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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그가 출근하고 나서부터 그녀는 소파에 앉아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주머니와 한율이는
그녀가 없어도 될 만큼 자연스럽게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우울해졌다.
뭔가 단 게 먹고 싶어졌지만 그녀는 그것보다 속이 좀 울렁거리는 듯 한 기분도 들어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구토를 하고 세면대에서 입 안을 헹구던 그녀가 물을 끄고 욕실을 살펴보았다.
“뭔가 허전한데..”
그녀는 넓은 욕실을 바라보다가 욕조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른은 그렇다 쳐도 그럼 한율이도 서서 씻나..?”
노크소리가 들리고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모님.. 안에 계세요?”
“네..”
그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혹시 쓰러지실지도 모른다고 사장님이 말씀하셔서요. 귀찮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속이 울렁거려서 조금 토했어요.”
“그러셨어요? 아침으로 늘 드시던 거 준비했어요.”
“네.”
잠시 후 그녀는 초록색 주스와 과일, 훈제연어가 담긴 접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에 이렇게.. 먹었어요?”
아주머니가 당황하시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제 장 봐와서 신선한 재료들인데.. 마음에 안 드시면 지금 바로 가서 다시 장을 봐 올까요?”
그녀는 우울해졌다. 포크를 내려놓고 뭘 갈았는지 모르는 걸죽한 초록색 액체가 담긴 유리컵을 지나 물컵을 잡아 물을 마셨다.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사과하는 나이 많으신 아주머니를 바라보자 더욱 우울해졌다.
“아주머니..”
“네, 사모님..”
“저는.. 이상한 사람이네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제가.. 이상해요. 사고도 어떻게 났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어제 오늘.. 저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겁이 나요. 내가 아닌 것 같아.. 두려워요..”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네, 사모님..”
“죄송하다는 말씀.. 그만 하세요..”
“네. 사모님..”
“식욕이 없어서 아침은 안 먹을게요.”
“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기들을 정리하려고 하자 아주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막았다.
“제가.. 제가 할게요. 쉬세요.”
“그럼.. 부탁드려요.”
그녀는 힘없이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녀는 몸에 이상을 느끼고 화장실로 갔다. 월경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급히 방으로 들어와 서랍들을 열며 생리대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
아래층에 내려간 그녀가 아주머니를 부르고 설명을 하자 아주머니가 그녀의 화장실 서랍장에서 탐폰 생리대를 찾아주었다.
“이건 어떻게..”
“사용법은 여기에 있어요. 그럼..”
그녀는 사용법을 보다가 눈이 커졌다. 그녀가 다시 아주머니를 불렀다.
“저기.. 죄송한데요.. 평범한.. 것 좀 사다주실 수 있으세요?”
“평범한 거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사다주신 것으로 곤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며칠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적응하지 못한 환경에서 몸까지
상태가 안 좋으니 그녀의 눈 아래 다크서클이 짙어졌다. 그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녀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차갑고 험악한 표정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셨어요..?”
“참 가지가지 한다.. 시위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야? 당신 머릿속에 무슨 생각으로 가득한지 정말 궁금해. 식사는 왜 안 해?”
“입맛이 없어서요..”
“그러시겠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병이 나는 사람이니까.. 정말.. 이번 연기는 상 받을만큼 훌륭해..”
그녀가 그를 노려보았지만 힘이 없어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내일도 이렇게 생떼를 쓰면 병원에 입원시킬거야.”
“내일이면 저도 괜찮아 지거든요?”
“두고 보도록 하지.”
그가 몸을 돌려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녀는 한 숨을 내쉬며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다시 눈물이 흘렀다.
“혹시.. 죽고 싶었을까? 그래서 가로수를 들이받았나? 저런 대접을 받고 살았으면 충분히 그럴만 한데.. 그래도 한율이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은 안 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상하다..”
그녀가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소리를 죽이며 흐느꼈다.
