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에서 아침을
원제 : Breakfast at Tiffany's
1961년 미국영화
감독 : 블레이크 에드워즈
음악 : 헨리 맨시니
원작 : 트루먼 카포트
출연 : 오드리 헵번, 조지 페퍼드, 패트리샤 닐
미키 루니, 마틴 발삼, 버디 엡슨
호세 루이스 드 빌라롱가, 존 맥가이버, 도로시 위트니
알란 리드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파계' '어두워질때까지'와 함께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30대로 접어든 오드리 헵번이 연기에 눈을 더 떠가는 작품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1953년 '로마의 휴일'로 혜성처럼 떠오른 오드리 헵번은 이 한편으로 일약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후 맡은 역할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늘 로맨틱 코미디 같은 청순하고 발랄한 여주인공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건 동시대 큰 인기를 얻은 다른 여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소피아 로렌 등과 비교할 때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1959년 '파계'에서야 오드리 헵번은 비로소 기존의 틀에 박힌 캐릭터에서 벗어난 진지하고 내면적인 명연기를 보여주며 한 단계 진화했습니다.
1961년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오드리 헵번이 기존 영화에서 많이 해오던 로맨스 요정 역할이긴 했지만 좀 더 진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예쁘고 날씬하고 사랑스러운 젊은 여성이었지만 뉴욕의 천박한 창부 같은 역할이었고, 특유의 청순미 보다는 퇴폐미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진짜 퇴폐적 분위기가 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려는 안스러운 여자 느낌이었고, 그런 역할에 딱 어울렸습니다. 실제 오드리 헵번이 리타 헤이워스나 킴 노박처럼 관능미가 철철 넘치는 요부같은 분위기였다면 미스 캐스팅이 되었을 겁니다. 즉 '로마의 휴일' 이후 정말 잘 어울리는 역할을 제대로 한 영화였고, 30대에 접어든 60년대의 오드리 헵번이라는 배우에게 더 깊이있고 다양한 연기가 향후 기대되게 만든 영화였습니다.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홀리라는 여자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특정 직업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여성이 아니라 마약 조직단에게 이용당하는 철부지 한량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조직의 누군가가 마련해준 제법 넓은 아파트에서 고양이와 단 둘이 살며 일주일에 한 번 싱싱감옥이라는데 가서 마피아 출신이라는 누군가를 면회해주고 그가 말하는 일기 예보 같은 것을 받아오면 50달러씩 받고 있습니다. O. J. 버먼(마틴 발삼) 이라는 중년 남자가 일종의 후견인 같은 역할을 하고 홀리는 자신이 누구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른 채 그냥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돈을 받습니다. 언젠가 돈을 많이 모아서 군에 가 있는 동생 프레드와 함께 멋지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지요. 티파니 같은 고급 보석상에서 보석을 고르고 아침을 먹는 꿈을 꾸며.
홀리가 사는 아파트의 바로 위층에는 폴 바작(조지 페퍼드) 이라는 젊은 남자가 이사를 새로 옵니다. 폴은 작가지만 아직 무명이고 단편집을 낸 이래 5년 간 새 작품을 출간하지 못한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 아파트는 폴을 내연남으로 데리고 노는 어느 귀부인(패트리샤 닐)이 마련해 준 밀회 장소로 수십벌의 양복과 세간도 그 2E 라는 가명을 쓰는 귀부인이 사준 것입니다. 즉 폴의 아파트는 2E 라는 여성이 돈 많은 남편을 피해 밀회를 즐기는 장소인 것입니다.
폴은 이사 오는 첫 날 자신의 그런 행적을 홀리에게 고스란히 드러내게 되고 홀리 역시 놀아났던 남자에게 쫓겨 비상 계단으로 폴의 방에 침입해 잠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홀리의 한심한 처지 역시 폴에게 드러나게 됩니다. 즉 둘은 같은 처지였죠. 다른 돈 많은 사람들에게 기생해서 그들이 던져주는 푼돈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는 처지. 다만 폴은 작가로서 성공할 꿈을 갖고 있지만 홀리는 그냥 돈 많은 남자 누구라도 잡아서 팔자를 고치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요.
영화 시작부터 다 알 수 있듯이 이렇듯 막막한 신세의 젊은 두 남녀가 만나서 결국 사랑을 하게 된다는 뻔한 로맨스 이야기인 것은 다를 게 없습니다. 다만 상황 설정과 대사 만으로 이끌고 가는 단순한 내용을 1시간 55분 동안 아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로 깔끔하게 이끌어 갑니다. 잘못 만들면 굉장히 식상하고 지루할 수 있는 영화임에도 적절한 속도와 깔끔한 각본, 두 남녀 주인공을 비롯한 조연, 단역까지 캐스팅이 적절하여 굉장히 잘 만든 영화가 되었습니다. 미키 루크가 연기한 이웃집 우스꽝스런 일본 남자, 밀회를 즐기는 귀부인 역의 패트리샤 닐, 조직의 일처리를 담당하는 마틴 발삼, 홀리의 전 남편이자 농장을 운영하는 수의사 역의 버디 엡슨, 브라질 부호라는 호세 루이스 드 빌라롱가, 심지어 친절한 티파니 보석상 직원인 존 맥가이버까지.... 각 씬마다 적절한 분량과 적절한 등장인물, 적절한 대사와 상황편집을 통해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흐르게 합니다. 지나친 과잉도 지나친 늘어짐도 없는, 각본, 편집, 연출, 음악, 배경설정 등이 다 탁월한 영화지요. (물론 패트리샤 닐의 이 정도의 활용은 다소 낭비된 느낌이긴 하지만)
중간중간 홀리와 폴 사이에 주고 받는 뼈 때리는 대사가 의미 깊고 둘은 가끔 서로의 자존심을 긁는 결정적 말을 뱉기도 하고 상대의 약점을 이해해주기도 하면서 자연스레 로맨스가 익어갑니다. 그리고 가장 관객이 바라는 방향의 결말로 귀결되지요. 폴은 2E와 결별하고 작가로서 성공적 삶을 기대할 수 있게 되고, 홀리는 그런 한심한 삶을 청산하고 헛된 허영과 꿈도 포기하고 폴과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물론 이런 결말은 천천히 진행되기보다 순식간의 사건에 의해 전환되지요.
