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서 잘 만든 음식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행복감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먹는사람을 그런
기분을 가지게끔 하는 것이 요리사의 본분이요 의무이다.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있듯이 깍듯이 손님을 대해야한다.
하지만 아무리 손님이라도 요리사 자신의 긍지가 꺾여서는
안되겠다. 자신의 요리를 무시했다던가 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요리사는 그 자리에서 손님을 발로 걷어차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뭐라 할 자격
은 없으며 요리사또한 손님이 그런 말이 나오지않게 더욱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세리아력 253년에 발간된 "이시대 최고의 요리사, 발칸 말론의
요리사의 길" 서장 요리사의 마음자세 14페이지에서 발최
"그래서 말이죠 손님, 이 음식은 와인과 함께 드시는게.."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술은 와인으로.."
"아니죠 아니죠, 손님. 아버지의 말은 무시하세요. 이 멧돼지
요리에는 와인같은 것 까진 필요없습니다. 그냥 맥주가 가장
잘 어울린다구요~"
하아~ 아버지도 말이야. 이런 뻔한 상술이나 쓰고. 어떻게 단순한
멧돼지 고기 볶음에 와인을 팔아먹을 생각을 하는건지. 그런거에
속는 이 손님도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뭐, 우리마을에서 유명한 해밀턴씨이니 당연한 거지만.. 저 정신을
어디 놔두고 온 것 같은 얼빵함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말을 하기시작했다. 해밀턴씨
앞에서 귓속말까지 필요하나..
"우리 사랑스런 아들아.. 니가 정말 우리 에린드 가문의 후계자라면
벌써부터 돈을 챙겨야 할 생각을 해야하는 것 아니니?"
"제 음식솜씨가 뛰어나지면 이런 상술은 필요없이 제 실력만으로
손님들을 끌어모을 수 있겠죠."
"네가 내 아들인 이상 그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음."
"아니. 제가 아버지 아들이었나요? 몰랐어요."
딱! 으음.. 아프군. 난 머리를 쥐어박히고 주방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결국 해밀턴씨에게 와인을 파는데
성공했다. 그 순산 홀안에 있던 손님들은 보이지않게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다 우리마을 사람들이라서 웃을 수 있는 것이었다.
아.. 저기 앉은 앰루자 아저씨는 키득키득 웃는거에 소질이 없어
보이는 군.. 앰루자 아저씨는 크게 웃으며 의자가 뒤로 벌러덩
넘어질 정도로 웃어 재꼈다. 아아.. 홀은 망가뜨리지 말아달라니깐..
앰루자 아저씨가 넘어지자 홀안에서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이어 바로 모든 사람들은 웃어재끼기 시작했다. 해밀턴씨는
홀안이 시끄러워지자 귀를 막았고 아버지는.. 이미 저쪽세계로
가셨군. 정겹게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물론 그에 따라 맥주의 소비량은 늘었고 난 졸지에
맥주 배달부가 되었다. 하하, 그래 이게 우리마을 분위기지..
순식간에 축제분위기로 바뀐 우리가게, 에린드의 동시는 이 작은
건물이 떠나갈 듯한 웃음소리가 가득 매꾸어 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놀라 마을 사람들 한 둘씩 점점 우리가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거.. 자칫하다간 마을 자체 축제로 바뀌어버릴 지도
모르겠군. 누가 말릴 사람 없나..
"여보! 시끄럽게 이게 무슨 짓이예욧!!"
"헛.. 부인..!"
핫, 엄마! 그래. 우리 대책없는 아버지를 말릴 사람은 엄마밖엔
없다. 제멋대로고 할줄아는 건 노는 것과 요리밖에 없는 아버지도
엄마의 말이라면 껌벅 죽었다. 약간 애처가 기질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좀 심한가? 그래도 아버지인데. 에이 상관없지 뭐.)
엄마가 나타나자 홀안은 순식간에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커다란 맥주잔에서 떨어지는 방울들이 홀안을 두드리고 있었을 뿐.
아, 저 덩치큰 아저씨들의 목에서 나는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도 있군.
우리 엄마가 마을에서 가장 무서운 아줌마라는 건 아리나한테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걸.. 어찌됐던 드디어 맥주배달
끝이로군~
"부인.. 미안해. 내가 일부러 이런 건 아니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당신은 너무 큰 죄를 저질렀어요."
아~ 아버지. 당신의 47년 인생이 여기서 끝을 맺고 마는군요.
걱정마세요. 엄마 수발은 제대로 할테니까. 장례도 멋지게
치러 드릴게요. 라고는 하지만 농담이라도 아버지가 죽는 다고
생각하는 건 안되겠지. 아버지는 엄마의 한마디에 그냥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홀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엄마
눈치를 봐가며 슬금슬금 가게를 빠져나갔다. 음.. 엄마 적당히
해요. 아버지가 아무리 시끄럽게 했고 날 홀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게 했다지만..
"내 낮잠을 방해했으니 오늘 저녁과 설거지는 당신이 해욧!"
.....가끔씩 엄마가 아버지와 똑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엄마의 엄포대로 오늘 저녁은 아버지가 만든 비프스튜가
되었다. 하지만 너무 짠걸. 아버지는 이런종류의 음식에 대해선
역시 공부를 더해야해. 아버지가 꿍시렁 꿍시렁 하며 설거지를
하고있을 때 엄마가 나를 불렀다.
