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2
10.11에 올라간 Klis Fortress는 폭이 좁은 돌산으로 사면이 절벽, 그 지형을 따라 길쭉하게 지어진 요새인데, 자주 보게 되니 이제는 친숙하다. 규모는 작지만 무기 박물관과 그림 전시관 그리고 그 높은 곳에 교회까지 있었다.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캄캄한 밤에도 조명등으로 어둠을 물리친 요새는 스플리트의 수문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주변 도시를 관광하고 돌아올 때 성벽이 보이면 이제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숙소의 편안함이 달려와 마음을 감싼다. Olive 박물관은 요새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Klis입장권과 연계되어 있어 다음날 가 보았다. 일종의 끼워 팔기인 셈인데 내용은 괜찮았다.
10.12 오전에는 Solin에서 오랜 로마 도시의 흔적, 원형 극장 등의 폐허를 보았는데 안내판에서 죽은 검투사gladiator를 내보내던 통로가 따로 있었다는 내용에서 인간의 잔인한 속성이 확장된 사회 현상이 전쟁이란 생각이 들었다. 권투 경기의 케이오로는 부족해 죽여야 이기는 경기를 즐기며 소리지르는 관중들의 광기가 느껴진다.
우연히 발견한 기독교인 무덤과 줄지어 놓여 있는 석관을 보았는데 크기가 다양했다.
오후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 후 지냈던 로마 궁전 겸 군대 주둔지를 관광했는데 유적이 복원되기도 했지만 새 건물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관광지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었다.
2024.10.13. 일요일 10:25 Split 숙소에서 Dubrovnik로 출발했는데 가는 길은 내내 아드리아해를 가까이에서 만나는 시간이었다. 해변 도로가 대체로 해안과 가깝고 대체로 해수면과 고도차가 크지 않은 편이어서 얄미운 건물이 시야를 가리지 않는 한 아드리아해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바닷물이 맑아 바닥까지 잘 보였는데 대부분 큰 자갈이 깔려 있었고 모래사장은 많지 않았다.
Omis에 도착해서 좁은 골목길로 이어진 동네를 지나 가파른 돌층계를 올라 미라벨라 요새를 향했다. 한열은 거의 끝까지 오르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몇 군데 교회에서 종을 치기 시작했다. 마을 전체가 종소리로 가득했다. 종소리 맑은 합창은 12시를 알리는데 교회 종도 독창은 외로워서 싫은 것인가. 4분여 이어지는데 이국적 정취를 자아냈다. 누구를 깨우는 소리인가.
아드리아해를 보며 아들을 생각한다. 주관이 뚜렷하고 직선적인 성격으로 자주 충돌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나름대로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한 것이리라. 유럽까지 멀리 와서 아들과 아내를 새롭게 만난다. 이런 만남이 결혼으로 가능한일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도 모두 누군가의 결혼의 과정을 통해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거리를 거닐고 있지 않은가. 아들이 늦게라도 가정을 이루기를 기도한다.
요새에서 내려와 바닷가를 산책했는데 모래사장이 꽤 넓은데 모래가 좀 굵고 거칠어 보였다. 춥지도 않은지 드문드문 수영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서해 바다를 볼 때는 물때에 따라 충만함과 허전함 사이에서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인데 아드리아해는 거의 간만의 차가 없어서인지 언제나 발끝까지 차오른 만조滿潮였다. 라인강이 어디서 보나 어항을 채워 놓은 물처럼 항상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드리아해는, 구불구불 흐르는 강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넓은 수면과 긴 수평선으로 지구의 한 부분을 그리고 있었다.
16:00쯤 Dubrovnik Hilton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 하고 간단한 식사를 하고 테라스에서 오랫동안 아드리아해의 저녁놀을 감상했다. 길 건너편의 고성古城이 절벽 위에 우뚝했는데 마을의 연한 주홍빛 기와집 지붕들은 화가들이 그림 그릴 때 통일감과 안정감을 줌으로써 부담을 줄일 것 같았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돌벽에 크지 않은 창문과 절제된 빛으로 정겨운데 마을과 뒷산의 솔숲이 어우러지니 마치 그림 같았다. 낮에서 저녁 그리고 밤으로 흘러가는 시간과 빛의 변화는 구름과 하늘빛 그리고 노을빛의 조화로 오묘한 시간 예술의 극치였다.
10.14. 월
'엄마, 해 뜨네!'
동이 튼다는 아들의 말에 테라스를 왔다갔다 하며 하늘을 감상한다. 해가 떠오르는 쪽은 산맥인데 그 위를 잿빛 구름이 농암을 달리하며 붓질하고 있는데 결에 따라 파랑과 노을빛이 보이고 더 높은 하늘엔 흰구름이 흘러간다. 나머지 드넓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여기저기 엷게 흩어져 있는데 붓질의 기법도 다양하다.
하늘과 땅을 진한 선으로 구분하던 능선의 한 부분이 노을빛 구름으로 진하게 물들더니 점차 파란빛으로 밝아온다. 07:15인데 종소리가 들린다. 새소리도 들린다.
07:25, 진한 잿빛 구름을 환하게 물들이며 드디어 해가 산 위로 떠올랐지만 해는 보이지 않고 해 주변의 구름이 붉게 눈부시다. 시간이 흐르자 구름 커튼을 젖힌 해는 눈이 부셔 볼 수가 없는데 테라스에 놓인 의자 다리의 긴 그림자가 해시계 바늘이 되어 시간을 가리키는데 시작점에서는 또렷한데 점점 흐려진다.