문 밖에서 그녀의 흐느낌을 들은 그가 고개를 저었다.
“집안이 떠나가게 울더니 우는 방법도 바꿨나? 질린다.. 정말..”
그는 아래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
지난 며칠 동안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집안 살림에 조금 익숙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냉장고도
찾지 못해서 벽을 한동안 노려보고 있어야했다. 입고 잘 옷을 찾는데도 한 참이 걸렸다.
잠옷으로 보이는 얇은 실크 란제리를 입고 잠을 청해보았지만 결국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운동할 때 입는 옷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옷이 제일 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잠자기 전에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뭔가를 마시고 있는 서완이 입에 있는 걸 뿜었다.
“운동가나?”
“설마요.”
그녀는 쌀쌀맞게 말하고 벽을 손으로 살짝 누르고 물을 꺼내 컵에 따르고 물을 다시 넣고 홈바 문을 닫았다.
“그 옷은 왜 입었나?”
“잠옷이 마땅한 게 없어서요.”
“풉..”
그가 다시 뭔가를 뿜으려다 멈추었다.
“그래서 그걸 입고 잔다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을 마신 컵을 싱크대에서 손으로 씻어 선반에 올려놓았다.
“모자티를 입고 잔다고? 불편해서 못 잘 텐데.. 당신은 거의 벗고 자는 타입이라고..”
그녀는 그의 노골적인 말에 창피함을 느끼며 귀까지 붉어지는 걸 느꼈다. 그를 흘겨보며 대답했다.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나서는 벗고는 못자는 타입으로 변했나보네요.”
“모자는 어떻게 하고 잘 건데?”
그녀는 그를 지나치며 모자티를 머리에 둘러썼다. 그리고 끈을 조여 턱 아래에 묶고는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말하고는 1층 한율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 숨을 내쉬고는 남은 커피를 마시려다가 싱크대에 버리고 그대로 놓고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올라가는 소리를 들은 그녀는 자고 있는 한율이의 머리를 한 참을 쓸어주고,
손을 잡고 이마에 입을 맞추고 조그맣게 한 숨을 내쉬고 이불을 잘 덮어주고
다시 한 번 뽀뽀를 해 주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
밤새 커다란 침대에서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 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벌써 아주머니가 와 계셨다.
“일찍 오셨네요. 힘들지 않으세요?”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커피 드릴까요?” 라고 말했다.
“제가 할게요.”
“그럼 커피 꺼내 드릴게요.”
“네.”
커피를 내리자 집 안에 향기 좋은 커피 향기가 가득했다.
“저기.. 아주머니..”
아침을 준비하시던 아주머니가 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사모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지금요?”
아주머니가 시계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바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
“그럼 이따 한율이 유치원 가고 나서 이야기 하실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불안해하는 아주머니의 시선을 바라보며 그녀는 한 숨을 내쉬었다.
“저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네?”
놀란 표정으로 아주머니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은.. 사람은.. 아니었나봐요..”
“아니에요. 좋은 분이셨어요.”
“생각이 날 줄 알았는데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그런데 며칠 있어보니.. 남편이라는 사람은 쌀쌀맞고, 한율이는 먼저 다가와 안기지도 않고, 아주머니는.. 불안해 하시네요.”
“사모님..”
“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사모님..”
“아침부터 아주머니께 뭐하는 거야?”
뒤를 돌아보니 서완이 불쾌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머니.. 한율이 일어났나 봐주시겠어요?”
“네.”
아주머니가 눈치를 보며 한율이 방으로 들어가고 아주머니를 부드럽게 바라보던 그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할 일이 없어서 아주머니를 괴롭히고 있는건가?”
“괴롭히다니.. 그냥 물어본 거예요.”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내.”
“네?”
“한실장이 데리러 올 거야. 7시까지 준비하고 기다려. 엄한 사람들 괴롭히지 말고.. 저녁 같이 먹자구. 당신 기분 풀어줄 테니까.”
