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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2-28일
노래 90 서로 격려하라
“모든 위로의 하느님”을 본받으십시오
“우리도 [하느님]에게서 받는 위로로 ···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고린도 후서 1:4.
성구 해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직후에 다시 입을 여시어,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애통하는 일이 없다면 위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애통하는 이유는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위로는 자연의 질서가 공정하다는 것과 자연은 결코 우리를 완전히 소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정하든 않든 간에 우리는 자연의 일부임에는 분명한 사실이다. 자연이 아무런 의도성이 없이 우연히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다면, 자연의 질서가 공정하거나 우리를 보호한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당하게 대우받는다고 애통하는 자들에게 자연의 질서가 얼마나 공정한지를 알게 한다면 분명히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우리가 처해진 자연이 인자하신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할 때, 한없는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이 위로는 종교에서 관념적으로 가르치는 위로보다 한층 위이며 실제적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깊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좀더 성숙된 경지는, 자연이 창조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창조성이 있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활동할 때 기쁨이 커진다는 것이며, 그 기쁨은 한 없이 커져 크기로 나타낼 수 없는 무한한 것이 된다는 희망이다. 이러한 기쁨과 희망 때문에 우리가 능동적으로 애통하는 자들에게 우리의 기쁨을 공유할 수 있게 되고, 그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하자면 애통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방법은 그들에게 참 관념인 자연의 질서, 곧 하느님의 속성을 알게 하며,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과정ㅡ여기에는 반드시 물질적인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ㅡ을 통하여, 그리고 무한한 희망을 제공함으로써 현재의 어떤 고통과 슬픔도 감내할 수 있도록 위로할 수 있는 것이다.
| 요점 어떻게 다른 사람을 잘 위로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의 본과, 그분을 본받아 다른 사람들을 잘 위로한 사람들의 본을 통해 그 점을 알아보겠습니다. |
1. 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야 합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은 그것이 자기에게 보다 더 유익을 주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근원적으로, 타자도 우리와 운명을 공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가족 공동체, 신앙 공동체, 사회 공동체, 나아가 자연을 구성하는 공동체의 성원으로서 서로 의존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 공유 의식이 부족해서 받는 것에만 집착한다면 그는 결국 자기를 해롭게 만든다. 공동체 전체의 일부로서의 자기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여러 가지 시련으로” 괴로움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베드로 전서 1:6) 그래서 위로와 격려가 자주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로해 주었을 때 얼마나 고마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도 다른 사람이 고난을 겪을 때 적극적으로 위로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태 7:12) 우리는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신 여호와를 본받을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온갖 시련을 겪을 때”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도 그분을 본받음으로 “온갖 시련을 겪는 사람들”을 잘 위로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3, 4; 데살로니가 전서 4:18)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위로하는 것은 단지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깊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1) 성경에 나오는 “위로”라는 말에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2)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까? (3) 나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위로한다”는 말에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2. 성경에서 “위로하다”로 번역되는 단어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 있습니까?
이 단어는 신약 성서(KJV)에서 세 가지로 번역된다. (1) 간청하다. to beseech, 18회, (2) 권고하다. to exhort, 17회, (c) 위로하다. to comfort, 13회. 문자적인 뜻은 (자기의 경험 안으로) 끌어 당긴다는 뜻을 지닌다. 즉 위로를 받은 경험으로 상대방을 위로한다는 뜻이다.
2 성경에서 “위로하다”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는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 단어는 “격려하다”, “권고하다”, “강권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로마 12:8; 연구 노트 “격려하는” 참조)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다”를 의미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친구 곁으로 한걸음에 달려와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친구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위로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위로는 고통받는 사람에게 항상 격려와 새 힘을 줍니다.
3. 바나바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면에서 어떤 본을 보였습니까? (또한 삽화 참조)
위로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하고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 위로의 아들이란 의미를 지닌 바나바는 당시 사울의 악랄하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바나바에게 접근하여 그를 도왔다.
3 요셉이라는 성경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정말 잘 격려하고 위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를 “위로의 아들”을 의미하는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사도 4:36) 그 별명이 그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후로 그를 계속 바나바라고만 부릅니다. 바나바는 그 이름에 걸맞게,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을 자주 도와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개종한 지 얼마 안 된 사울이 예루살렘에 왔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제자들을 만나고 싶어 했지만 제자들은 그가 얼마 전까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만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사울을 믿어 주었고, 그가 사도들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사도 9:26-28.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까?
