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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가해 1월26일 목요일
[(백)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수도회] 하느님께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함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티모 1,1-8
† 복음 루카 10,1-9
◈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전통을 따라 복음이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파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의
‘일흔두 제자’는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 선포가 이루어짐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 이후 제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게 됩니다.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에게 대표적인 제자는 두 명이었습니다. 그는
티모테오를 ‘사랑하는 아들’로 불렀으며 티토를 ‘착실한 아들’로
불렀습니다. 오랜 감옥 생활로 쇠약해진 바오로 사도에게 두 명의
제자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고 그를 대신하여 신생 교회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들 같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 것, 힘과 절제와 사랑의 영을 지닐 것을
당부합니다. 신앙의 진리에 대한 충실함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지니도록 권고합니다.
배금주의,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논리에 의해 많은 사람이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폐쇄적이지 않고 자기 안위에 힘쓰지 않으며 거리에 나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상처받는 아픔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역동성이
우리에게 신앙의 열정과 위안을 준다는 신뢰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여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참평화를 선물로 받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끝까지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2017년 가해 1월26일 목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제1독서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1,1-8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9
2004년, 갑곶성지에 부임 받아 온 해입니다. 즉, 갑곶성지의
초대신부로 성지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에 혼자 이곳에
와보니 막막하고 때로는 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가지가 바로
나무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넓은 성지에 나무가 없어서
너무 휑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잘 꾸며진 수목원처럼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잘 자란 나무들 사이를 걷는다면 누구나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소나무, 영산홍, 벚나무, 메타스콰이어, 무궁화, 장미, 주목나무
등 2,000그루 이상을 심었습니다.
그 뒤 저는 성지를 떠나서 본당신부, 교구 성소국장, 안식년을 거쳐서
작년 1월에 10년 만에 다시 갑곶성지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살펴보았던 것은 전에 심었던 나무들이었습니다. 2,000그루 넘게
심었으니 그래도 많은 나무들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은
나무는 몇 그루되지 않더군요. 실망했지만 순간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정말로 멋지고 소위 잘 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 나무들은
거의가 없어진 것입니다. 대신 시들시들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던 볼
품 없는 나무들이 지금은 뿌리를 단단히 내려서 잘 살고 있더군요.
이 모습을 보면서 잘 생기고 못 생기고가 아니라, 잘 자라느냐 못
자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 각자를 부르셨습니다. 성직자, 수도자로서의
부르심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주님의 뜻에 맞게 활동할 수
있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부르심을 받을 당시에 가지고 있는 자신의 능력과 재주는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보다는 그 부르심에 얼마나 잘
응답하며 사는가가 중요합니다. 즉, 능력과 재주 등이 부족하더라도
끝까지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인구가 줄어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분명히 많지만 자신의 부르심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다른 길을 향해 가기 때문에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쫓아서 주님의 곁을 떠나는 우리가
아니라 끝까지 주님의 곁에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하신 말씀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숙고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일단 행동할 시간이 되면 생각을 멈추고
돌진하라.(나폴레옹)
티모테오와 티토 주교.
무엇이 중요한가?
어떤 사람이 집 하나를 매입하려고 합니다. 이 집은 이제 곧 무너질 것
같은 아주 초라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집을 매입하려는 이유는
그곳의 전망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지요. 이 집 주인은 ‘수리하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서 이 집을 수리하고는 집값을 높여 불렀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집을 매입하려는 사람은 집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요. 집이
위치하고 있었던 그 자리를 원했던 것이고, 따라서 매입한 뒤에는
집을 허물고 다시 새롭게 건물을 지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수리하고 집값을 높여 부르니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 집을 매입하려는 사람이 원했던 것은 집터이지 집 자체가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이 집주인처럼 착각에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이나 재주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꾸며진 삶의 모습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 자체를 원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세상 안에서
인정을 받는 능력과 재주만을 강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뜻은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말이지요.
무엇을 더욱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지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따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평소에 먹지 않지만, 피정 중이라 먹어봅니다.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어요.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하느님께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함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1월26일 목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루카 10,1-9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루카 10,4)
하느님께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함
티모테오와 티토는 바오로 사도를 도와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들을 “사랑하는 아들”(2티모 1,2),
“착실한 아들”(티토 1,4)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할 것”(2티모 1,8)을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일흔 두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여기서 일흔 둘을 파견하는 것은
모든 이민족들에게 본격적으로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했음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복음선포 사명이 이제는 열두 제자만의 몫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파견하시면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3-4) 하십니다.