“당신이랑 같이 저녁을 먹는다고 기분이 나아질 것 같지 않은데요?”
“흥.. 두고 봐. 오늘 저녁 이후로 당신 기억상실증은 싹 없어 질 테니까.”
그가 커피 한 잔을 마시고는 가방을 들었다.
“아침은요?”
“기억이 안 나시나본데요.. 안 먹어. 원래..”
그가 몸을 돌려 현관으로 나가기 전에 막 방에서 나온 한율이를 안고 볼에 입을 맞추고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아주머니에게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다녀올게라는 말이나 따뜻한 미소따위
그녀에게 보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 나는 그런 여자인가..’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이가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잘 잤어? 좋은 꿈 꿨어?”
“네.”
“무슨 꿈 꿨어?”
“네?”
당황하는 아이가 아주머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가슴이 아파왔다.
‘아이와 일상적인 대화조차 한 적이 없었나..?’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한율이에게 말했다.
“아침 먹자.”
“네.”
그녀는 커피만 마시고 아이가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는 조금 흘리거나 서툴게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흠칫 놀라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 씻고 올게. 천천히 먹어.”
그녀는 자신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아이가 편하게 아침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멀어질수록 아이는 아주머니와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녀는 다시 가슴이 아파왔다. 한율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돌아온 아주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주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모님..”
“아주머니..”
두 사람은 잠시 후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머니는 당황한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뭔가 결심을 한 듯 그녀가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주머니를 통해 들은 바로는 그녀는
집안 인터리어를 한 달에 한 번 꼴로 바꾸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3년 전에 남편과 심하게 다툰 후로는
남편 방은 건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매일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손톱손질을 한다고 했고,
명품 전시장이나 진품 명화 전시회, 패션쇼에 자주 간다고 했다. 남편과는 대외적으로 사이좋은 부부로
보여지지만 집에서는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율이에게 엄격한 엄마라고 했다.
6살 아이가 영어유치원이 끝나면 따로 미술, 음악 학원에도 간다고 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머리가 아파왔다.
“죄송해요, 사모님.. 제가 괜한 이야기를.. 저를 해고하신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궁금해서 물어 본 걸 대답해주셨다고 그럴 순 없죠.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은.. 고통스럽네요.”
“정말 전혀 기억이 안 나세요?”
“네. 심지어 제가.. 아닌 것 같아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셨다.
“결혼한 적도 없고, 아이를 낳은 적도 없는 기분이에요. 이렇게 화려한 삶과는 전혀 상관없이 평범하게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하얀 백지인 머릿속이.. 두려워요.”
“사고 나시고 조금 달라지셨어요. 아니.. 많이요.”
“그래요?”
“네.”
“더 나빠졌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의 사모님이 좋아요. 며칠 안 뵈었지만 지금이 좋아요.”
그녀가 고개를 들어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도와주실 게 있어요.”
“뭔데요?”
잠시 후 그녀는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손끝에 아세톤을 들이부었다. 손톱부터 정리를 하고 싶었다.
“손이 상하실텐데 그냥 샵에 가셔서 하시죠.”
“방 서랍안에서 정리가 안 되어 있는 영수증을 봤거든요. 어마어마 하더라고요. 이런 건 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요.”
“메니큐어 안 하시면 싫어하셨는데..”
“혹시 이 일로 한율이한테 화를 낸 적이 있나요?”
“...”
아주머니가 말씀을 못하시고 고개를 숙이셨다.
“왜요..?”
아주머니가 결심을 하셨는지 고개를 들고 대답하셨다.
“오늘은 해고를 당하더라도 솔직히 말씀 드릴게요.”
“솔직히 말씀하셔도 해고 하지 않아요..”
“한율이가 손톱에 붙은 스톤을 조금 상하게 한 적이 있어요. 사모님이..”
그녀가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사모님이 화를 내시면서 한율이 뺨을..”
