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반 형사로 분한 개그우먼 안영미가 밀가루를 먹는 이들에게 다가가더니 '짝' 소리의 효과음을 배경으로 뺨을 때리는 듯한 동작의 춤을 선보인다. 이어 '글루텐 프리'를 외치며 그들에게 쌀파스타와 쌀비빔면을 권한다. 모 식품업체의 광고다. 광고포스터에는 '강력계 밀가루 단속반'이라는 문구와 함께 '글루텐에 중독된 도시를 구하라'는 미션이 적혀있다. 도대체 밀가루를 먹는 것이 무슨 죄(?)라고 뺨까지 맞는 걸까. 또 글루텐(gluten)은 밀가루와 무슨 관계일까.
글루텐 프리 열풍, 그 이유는?
밀알에는 글리아딘(gliadin)과 글루테닌(glutenin)이라는 단백질이 있다. 밀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하면 이 두 단백질이 섞이면서 그물망 구조를 이루는데 이 복합단백질을 글루텐이라고 한다. 그물망 같은 구조는 밀가루를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와 에탄올을 속에 가둬 빵을 부풀게 한다. 또 탄성력이 있어 면발을 쫄깃하게 만든다. 맛있는 빵과 면 요리의 일등공신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 쌀파스타, 쌀막국수 등 쌀로 만든 식품이 큰 호응을 얻고 '글루텐 없이 요리하는 법' 등이 포털 사이트 메인에 오르는 등 밀가루 기피 현상이 일고 있다. 미국도 글루텐 프리 시장이 230억 원 규모로 4년 새 2배 이상 불어났다. 이유는 '글루텐 민감성'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 이들은 글루텐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을 때 소화 장애는 물론 비염, 천식, 두통 등의 증상을 보이는데 미국에서는 전체 인구의 10%가 '글루텐 민감성'이라고 한다. 또 글루텐이 자폐증을 유발하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글루텐 프리' 식단에 대한 열풍이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글루텐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많다. 자폐증의 경우, 미국의 의사인 시드 베이커가 자폐증 환자에게 글루텐이 들어있지 않은 식이요법을 시행하면서 좋은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이후 많은 의사가 글루텐을 피하는 것이 자폐증을 치료하는 데 있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어떤 임상시험에서도 글루텐 프리 식단이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입증할 만큼의 통계적 신뢰성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글루텐 프리 식단이 체중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 역시 아직까지 없다. 심지어 글루텐을 소화시키지 못해 글루텐 제거 식품만 먹는 셀리악병 환자의 경우 상당수가 과체중이었다.
'글루텐 민감성'을 몸에 '나쁘다'고 해석하는 것도 불공평하다. 우유만 먹으면 설사 등 소화 장애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유당 불내증 때문이다. 하지만 우유가 몸에 해롭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글루텐 불내증이 있거나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만 글루텐을 피하면 될 일이다.
글루텐, 정말 모두가 피해야할까?
최근에는 '글루텐 민감성'이 '글루텐'과 연관이 적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미국 소화기학회 잡지(Gastroenterology)에 실린 내용을 보면 글루텐 민감성이 있는 37명을 *포드맵(FODMAPS) 제거 식단, 글루텐 함량이 높은 식단, 글루텐 함량이 낮은 식단, 일반적인 식단으로 나눠 2주간 식이 조절을 한 뒤, 장 염증 정도와 피로도, 면역 활성도를 검사했다. 그 결과 글루텐 함량이 낮은 식단보다 오히려 포드맵 식단을 시행한 그룹이 증상이 가장 많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포드맵 식단 그룹은 그동안 '글루텐 민감성' 때문에 나타났다는 위장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며 글루텐 자체가 위장 장애에 특별한 역할을 하는 것 같지 않다고 기술했다.
*포드맵 : 과민성장증후군 환자에게 처방하는 식단으로 소장과 대장에서 잘 흡수되지 않고 미생물에 의해 발효돼 가스와 액체를 만들어내는 음식을 뺀 식단을 말한다. FODMAPS은 Fermentable(발효성), 0ligo-saccharides(올리고당,galacto-oligo-saccharides and fructans), Di-saccharides(이당류, lactose), Mono-saccharides(단당류, fructose), And Polyols(폴리올, sorbitol and mannitol)의 약자다. 사이다 콜라 등 음료수에 사용하는 액상과당, 우유나 치즈 등의 유제품, 양배추와 사과 등이 포함돼 있다.
물론 글루텐을 꼭 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밀이나 글루텐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과 셀리악병 환자다. 우리가 섭취한 단백질은 위와 장을 거쳐 완벽하게 소화된다. 단백질은 여러 종류의 아미노산 수백 개, 수천 개가 결합된 상태다. 단백질은 소화 과정에서 분해되면서 아미노산의 형태로 장 점막에서 흡수된다. 일반적이라면 복합단백질인 글루텐도 완벽하게 소화돼야 정상이다.
하지만 셀리악병 환자는 글루텐을 완벽하게 분해하지 못해 몇 개의 아미노산들이 붙어 있는 상태인 펩디드라는 물질을 만든다. 우리 몸은 이를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로 오인해 이에 맞서는 항체를 만들고 작은창자 내 융모에 염증을 일으켜 영양분의 흡수를 막는다. 밀이 주식이 이탈리아와 미국의 셀리악병 환자의 비율은 약 1%,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진단받은 사람이 없다.
최근에는 글루텐 프리 열풍과는 반대로 오히려 셀리악병이 글루텐과 무관하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고 있다. 2010년에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글루텐 민감성으로 알고 있는 32명을 대상으로 글루텐 프리 식이를 시행한 결과 12명만이 증상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60%(20명)는 글루텐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소화 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났지만 글루텐 때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글루텐 프리 식단이 오히려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많다. 밀이 없는 대신 탄수화물과 당류가 많고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적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글루텐 프리 식단이 비만이나 대사 증후군의 발병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에 따르면 미국 베티 크로커의 팬케익 믹스 제품의 경우 글루텐 프리 제품이 일반 제품과 중량은 같지만 탄수화물과 당 함유랑은 높고 비타민 B 계열인 엽산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또 글루텐 프리 사과ㆍ시나몬 시리얼은 일반 제품과 달리 칼슘, 철분, 비타민 A, C는 전혀 함유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아워홈의 쌀파스타와 오뚜기의 미트 볼로냐 스파게티를 비교한 결과 쌀파스타가 미트 스파게티보다 당류는 두 배나 높았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8배, 지방과 나트륨도 더 높게 나타났다. 또 오뚜기 제품에는 칼슘과 철 성분이 들어있었지만 아워홈 제품은 표시돼 있지 않았다.
글루텐 프리 열풍은 지난해 '카제인 나트륨(인산염)' 커피믹스 사건과 비슷한 점이 많다. 남양유업이 인산염 프리를 강조하며 마치 인산염을 몸에 해롭고 우유를 넣은 자사제품은 '건강'한 것처럼 광고해 논란이 됐다. 식약처가 인산염은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하면서 잠잠해졌지만 그 일로 인산염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졌다. 음식은 유행이 아니다. 무조건 빨리 쫓기보다 한 발 물러서 진실을 볼 줄 아는 진중함이 필요하다.

*본 콘텐츠는 과학기술인공제회에서 발행한 <SEMA 함께 행복 同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