복음선포는 ‘이리 떼 가운데로’ 가는 것처럼 하느님 부재의 상황,
복음적 불안정과 불확실한 미래에 던져지는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이리 떼 가운데 가는데 아무런 방어 장치도 지니지 말고 가라시니
너무 가혹한 것 같기도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세상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께 의탁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예수님 친히 함께 하시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도구와 방편이
되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체의 소유와 애착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생계유지를 위한
것들을 비롯한 일체 것들과 걱정 근심, 불안과 염려와 같은 것들로
마음속을 채우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은 그 모든 것들로부터 떠난
빈자리에 주님께서 찾아오실 때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10,4)
하십니다. 유다인들은 길거리에서 만나면 멈추어 긴 인사를
나누었지요. 그런 인간적 예의를 지키느라 평화를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는 일이 지체되어서는
안 된다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했던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처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복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사랑을 품어야겠지요. 나를 비우고 내 안에
하느님을 모셔야 복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리 떼 가운데서 살아남아 하느님의 생명과 자비를 선포하는 것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또한 복음선포는 결코 단 한순간도 미룰 수 없는
급박한 일이기에 ‘지금’ 이 순간 하느님 나라가 드러나고, 하느님
때문에 살만한 세상이 되도록 집중하고 몰두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불안정과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모든 애착을 버리고
하느님만을 품는 행복한 가난의 순례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공동의
선을 위해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기꺼이 동참할
때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문을 활짝 열고 얼굴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전지작업의 중요성
2017년 가해 1월26일 목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 10,1-9
전지작업의 중요성
해외 공동체 방문이나 국제회의 등으로 여행이 잦은 편입니다. 자주
다니다 보니 요즘은 요령이 좀 생겼습니다. 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행이 얼마나 부담스러워지는지 모릅니다. 짐 부칠 때는 물론,
세관을 통관할 때, 그리고 짐 찾을 때 엄청 신경 쓰이고 시간도 많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대폭 짐을 줄이고 있습니다. 여행용 가방을 챙길
때 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게 이번 여행에 꼭 필요한 짐인가,
아닌가?’ 그러다보니 최종적으로 남게 되는 것은 외투 두벌, 속내의
두벌, 성무일도, 작은 수첩 한권! 그리고는 끝입니다. 조그마한 배낭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디든 무사통과입니다. 얼마나 몸과
마음이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복음 선포를 떠나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권고가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루카복음 10장 3~4절)
만일 해외여행을 하는 저에게나 복음 선포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있어
짐이 너무 많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어깨에 짊어지면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크고 무거운 짐을 직접 들고 다닌다면 그
짐에 신경이 쓰여 여행이나 복음 선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수 천 만원이 담긴 자루를 전대 안에 넣어 허리에 묶고
떠난다면 가는 곳 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분들 때문에 어디
여행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이 참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구도자나 복음선포자가 가장 멋있어 보이는 순간은 빈 몸
빈 마음으로 황량한 광야를 향해 혈혈단신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때입니다.
복음선포자가 보다 본질적인 것, 보다 핵심적인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비본질적이고 부차적인 것에
대한 가차 없는 전지작업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수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때로 냉혹할 정도의 끊음과 버림과 자기 비움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어제의 나와 결별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복음 선포
여행을 떠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자 먼 길 떠난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또 무엇입니까? 복음
때문에 물설고 낯 설은 머나먼 땅으로 순례를 하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가장 무거운 족쇄는 또 무엇입니까?