그녀는 아주머니의 말에 몸을 움찔거렸다.
“아이에게.. 손을 댔다고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손톱깎기 좀 갖다 주세요.”
“사모님..”
“손톱이 뭐라고.. 자르면 계속 자라는 것을..”
그녀는 메니큐어가 깨끗하게 지워진 손톱을 손톱깎기로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손끝이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아주머니가 손에 크림을 발라주셨다.
“간지럽기는 한데요. 기분은 좋네요. 엄마 같아서..”
“사모님..”
“저의 가족은.. 어떻게 돼요?”
“그건 저도 잘.. 한 번도 뵌 적이 없어요.”
“그래요? 연락이나.. 없었어요?”
“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에 외출할 것 같아요.”
“네. 알고 있습니다.”
“뭘 입고 나가지..”
그녀는 자신의 부담스러운 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었다. 하나같이 화려한 옷들뿐이었다.
“한율이랑 함께 나가죠?”
“아니요. 한율이는 저랑 함께 있을 겁니다.”
“퇴근하셔야죠..”
“....”
“아주머니 가족은 어떻게 되세요?”
“아들이랑 둘이 살아요.”
“몇 살이에요? 학생이죠?”
“네.. 고등학생이에요.”
“아주머니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은시간까지 일하시는 걸 알면 속상하겠네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숙이시고 다시 들으셨을 땐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주머니..”
“병원에 있어요..”
“다쳤어요?”
“지병이 있는데.. 다시 안 좋아져서..”
“그럼 아드님은 누가 돌봐줘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으셨다.
“왜 말씀.. 혹시 말씀하신적 있으세요?”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일주일에 세 번만 와도 되냐고..”
“그랬더니.. 뭐래요? 제가 뭐라고 했어요?”
“그만 두라고..”
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어 입술을 만졌다. 도무지 감당이 안 되는 삶이었다.
“차라리 그만 두시고 다른 좋은 집으로 가시는 편이 낫지 않으실까요? 제가 성격이..”
“한율이가 잘 따르기도 하고, 사장님이 대신 제 아들 병원비를 내주세요.”
“그건.. 제가 남편과 상의를 해 볼게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오늘은 남편과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죄송해요. 오늘만 한율이 부탁 좀 드릴게요.”
“네. 걱정 마세요.”
“죄송합니다..”
아주머니가 따뜻한 눈으로 미소를 지으셨다.
“그럼.. 입고 갈 만한 옷을 골라 볼까요..”
“네, 사모님..”
옷은 그런대로 점잖은 옷으로 선택을 했다. 아주머니에게 이끌러 들어간 방은 온통 신발로 가득했다.
“이건 또.. 뭐예요?”
“사모님이 아끼시는 구두들이에요.”
“미쳤구나..”
“네?”
“아.. 아니에요.. 다 높은 굽들이라서.. 편한 게 없네요..”
“사장님이 키가 크시잖아요. 낮은 굽을 신으시면 키가 작아보이신다고.. 10cm 미만을 안 신으세요.”
“10cm 신어도 작더만 뭘..”
아주머니가 피식 웃으셨다.
“왜요?”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 하듯 하셔서..”
“저도 적응이 안 되네요. 아.. 그래도 이건 좀 편해 보이네요. 머리랑 화장은 어떻게 할까요?”
“보통은 미용실에 전화하면 사람이 와요.”
“그러기도 해요?”
“네. 전화 넣을까요?”
“네.. 일단은.. 후우..”
잠시 후 미용실에서 사람이 나왔다.
“화장은 자연스럽게 해 주세요. 속눈썹 안 붙여요. 기초만 해 주시고 색조는 빼 주세요. 머리는 최대한 심플하게 해주세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사진들이 있을까요?”
미용실에서 온 사람이 건넨 사진첩에서 그녀는 헤어스타일을 골랐다.
****
“그럼. 다녀 올께요. 한율아.. 올 때 뭐 사 올까?”
