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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축복을 받는 비결 (말3:7-12절)
추운 겨울밤 거지 소년 형제가 환한 불이 켜져 있는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는 따뜻한 난로가 있고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날은 성탄절 전날 밤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축하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 교회에는 아주 높은 종탑이 있었는데 이 종은 사람이 치는 것이 아니라 천사가 치는 것으로 유명하였습니다. 특히 이 종은 성탄절에 성도가 가장 귀한 예물을 드릴 때 울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드리는 예물에 종이 울리기를 기대하며 갖가지 좋은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마을의 촌장은 커다란 진주가 박힌 목걸이를 드렸고 상점 주인도, 부자 영감도, 모두가 드렸으나 종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온 교회 교인들은 이 종이 울려야 다음 한 해 동안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고 믿었기에 초조한 마음과 안타까운 심정으로 종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습니다. “또 드릴 분이 안 계십니까.” 목사님이 물으면서 교인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목사님의 시선이 맨 뒤에 난로 가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거지 소년 형제와 마주쳤습니다. 그 거지 소년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으나 하나님께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두 소년은 아까부터 차마 먹기가 아까워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던 빨간 사과 한 개를 들고 앞으로 나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바로 그때 저 높은 종탑에서 아름다운 종소리가 밤 하늘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2장과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저주 아래에 있었고 백성들은 고통 가운데 살았습니다. 정치는 혼란하고 경제는 도탄에 빠져있었습니다. 사회는 무질서하고 국방마저도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나라의 사정이 위태로워지자 백성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천재지변이 계속 일어나고 애써 농사지은 것은 병충해로 허사가 되고 땅은 황폐해지며 가뭄과 홍수로 말미암아 당장에 먹을 양식도 핍절한 상황이었습니다. 더 이상 버틸 힘도 없고 기력도 상실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았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대화를 요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왜 그토록 혹독한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처럼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답변해주셨습니다.
*말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까 하는도다.
이스라엘에게 이 모든 재앙이 내린 이유는 그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규례를 어겼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촉구하십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속히 회개하고 전인격적인 변화의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돌아가는 방법을 하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답변해 주셨습니다.
*말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철면피 같이 복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만하고 있으니 어찌 복 대신 저주를 받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부인하면서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언제 우리가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습니까. 라며 반문합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그들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말3:9-10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시되 그 중에서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소유로 주장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반드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형식적인 제사를 일삼고 하나님의 언약에 불순종하고 거짓을 가르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흠 있는 제물과 병든 제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불경건한 제사장들과 무성의한 제사 의식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십일조까지 다 삼켜버림으로 하나님의 소유권을 박탈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것을 도적질한 백성들에게 진노를 내리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를 방문하여 담임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교인 수가 얼마나 됩니까. 약 1,000명 정도 됩니다. 그들 중에서 몇 명이나 십일조를 바칩니까. 그때 목사님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우리 교인은 모두가 십일조를 합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이 또 묻습니다. 어떻게 전 교인이 십일조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이 “네, 교회에 헌금으로 십일조를 바치는 성도는 347명이고 그들은 충실하게 약속을 지킵니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십일조를 하기는 하는데 그 방법이 좀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십일조를 거두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역경이나 질병, 혹은 실직 등으로 십일조를 거두시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십일조를 바치는 셈입니다. 다만 십일조를 바치고 복을 받는 사람과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그러나 그것은 정말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한꺼번에 모두 회수해 가십니다. 세상의 많은 나라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다가 경제적인 고통을 당하는 나라가 얼마나 많습니까. 소련이 유물주의를 하고 공산화하며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큰소리 치고 있다가 70년 만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것을 회수해 가시자 나라가 온통 망하고 말았습니다. 인도는 어떻습니까. 필리핀은 어떻습니까. 북한이 해마다 가뭄과 수해를 당하며 오늘도 세계를 향하여 식량을 구걸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일천만 성도들이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며 기도와 간구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비를 긍휼과 베푸시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 발전시켜 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십일조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것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엘람 왕 그돌라오멜이 4개국 연합군을 이끌고 소돔과 고모라를 함락시키고 재물과 인민과 모든 것을 약탈해 갈 때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이 사로잡혀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집에서 기르고 연습한 자와 동맹한 자 삼백십팔 인을 거느리고 야음을 타서 그들을 습격하여 연합군을 대파하고 그들이 약탈했던 소돔과 고모라성의 재물과 사람들을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돌아올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그를 영접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멜기세덱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7:1-3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멜기세덱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영접하고 축복하자 아브라함이 자기가 얻은 것에서 십일조를 제사장 멕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위에 하늘 문을 열고 그에게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고 형통하는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에게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철저하게 십일조 생활을 