주님의 복음을 보다 적극적으로 선포하기 위해 옥에 갇힌 바오로
사도, 그를 돕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티모테오와 티토 주교의
영웅적인 덕행이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티모테오와 티토 주교의
삶에서 오늘날 주교님들의 삶을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들의 삶에 있어 영예와 안정된 사목터, 존경과 박수갈채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저 기약 없는 순례길, 고통과 가시밭길로 점철된
십자가 길만이 그들의 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직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지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 살레시오회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서울]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2017년 가해 1월26일 목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 10,1-9
예전에 있던 본당에서 교우 분들이 오셨습니다. 설날이 가까워졌고,
가끔씩 시간이 되시면 오시는 분들입니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아쉬운 그런 만남입니다. 본당에 있을 때 ‘차량봉사단’을 만들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성당으로 모셔오는 일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차량봉사단에서 일을 하신다는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차량봉사단을 만든 것은 예전에 적성본당에 있을 때의
기억 때문입니다. 그곳은 대중교통이 자주 있지 않았고, 본당의
구역이 상당히 넓어서 성당에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승합차 4대로 차량봉사단을 만들었고, 많은 분들이
성당으로 오실 수 있었습니다. 가끔씩 군인들도 이용하기도 했고,
교우 분들은 성당의 차량을 이용하기 때문에 ‘오이, 감자, 호박, 쌀’
과 같은 것들을 성당으로 가져오시기도 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와 예수님께서는 ‘사목’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열정이 있어야 하고, 성령께 의지해야 하고, 본인의 욕심을 채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직 교우들을 위해서 헌신하라고 하십니다. 다른
것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채워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예전에
묵상했던 ‘사목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 사목이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저는 점심을 먹고 나서, 산보를 가는 것이 유일한 운동입니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산보를 가려고 사제관을 나서는데 비가 올듯 말듯 하늘이
잔뜩 흐렸습니다.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서는데 초등학교 2학년인
진성이가 성당으로 왔습니다. 진성이는 성당에서 태권도를 배우는
어린이인데 달리기를 아주 잘합니다. "진성아! 산보갈래!"하니까
진성이는 가방을 교육관에 벗어놓고 곧 저를 따라나섭니다. 우리는 큰
찻길을 건너, 비가 온 뒤에 물이 많아진 개울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을 지나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장날이
아니라서 시장은 한산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는 진성이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다시 큰길을 건너 진성이가 다니는 학교엘 갔습니다.
진성이가 우산을 교실에 놓고 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오랜만에
초등학교 교실엘 갔습니다. 우리는 다시 개울을 건너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놀다가, 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평소보다 길게
산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사제관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진성이가
말하더군요. "신부님 근데 산보는 어디에 있어요?" 저는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으잉! 다시 산보를 가자는 말인가! 진성이는 "산보"라는
장소가 어디에 있는 줄 알았나 봅니다.
문득, 하느님 앞에 저 자신을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다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느님은 어디계시냐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는지. 사목이라는 것도, 어쩌면 어려운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미 사제가 되었으면 어떤 사목자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지, 교우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목자인지 다 배웠고,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꼭 많은 이야길 해야만 아는 것이 아님을, 꼭
무엇인가를 가르쳐야만 마음이 변하는 것은 아님을, 어쩌면 우리는
이미 알 것은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하루였습니다.
사목은 관념이 아니고 실천입니다.
2) 사목은 포기하지 않는 것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교우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제관으로 들어가려는데 건회와 진성이가 성당 문으로
뛰어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왜 뛰어올까 생각하면서 물어
보았습니다. 두 친구는 집에서 성당까지 뛰어왔답니다. 두 아이의
집은 장현리이고, 장현리는 차로도 15분은 가야되는 거리입니다.
아이들은 성당 버스를 놓쳤고, 그래서 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3시간
30분을 뛰어서 성당에 도착한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찡해집니다.
뛰다 넘어지고, 그리고 또 뛰고 그렇게 성당엘 온 아이들을 생각하니,
조금만 불편해도 짜증을 내는 저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졌습니다.
건회는 현지라는 동생이 있고, 진성이는 민정이라는 누나가 있습니다.
현지와 민정이는 뛸 수가 없어서 장현리에 있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집에서 성당 생각을 하리라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건회와 진성이와 성당차로 장현리 건회의 집으로 갔습니다. 두
아이들이 저를 보고 너무 반가워합니다. 우리는 함께 성당으로 왔고,
아이들은 2시 30분 군종미사 참례를 하였습니다. 주님의 수난 성지
주일에, 두 아이가 그렇게 저에게 감동을 줍니다. 주님의 수난 성지
주일에, 두 아이가 성지 주일의 참 의미를 알려줍니다. 어느덧 주님께
모욕을 주고, 어느덧 주님을 모른 체하고, 어느덧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사목이란
한 번에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사목이란 논에 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모를 심었다고 농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듯이,
사목은 계속적인 관심과 노력 그리고 반성을 통해서 결실을 맺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3) 사목은 습관이다.
