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화) 시편 114:1-8 찬송 115장
1.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2.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
3. 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4. 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5.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6. 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
7. 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8. 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
(개역 개정)
- 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찜이냐 -
본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을 찬양하는 것으로서,
출애굽으로 시작해서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민족이 체험한
하나님의 권능을 배경으로 하여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찬송하고 있다.
이러한 본시의 저자와 그 배경에 대하여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어느 무명의 시인이 바벨론 포수(주전 586-536)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 사건을 회상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기록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어진 본시는 소위 ‘제 1 할렐시’(제 113-118편)로 불리던
시들 중의 하나로, 연례적인 절기에 사용된 ‘감사 예배시’이다.
대체로 학자들은 유월절 축제의 마지막 날에 본시를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본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을
특이한 과장법과 의인법을 사용하여 기록함으로써
시 전체를 부드럽게 해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매절마다
대구법을 사용하고 있어 외형상 조화와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본시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먼저 전반부 1, 2절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해 낸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가 매우 특수한 관계,
곧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직접적 통지의 대상이었음을 밝힌다.
이어 후반부 3-8절은 출애굽 사건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쏟아 부으신 거룩한 하나님의 사건임을 보여 준다.
특히 본문은 출애굽 사건 때 일어난 이적들을 의인법을 사용하여
각각의 장면들을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함으로써 듣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그 당시의 상황에 동참한 듯한 현장감을 갖게 함은 물론
하나님의 능력있는 행사 앞에서는 자연을 비롯한 그 누구도
겸손히 부복(俯伏)할 수밖에 없음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한편 본시의 저자가 회중들에게 출애굽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은
선민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기억케 함으로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고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출애굽 사건은 모든 성도들의 죄에서의 구속을 예표하는 사건이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십자가 구속을 통한 성도들의 구속은
출애굽 사건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고 그를 더욱 경외했듯이
우리들도 죄에서 자신들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기억함으로써
그를 찬양하고 경외하기에 힘써야 한다.(롬3:24-26; 엡1:3-4)
1절)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을 말한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출애굽은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이며,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출애굽 사건을
그들 민족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들이 이처럼 출애굽 사건을 중대한 역사적 사건으로 보는 이유는
그들이 출애굽 사건을 통해 비로소 한 민족과 나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애굽 땅에서도 애굽 사람들이 경계할 정도로 큰 민족을 이루었지만
그래봤자 애굽의 노예 민족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민족의 지도자를 들어
그들을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셨을 때
그들은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여 하나의 나라를 만들어주신 사실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이다.
하나님은 왜 보잘것없는 노예였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을까?
아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2절에서 소개된다.
2절을 보면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라고 말한다.
성소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적 처소요, 영토는 하나님의 통치가 행해지는 곳이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임재의 자리와 당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을 위해 살게하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은
그들을 당신의 백성과 제사장 나라로 삼아 당신을 위하여 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이기도 하다.
베드로는 이에 대하여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고 말씀하였다.
우리를 불러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구원과 여러 축복과 은총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그것을 향해 ‘왜?’라고 물어보라.
왜 나에게 구원을 주셨고,
왜 나에게 축복을 베푸셨고,
왜 나를 놀라운 은총 가운데 살게 하셨는가를 되짚어 보라.
그 대답은 하나님을 위해, 즉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구원의 목적, 축복의 목적,
은총의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후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