“네?”
“먹고 싶은 거 사 올게.”
“하지만 밤 늦게 먹으면..”
“앞으로 그런 일로는 안 혼내. 뭐 먹을래?”
“아이스크림..”
“알았어. 무슨 맛?”
“딸기맛이요.”
“아주머니랑 좋은 시간 보내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그럼.. 부탁드려요.”
“네. 사모님. 좋은 시간 보내고 오세요.”
“엄마. 다녀오세요.”
두 사람에게 미소로 인사를 하고 발목에 힘을 꽉 주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오르기 전에 한실장에게 미소로 인사를 했다. 그도 예의바른 모습으로 인사를 하고 그녀가
차에 오르자 문을 조용히 닫고 앞 운전석에 올랐다.
“약속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
“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
서완은 그녀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 밖으로 커다란 연못으로 나가는 나무다리 건너에
테이블을 놓고 하얀 천으로 햇살가리개를 했다.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고 어둠이 싸인 그 곳은
촛불과 전등으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나고 있었다. 전혀 자신의 취향이 아닌지라 그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최대한 물가에서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긴장을 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뭔 짓이냐..”
하지만 사고 이후 이상하게 행동하는 그녀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라면 그는 이쯤은
감수할 수 있었다. 불과 일주일정도 지냈을 뿐인데 그녀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하기엔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일단 연기를 하면 그에게 원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내색이 없었다.
아주머니와도 잘 지내려고 하는 듯 보였고, 한율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여우.. 그것도 보통 여우가 아니지.. 이게 다 결혼기념일을 그냥 지나가서 생긴 사단이니까 뭐..
이 정도 분위기에 좋아하는 거 하나 안겨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겠지. 그 편이 서로에게 좋아..
착한여자인척 하는 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얼른 끝내고 가자.. 얼른..”
그가 옆에 놓인 커다란 상자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가 나타날 곳을 바라보았다.
“도착했습니다.”
한실장이 문을 열어주자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저.. 혼자 들어가요?”
“네. 사장님이 차를 갖고 오셨을 겁니다. 그 차로 댁까지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네. 그럼 수고하셨어요.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네.”
그녀가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야 한실장이 탄 차가 출발했다.
문이 열린 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구두 굽 소리만 정적을 깼다.
그녀는 마른 침을 삼키며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안내하는 뒷문으로 나갔다.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 이건 동화속에서나 나옴직한 곳이었다. 레스토랑 뒤편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고 그 곳으로 향하는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 길을 따라가면 커다란 장소가 있는데
그 곳에 특별히 마련된 것 같은 하얀 천과 주황색 전등과 촛불과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녀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그녀를 본 서완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재킷을 만지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눈으로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에는 어떠한 따뜻한 감정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느끼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의 미간에 주름은 더욱 많아지고 깊어졌다.
“이건.. 뭐예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도대체 그 차림은 뭐지?”
그가 그녀가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빼주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려갔다가 다시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약간의.. 변화가 필요했어요. 변화가 마음에 안 드시나봐요.”
“응. 마음에 안 들어.”
그녀는 직절적인 그의 표현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그가 의자를 빼준 옆 의자 등받이를
손으로 잡아 당겨 그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신의 호의를 거절한 그녀를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며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 옆에 앉아 그녀와 마주볼 수 있게 했다.
“뭐하는 짓이지?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서 직원이 와서 테이블 세팅 다시 해야 하잖아.”
그가 손을 들자 직원이 다가왔다.
“이것만 가져오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접시와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 컵을 옮기자
직원이 당황해하며 그녀와 서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손짓을 하자
직원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피했다.
“후우...”
그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지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체면이 있지.. 지금 뭐하는 거야?”
“왜요.. 옮겨드려요? 그러게 뭐 이런 일에 사람을 불러요? 손이 없나? 내가 하면 되지..”
