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제 35차 산행]
1. 일자: 2010. 10. 09 (토)
2. 날씨: 구름 조금
3. 인원: 41명(안내산악회와 함께)
4. 대상: 설악산 천불동계곡 / 강원도 양양군, 속초시 소재
5. 코스: 오색~대청~천불동계곡~소공원 (16㎞, 10시간 25분 소요)
오색(04:35)~대청봉(08:15)~희운각대피소(10:10~11:00)~양폭대피소(12:25)~비선대(14:10)~소공원(15:00)
6. 후기
지난 유월에 이어 설악산을 또 찾았다. 부산에서 설악산 다녀오기란 쉽지 않다.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래도 광주나 목포보다는 나은 편이다. 이번에도 하산 코스는 천불동계곡이다. 지난번엔 미시령에서 한계령까지 설악의 중추 뼈대를 잇다가 공룡능선 통과 후 무너미고개에서 천불동계곡으로 탈출한 반면 이번엔 천불동계곡의 단풍이 목적이다.
통제소를 통과하며
4시 35분, 무전기와 손전등을 양손에 들고 산으로 들어선다. 맨 후미다. 헤드랜턴은 집사람이 둘렀고 무전기는 후미대장 감투의 부산물이다. 집사람은 이 산악회의 회원이다. 나는 번개 한번 포함 세 번째 동행이다. 집행부에서 총 대장이 사정으로 빠졌으니 선두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사양하다 끝내 후미를 맡은 것이다. 문제는 누가 누군지 모른다는 데 있다. 물론 대다수가 배낭에 명찰을 달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산길은 데크가 설치된 쉼터까지 오르막 일색에다 우리 일행만 있는 게 아니다. 어슬렁거리며 오르다 보니 추월 당하기는 일쑤다. 쉼터에 거의 다다랐을 때 누군가가 우리 일행인 여자 두 명이 뒤에 있다고 한다. 헐~~ 집사람을 먼저 보낸다. 대구에서 광주에서 기타 등등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올라간다. 중국인 세 명도 있다. 그들은 쉴새 없이 떠들어 댄다. 본래 말이 많은 종인가. 10분쯤 기다리자 6학년6반인 남자분(이하 66님)이 올라온다. “먼저 가신 줄 알았는데요” “완전히 속았네요” “이제부터 좀 낫습니다 천천히 오르세요” 회장님과 동행하신 분이다.
그 분이 올라가고 20여분이 지나자 여명이 밝아온다. 손전등을 끈다. 나는 기다리면서 여자들만 오면 “사계절인가요”란 말을 수 없이 반복한다. 소득은 없었다. 대구에서 온 여자 두 분이 사계절은 뒤에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해준다. 그 사이 무전도 많이 왔었다. 산행시작 1.6㎞ 지점에서 40여분을 기다린 것이다. 허탈한 기분으로 오름짓을 한다. 좀 속력을 내자 앞서갔던 사람들이 뒤로 처진다.
6시 30분 설악폭포를 막 지나자 중간그룹에서 수습했다는 무전이 온다. 즉, 의심(?) 드는 여성들을 다 챙겨서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들과의 거리는 1.3㎞ 정도 떨어져 있었다. 편안하게 운행하다 얼마 후 집사람과 합류한다. 맨 꼴찌인데도 의기양양하다. 하긴 여기가 양양 땅이니까. 뒤에 두 명이 더 있다고 그런 것 같다. 이내 현실은 생각보다 다름을 알고 난감해한다. 조금 더 가자 66님이 쉬고 있다. 이제 맨 후미는 나 포함 셋이다. 관리(?)하기 딱 알맞은 인원이다. “아무리 그래도 66님보다 늦진 않겠지” 하면서 집사람에게 눈치를 준다.
중청대피소
정상 1.5㎞정도 남긴 지점부터 곱게 물든 단풍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고도를 높여 오름길이 완만해질 무렵 왼쪽으로 중청대피소가 바라보이는 전망바위에 선다. 오색이 발아래 보이고, 점봉산은 구름바다에 잠겼으며, 주능선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엔 붉고 노란 점들이 빼곡하게 박혔다. 잠시 후 중청대피소를 삼켜버린 운무가 산자락을 덮기 시작한다. 이렇듯 고산의 기상은 알 수가 없다.
