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안수산 여사
수잔 안 커디(이하 안수산)는 1915년 1월 16일 미국 LA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부인 이해련 여사의 큰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활기찬 안수산은 축구, 하키, 야구 등 여러 스포츠 분야에 능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애국활동과 가르침을 접하며 자란 안수산은 중학교 시절부터 학생회장을 지내는 등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자랑스러운 큰 딸로 무럭무럭 성장했습니다.
그 당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미국과 한국, 중국을 오가며 부지런히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는데요. 그 과정에서 다섯 번에 걸친 옥살이를 했고, 결국 1938년 경성대학교 병원에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미 해군에 자원 입대하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안수산은 일본인들에 대한 깊은 증오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선 자신이 미군에 입대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안수산은 미 해군에 자원입대해 장교시험을 봤지만, 동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장교시험에 낙방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했고, 결국 재도전 끝에 장교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미 해군 역사상 최초의 여성장교이자 첫 여성 기관총 사격수 훈련 교관이 된 것이죠. 미 해군에서 포격술로 특수교육을 받은 안수산은 미국, 영국 장교들에게 적의 비행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기관총을 긍지와 보람을 가지고 열심히 훈련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미국, 영국 장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자신의 명령을 무시하는 백인 부하는 기본이고, 미국 군복을 입고 다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미 해군에서 해군정보국으로 부서를 옮겼을 때에도 아시안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6개월 동안 암호해독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의 굴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안수산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6개월 동안 암호해독 업무에서 배제되었지만, 그 이후에는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암호 해독가로 크게 활동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NSA(국가안보국)의 비밀정보 분석요원이 되어 300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위치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 LA카운티에서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15년 3월 10일 안수산의 날 선포
2015년도 6월 25일 별세하였으나 얼마전 타임지 선정 이름없는 여성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타임지는 그녀를 ‘신뢰할 수 있는 용감한 장교이자, 늘 인종차별을 겪었음에도 미국을 위해 봉사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한 세대를 대표한 인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은퇴를 한 그녀는 미국의 한인사회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특히 2006년 미국 전역에서 아시아인들의 인권과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아시안 아메리칸 저스티스 센터’가 수여하는 ‘제 10회 미국 용기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도산 안창호
어머니 이혜련 여사
"훌륭한 미국인이 되어라. 그러나 한국인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된다."
11살의 나이에 생이별 해야했던 아버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마지막 당부를 끊임없이 마음속에 되새기며 살아왔던 수잔 안 커디 여사.
남편 프랭크 커디
오른쪽이 오빠이자 헐리웃의 독보적인 동양인 배우 필립 안
수잔 안 커디(1915.6.15 ~ 2015. 6.25)
그녀의 용기와 삶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유산 중 하나이다.
첫댓글 우리가 대체 어떤 부분을 본받아야 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선진국> 또는 <강대국>에서 한국계 이민자들이 성공해 그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 마치 국위선양이라도 된 양 으쓱해대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런 사건들은 그냥 외국인(한국계 외국인이라도 외국인은 외국인입니다)이 자기 조국에서 잘 성공했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한국과는 사실 딱히 별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성공한 베트남계가 늘어났다고 한들, 그게 베트남이라는 국가의 국위선양이 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죠.)
본문 주인공이 말하는 "한인 후세들에게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라는 말도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 2~3세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지, 한반도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미국에 소수민족으로 사는 한인 후세들에게 소수민족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미국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라는 말이지요. 수잔 안 커디는 미국인이고, 그녀에게 조국은 미국입니다.
이 이야기로 감명받아야 할 사람은 우리(한국인들)가 아니라 미주의 한인교포들입니다.
현자의 밀씀. 깊이 느끼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