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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순의 제28차 김유정소설문학여행기]
독자가 작품 속으로 들어가 함께하기-
김유정 소설 [산골 나그네] 문학여행
-2012. 9. 1
05시 30분. 지독한 그리움에 바나나 1개, 찐 고구마 2개, 김유정 전집 상권, 수첩, 필기구, 하모니카,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선다. 못 견디게 외롭다.
외로울 땐 난 정말 그곳 가고 싶어. 경춘열차 타고서 훌쩍 떠나요. 북한강의 색동, 신연강의 노래. 함께 한들 달리면 김유정역. 노란 동백향기 알싸한 춘천실레. 김유정 작가 고향 명작 무대야. 금병산 기슭 실레이야기길을 걸어 가본 사람들은 알지요. 외로운 마음 가득 따뜻한 사랑을 담아 줘. 향긋한 김유정 문학.
노래 -그곳 실레에 가고 싶다
전철역을 향해 노래를 부르며 걸어도 몹시 외롭다. 하늘을 쳐다보니 막막했던 인도양 다랑어 잡이 어부시절이 생각나 주저앉고 싶도록 그립고 외롭다. 전철역 계단을 내려가는데, 일용직 근로자가 서울지도를 들고 일터로 갈 길을 찾고 있다. 그럼, 오늘의 나의 일터는 어디인가? 그리움이 가득한 김유정 작가의 고향 춘천 실레가 아닌가.
아직은 늦여름, 부수수 하고 떨잎이 지는 가을도 아닌데 [산골 나그네]를 찾아가는 건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 때문이다. 두 아들이 있고 아내가 있는데 왜 지독한 가슴앓이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가슴은 채울수록 텅 비어만 간다.
7호선 전동차. 아직은 여유로운 좌석에 앉아 김유정 전집 상권을 꺼낸다. 소설 [산골 나그네]를 펴자, 메주 뜨는 냄새와 같이 퀴퀴한 냄새가 난다. 쥐들이 찍찍거린다. 밤은 깊었다. 쪽 떨어진 화로를 끼고 앉아서 쓸쓸한 대로 곰곰이 생각에 젖은 덕돌이 어머니가 나를 보자, 말없이 돌아앉아 반짇그릇을 끌어당기며 시름없이 바늘을 잡는다. 술꾼이 아니라 반가울 게 없는 것이다. 가뜩이나 침침한 반짝 등불이 북쪽 지게문에 뚫린 구멍으로 새드는 바람에 빛을 잃는다. 내가 헌 버선짝으로 구멍을 틀어막아도 덕돌 어머니는 바느질만 한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덕돌이 어머니 곁으로 바싹 다가가 앉자니, 앞뒤 울타리에서 부수수 하고 떨잎이 진다. 산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
더욱 몹쓸 건 물소리다. 골을 휘돌아 맑은 샘은 흘러내리고 야릇하게도 음률을 읊는다. 퐁! 퐁! 퐁! 쪼록 퐁!
벌써 상봉역이다. 경춘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움직이는 계단을 타고 밖으로 나오니 귀뚜라미 울음이 우렁차고 맑다. 지금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떠나는 문학여행 아닌가. 얼른 지갑을 열고 박재삼의 시, <울음이 타는 가을강> 이 적힌 쪽지를 꺼낸다. 귀뚜라미의 울음을 배경음악 삼아 낭송을 하자니 마음은 어느새 어느 등성이에 이르러 박재삼 시인처럼 눈물이 난다. 손등으로 닦는 내 눈물을 보았는지, 까마귀가 날아와 깍, 까악 운다. 이제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도’,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도’ 사라지고 녹아나고,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 이라니.
난 가을강이 된 사람들을 응원한다. 자기 이름을 버리고 죽어야 바다로 다시 사는 강이 아닌가. 우리네 삶에서 눈물과 아픔과 설움과 그리움이 없다면 얼마나 팍팍할 것인가.