다시 산길로 들어서서 속력을 높인다. 제법 올랐는데도 먼저 간 집사람이 안 보인다. 또 얼마쯤 오르자 키 작은 나무들이 나타나면서 뒤쪽으론 시야가 트인다. 운해가 장관이다. 즐길 때가 아니다. 조금 더 올라가니 홍상님 내외와 또 다른 일행 두 명이 숨을 고르고 있다. “혹 집사람 못 봤습니까?” “아직 안 올라 갔는데요” 그럼 어디로 샜단 말인가. 운해를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기다린다. 무전이 날아온다. 어디냐고. 정상 500미터 전이라고 대답한다. 5~6분쯤 기다리다 올라간다. 또 그분들과 만난다. “분명히 안 올라 갔심더” 이런 낭패가. 그들은 올라가고 나는 또 기다린다. 66님은 올라가셨겠지.
대청봉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산길에서 어지간해서는 미물도 노치는 법이 없는 내가 아닌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결론 내고 올라간다. 확신을 갖고서. 그들이 못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정상에 다다르자 정상석이 안보일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눈길이 한곳에 멈춘다. 있다. 이렇게 정상에 올랐다.
선두그룹은 기다리다 춥다고 먼저 떠났고, 중간그룹과 어울려 중청대피소로 내려간다. 집사람은 꼴찌 탈출을 위해 기를 쓰고 올랐다고 한다. 눈치의 효력인가. 공룡능선의 첨봉들은 구름이불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만원인 중청대피소에서 배낭을 내린다. 선두는 희운각대피소에서 이른 점심을 먹겠다며 떠나고 없다. 무전기의 효력이다. 김밥과 수육에 막걸리와 소주를 곁들이며 후미대장의 예우를 톡톡히 받는다.
희운각 가는 길
희운각 지붕도 보이고 천불동계곡과 만경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신선봉 방면
희운각대피소로 가는 길은 출근길 도로처럼 정체가 심하다. 단풍구경이 아니라 사람구경 온 듯하다. 일상을 떠나 산에 드는 나의 목적에 철저히 반하는 상황이다. 내일(일요일)은 이보다 더하겠지. 위안을 삼는다. 대청에서 희운각으로 바로 내려가는 능선을 개방해 놓으면 분산효과가 있을 텐데. 왜 막았는지 알 수 없다. 반달가슴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때문에 백두대간 종주자들도 물길을 건너 이곳을 오르내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들 중 중청~소청 구간이 주능선이 아니고 지능선이란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글픈 현실이다.
10시 10분, 다리를 건넌다. 희운각도 만원이긴 마찬가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금줄을 넘어 계곡 쪽 숲 속에 자리를 잡는다. 라면을 끓이기 위해 대피소 식수대에서 물을 받아온다. 계곡수는 상상도 못한다. 지금 여기 있는 곳도 불법이기 때문이다. 공단원의 관점에서는. 아니나다를까 라면이 끓을 무렵 공단원이 순찰을 돈다. 저만치서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 숲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있는 곳을 보고는 김까지 난다고 타박이다. 얼른 스토브를 끈다. 잠시 후 공단원은 가고 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점심 한끼 때우기도 이렇게 힘들다.
이 참에 공단에 건의 한마디 하자면, 희운각대피소 주변은 상당히 협소한데 비해 산객이 많이 지나는 곳이다. 계곡까진 개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숲 속의 빈터를 정비하여 지나는 길손의 쉼터(취사포함)로 제공해 주기 바란다. 그렇다면 콘크리트(대피소) 주변 딱딱한 곳에서 억지로 쉬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너미고개에서 천불동계곡으로 내려간다. 여느 길처럼 경사가 급하다. 첫 번째 계곡수를 만나는 곳에서 배낭을 내리고 신을 벗는다. 그리고 바짓가랑이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한고비를 넘기자 나오기가 싫어진다. 등산화가 시원찮아 고생한 두 발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주 등산화는 수선 길에 올라 있다.