사람은 이성과, 감성, 그리고 오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람의
이성은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힘이 되었고, 사람의 감성은
미술과 음악 그리고 다양한 예술 활동을 가능하게 하였고 인류의
문명을 아름답게 꽃피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사람의 오성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직관을 가능하게 하였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찾도록
이끌었으며 영원한 삶을 갈망하게 하였고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종교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학습을 통하여 인류가
쌓아온 이성과 감성과 오성을 배우며, 바르게 설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성과 감성과 오성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자질과 타고난 능력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나게 됩니다.
저는 오늘 사람의 삶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주는, 때로는 사람의 삶을
결정적으로 이끌어 가는 또 다른 것에 대해서 이야길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지니게 되는 습관입니다.
습관은 타고난 자질과 능력을 크게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습관은 사람의 삶을 성공에로 이끌기도 하고 실패로 이끌기도 합니다.
또한 습관의 경우에는 그다지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도 않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고도의 지적인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많은 습관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좋은 습관이고
어떤 것은 꼭 고쳐야하는 습관일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3살 버릇이
80살"까지 간다고 했던가요, 그런 습관을 고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그래서 서양 사람은 "습관은 제 2의 천성"이라고 이야길
하나 봅니다. 요즘은 지적인 능력과 재능보다는 평소에 자신이 꾸준히
해왔던 습관 때문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자주 보게 됩니다. 통신과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이렇게 작은 습관을 꾸준히 키워온 사람들의
모임이 많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를 잡기도
합니다. 그들은 프로는 아니지만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에 기쁨을
느끼고, 그 좋아서 하는 일 때문에 인생의 보람을 느끼기도 합니다.
사제가 사제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신학적인 지식과 영적인
능력과 사목자로서의 재능이 필요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제를
사제답게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래서 사제로서 존경을 받고,
사제로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어쩌면 작지만 좋은
습관들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박사학위를 받으셨던 분도, 인간적인
재능이 뛰어나셨던 분도 때로 좌절과 절망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사제가 사제로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습관들의 실천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 중에서, 고쳐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습관 중에서 계속
지켜나가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제로서
가져야할 바람직한 습관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신부 -
◈ [청주] 근본에 충실하라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가해 1월26일 목요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 10,1-9
근본에 충실하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돈 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10,4)고
하셨습니다.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라 하시며 홀로서기를
바라셨습니다.‘인사는 왜 하는가?’생각해 보면 사랑과 존경에서
합니다. 인사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본래의 의미를 잃을 때가 많습니다. 잘 보이려 하고,
인정받으려 하며 그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또 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근본은 잃은 채 껍데기에 매달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돈 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인사까지 하지 마라.’
는 것은 한 마디로 ‘한 눈 팔지 마라’,‘양다리 걸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소명을 받았으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마음을
쏟아야지 어디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야 되겠습니까?
언젠가 익명의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그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 의탁하며 기도하라고
하시며 신자들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더 많은 관계를 맺어야 할 텐데 ‘끊어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오로지
주님 안에 머물라는 사랑의 충고였음을 생각 하며감사한 마음을
간직합니다. 인사하다 보면, 다시 말해 사람에게 매이다 보면 진짜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한다는 일깨움을 주십니다. 사람이 정에
매달리다 보면 근본을 잃게 됩니다. 하느님으로 족해야 하는데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인기가 오르는 것 같은데
주님의 눈 밖에 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 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주님을 생각하면 나의 마음은 기쁘고, 나의 하느님 생각만
하면 나의 가슴은 뛰노라”)(이사61,10). 하느님만을 갈망하고
즐거워해야 하거늘 인간적인 욕망이 왜 그리 강한지 모르겠습니다.
바오로는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로마 8,5-6)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도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테오 1,8).하고 권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인간적인 것들에
매이지 않는 삶을 갈망하는 오늘을 겸손 되게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산다는 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단순한 입으로의 고백이
아니라 마음을 거쳐 손발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주일 미사 중 신부님의 강론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성당
안에 요란한 총성이 울렸습니다. 놀란 신자들이 저마다 납작
엎드리거나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쥐었습니다. 그 와중에 한
아주머니가 부랴부랴 꼬마를 안고 성당 문을 향했습니다. 문가에
이르렀을 때 할아버지 한 분이 ‘나갈 필요 없다’며 말했습니다.
“난 사람들이 오늘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댁의
아들은 신부님이 10년 동안 한 것보다 더 큰 일을 한 거라구요!”
할아버지는 총성이 꼬마의 장난감 총에서 난 소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역시 삶의 경륜이 중요합니다.
- 청주 교구 청주 성모병원 부원장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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