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13대 홀달단제 때에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던 미혼의 자제들을 국자랑이라고 했으며 국자랑이 출행할 때에 하늘을 가리킨다는 뜻의 천지화(天地花)인 무궁화를 머리에 꽂았기 때문에 천지화랑이라고도 했습니다. 무궁화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 온 꽃입니다. 여느 꽃들과 달리 이른봄부터 피기 시작하여 늦은 가을까지 날마다 탐스런 꽃을 피워 냅니다.
우리 조상들은 무궁화를 옛날부터 사랑해 왔습니다. 고조선 제5대 구을단군 16년에는 하늘에 제사드리는 제천단을 쌓고 그 둘레에 무궁화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중국사람들은 우리나라를가리켜 ‘무궁화 고장’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 사람들은 무궁화를 으뜸가는 꽃으로 여기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자나 머리에도 무궁화 꽃을 꽂고 다니는 풍속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무궁화를 ‘환국의 꽃’이라는 뜻의 ‘환화(桓花)’ 또는 ‘하늘을 가리키는 꽃’이라는 뜻으로 ‘천지화(天地花)’라고 했습니다.
근조선시대에는 ‘어사화’라고 해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쓰는 관에 임금이 직접 종이로 만든 무궁화 꽃을 달아 주었고 궁중에서 잔치가 열리는 날에는 신하들이 모자에 무궁화 꽃을 꽂는 예법이 있었습니다. 천지화랑은 후에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싸울아비(일본으로 전해져서 사무라이가 됨), 신라의 화랑도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자낭도를 ‘원화’라 하고 남자를 화랑이라 했으며 임금의 명령에 의하여 까마귀 깃털을 달린 모자를 하사받은 이를 천왕랑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신선사상의 5상(五常)을 지켰는데 충, 효, 신, 용, 인의 오상으로 신라시대 원광법사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세속오계의 원형입니다
‘세속오계’라는 말에서 이미 고조선이후 세속에서는 5상에 해당하는 규범들이 지켜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원광법사가 새롭게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 세속오계라고 생각합니다. 사군이충(事君以忠)은 충을, 사친이효(事親以孝)는 효를, 교우이신(交友以信)은 신을, 임전무퇴(臨戰無退)는 용을, 살생유택(殺生有擇)은 인을 구체적인 행동규범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화랑들이 산천을 유람하며 노래와 춤을 즐긴 것을 풍류도라 하는데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를 '풍류도'라 한다.’고 했으며, ‘이 교를 설치한 근원은 선사(先史)에 있거니와 이는 실로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고 모든 중생을 접촉하여 교화하였다.’고 화랑도를 풀이했습니다. 그리고 화랑의 지도자를 신선, 국선(國仙)이라 한 것을 보아도 화랑은 그 뿌리로 우리고유의 신선사상인 풍류도와 관계가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풍류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춤추고 노래하며 노는 것이 아니라 화랑들이 수련 중에 기(氣)를 타고 춤을 추는 것과 기(氣)를타고 논다는 의미로 ‘승유지기(勝遊之氣)’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 청소년들도 가끔은 책과 컴퓨터로부터 벗어나와 때때로 명산대천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며 나와 민족의 미래도 함께 생각해 보고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기며 심신을 다진다면 정말 멋진 청년으로 성장해 갈 수 있을것입니다
<단기고사> <신단민사><단군세기><산해경> 무궁화 동산
무궁화는 예로부터 우리 겨레의 사랑을 받아 온 나라꽃입니다.
여느 꽃들과는 달리 이른 여름부터 피기 시작하여 늦은 가을까지 탐스러운 새 꽃을 피워냅니다.이처럼 끊임없이 꽃을 피우는 무궁화는 우리 겨레의 강한 끈기와 길이 발전하려는 정신을 닮았습니다.
또 어떤 꽃보다 기품이 빼어나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은은 한 향기를 풍겨내는 의젓한 꽃입니다.
이 또한 예의바르고 공손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 피우고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마음과도 일치된다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궁화를 사랑했던 흔적은 여러 기록에서 발견됩니다.단군조선이 세워지기 훨씬 이전,백성들은 환인을 한나라 임금으로 모시면서 그 둘레에 많은 무궁화를 심었습니다.
또 제5대 단군 구을 임금 16년(서기전2084)에 하늘에 제사 드리는 제천단을 쌓고 그 둘레에 무궁화를 많이 심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옛날 중국 사람들은 "조선은 무궁화가 많은 무궁화 고장"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그들은 우리를 이렇게 칭찬하기도 했습니다."조선 사람은 공손하여 남의 험담을 하지 않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제 몸같이 돌보는가하면 거짓말을 모르는 착한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이같이 우리는 예로부터 무궁화를 으뜸가는 꽃으로 여기고 사랑했습니다.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자나 머리에 무궁화를 꽃고 다니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습니다.신라 화랑들도 옛 풍습대로 무궁화를 꽂고 다녔다고 해서'화랑'이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또"어사화'라 해서 과거시험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사람이 쓰는 관에 임금이 직접 꽃을 달아주기도 했습니다.그밖에 궁중에서 잔치가 열리는 날 신하들이 모자에 무궁화를 꽂는 일도 있었습니다.이 역시 무궁화를 사랑했던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단군조선 시대에는 화랑을'천지화랑'이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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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우리나라에 무궁화가 있었다는 가장 오래 된 기록은 동양최고의 지리서인 <산해경>에서 찾아볼 수있습니다.이책에는 "군자국에는 훈화초가 있는데,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라고 적혀 있습니다.이 훈화초가 무궁화를 가리킵니다.신라때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 최치원은 우리나라를 <근화지향(槿花之鄕:무궁화의 나라)>이라고 했습니다.
한편 1948년 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가사를 붙여 국화(나라의 꽃)으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또한 입법,사법,행정 삼부의 표상으로 무궁화가 사용되고,국가의 봉오리로 제정되어있습니다.
(고동영저,고구려를 길러낸 우리뿌리 이야기 중)
출처: 한민족 역사 문화학교
무궁화가 국화(國花)가 된 이유도 다 역사적인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었군요.
첫댓글 새로운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신선동자님 수고하십니다.^^ 시험이 얼마 안 남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삼태극은 님을 응원합니다. 막바지 힘내시고 부담없이 있는 실력 모두 쏟아 붓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꼭 좋은 결과 얻어서 카페활동과 역사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무궁화꽃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꽃임에 분명합니다.봄부터 몽우리를 맺어 피고,지고 또피고..를 반복합니다.예전엔 잘 몰랐는데 향수병 같은거랄까? 앞뜰에 무궁화꽃을 들여다 볼때가 종종 있답니다.신선동자님^*^ 화이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무궁화 그이름대로 우리 민족같이 다함이 없는 꽃이네요~~^^
무궁화꽃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신선동자님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다시한번 새기고 .. 다시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선동자님, 정말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무궁화의 역사에 대해서 속 시원히 알았습니다. 무궁화를 많이 심어 무궁화 강산을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
많이 심고 잘 보살펴서 우리 나라꽃 무궁화 더욱 사랑해야겠내요.^^
말레이시아 국화도 무궁화입니다(백제 담로와연관성 혹시나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