그녀가 걸음을 옮겨 그의 테이블 세팅을 다시 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아 물을 마셨다.
그는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고개를 돌려 잔잔히 흐르는 연못을 바라보았다.
저 연못에 눈앞에서 태연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고 있는 여자를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런 서비스까지 해 주는 댓가까지 지불하는 거야.”
“드라마나 영화 좋아해요? 그것도 여자들이 주로 보는 로맨틱한 거?”
“뭐?”
“아니.. 닭살스럽게 이게 무슨.. 천녀유혼같아요. 하얀 천은 뭐야..”
그녀가 손을 들어 입술을 매만지며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천녀유혼..”
그가 한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영화를 알아?”
“아.. 그렇네요. 그 영화를 어떻게 알지? 봤나? 봤으니까 알겠죠..?”
“당신이 좋아했었어.”
“장국영을요?”
“아니. 왕조현. 당신 배우였을 때 비슷한 이미지이기도 했고..”
“음.. 안 닮은 것 같은데..”
“그야 고쳤으니까 그렇지.”
“고.. 고쳤어요?”
그녀가 놀란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그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디를요?”
“뭐.. 전반적으로..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식사부터 할래? 아니면 선물부터 줄까.”
“선물이요?”
그가 한 쪽 입 꼬리만 올리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구부려 옆에 놓인 상자를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뭐에요?”
“뭐긴..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아가지.”
“아가..요? 아이가 여기 들어있다고요?”
“재미없으니까 순진한 척 그만 하고.. 풀어 봐. 방금 프랑스에서 온 따끈따끈한 아이야.”
그녀는 상자를 풀어보았다. 그 안에는 엄청 화려한 구두가 들어있었다. 꺼내보니 굽이 15cm는 족히 넘어 보였다.
“히익!”
그녀의 반응을 바라본 그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
“어머~. 고마워, 자기야~.” 까지는 아니더라도 행복하고 만족스런 매력적인 미소를 보내줄 줄 알았는데
그녀는 온갖 인상을 찡그리며 처치 곤란 물건이라도 되는 양 구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 아래에서 손을 꼼지락 거렸다.
“이 아이가 아니었나? 그래서 그래?”
“혹시 지난번에 병원에서 말한 크리스챤 뭐냐.. 그게 이거 예요? 500만원이 넘는다는?”
“맞아. 크리스챤 루부탱. 그 새 좀 올랐나 600에 샀어.”
“그런데요..”
“응?”
“왜 구두를 자꾸 아가라고 불러요?”
그가 눈에 힘을 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구두를 왜 아가라고 하냐고요.. 구두는 구두지..”
그가 콧방귀를 끼며 몸을 뒤로 기대었다.
“내가 아나? 당신이 알지. 당신이 그렇게 부르잖아. 우리 아가들.. 한율이한테는 한 번도 우리 아가라고 불러주지 않은 당신이 말이지..”
그의 독설에 그녀는 움찔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고, 당신이 좋아하는 장식으로 꾸몄고,
당신이 좋아하는 프랑스 직 수입 구두까지 안겼어. 뭐가 더 필요해? 도대체 언제까지
기억상실증 놀이 할 거냐고! 나 바빠. 당신한테 신경 쓸 시간이 없단 말이야. 제발.. 그만 하지?
집을 인테리어 한다고 홀딱 뒤집어도 좋고, 당신 좋아하는 알 수 없는 그림들을 사도 좋아.
당신이 언제 하고 싶은 거 참고 산 사람이야?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 사람들을 왜 힘들게 하나?
관심 받고 싶어?”
그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고, 바늘이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쿡쿡 아프게 찔러댔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저기요..”
“그렇게 부르지도 마. 당신이 언제 나를 그렇게 부른 적 있나?”
“나랑.. 왜 결혼했어요?”