4.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좋은 방법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로마서 1:11, 12)
사람들을 위로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참된 관념을 심어주는 것이다. 즉 애통의 원인이 불공정이라면 불공정은 반드시 보상을 받거나 해소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질서, 곧 창조의 원리가 공정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4 가능한 상황이라면 직접 만나 위로해 주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들을 사용해 위로를 베푸십니다. 예를 들어, 예언자 엘리야가 낙담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한 천사를 보내 그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19:4-7) 사도 바울도 형제자매들을 직접 만나 격려해 줄 때 그들이 큰 힘을 얻는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로마서 1:11, 12 낭독) 만약 누군가를 만나서 격려해 줄 생각이라면, 단지 몇 마디 대화만 나누지 말고 충분히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고린도 전서 16:7) 직접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전화를 하거나 편지나 카드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서는 바로 당신을 사용해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를 원하십니다.
5. 형제자매들을 위로하기가 왜 어려워질 수 있습니까?
공동체 성원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첫 번째에 이어 물질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상호 보완적인데 만일 이론적으로만 위로를 전달하고 물질적 지원이 없다면 상대방은 그 위로가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한편 참관념이 인식되지 않는 물질적 지원은 맹목적이다. 그것은 그저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호감만을 가지게 할 뿐이다. 물질적 지원이란 반드시 큰 재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밥 한그릇이라도 먹으며 마음을 풀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5 마지막 날의 끝이 다가옴에 따라 형제자매들을 직접 만나 위로해 주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수감되어 있을 때 에베소에서 온 오네시보로가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바울을 직접 만나 위로해 주기 위해 그를 찾아다녔습니다. 자신이 수감되거나 죽임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1:16-18) 오늘날 러시아의 증인들도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을 때 그와 비슷한 용기를 나타냅니다. 형제자매들이 재판을 받을 때면 법정으로 가서 그들에게 힘을 북돋아 줍니다. 자신들도 체포될 위험이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용기를 나타내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할 수 있습니다. 고대와 현대의 여호와의 종들이 어떻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는지 연구해 보십시오.
6. 다른 사람을 위로할 때 어떻게 여호와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또한 삽화 참조)
위로에 앞서서 상대방의 고충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잘 듣는 것이 필요하지만,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셨다는 내용은 당사자들에게는 믿음의 측면에서 위로가 되겠지만 제3자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나 하느님을 대동시켜 인정하게 하려는 방식은 설득력이 없다.
6 잘 들어 주십시오. 예언자 엘리야는 목숨이 위협받을 때 여호와께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사랑 많은 하느님께서는 엘리야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무엇을 염려하는지 이미 다 알고 계셨지만 그의 말을 잘 들어 주셨습니다. 심지어 엘리야가 같은 말을 반복하는데도 참을성 있게 들어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19:9, 10, 14) 또한 예언자 하박국이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을 때에도 여호와께서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그가 다소 불경스러워 보이는 방식으로 자신의 염려와 의문을 표현했는데도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하박국 1:2, 3)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다 아시지만 우리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들어 주십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본받아서 형제자매들의 말을 존중심을 가지고 잘 들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듣기는 빨리하라”는 성경의 교훈을 따릅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충동적으로 말하거나, 했던 말을 반복하더라도 말을 끊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야고보 1:19; 전도 7:9.
7.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상대방의 말을 듣는 데에는 그 사람의 고충을 듣는 것도 포함되지만 그 사람이 지닌 참관념에 대한 인식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가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정신적 고통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7 그 사람에게 정말로 무엇이 필요한지 분별하십시오. 우리는 여호와와는 달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알려면 그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쉽게 단정 짓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다 다르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서 당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과 그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을 내서 그의 말을 잘 들어 주고 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십시오.—잠언 20:5.
8.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어떻게 위로하셨습니까? (또한 삽화 참조)
나사로의 부활에 대한 요한 복음의 내용은 위로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예수의 위대성을 보여주려는 다소 과장된 내용이다. 그것은 사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기적의 종류가 아니며, 다 죽어가던 자가 예수의 목소리를 듣고 병상에서 뛰쳐나와 예수를 맞이하려는 장면을, 이미 죽은 자가 부활한 것과 같다는 의미를 부여시킨 것이다. 물론 여기서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의 위로는, 죽음으로 인해 단지 잠시 동안 헤어지는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된다는 약속을 보증해주는 것이다.