Bosanka View point에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발전한 도시, 두보르브니크를 전망하고 Cavtat라는 아담한 항구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와 식사한 다음 이 큰 도시의 시작점으로 보여지는 성곽을 둘러봤다. 성안은 4층의 많은 석조 건물로 가득 차 있는 계획 도시로 네모난 돌을 깐 도로가 바둑판처럼 배치되었고 바닷쪽 성문 하나는 바로 선착장을 접하고 있었으니 요새 겸 항구의 기능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선착장에는 작은 요트들이 줄지어 정박하고 있었다. 멀리 호텔에서 내려다볼 때는 성곽만 보였는데 가 보니 해자垓子를 가로질러 놓인 돌다리에서부터 성 안의 좁은 길과 분수 광장까지 관광객으로 가득했고 도로에 깔린 네모난 돌의 굴곡은 반들반들 달아서 잘 닦은 구두처럼 광이 나고 있었다.
숙소에서 잠시 쉬고 케이블 카로 오르는 대신 집사람의 걸음 수를 줄이기 위해 우버 택시를 불러 전망대에 올라 저녁 노을을 감상하고 사진 찍고 다시 우보 택시로 숙소에 도착하자 휴게실에 들러 간단한 식사를 했는데 늦은 시간이라 빵은 없어 아쉬웠지만 몇 가지 곡식 바bar로 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맛도 있었지만 든든한 것이 한 끼 식사로 그만이다. 426호실 문을 열며 생각한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일출과 일몰의 장관을 선물하며 지구상 어디에 살던지 시간과 삶의 귀중함을 깨우친다고, 단지 잊고 지냈을 뿐이라고.
아침 먹고 좀 쉬다가 집사람은 그늘에서 쉬고 운동삼아 아들과 함께 호텔 정면, 높은 절벽 위에 서 바다 바라보고 있는 요새로 올라갔다. 입장료를 내야 했는데 그 값어치가 있었다. 드넓은 바다를 한참 보다가 왼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로 선착장 건너편 어제 방문했던 성의 전경을 조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Cavtat채브타트에서 내가 맡아 가지고 디니던 집사람의 보라색 얇은 점퍼를 잃어버렸다. 바닷가 한적한 길을 산책하다가 작은 부표를 이어 둥글게 경계선 표시하고-수영 영역 바깥쪽은 요트들이 정박함- 해안 쪽 옹벽에는 층계와 난간이 있는 작은 수영장에서 노부부가 수영하고 있었다. 벤치가 보여 앉아 쉬다가 우리 부부는 사진도 찍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때까지는 집사람 등 뒤로 들고 있어 보라색 옷자락이 살짝 보였다. 그런데 그 이후는 전혀 생각이 안 난다. 집사람이 원래 좋아하는 빛깔에 아끼는 옷인데... 김호중 노래를 워낙 좋아해서 그 의미가 깊어진 빛, 그의 음주 사건을 안타까워하고 앞으로 잘 해결되어 음악적 재질이 땅에 묻히지 않기를 기원하며 지내는데...
그리고 점심을 먹기 전 식탁에 빈 유리컵만 있길래 왜 물은 안 주냐고 아들에게 물었더니 물은 서비스가 아니고 주문해야 패트병을 갖다준다면서 여러 번 한 얘기라는 것이다.
내가 대화 자리에서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일이 잦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주의가 산만하여 옷도 어딘가에 흘린 것이다. 나의 오랜 습성이니 고쳐야 하는데 늘그막에 너무 여러 가지로 복잡하게 살지 말고 단순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도 가능한 한 사진 찍기는 아들에게 맡기고 집사람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10.16 수요일
13::00 경 Mall of Split로 산책 겸 가서 점심으로 맥도널드 햄버거를 콜라와 곁들여 먹고 옷가게를 둘러보고 몰 안에 있는 Spar 슈퍼마켓에 갔는데 숙소 부근의 Spar보다 규모가 크고 물건이 다양했다. 물, 소고기, 계란, 양배추. 당근, 감자, 토마토를 샀는데 무게로 파는 건 비닐 봉지에 넣어 저울에 올린 후 상품 번호를 누르고 엔터 치고 맨 아래 버튼을 눌러 무게, 가격과 바 코드가 찍힌 스티커가 나오면 봉지에 붙이면 된다. 16:00경에 Mall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첫댓글 여행했던 추억을 살려주네요. 아드리아해를 사이로 이탈리아와 마주 하고 있었던 같은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 드보르크 성에서 높은 곳까지 성을 올랐던 경험도 기억합니다. 일출과 일몰 속에 인간의 짧은 하루는 가지요. 사모님의 건강이 다른 사람과는 좀 힘들텐데 같이 동행하신 것도 대단하시고, 서주님의 필력도 살아나니 노익장이 따로 없네요. 남은 유럽 여행도 잘 하십시오.
Eveegreen님, 방문 감사!
오랜만에 여행하는데 기록을 남기면 나중에 다시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아 카페에 올리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이 다른 나라 영토를 거쳐야 했답니다.
지금은 다리-사장교-가 생겨 직접 건넌다고 하네요.
여행은 피곤을 동반 한다고 하니 건강 유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