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사와 남사당 바우덕이는 이해를 돕기위하여
그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보자.
근래에 황석영소설가의 장길산과, 김주영소설가의 객주작품의
소설무대가 된 유서깊은 절이다.
조선조말 당시 시대상황으로 사찰들은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따라서, 청룡사는 사당패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남사당패들은
공연을 하면서 먹거리와 현금조달을 하여 상호 공생의 관계를 형성하였다.
바우덕이를 알기위해서 청룡사주변을 찾아 보아야하는 이유다.
***** 청룡사의 역사********
남사당패의 5살 바우덕이가 땅에 금을 긋고, 줄을 타던 곳으로 유명하다.
1265년 (고려원종6년)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가 창건하고 당시에 대장암이라 하였으나
1364년 나옹화상이 (공민왕 15년)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라 고쳐불렀다.
청룡사의 유래는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효종의 동생인 인평대군의 원찰이었다는 청룡사는 조선조말부터 등장한 남사당패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이들은 청룡사에서 겨울을 지낸뒤, 봄이되면 청룡사에서 준 신표를 들고 가을까지 안성장터를 비롯,
전국 각지를 떠돌면서 연희를 팔며 생활했다.
건너편 불당골에서 남사당들이 겨울이면 기예를 닦고 익히던 터전이 잇다.
나옹화상의 시는 절마다 테이프에 담겨저 기념품가게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숙한 낭송이 생각나게 되는 데 그 시를 지은이가 나옹화상이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보고 덧 없다 하지않고
우주는 나를보고 곳 없다 하지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 청룡사 건물의 특징****
가로세로 3칸*4칸으로 8작지붕의 다포식 건축구조로 기둥의 형태가 참으로 특이하다.
구불 구불 아름드리나무를 껍질만 벗긴채로 자연그대로의 형상을 하고 있다.
보물과 각종(괘불, 탱화, 범종, 부도, 석탑등) 중요한 문화재가 산재하여 절의 규모에 비하여 역사성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주변에 바우덕이 사당, 묘소등이 있어 그 생애를 돌이켜볼 수 있다.
****바우덕이의 생애*****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머슴이라고도 함)의 딸로 태어나 1853년 (5살)에 안성시 서운면 불당골(청룡사 부근)
남상당패에 맡겨지고, 줄타기, 살판등의 남사당놀이를 익혔다.
바우덕이가 15세되던해에 꼭두쇠(우두머리)가 연로하여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하게 되자 어린나이에 그 것도 여성으로
만장일치로 추대되었다.
1865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에는 노역자들을 위로하기위한 전국의 남사당기예집단들이 연일공연을 벌였으며,
단연 바우덕이패가 으뜸인지라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았다한다.
하지만 힘든 유랑의 환경에 폐병을 얻어 1870년 23세의 나이에 요절하게 된다.
소리도 팔고, 치마속 흰살도 팔고, 때론 양반네에 몸도 팔았지만, 한번도 사당패를 떠나지 않고
대중예술을 이끌며 가족들을 부양하였다.
바우덕이의 연예와 슬픔, 파란만장한 삶은 전설, 실화로 구전되어 오고 있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처럼 떠나가네.
첫댓글 저는 이야기만 들엇지 바우덕이가 여자인것도 처음알앗어요..
남사당패가 안성 이라는것은 알고 있엇는데..이제부터 알아볼게요..ㅎㅎ 가래산님 덕분으로
공부좀 해야겟어요..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하는 광고 멘트가 있지요?
안성은 예로부터 풍요의 땅으로 볼것, 먹을 것, 즐길 것이 많은 고장입니다.
나들이 함 해보세요.
안성쪽엔 가본적이 한번 없어요..ㅎㅎㅎ 안성맞춤이란 말은 왜 생겻는지 혹시 아세요? 안성엔 배가 유명하기도 한데 바우덕이는 잘 몰랏어요..
안성 유기 (놋그릇)가 유명하지요, 그리고 포도!
일이나 물건이 잘맞아 떨어질 때 쓰는 말이 안성맞춤인데,
안성유기를 써본사람들이 모양과 품질에 만족하여 안성맞춤이라고 쓴 말에서 유래했다고해요.
맞아요. 저도 듣기는 했어요
이렇게 세세한것은 이제서 알았네요
바우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