8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어떻게 위로하셨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 다 오라비를 잃고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두 사람을 같은 방법으로 위로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르다를 만나셨을 때는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부활에 대한 진리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그분께 와서 눈물을 흘렸을 때는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신 마리아와 함께 울어 주셨고, 나사로의 무덤이 어디인지 물으셨습니다. (요한 11:20-35)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우리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때 모든 사람을 똑같은 방법으로 위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분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9. 어떻게 성경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까? (로마서 15:4, 5)
성경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적용시킬 때, 상대방은 순간적으로 위로를 받을 지 모르지만, 그는 자칫 컬트에 빠지는 위험을 겪을 수 있다. 성경의 내용은 조상들의 지혜와 경험들이 오랜 역사 동안 검증되었다는 측면에서만 훌륭한 고전이며, 인용될 수 있다.
9 성경을 사용하십시오.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성경을 사용해 위로해 주면 그 사람은 여호와의 약속에 대한 더 강한 희망을 갖게 됩니다. (로마서 15:4, 5 낭독) 그리고 그런 희망을 통해, 여호와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돌봐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강해지기 때문에 더 큰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됩니다. (이사야 40:3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데 사용할 성구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일부 형제자매들은 평소에 그런 성구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정리해 둡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을 위한 성경 구절들」의 “위로” 항목에서도 그러한 성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성경 말씀을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여호와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의 성령은 우리가 필요할 때 적절한 성구들을 떠올리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요한 14:26.
10. 다른 사람을 격려할 때 친절하게 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자신의 관념과 예수에 대한 바울의 관념이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성서를 읽을 때 적용되는 원칙이다. 예언자가 하느님과 대화 했다는 것은 기록자의 관념이지 독자의 관념이 될 수 없다. 엘리야가 하느님과 대화했다는 것을, 기록자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러한 관념을 가졌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독자에게 그 내용을 문자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권고나 위로는 상대방이 받아 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10 친절하게 말하십시오. 앞서 나왔던 것처럼 “위로하다”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는 “권고하다” 또는 “강권하다”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때때로 다른 사람을 위로하다 보면, 그의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권고하거나 강권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우리의 말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위로가 되게 하려면, 말하기 전에 주의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잠언 12:18) 여호와께서 예언자 엘리야에게 말씀하실 때 이 면에서 어떻게 완벽한 본을 보이셨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예언자로서 실패했고, 이스라엘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이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생각이 틀렸다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친절하게 그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열왕기상 19:15-18) 우리도 그처럼 다른 사람을 친절하고 사려 깊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한 집회에서 연설을 하거나 해설을 할 때에도 다른 사람을 격려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항상 친절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말해야 합니다.
11.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합니까? (요한 1서 3:18)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의료와 식량의 공급이다. 전체 의료 시설과 식량이 부족할 때는 이들에게 베푸는 혜택도 제한적이지만 인류가 충분한 식량과 의료 시설이 확충된다면 제한 없는 의료와 식량의 공급이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더 필요한 것은 단지 식량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식량을 해결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 구성원 모두에게 기본적인 의료와 식량 공급을 베풀어야 하며 나아가 일의 성취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혜택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각 구성원들이 쓰고 남는 여분은 전체 공동체에 재투자하여 지분을 키워나가는 사모 펀드(private equity fund) 같은 방식이 권장될 수 있다.
11 실제적인 도움을 주십시오. 많은 경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위로의 말을 해 주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요한 1서 3:18 낭독) 바나바가 이 면에서 좋은 본을 세웠습니다. 그는 새로 침례받은 형제자매들이 물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자기가 가진 땅을 팔아 그 돈을 기부했습니다. (사도 4:36, 37) 오늘날에도 많은 형제자매들이 바나바를 본받아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실제적인 방법으로 도와줍니다. 폴란드에 사는 가브리엘라 자매의 경험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번은 큰 홍수로 인해 자매의 집이 심하게 파손되었습니다. 자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어요. 홍수가 났을 때 부모님도 저도 정말 두려웠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죠. 그런데 인근 회중의 형제자매들이 집을 수리하러 와 줬어요. 단 하루 만에 집이 정말 많이 복구됐죠. 그러한 경험을 하면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사용해서 어려움을 겪는 형제자매들을 위로해 주신다는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12. 우리가 시련을 충실히 인내하는 것이 동료 형제자매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시련을 인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련을 시련으로 보지 않고 기쁨 또는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관문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게 되면 고통이 언제 끝나는지를 기다리며, 그 고통이 지속되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위로는 시련을 인내한 경험 속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12 자신이 겪는 시련을 잘 인내하십시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이 충실히 인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썼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들을 위해 한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격려를 받았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3:5-8) 한편 바울은 자신도 시련을 충실히 인내하면 직접 만난 적이 없는 형제자매들에게까지 격려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골로새 2:1, 2) 오늘날에도 우리가 여호와의 도움으로 시련을 충실히 인내하는 것을 보고 다른 형제자매들이 큰 격려를 받습니다.