다시 길을 따른다.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 듯 한결 낫다. 이제부터는 단풍과 바위와 계곡수의 삼중주를 즐기며 쉬엄쉬엄 내려간다. 만경대가 보이고 무명폭을 지나고 천당폭을 맞이한다. 폭포수와 바위와 단풍이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그리고 양폭에 들렀다가 양폭대피소에서 배낭을 내린다. 이곳도 인산인해다. 만약 대청에서 집사람과 헤어져 화채능선을 타고 1253봉에서 만경대능선으로 이곳까지 온다고 했다면 어찌됐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집사람이 작은 볼일을 끝내고 온다.
무너미고개
천불동계곡으로 내려서서
만경대
천당폭포
양폭
음폭 방면
비선대로 향한다. 시간 반이면 닿는 거리다. 산길은 완만한 내리막이다. 귀면암으로 잠깐 올라섰다가 계속 이어간다. 비선대 1㎞정도 남긴 지점에서 중간그룹에서 무전이 온다. 선두는 하산 완료했고, 그들은 비선대를 떠난지 10분 정도 됐다면서 우리보고 서둘러 내려오라고 한다. 집사람의 상태가 문제다. 지난주 운문산 트레이닝은 여기까진 모양이다. 배낭을 받아 앞으로 멘다. 드디어 포터가 되었다. 그리고 속도를 서서히 올린다.
비선대 직전 통제소 앞 다리를 건너면서 장군봉과 형제봉, 적벽을 바라본다. 장군봉과 적벽엔 클라이머들이 붙었다. 적벽에 눈길이 멈춘다.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황홀함을 맛보려면 연습이란 고통이 따라야 하는데, 연습은 하지 않고 부러움만 느끼다니. 내일은 동문인 부산등산학교 OB팀이 이곳 유선대릿지에 붙는 날이다. 그래서 주중까지는 1박 3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요일 오후 서울 선배의 전화를 받고 그 생각을 싹 지워버렸다. 주말 선배네 산악회에서 영남알프스에 온다는 것이다. 무박 2일로 취서평원 억새를 포인트로 잡은 것 같아 기점인 배내고개에서 동행키로 하고 서-울산 톨게이트에서 새벽 4시에 만나기로 했었다. 바위는 바로 다음이 있지만 선배와의 산행은 다음을 기약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장군봉과 적벽
적벽
장군봉
적벽을 뒤로하고 비선대 상가를 통과한다. 곧 다리를 건넌다. 차가 올라와 있는 지점부터 뒤따르던 집사람이 뛰다시피 따라온다. 그래도 원망은 못한다. 그렇게 소공원까지 간다. 후미대장의 역할을 잘 해냈는지는 모르지만 부산한 하루였다. 끝.
첫댓글 아 산학동자님이 부산분이셨군요
요즘 서락이 대세지요?
힘들고 사람이 치여서 고생은 했었지만 좋은 산행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안산하세요
단풍 시즌이라 그런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후미대장이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감투까지 쓰셨군요. 이런 점을 보면 산학동자님께서 희생정신(?)이 강하신 분 같습니다. 물론 그만큼 능력을 인정 받았다는 증명이지만요. 암튼 늘 그렇듯이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산행기를 쓰시는지 탄복+부러움입니다. 그리고 똑딱이 사진으로 촬영햇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황홀하다니 정말 설악은 설악입니다. 저도 이번주 24일 무박으로 삼대구년만에 산악회 따라 주전골 흘림골로 갑니다. ^^
대장은 달갑지 직책입니다. 꼭 맡아야 한다면 그래도 후미가 낫지 싶네요. 주전골, 흘림골 남설악 칠형제봉이 있는 곳이죠. 잘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산행도 힘들지만 사람 챙기는 일은 더 힘들겠지요.
수고하셨습니다.
처음이라 그런지 쉽지 않더군요. 감사합니다.
제일 고생하고 체력이 좋은분들이 후미 대장을 맡는데 애썼습니다 ^^
앞으로 그쪽 산악회에서 종종 콜이 들어 오겠는데요? ㅎㅎㅎ
안 그래도 하산 후 뒤풀이 때 그 점을 언급하기에 참여하게 되면 노력해보겠다는 정도로 마무리했습니다.
후미대장 끝내주는 감투입니다. 사람챙기고 시간챙기고 사진찍어주고 찍고, 정말 바쁜감투입니다. 가을의 설악 한번도 제눈으로 본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홀로 멋있는 설악의 가을에 험뻑 빠져봐야 겠습니다.
홀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빌어 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