06시 28분. 춘천행 전동차를 타고, 자작자작 들리는 신발소리를 듣는다. 혹 술꾼은 아닌지, 덕돌 어머니는 귀가 번쩍 띄어 문을 가볍게 열어젖힌다.
“누구세요?” 내가 먼저 반겨 물었으나 잠잠하다.
“그럼, 덕돌인가?” 내가 또 물었으나 답은 없고 모진 바람소리에 놀래어 멀리서 밤개가 요란히 짖는다.
“덕돌이 어머님이 불러보세요?”
“덕돌이냐?”
그래도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덕돌이 어머니가 몸을 돌리어 바느질거리를 다시 들려 할 제다.
“쥔어른 계서유?”
덕돌이 어머니가 황급히 문을 연다. 처음 보는 아낙네가 서있다. 달빛에 비끼어 검붉은 얼굴이 해쓱하다. 추운 모양이라 내가 먼저 덕돌 어머니에게 졸랐다.
“하룻밤만 드새고 가게 해주세요?”
“술꾼도 아닌 불청객, 입이나 다물고 어서 여기서 나가게나.”
“저도 추운데요?”
나그네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머리에 둘렀던 왜수건을 벗어들고는 다른 손으로 흩어진 머리칼을 씨담어 올리며 수집은 듯이 주뼛주뼛한다. 그러더니,
“저어, 하룻밤만 드새고 가게 해주세유?” 한다.
그러자 덕돌이 어머니가 응뎅이로 나를 밀치더니 쪽 떨어진 화로 곁으로 산골 나그네를 앉힌다.
“어서 불 쬐게유.”
그리고는 나그네를 살펴보다가 먹던 대궁을 주워 모아 짠지쪽하고 갖다 준다. 나그네는 물 한 모금 마심 없이 잠깐 동안에 밥그릇의 밑바닥을 긁는다.
덕돌이 어머니는 밥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나그네에게 미주알고주알 묻는다.
졸음이 쏟아진다. 졸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북한강의 색동 ‘신연강’이 함께 달린다. 한들을 지나고 07시 36분, 알싸한 김유정역이다.
금병산이 늦잠을 잤는지 하얀 안개이불을 끌어올린다. 올해는 대추가 풍년이다. 가지가 휘도록 열렸다. [봄·봄]의 데릴사위가 장인 봉필영감과 드잡이하던 논에도 벼가 잘 익고 있다. 오늘은 [총각과 맹꽁이]의 덕만이길로 실레이야기길을 시작한다. 문학촌 앞에는 춘천의 문화공간이 될 여러 공사가 진행 중이다.
타박타박 걷자니 저만치 낯익은 하얀 귀여운 신이 납죽 놓였다. 들병이의 신이다. 덕만이가 안해를 얻자했던 그날 밤, 들병이에게 인사시켜주기를 기다리며 홀로 끙끙 앓다가 봉당아래 납죽하게 놓였던 걸 제 흙발에 뀌고는 짝없이 기뻐하던 그 신발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근처엔 콩밭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한번 신어보자. 하얀 귀여운 신에 발을 뀌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데 누가 등을 후려친다.
“누가 신으랬어유? 이거 내꺼란 말이유! 어떻게 얻은 건데, 그래유!”
또 노총각의 쿠더분한 울분이 폭발한다.
“어이쿠!”
이럴 땐 비명을 지르다가 줄행랑치는 게 상책이다. 헉, 헉, 헉!
“이보게, 불청객! 어디 갔다 그렇게 숨넘어가게 뛰어오는 게야. 달포나 술꾼이 없더니 오늘은 재수의 빗발인데, 자 이 술상 좀 갖다 놓게.”
덕돌이 어머니의 영에 지게문을 여니 벽을 두드리며 아리랑 찾는 놈에, 건으로 너털웃음 치는 놈, 혹은 수군숙덕하는 놈 가지각색이다.
술상을 받쳐들고 들어가니 일제히 자리를 잡는다. 그러더니 한 놈이 내 엉덩이를 툭, 치더니 덕돌 어머니를 부른다.
“이게 어디서 사온 갈보래유? 으하하하!”
