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도망시(悼亡詩)
아내를 잃은 애절함을 노래하는 시를 ‘도망시(悼亡詩)’라 부른다. 삶이 너무 힘들고 서러울 때 삶으로 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도망시를 읽는다.
세명의 홀아비를 모시고 식사를 대접했다. 일명 쓰리홀이다. 시아버지, 사돈어르신, 그리고 내가 모시는 아버지 세분이다. 10년 전 5년 전 2년 전 아내를 잃었다. 그 슬픔의 깊이를 어찌 알겠냐마는 상상은 된다. 도망시를 보면 알 수 있다.
<추사의 도망시>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42년 추사 김정희는 아내 예안이 씨의 부고 서신을 받는다. 헤어진 지 3년째 되는 해였다. 아내에게 안부를 묻는 서신을 보내는 중에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那將月老訟冥司(나장월노송명사) 어찌하면 저승의 월하(月下) 노인에 게 빌어서
來世夫妻易地爲(내 세부처역지위) 다음 세상에는 서로가 바꿔 태어나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 외) 천리 밖에 나 죽고 그대 살아서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 이 마음, 이 슬픔을 (그대가) 알게 하리오
아내죽음 앞에서 그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남편의 애타는 마음을 이리도 잘 묘사한 시는 드물다. 먼 타향에서 장례식조차 갈 수 없는 답답함은 가슴을 찢고 땅을 쳐도 모자랄 것이다. 선비라는 이름 앞에 감추어진 서러움은 무지갯빛 슬픔으로 태어난다.
<반악의 도망시>
유교의 나라 중국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시를 금기시하였다. 그러나 아내와 사별한 경우만큼은 그 절절한 심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가 있었다.
중국 최초의 '도망시'는 서진(西晉) 시대 반악의 시다. 그는 좋은 가문의 출신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다. 권문세가였던 서진(西晉)의 외척인 양 씨(楊氏) 집안과 혼인을 하게 된다. 최고의 미남과 아름다운 아내는 금슬도 좋았는데 그만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게 되었다. 애절한 슬픔을 시로 표현했다.
荏苒冬春謝(임염동춘사)
들깨 무성하다 겨울 봄에 그 자취를 감추고,
寒暑忽流易(한서홀류역)
계절은 홀연히 다시 바뀌니,
之子歸窮泉(지자귀궁천)
그댄 황천(黃泉)으로 돌아가,
重壤永幽隔(중양영유 격)
아홉 층 깊은 땅 아래 영원히 격리되는구려.
<장자의 도망 >
철학자인 장자의 슬픔은 달랐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슬픔에 빠져있을 친구를 위로하기 혜자가 그를 방문하였다. 장자는 그때 쟁반을 치고 춤을 추고 있었다. 조문을 온 혜자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라고 물었다.
"처음엔 나 또한 슬펐지 왜 아니 슬펐겠소. 생각해 보니 원래 아내는 없었던 존재였소. 무에서 무로 돌아가는 게 뭐 그리 슬픈 것이라고 울고만 있겠소! 속세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천지라는 고요한 방에서 이제 쉬려고 하는 사람에게 곡을 한다면 내가 천명을 모르는 인간이지 않겠는가? " 오히려 반문했다. 장자는 아내의 죽음으로부터의 상실감에서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장자보다 더 큰 슬픔은 보지 못하였다.
초월자 장자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이 내겐 더 처연하고 슬퍼 보인다.
처절하게 죽음을 애도하는 것도 초월해서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도 다 슬프다.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날 유난히 도망시가 와닿는다. 삶을 던지는 순간,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움에 써 내려간다.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나 같으면 못살아"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 고통으로 내가 살아간다. 참척의 아픔으로 생심장이 뽑혀나가고 생살이 뜯겨나가도 난 살아간다. 고통은 내 살을 뜯어먹고 심장을 파내려 가지만 내가 어떻게든 견뎌야 하는 살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통이 끝나는 그 자리엔 내가 없을 것이다.
삶이 끝나고 또 다른 삶이 있을까 두려워 살아간다. 죽어라 죽어라 열심히 살다 죽었는데 갑자기 흰옷의 날개 달린 성별구분 불가의 천사가 나타나 "천억 번째 고객님 환영합니다. "화환 걸어주고 감사패 주고 또 다른 행성에서 100년형을 하사하고 " 다음생으로 향하시죠" 한다면 끔찍할 것 같다. 삶은 여기서 끝이어야 한다. 종말을 고하는 삶이야말로 찡한 스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말할 수 있는 아픔도 말할 수 없는 아픔도 다 고통이다. 북을 치고 노래를 불러도 슬픔은 그 자리에 맴돌 것이다. 장자의 삶으로의 도망이 가장 슬프다. 장자의 슬픔은 어쩌면 조현병일지도 모른다. 슬픔에 미쳐버린!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