그가 고개를 돌리며 턱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러는 거지? 그럼 버려. 당신 그런 거 잘 하잖아. 싫증나면 버리는 거..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가 성큼 성큼 다가와 구두가 들어 있는 상자를 연못에 던졌다. 그녀는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팔을 잡았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왜.. 아까워? 그럼 가서 다시 주워 오던가..”
그가 신경질적으로 그녀의 손에서 자신의 팔을 빼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연못에 떠 있는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구두를 벗고 다리 끝으로 가서 발끝을 물에 담갔다가 뺐다. 견딜만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못안에 뛰어들었다. 첨벙거리는 소리에 걸음을 멈춘 서완이 빳빳하게 굳은 몸을 돌려
경악스러운 장면을 바라보았다. 입이 벌어졌다.
“저 여자가..”
그녀는 힘겹게 한 걸음 할 걸음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무엇에 발이 걸렸는지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멈춤도 잠시 다시 걸음을 옮겨 상자를 품에 안고 다시 돌아 왔다. 거기까지는 순조로워보였다.
하지만 다시 다리 위로 올라오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발을 올릴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기를 반복하고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젠 온 몸이 젖어 피부에 소름이 돋았고,
턱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 다리 끝을 손으로 잡고 있던 그녀가 한 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손을 내리려는데 누군가 손목을 잡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험악한 표정의 서완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턱에 힘을 주고 화가 난 그의 싸늘한 시선에 그녀는 눈물이 솟았다.
그가 그녀를 가볍게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제 정신이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겁도 없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어?”
온 몸이 젖은 그녀가 덜덜 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미.. 미안..해요..”
덜덜 떨리는 턱에 힘을 주며 힘겹게 대답했다.
“그렇게 구두가 좋아? 목숨보다 더? 질린다.. 정말..”
그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떨리는 어깨를 손으로 감싸고 구두를 찾아 신었다.
절뚝거리며 테이블 위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직원이 다가와 커다란 타월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의 손이 말을 안 듣자 직원이 대신 펼쳐서 그녀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고마워요..”
그녀는 상자를 가슴에 안고 절뚝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면서
두 사람은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집 앞에 차를 세운 그가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내려. 나는 연우 만나고 올 테니까.”
“네..”
그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문을 닫자 그가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는 몸을 돌려 현관 벨을 눌렀다.
“사모님?”
“아주머니..”
문이 열리자 그녀는 타올을 몸에 감싸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구두를 벗었다.
“한율이는요?”
“자요. 어디에서 이렇게 흠뻑 젖으셨어요?”
“일단 따뜻한 물로 샤워부터 할게요.”
“네.”
아주머니가 그녀의 뒤를 따라가다가 바닥에 피발자국이 생기는 걸 보고는 고개를 돌려 그녀가 벗은 구두를 바라보았다.
“사모님..”
“네?”
“발에서 피가.. 다치셨어요?”
“아.. 아까 연못에서 뭘 밟은 것 같았는데.. 피.. 어떻게 해요? 닦아야 하는데..”
그녀가 닦을 걸 찾자 아주머니가 그녀를 잡았다.
“일단 상처치료부터 하시고요. 욕실로 그냥 가세요. 치우는 건 제가 해요.”
“하지만 퇴근하셔야죠.”
“괜찮아요. 얼른 욕실로 가세요.”
“죄송해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고개를 저으셨다. 젖은 옷을 벗고 따뜻한 물을 틀어 그 아래에 섰다.
그녀는 서러운 마음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흘렸다. 발바닥에 상채기가 난 곳에서는
아직도 피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한 참 후에 그녀가 목욕가운으로 몸을 가리자
아주머니가 구급약 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오셨다. 상처를 소독해주시고 거즈도 붙여
주시고 붕대도 감아주셨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다 하세요. 어디에서 다치신 거예요.. 사장님과 저녁 드시러 가신 거 아니셨어요?”
순간 그녀는 울컥 눈물이 솟아났다.
“사모님..”
그녀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었나 봐요. 남편이라는 사람한테 그런 소리나 듣고..”
