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68]‘1961-1990’ 어느 민초(民草)의 일기
어느 이름없는 시골 복숭아밭 농부(1906년생)의 30년치 일기가 책으로 나왔다는 기사를 읽었다(전라도닷컴 2024년 8월호). 『복숭아밭 농부 이춘기 옹의 30년 일기-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이춘기 씀, 이복규 엮음, 학지사 2018년 펴냄, 430쪽). 지레 절판됐으리라 생각하고, 알라딘중고서점에서 검색하니, 전국적으로 딱 한 권이 잠실롯데월드점에 있었다. 상경길에 그 책을 구입, 오늘 새벽 거의 다 읽었다. 아내가 아프기 시작해 4개월도 안돼 숨진 1961년부터 아들 6명과 함께 온갖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으며 ‘고단한 삶의 강’을 건너다, 마침내 1990년 막내아들의 초청으로 미국에 이민하여 다음해 숨질 때까지 꼬박 30년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당신의 마음을 일기에 담았다. 국한문 혼용체에 유려한 필체, 일기 곳곳에 나오는 준수한 삽화들도 자신이 그렸다. 놀라워라-.
일기(日記)라는 게 무엇인가? 오직 ‘나’라는 독자 한 명만을 위해 쓰는 다이어리가 아니던가. 그만큼 사적(私的)이니 얼마큼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들이 주저리주저리 담겼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일기장도 36년치(1986-2022) 36권이 보관돼 있지만, 그것이 책으로 펴낼 만큼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1927년생, 현재도 요양원에서 짧게 일기를 쓰고 계신다). 하지만, 이 분의 일기만큼은 서지학적(書誌學的)인 가치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어느 교수가 한 자도 빼놓지 않고 읽으며, 처음 2년치(1961-1962)는 거의 전재하고, 63년부터 90년까지의 일기를 주제별로 발췌해 엮었으리라. 오죽했으면 어느 작가(조덕현)는 일기들을 낱장으로 프린트해 거대한 삼각기둥에 떼어붙인 설치작품을 만들었으랴(전시관으로 바뀐 ‘춘포도정공장’에 <& diary>라는 제목으로 전시).
날마다 놀라고 감동할 일이 있다는 것은 ‘인생 2막’에 축복일 터. <안네의 일기>를 모르는 분은 없으리라. 어린 소녀 안네는 골방에서 숨어 2차대전의 비참함과 자신의 꿈을 일기로 남겼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까지 됐으니, 딸을 잃은 아버지의 한이 조금은 풀렸을까. 그런가하며 <아미엘의 일기>를 들어보셨는가. 스위스의 철학자 아미엘은 1947년부터 1981년까지 일기를 썼고, 책으로 펴내 이미 세계적인 고전이 된 지 오래이다. 그는 "일기는 하나의 꿈이다. 과거를 통한 미래와의 만남이다. 그것은 매우 바쁜 여가이자 휴식이며, 작업을 통한 충전이다. 목적도 없고, 노력도 없고, 일관된 정신도 없이 다만 만족을 위해 매진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다”고 말했다. 그렇다. 일기는 한 세상을 건너며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만나는 “꿈”일 것이다. 하여, 나의 간헐적인 생활졸문도 그 일환일 거라고 애써 자위하곤 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겪는 일들을 날마다 길든 짧든 적어놓은 기록인 ‘일기’는 우리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미암(眉巖) 유희춘이 11년간 쓴 <미암일기>를 우리는 담양 미암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도 있지만, 그보다 우리는 세계가 깜짝 놀라는 조선조 정사(正史)의 기록 <승정원일기>를 국보(國寶)로 갖고 있다. 인조(1623) 때부터 나라가 망한 1910년까지 288년간에 걸친 국정일기. 조선 전기의 기록은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지만, 글자수만도 2만4천자에 달한다(전기 일기가 실존했다면 5만자도 넘었으리라). 그러니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어찌 등재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모두 당연히 한자(漢字)이므로 한문문맹자가 태반이니, 이 노릇을 어이 할까. 한국고전번역원은 지금쯤 몇 %나 번역했을까,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15%쯤 번역했을 때 대중에게 먼저 알려야겠다해 펴낸 책이 『후설』으로써, 우리는 그 기록들에서‘조선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역사학자 김성칠씨가 쓴 일기 <역사 앞에서>가 드라마로 제작돼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아무튼, 이춘기 옹의 치열한 ‘일생일기’에는 1919년 기미년 만세운동과 한국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회고하는 구절도 있고, 지금은 많이 변질된 우리 고유의 세시풍속도 자세히 기록돼 있어 민속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무뚝뚝한 지아비였으나, 목련꽃 필 무렵 보낸 아내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사부곡(思婦曲)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이미 출가한 아들도 있었지만, 늦둥이 두 아들을 홀아비가 시골에서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랴. 두 아들을 위해 할 수 없이 한 재혼, 삼혼의 실패 이야기도 ‘독자’로 하여금 짜안하게 만든다. 어찌 그리 박복하고 지긋지긋하게 돈이 없이 가난했을까. 그 힘든 세월을 어찌 다 겪으셨을까, 유행가 한 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런 가운데에도 여섯 아들을 모두 너무 잘 키워 나라의 일꾼들이 되게 했다. 모두 다 명문 중고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큰아들은 박정희 정권때 수출 1억달러 주역으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고급 공무원이었고, 그의 동생들도 모두 잘 풀렸다.
마지막 일기는 뉴욕생활을 하면서 1990년 11월 11일 이렇게 끝난다. "정원수 고목이 많고 전지를 하지 않아 잎이 많이 떨어진다. 하루 이틀에 되지 않고, 몇 달간 매일 조금씩, 한 해 내내 떨어진다. 귀찮기도 하고 싫증이 난다. 곁가지를 싹 잘라버리면 잔디에도 햇빛이 들고 잘 자랄 텐데, 그대로 두니, 내 힘으로는 다 못하겠다"
"내 힘으로는 다 못하겠다"며 하염없이 고국을 그리워하던 파란만장한 어느 농부의 일기를 통한 30년간의 시간여행은, 전형적인 우리 농촌의 내 부모를 떠올리며 감정이입(感情移入)의 상태가 되어 나를 내내 숙연하게 했다. 중학교 시절 쓰다만 일기를 이제부터라도 써볼까(가끔은 그때 쓴 일기가 궁금한데, 그때는 왜 유행처럼 불태웠을까), 세상은 백세시대를 넘어 120세시대로 치달린다는데.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