13. 다른 사람을 위로할 때 어떤 특성이 필요합니까?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그 자체가 선이다. 선을 행하다가 성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상심할 필요는 없다. 선은 따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보상이 내재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꾸준히 선을 행한다면 반드시 어떤 결과가 언젠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13 참을성을 보이십시오. 낙심한 형제자매들은 우리가 위로해 주려고 노력해도 즉시 기운을 내지는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계속 서로 격려하라”고 권고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1) 이 말을 보면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계속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참을성을 가지고 계속 노력하십시오. (데살로니가 전서 5:14) 그런데 때로는 우리 자신도 위로가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나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14-15. 염려에 휩싸이거나 마음이 괴로울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외부 환경의 변화에 의해서 움츠려들거나 불안과 염려가 순간적으로 있을 수 있다. 이때 필요한 마음가짐은 성서에서 알려주는 대로 아무 걱정과 염려를 하지 않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모든 사물이 최상의 길을 가도록 최적의 방법으로 세계를 진행시키신다는 믿음이며, 우리의 미래가 잘 되리라는 확고한 희망을 되새기는 것이다. 사물을 포함한 인간의 행복은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무한으로 계속해서 확장될 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속성 중 무한성이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4 여호와께 기도하십시오. 염려에 휩싸이거나 마음이 괴로울 때 여호와께 위로해 달라고 청하십시오. (시 94:19)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솔직히 다 말씀드리십시오. (시 62:8) 물론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도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십니다. 하지만 그처럼 마음을 쏟아 놓는 기도를 드리는 것은 그분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는 아니더라도 그러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마가 11:24) 빌립보서 4:6, 7에서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청원을 하느님께 알리십시오. 그러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력을 지켜 줄 것입니다.”
15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영적으로 장성한 친구나, 당신이 신뢰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장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십시오. 형제자매들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을 모른다면 우리를 위로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 주십시오. (잠언 14:10)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다고 하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해 보십시오. 위로가 되는 성구나 기사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부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16. 형제자매들은 우리를 위로해 주려다가 어떻게 할 수 있으며,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위로해 주려는 사람의 의도가 상대방에게 간혹 오해될 수도 있으며, 또 상대방과 맞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다. 이때 동기를 설명해주며 상대방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위로하려는 동기도 중요하지만 그 방법 또한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은 충동적 감정에서 나오는 동정심을 지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동정심과 위로는 분석적이어야 하며, 지성적인 것일 때 가치가 있다.
16 참을성을 나타내고 기꺼이 용서하십시오. 형제자매들은 우리를 위로해 주려다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그럴 때 참을성을 나타내십시오. (고린도 전서 13:4, 7) 야고보서 3:2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말에 있어서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우리를 정말 도와주고 싶어 하는 형제자매들의 동기를 잊지 마십시오. 성경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영은 간절하지만 육신이 약하다”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마태 26:41.
17.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합니까?
마지막 날, 마지막 때, 큰 환난, 아마겟돈과 같은 표현들은 가능한 한 지양하는 것이 좋다. 우리의 삶의 방식은 특정한 장소나 때에 대해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런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종교 단체는 다른 숨은 의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은 그들 종교 단체의 이익을 위해서 구성원들을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며, 구원에는 사실상 관심이 없다.
17 이 마지막 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갈수록 삶은 힘들어지고 하느님의 적들의 공격도 거세질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더 위로가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위로”라는 말에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까?
나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노래 130 용서하는 사람이 되리
a 삽화 설명: 한 장로 형제가 얼마 전 아내를 사별한 형제의 말을 잘 들으면서 공감해 주고 있습니다. 나중에 같은 장로 형제가 여러 해 전에 아내를 사별한 형제를 찾아갑니다. 두 사람은 사망한 자매와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립니다.
노래 90 서로 격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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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음(Daum) 이 네이버(Naver)보다 까다롭네요 이미지나 동영상을 임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어느 분이 위키에도 제 동영상을 올렸는데
출처인 다움에서 내용을 보지 못하도록 제한을 시켰더군요. 그들은 자연물 간의 작용이라는 원리로부터 응당의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