“사모님..”
“아! 아이스크림.. 못 사왔는데..”
“다리 다치셨잖아요. 다 낫고 사 주세요.”
“약속했는데..”
“한율이도 그 정도는 이해해 줄 거에요.”
그녀가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어서 가세요. 아드님에게 가시는 거죠?”
“네.”
“피곤하시겠어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네. 진통제 물이랑 함께 놓았어요. 그거 드시고 주무세요. 내일 병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절뚝거리며 갔다. 빈속이라 냉장고 문을 열고 아무것도
안 바르고 식빵 한 쪽을 먹었다. 그리고 물과 함께 약을 입에 넣고 삼켰다. 그녀는 한율이 방으로 들어가
아이 이마 위에 입맞춤을 하고 이불을 잘 덮어주었다.
“한율아.. 엄마는.. 예전에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몰라. 하지만 너한테는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그렇게 할 거야. 엄마에게.. 힘을 줘.. 잘 자.. 우리 아가..”
그녀가 다시 입맞춤을 하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서 풀지 못하고 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집 전화기 옆에 전화번호부가
적힌 메모지가 있었다. 그 중에 그의 번호가 적힌 종이가 있었다. 집전화기를 들어 그 번호를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에요.”
<.....>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았다.
‘한율이를 위해서라면 당신 따위.. 겁나지 않아..’
<왜.>
“저기요.. 부탁이 있어요.”
<....>
“오실 때요. 딸기맛 아이스크림 좀 사 주세요.”
<뭐? 지금 장난해?>
“한율이랑 약속했는데 잊었어요. 꼭 사 주세요. 그 돈은 꼭 드릴게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결심에 찬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
전화를 끊은 서완이 한 숨을 내쉬며 거칠게 바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연우가 그를 바라보았다.
“왜?”
“딸기맛 아이스크림 사달란다.”
연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웃겨? 웃기냐?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미친 거 아닐까? 크리스챤 루부탱이 얼마나 좋으면..
겁도 없이 연못에 그냥 들어가더라니까? 한율이랑 약속했다면서 딸기맛 아이스크림 꼭 부탁한대.
돈은 준다는데? 이거.. 제 정신 아니지?”
“혹시 아냐? 좋은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그리고 그 구두는 워낙 좋아하잖아..”
서완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사고 전에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더 끔찍해.. 질린다 정말..”
“시끄럽고.. 약이나 드셔..”
연우가 그에게 약을 건네었다. 서완이 심호흡을 하며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논알콜 칵테일로 부탁해요.”
연우가 바텐더에게 말했다.
****
늦은 시간 그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최대한 절뚝거리지 않는 모습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가 냉장고 문을 열고 뭔가를 마셨다.
“다녀오셨어요?”
그가 움찔했다.
“안 잤어?”
“아이스크림은요?”
“냉동실에.”
그녀는 냉동실문을 열고 아이스크림을 확인하고는 다시 문을 닫았다.
“고마워요. 얼마에요?”
그가 테이블을 손으로 집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얼마면.. 주려고?”
“네.”
“내 아들이 먹을 거라면서.. 그럼 됐어.”
그가 몸을 돌려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그가 그냥 놓고 간 컵을 닦아 정리해 놓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잠을 청했다.
“내일부터는 바빠질 테니까.. 어서 자자..”
그녀는 스텐드 불을 끄고 눈을 감았다.
방으로 들어간 서완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차가운 연못 안으로 거침없이 뛰어 들어간 그녀. 상자를 향해 집요하게 다가가는 그녀.
올라오지 못하고 자신을 애처롭게 올려다보던 그녀.. 의 모습이 차례로 떠올랐다.
눈을 감고 그 위에 팔을 올렸다.
“여기에서 더 하면 병원에 입원시켜야겠다.. 감당이.. 안 된다..”
그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0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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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점점 궁금해지고 있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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