그러자 덕돌이 어머니가 빨리 나오라고 야단이다.
아직 문학촌(생가와 기념관)의 대문은 닫혀있다. 개관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순도 높은 도랑물소리와 풀벌레노래를 밟으며 물음표길을 걷는다. 밭가장자리마다 자동차가 있다. 농부들이 출근한 것이다.
“권주가 좀 해. 이건 뀌어온 보릿자룬가.”
얼간이 상투백이가 산골 나그네의 손목을 탁 잡아 앞으로 끌어 댕긴다.
“권주가? 뭐야유?”
“권주가? 아 갈보가 권주가도 모르나. 으하하하.”
무안에 취하여 폭 숙인 계집 뺨에다 꺼칠꺼칠한 턱을 문질러본다. 내가 얼간이 상투백이의 그 턱을 잡아당기려 할 제다.
가요가 흐르는 농장 근처. 컨테이너 밑에 줄에 매인 개는 조용한데, 인기척에 불쑥 나타난 애완견 한 마리. 간밤에 내린 비에 긴 털이 흠뻑 젖어 지저분한데 나를 보더니 무턱대고 달려든다. 땅바닥에 구르며 재롱을 떤다. 막무가내다. 다시 전동차를 타고 서울을 가야하는데 청바지가 마구 더렵혀지면 곤란해서 끝내 발길질을 하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일까? 아니면 농장 주인이 잠시 외출중일까? 아무튼 발길질을 하고 돌아서며 내뱉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미안하다!” 고.
미안한 마음으로 미안미안, 들병이들이 넘어오던 눈웃음길을 오르는데 수군수군 덕돌이의 낮은 말소리가 흘러져나온다. 무심코 귀를 기울인다.
“사내가 죽었으니 아무튼 얻을 게지유?”
옷 터지는 소리, 부시럭거린다.
“아이! 아이! 아이! 참! 이거 노세유!”
쥐 죽은 듯이 감감하다. 이때 내 귀를 살며시 잡아당기는 덕돌이 어머니.
“이봐, 불청객. 우린 그만 가자고.”
하모니카를 꺼낸다. 먼저 ‘이별’이란 노래를 부른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벌써 38년 전인가. 중학시절. 낯선 도회지에서의 하루하루는 외롭고 그립고 쓸쓸했다. 그래서 하모니카를 배웠다. 그 어린 나이에 부른 ‘이별’이란 노래는 가사와는 다르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었다. 나무와 다람쥐와 청설모와 바람에게 동요를 불러준다. 30년 넘게 손에서 놓았던 하모니카라 술술 나오지 않는다.
고구마와 바나나를 먹고 실레이야기길을 걷는다. 아기장수 전설길 길가에 물박달나무가 우체통처럼 서있다. 나무껍질이 꼭 종이를 잘라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 같다. 수만 장 중, 몇 장을 살짝 들춰보니 나무가 노을에게 보내는 엽서도 있고, 새들이 산꽃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고, 바위가 냇물에게 보내는 등기우편도 있다. 나도 뻐꾹새에게 지난봄이 그립다고 몇 자 적어 붙였다. 그리고 산등성이를 돌았다.
투덜투덜 내려가 다짜고짜 확 분질렀다. [동백꽃]의 점순이의 허리가 아니라 이번 태풍에 꺾여 땅바닥에 나뒹군 생강나무 가지를. 언제나 향긋하고 알싸하다.
“하아~ 어때유?”
이십구년 만에 누런 이쪼각에다 이제야 소금을 발라본 덕돌이가 내 코에다 대고 입을 벌린다. 찝찔한 짠지냄새가 홱 끼친다.
그러나 지금은 향긋하고 알싸하다. 모처럼 얻은 귀여운 안해의 마음이 행여 돌아앉을까 미리미리 사려두지 않을 수 없는 덕돌이의 그 마음 씀씀이가 있으니 말이다.
서울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친구가 너무 취하게 마시지 말란다. 오늘은 옥수수 동동주를 사오지 않았으니 풀벌레울음을 취하도록 마신다. 햇살을 배가 터지도록 마신다.