"내 아들 에린드 라이. 니가 벌써 16살이구나. 그동안 세상을 살며
어두운 것에 대한 공포감 쯤을 사라졌을거라고 생각되는구나.
나이도 그쯤되면 이미 어른이나 다름이 없고."
"..그래서 뭘 시키실 생각이시죠?"
"아리나 집에가서 아주머니가 주실 과일좀 가지고 올래? 내가 가기엔
너무 늙었구나..쿨럭, 쿨럭..!"
"우리마을의 할머니들이 보시면 통곡을 할 장면이네요."
"후훗, 잘 갔다오렴~"
하아~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버지 아들인가. 엄마의 부탁은 거절할 수
없군. 뭐 이건 부탁이전에 심부름이겟지만 말이다.
아리나의 집은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않았다. 쭉가다가 한모퉁이만
돌면 나오니까. 하지만 오랜만에 밤에 가보는거였다. 물론 마을의
거리도 말이다. 요즘에는 가게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 요리연습을
하던가 가게에 계속 남아 주방을 차지하고 있는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마을의 밤거리를 돌아다는 건 오랜만이었다. 얼마전에
수도에서 온 사람들이 전봇대라는 걸 세우고 가서 그런지 그리
어둡지도 않았다. 전봇대는 길다란 나무위에 작은 틀이 있었고
그안에 라이트 마법이 영구적으로 걸려있다고 수도사람들이 마을
회관에서 말했다. 영구적이기 때문에 낮에는 거적데기 같은 것을
나무위에 덮어놔야 했다. 안덮어놔도 별 상관없을 것 같긴 하지만.
하아~ 좋구만, 밤공기란. 별도 보이고 말이야. 그리고 내 어깨위로
올려져있는 매끄런 피부의 조그마한 손.. 드허억?!!
"으아~ 깜짝이야. 뭘 그렇게 놀래니?"
"아, 아리나..?!"
그 손의 주인은 아리나였다. 이런 우연이. 아리나네 집에 가는건데
길거리에서 아리나를 만나다니.
"어디가는 길이야?"
"너네집에. 넌 어디갔다오는 길이냐?"
"난 교회에가서 정령님께 기도를 드리고 오는 길이야~ 우리집에
간다구? 같이 가면 되겠다, 꺄르륵~"
기도를 흔히 밤에 하나보지? 어찌됐던 졸지에 나는 아리나와
함께 길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밤에도 아리나 얼굴을 볼 수 있다니.
이거 심부름 나오길 잘했는걸? 아리나는 이 마을의 내또래
여자애들중에 가장 내 눈에 띄는 애였다. 그리 예쁜 것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것에 끌렸다고나 할까? 어렸을 때부터 곧잘 같이 놀았기
때문에 정이 든것도 있겟지만.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친한 친구
밖에는 감정이 안들었겠지? 아리나는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지만,
아리나에게 마음에 안드는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머리모양이었다.
양갈래로 따서 묶은 검은색 댕기머리였는데 왠지 나이에 맞지 않은 것
같아서 난 별로였다. 뭐 내가 별로라고 머리모양을 바꾸라고
말할 자격은 없지만. 어느새 우린 아리나의 집앞에 와있었다.
"엄마, 저 왔어요~"
아리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대문이 벌컥 열리며 아주머니께서
튕겨나오듯 나타났다.
"오~ 우리딸, 이제 오는 구나. 기도는 잘했고?"
"네. 아, 라이도 함께 왔어요. 집에서 심부름왔대요."
"안녕하세요."
"아, 라이 반갑구나. 어머니의 심부름이라면.. 과일이지? 내가 에린드
부인에게 과일을 준다고 해놓고 못갔거든. 그래서 널 보내셨나 보다."
결국 내가 안가도 아주머니께서 오셨을 거란 얘기잖아? 우리엄마
과일좋아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깐. 그새를 못참고..
"어서 들어오너라. 온김에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렴."
"아니 뭐.. 그러면 염치불구하고.."
"후훗.."
왜, 내 말투가 웃기냐? 뭐 아리나가 웃는 거니까 참는다. 으음.
나는 아주머니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많이 들락달락 거린
집이라서 신기한 건 없었지만 우리마을의 모든 집을 들어갈때
마다 새삼스레 느끼는 거지만 방구조가 너무나 똑같다. 마치
한사람이 지은 것 처럼. 설계자가 귀찮아서 설계도를 하나만
만들어놓고 크기만 줄였다 컸다 하면서 만들었나.. 아리나네
집은 우리집과 거의 크기가 같아서 마치 우리집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 인테이너 같은 건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안방에서 아리나의 부모님들과 차를 마시고 나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엄마가 또 왜 이렇게 늦었냐고 노발대발 하겠군.
난 아주머니께 과일을 받아들고 서둘러 대문을 열고 집을 나왔다.
그때 뒤에서 아리나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핫, 무슨
일이지?
"아리나, 나 불렀어?"
"응. 하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뭔데?"
"네.. 꿈이 뭐야?"
음? 왜 갑자기 꿈 같은 걸 물어보는 거지? 하지만 왠지 아리나의
얼굴이 아까와는 달리 진지해 졌다. 무슨 일이 있나? 난 처음
음식을 만들고 그것의 존재를 알았을 때 부터 변하지 않은 단
하나의 꿈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