헨리 맨시니의 주제곡 Moon River 는 너무 유명한 영화음악이 되었고, 영화 중간에 오드리 헵번이 기타를 치고 직접 부릅니다. 짧은 장면이지만 이 장면에서의 오드리 헵번의 모습이 사랑스럽죠. 조지 페퍼드는 그 전까지는 주로 TV로 먼저 활동하고 영화에도 몇 편 출연했지만 그리 유명하진 않다가 이 영화로 일약 유명세를 얻었고 다음 해 쟁쟁한 대배우들이 대거 등장한 '서부 개적사'에서 가장 비중있는 역할을 맡게 되면서 60년대 전성기를 누립니다.
뉴욕에서 다소 막막한 무일푼의 두 남녀가 만나서 같은 공간에 기거하면서 사랑이 싹튼다는 내용은 이 영화보다 1년 전에 만들어진 토니 커티스와 데비 레이놀즈 주연의 '인생의 조건'과 많이 유사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인생의 조건'이 한 집에서 침대만 달리 쓴 것이었고 '티파니...'는 층이 다른 아파트에서 함께 알고 지내는 관계라는 점이죠. 그리고 바로 1년 뒤 영국에서 나온 영화 'L자 모양의 방' 역시 같은 지붕아래 층이 다른 공간에서 사는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지요. 세 영화 모두 형편이 어려운 남녀가 서로 이해하면서 사랑하는 내용입니다. 물론 '인생의 조건'과 'L자 모양의 방'은 매우 현실적인 영화였고,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훨씬 낭만적인 영화였지요. 세 편 모두 데이 레이놀즈, 오드리 헵번, 레슬리 캐론 이라는 재능있는 여배우의 연기력이 최고로 빛난 작품들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사실상 젊은 몸뚱아리를 팔아서 근근이 삶을 영위해가는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서 그런 삶을 청산하자는 희망적 미래의 엔딩으로 끝난 영화지요. 낭만적이고 세련되고 밝고 재미난 영화입니다. 뉴욕 이라는 거대도시에서 겉보기에는 좋은 옷을 입고 잘 생긴 외모로 어슬렁대는 두 남녀지만 실상은 미래가 불투명한 한심한 인생이라는 대도시의 이면도 느껴지게 하는 영화입니다.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출세작이고 그는 이 영화 직후에 '술과 장미의 나날' '핑크 팬더' '그레이트 레이스' '밀애' 등 괜찮은 영화들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유명감독의 위치에 오릅니다. 헨리 맨시니는 영화음악의 거장이 되고. 출연자와 스탭진 모두에게 크게 도움이 된 영화입니다.
ps1 : 여러 인상적 대사가 나오지만 2E와 폴이 헤어지면서 주고 받는 대사가 특히 인상깊습니다. 폴이 새로 여자가 생겼다고 하자 2E가 '아마 돈 많고 너를 잘 돌와줄 여자겠지?' 라고 묻자 폴은 '그녀는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여자에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에서 돌봄에 의존하고 살아온 폴이 오히려 자신이 누군가를 돌봐줘야 하는 상황을 접하고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자부심과 기쁨을 느끼는 심리가 전적으로 공감이 갑니다.
ps2 :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좀 더 제대로 볼 수 있었는데 오드리 헵번의 연기 하나하나가 재미나더군요. 특히 먀악밀매 공범으로 체포되어 사진을 찍히는 장면에서 오히려 과장된 몸집을 하며 포즈를 취하는 듯한 모습도 재미나고.
ps3 : 오프닝 장면에서 혼자 큰 상점 건물 밖에서 아이쇼핑을 하는 장면을 수많은 구경꾼들이 지켜봐서 오드리 헵번이 긴장해서 실수를 여러 번 했다고 합니다. 아주 쉬운 장면 같아도 영화에서 사소한 한 컷이 나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알 수 있죠.
ps4 : 원작자 트루먼 카포트는 원래 마릴린 먼로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ps5 : 주제곡 '문 리버'는 아주 유명한 곡이 되었지만 음역대가 크게 높낮이가 없는 곡인데 오드리 헵번이 전문 가수가 아니라서 헨리 맨시니가 특별히 그녀를 위해서 그렇게 작곡했다고 합니다. '고음불가' 라도 걱정없이 부를 수 있는 곡이죠. 그리고 그 유명한 장면이 하마터면 삭제될 뻔 했다고 하죠. 오드리 헵번이 결사반대해서 편집이 안되었지만.
ps6 : 토니 커니스가 이 역을 매우 탐냈다고 하는데 제법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조지 페퍼드는 너무 진지한 느낌이었는데 토니 커니스라면 오드리 헵번의 발랄함에 걸맞는 꽤 활달한 분위기를 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의 조건'을 생각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지요. 당시 오드리 헵번의 남편 멜 페러가 반대했다고 하지요.
[출처] 티파니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Tiffany's, 61년)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