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7장 1 - 5절
1.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2.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3.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4.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5. 머리는 갈멜 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오늘 본문 말씀은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술람미 여인을 보면서 찬양한 내용입니다. 앞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구석구석 칭찬했던 것처럼 오늘 말씀에서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이 술람미 여인을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사랑을 받게 된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있어서 선망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는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이 보기에 술람미 여인은 귀한 자의 딸이었습니다. 사실 술람미 여인은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귀한 자의 딸이라는 칭찬을 받기에는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귀한 자의 딸이라면 온실의 화초와 같이 자랐을 것이기 때문에 피부가 전혀 햇빛에 그슬리지 않는 하얀 피부였을 것인데 우리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술람미 여인은 포도원에서 일을 하느냐 여자라면 당연히 돌봐야 할 자신의 피부조차도 돌볼 수 없을 정도로 귀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여인이 솔로몬의 사랑을 받게 되니까 갑자기 귀한 자의 딸이라 칭찬을 받게 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랑을 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게 되면 사실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는 신분 상승을 하게 됩니다. 그 동안은 마귀의 자녀였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신분 상승이라는 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쓴 거지와 왕자라는 소설에 보면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가 자신과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거지 톰 캔티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것을 이용을 해서 서로 옷을 바꿔 입고서 왕자가 거지가 되고 거지가 왕자가 되어서 파란만장한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거지가 왕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황홀한 생활이었겠습니까? 물론 가짜 신분이었기 때문에 걸릴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인해 초조함이 있었겠지만 거지로 백년을 사는 것보다 왕자로 단 며칠을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굉장히 행복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가짜로 신분이 상승해도 행복할 수 있는데 우리는 가짜로 신분이 상승된 것이 아닙니다. 진짜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서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 되는 신분이 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마땅한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신분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지 이런 진리를 바로 알고 깨닫고 사는 사람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고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신분 상승에도 불구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게 되면 그런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서 절대 그런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를 않습니다. 보십시오. 노예의 신분으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명실상부한 자유인으로, 그것도 그 시대의 최대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애굽을 짓밟고 승리한 강한 나라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우리가 애굽으로 돌아가자” 이런 불평불만을 하니까 그 어리석은 사람들을 결국 약속의 땅 가나안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귀한 자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에 맞는 자존감을 가지고 그에 맞는 처신을 해야지 이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사람들이 아직도 거지로 살았을 때 즐기고 기뻐했던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인생을 허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고, 이제는 더 이상 육체의 삶이 아니라 영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고, 환경이나 상황을 보면서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주 안에서 모든 일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줘야지 우리를 신부 삼으신 신랑이 기뻐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더욱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쓸쓸이 죽어갔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불쌍한 영혼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의 여인들에게 이런 칭찬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런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존귀하고 소중한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봐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살아야 하고 또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칭찬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존귀한 사람들이고 귀한 자의 자녀입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절대 잊지 마시고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 우리의 우월감을 들어 내놓고 살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고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구별되게 살아갈 수 있는 기쁨을 나누는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