하고 비판하면서 증오와 복수의 칼날만 갈아댄다.
국내의 현실에서는 당면한 과제, 미래의 과제, 지속이 가능한 과제들이 북한산 미세먼지보다 높게 쌓여 있다. 국회는 위원회별로 산적한 숙제를 풀고 해결하기 위한 학습과 현장 방문, 소통을 통한 일과가 하루 30시간이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함에도 치기적 공격과 증오만을 증폭시키면서 내일의 의제, 미래의 의제는 행방불명되고 만다.
2차 세계대전 영국을 이끌던 윈스턴 처칠은 “경세가와 정치꾼이 있다. 경세가란 10년 20년 후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이 그 꿈을 보고 모이게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작금의 어른들과 정치인들은 아이들이 순수하게 키워온 미래의 꿈마저 산산이 부숴버리고 기회마저 빼앗는 것이 오늘의 한국 자화상이다.
좋은 지도자는 희망을 현실로 바꿔주는 사람이다.
특성 있게 생긴 얼굴과 작은 키로 호텔 종업원 채용 면접에서 탈락하고 대학도 삼수해야 했다. 졸업 후 하버드대를 10회나 지원했지만 실패했다. 강사 생활, 통역회사 설립, 교직 생활, 그리고 인터넷 사업에 진출한다.
마침내 고향 항저우를 떠나 1999년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를 50만 위안(1백만 원)으로 설립하고, 38차례의 투자를 거절하면서도 골드만삭스에서는 500만 달러를 투자받았으며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에게서 2천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게 된다.
“은행들은 수익의 80%를 가져가고 고객에게는 20%만 나눠준다. 쉽게 돈을 벌어온 탓에 비대해지고 게을러졌다. 이제는 민간 부문의 경쟁을 통해 은행 개혁을 실제로 일어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알리바바의 금융 부문 자회사인 앤트그룹(앤트파이낸셜)을 설립했다.
알리바바 창업주인 마윈 회장은 금융개혁을 소리치다 홍역을 치렀고 중국 정부로부터 긴급체포 되기도 했다.
마윈 회장이 젊은 날 역경 속에 희망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달려오던 모습에서 한국의 6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직업 일선에서 피땀을 흘리던 풍경을 음미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유를 주면 함정이라 말하고 작은 비즈니스를 하자고 하면 돈을 별로 못 번다고 하고 큰 비즈니스를 하자고 하면 돈이 없다고 한다. 새로운 일을 하자고 하면 경험이 없다고 하고 전통적인 일을 하자고 하면 새롭고 혁신적인 일이 아니라면서 다단계로 뛰어든다. 상점을 같이 운영하자고 하면 자유가 없다고 하고 새로운 사업을 하자고 하면 사실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한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구글이나 포털에 물어보기 좋아하고 희망이 없는 친구들에게 의견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대학교수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지만 시각장애인보다 더 적게 행동으로 옮긴다. 그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결론은 이렇다. 당신의 심장이 뛰는 것보다 더 빨리 행동하고 무언가를 그냥 해라. 가난한 사람들은 공통적인 행동 때문에 실패한다. 그들의 인생은 기다리다가 끝이 난다. 자신에게 물어봐라. 당신은 가난한 사람이냐고>
사교육비가 가족을 움츠리게 하지만 결국 자식은 편법으로 취업한 유명 인사의 자녀들로 인해 박탈당하고, 템플스테이의 하룻밤 숙박료가 호텔비보다 비싸고, 제주도는 숙박, 음식값 등 모든 것이 일본보다 비싸 발길이 끊겨가고 있다.
기술을 개발했어도 국가가 외면하고, 오로지 사회적 인연과 학연, 지연으로 시장을 개척할 수밖에 없고, 매년 수 명씩 죽어가도 중대재해처벌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수사 중이며, 기후변화, 탄소중립, 온실가스, 환경보건, 미세플라스틱, 과불화화합물 등 코앞에 닥친 현안들도 정치권과 정부는 굳이 외면하고 있다. 누군가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는 한국 사회다.
당신도 가난한 정치꾼인가, 당신도 가난한 공직자인가, 당신도 가난한 국민인가?
(환경경영신문 http://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