“내가 기약서 써 줄께유.”
실레이야기길이 동백꽃길과 만나는 곳. [가을]의 복만이가 기약서를 써주겠다며 내 수첩을 빼앗는다.
“글씨를 모르잖아요?”
“모르긴! 저 나무를 흔드는 바람처럼 외롭다면서유?”
“그럼, 외로움에게 기약서 한 장 써주세요.”
“쓰면 뭣해! 지키지도 못할 걸!”
복만이가 수첩을 멀리 던져버린다. 소설문학여행기를 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 수첩을 주우러 달려가지니 사방은 캄캄해지고 저만치서 광솔불을 켜들고 덕돌이와 그 어머니가 허벙저벙 오고 있다.
“불청객, 도적년 못봤우?”
덕돌이 어머니 손에 쥔 은비녀를 보니 불길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며느리가 도망갔어요?”
“도적년을 못 봤냐구유?”
징징거리며 덕돌이가 묻는다.
황급히 두 모자가 지나가고 내가 수첩을 주워들었을 때다. 수어릿골 물소리 속에서 으! 으! 으흥! 거푸진 신음이 들린다. 몸뚱아리는 두고 마음만 냇물 속으로 들어가니, 벽이 확 나가고 네 기둥뿐인 그 속에 물방아는 을씨년 궂게 모로 누웠고, 고 옆에 거지도 홑이불 위에 거적을 덧쓰고 누웠다.
“어디 많이 아프세요?”
“으! 으! 으흥!”
그때다. 거지를 부르며 누군가 물레방앗간으로 들어온다. 흘러든 쌀쌀한 달빛에 얼른 보아도 이건 덕돌이의 안해가 아닌가. 나를 보더니 놀란 기색도 없이,
“여보? 일어나게유 얼핀.”
덕돌이의 안해였던 산골 나그네가 거지 남편을 재촉한다.
“인제 고만 떠날테이야? 쿨룩!”
말라빠진 얼굴로 계집의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묻는다.
“어서 갈아입어유!”
계집이 보따리에서 옷을 꺼낸다.
“이거 덕돌이 옷이 아닙니까?”
내가 보따리를 챙기려고 하자 계집이 나를 거세게 밀친다. 내가 모로 누운 물방아에 어이쿠! 쓰러진 사이에 거지는 호사하였다.
“옷이 너무 커, 좀 적었으면!”
“잔말 말고 어서 갑시다, 펄쩍!”
거지는 달빛에 번쩍거리는 겹옷을 입고서 지팡이를 끌며 안해를 따라 물방앗간을 등진다.
밥을 찾아 흘러가는 뜬몸들의 하룻밤 숙소인 이 물레방앗간. 땅 없고 돈 없어 고향 등지고 밥을 찾아 떠나는 산골의 나그네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윤리마저 등져야 하는 산골의 나그네들. 나도 거지처럼 거적을 쓰고 누웠다. 으! 으! 으흥!
멀리서 사람 욱이는 소리가 끊일 듯 날 듯 간신히 들린다. 덕돌이의 목성이다.
으! 으! 으흥! 으! 으! 으흥!
서울 상봉행 전동차가 덕돌이처럼 달려온다.
“내 안해 못봤냐구유?”
덕돌이의 눈물을 안고 서울로 간다. 자작자작, 산골 나그네의 신발소리를 안고 서울로 간다.아니다! 나는 덕돌이의 눈물을 안고 집으로 간다. 자작자작, 산골 나그네의 신발소리를 안고 집으로 간다. 으! 으! 으흥! 거지의 거푸진 신음소리를 껴안고 집으로 간다. 나의 지독한 그리움과 외로움도 다시 안고 집으로 간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외로우니까 사람인 것을!’
첫댓글 독자가 작품 속에 들어가 함께 하기 그거 재미있네요^^
어릴 때 동화나 무협지 같는 거 보면서 공상도 많이 했었는데 이제는 머리가 굳어서 통 그런 생각이 나질 않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