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훗날 이삭이 가뭄으로 인하여 블레셋 땅으로 가서 살 때에 하나님께서 그 해 농사를 백배나 거두도록 복을 주신 것과 그가 마침내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고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은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또 그 아들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돌 베게 하였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서원하면서 십일조 악속을 한 것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늘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 제단은 하나님 앞에서 형통과 부귀를 구하는 기도의 가장 근원적인 조건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받지만 축복은 반드시 십일조 제단에서 값을 치루고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십자가 제단에서 믿음으로 조건 없이 얻지만 축복은 십일조라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이지만 축복은 우리에게 헌신과 사랑을 요구합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고 하나님의 법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하나님께 십일조 제단을 쌓았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물질의 축복을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나 복의 통로에 관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 중에 놀라운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6:16-19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명령과 증거와 규례를 삼가 지키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그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겠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아름다운 땅을 차지하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
이와 같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불 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그런데 오직 십일조만은 하나님께서 시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십일조는 참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축복의 언약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를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축복의 언약으로서 십일조의 제단을 쌓았는데 그 후에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430년을 지나고 모세에 의해 출애굽하고 난 뒤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한 조항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의 이행이 중요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든지 자신의 소득 중에서 십일조를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도록 법으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레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늘 날도 예수님은 믿지 않으면서 십일조는 반드시 드립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전 세계의 경제권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냥 와서 복을 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계약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또 얼마를 드려야 합니까. 십일조는 자기 수입 중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대하31:5-8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첫 열매들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유다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 왔고 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 왔으며 그것을 쌓아 더미를 이루었는데 셋째 달에 그 더미들을 쌓기 시작하여 일곱째 달에 마친지라 히스기야와 방백들이 와서 쌓인 더미를 보고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니라.
히스기야 왕이 종교개혁을 하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의 반차를 정하고 직임을 행하게 하며 백성들에게 자기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레위 인들에게 주어 여호와의 율법에 힘쓰게 하라고 할 때에 백성들은 소산의 처음 것과 십일조와 성물의 십일조를 풍성히 가져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바로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인색한 마음으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감사한 마음으로 자원하여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의 언약으로 주신 것이므로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매 주일 첫 날 즉 주일에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십일조를 엉뚱한 곳에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아원에도 보내고 선교지에도 보내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도 하고 교회 건축 헌금으로도 내면서 내가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하나님의 집에 드려야 합니다. 즉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교회는 큰 교회니까 어렵고 작은 시골 교회에 보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십일조는 자기가 교적을 두고 성찬을 받는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떡과 포도주를 준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성찬을 떼는 교회에 십일조를 드려야 함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십일조는 교회가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예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 계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제사장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떡과 포도주를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복을 빌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자기 마음대로 여기저기에 보내는 것은 온전한 십일조라 할 수 없습니다. 선교 후원금이나 구제비는 십일조를 드린 후에 여유가 있으면 드리고 형편이 되지 않으면 못 보내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므로 중대한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킨 사람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놓았으므로 나는 언제 어디서나 복을 받는다. 이와 같은 확신과 축복의 기대감을 가지고 담대하게 십일조 제단 위에서 하나님의 복을 구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기도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약4:2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이러므로 십일조 제단 위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말3:11-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와 같이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모든 재앙을 면하게 해주시고 재난을 막아 주시며 온갖 질병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나아가 우리의 삶이 형통해지고 우리의 기업과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의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드릴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명주와 비단을 살 돈은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애쓰지만 우선 당신 자신부터 바쳐라. 당신 자신 외에 그분이 더 무엇을 요구하겠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얻습니다. 그러나 축복은 십일조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나와서 부르짖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축복의 제단을 쌓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시고 하나님을 한 번 시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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