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왔던 그이, 성은 김이요 이름은 장철인 자가 다시 돌아왔다.
찬 바람과 손잡고 오는 그는 주부들의 어깨를 은근히 짓누르는데, 왔다 가고 나면
일년이 편안한 고맙고 보람찬 손님이기도 하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배추밭이기에 행여 얼릴새라 배추덩치가 커지는11월엔
나날의 기온 변화에 주목하게 되는데, 11월 23일 토요일 드디어 배추를 거둬들였다.
묶으면 괜히 진딧물만 더 생기더라며 묶지 않아 제 멋대로 활개친 배추는 속이 차서 묵직했다.
우리 몫은 서른포기면 되는데, 매년 하는 김장량은 40포기.
올해는 늘 심던 불암 3호가 아닌 모종상인이 권하는 새 품종을 심었는데 배추꺼풀은 얇고
속은 꽉꽉 차서 어찌나 무겁던지 집까지 옮기느라 옆지기와 땀좀 흘렸다.
옆지기가 밑둥에 열십자로 칼금을 내 주면 소금물에 한 번 굴렸다가(1시간쯤 둔다)
반으로 갈라 줄기부분만 소금을 쳤다.
그런데 김장에 절대적 필수품은 저 장화라는 것.
운동화 차림으로 절이고 배추 씻고 하노라면 발이 젖기 일쑤여서 늘 춥고 고달팠다.
배추가 절여질동안 찜통에 마른명태 머리, 표고버섯, 다시마, 멸치,대추, 양파, 대파, 무 등을 넣고
오래 끓였다. 한쪽엔 압력밥솥에 찹쌀을 푹 익히고.
건데기 건져낸 다시 물을 식혀서 고춧가루 여덟근을 풀고 찹쌀풀도 합쳐서 저었다.
이렇게 고춧가루 먼저 풀어 둬야 양념 빛깔이 곱다.
열시간 정도 절인 배추를 씻는데 꺼풀이 얇아 빨리 절여진듯 숨이 약간 더 죽어 아쉬웠다.
거듭 배춧잎을 떼먹어 보곤 했는데 하얀 부분은 적당한데 잎 부분의 간이 좀 셌다.
김장 맛을 좌우 하는 요소는 여러가진데, 좋은 배추를 적당히 절이는게 제일 중요하다.
우리집은 싱겁게 먹는 편인데 한끼에 김치 한쪽이 소비되도록 '삼삼하고 맛깔나게'가 컨셉이다.
예전엔 늘 앞집과 같은 날에 김장을 했다. 배추 사러도 같이 가고 문 열어 놓은 채 오가며
서로 간도 봐 주고 하면서 즐겁게 김장을 했는데 지금은 서로 다른 공간에 살아서 아쉽다.
김장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것도 단순히 김치맛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늦봄에 담그는 젓갈, 여름의 천일염과 함께 사시사철의 정성이 담기고 땅에 묻어 보관하는 김장독의 지혜와 남녀노소가 참여하고 친척이나 이웃간의 품앗이 풍습, 나눔의 정이 있는 공동체의
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문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음이다.
올 김장맛의 기대는 이 새우젓갈이다.
10월말에 친구의 청으로 동학사, 갑사, 마곡사 순례에 동행했는데 귀가길에 젓갈의 메카
강경에 들러 오젓보다 두배 비싼 이 육젓을 샀음이다.
집 가까운 시장에는 아예 육젖은 안 나와 늘 오젓과 생새우를 갈아넣었는데 올해는 육젖과
함께 생새우를 갈아 넣었다.
그외 끝물 홍고추와 베란다 감박스에서 홍시를 골라 껍질 벗겨 갈아서 양념에 넣었다.
홍시는 자연 단맛에다가 김치를 잘 안시게 한다고 들었다. 배워서 남 주는 건 내 철학.
무, 갓, 잔파, 미나리도 다듬어 씻어 준비했다. 미나리는 은수저나 동전을 넣어 거머리 확인하기.
수육거리 고기도 준비.
김장 거든다고 일찍 들어온 딸애가 여러가지 채소를 썰 동안 나는 무채 한 대야를 썰었다.
양념을 휘젓거나 신문지 깐 식탁 위에 비닐을 덮는다거나 절인 배추를 식탁으로 나르는 일 등
자질구레하고 힘 쓰는 일은 모두 옆지기가 했다. 수육 삶는 일도 옆지기 몫.
썰어놓은 속재료를 양념에 버무려 배춧잎 켜켜에 넣으며 본격적 작업에 돌입.
속 넣고 볶은 깨 뿌려 연신 먹어 보고 먹여주면서.
차곡차곡 담은 김치통 주변을 갈끔히 닦고 뚜껑 덮어 김치 냉장고에 넣는 일도 옆지기 몫.
땅을 파서 김치항아리 묻는 작업을 하던 옛남정네들의 현대화된 모습이랄까.
된장과 양파, 대파 넣어 삶은 구수하고 뜨듯한 수육을 김치에 싸서 생탁과 먹으니 이구동성,
"캬, 죽인다!"
한통은 큼직큼직 썬 무를 양념 묻혀 김치 사이사이에 넣었다.
내년 봄쯤 꺼내 먹으면 배추와 무가 서로 어울려 맛있을 것이다.
아는 이웃과 모르는 남에게 줄 열포기정도는 따로 찜통에 담아두고 김치통을
냉장고에 넣고나니 일년의 숙제가 끝난 홀가분함에 노동의 피곤도 잊을레라.
첫댓글 아욱~~~~
점심 먹었는데도 침이 흥건~~~~~^^
아욱~~~~ (2)
저희집은 어제 했는데 수육에 김치 곁들여 소주 1병하는 바람에 낮부터 헤롱헤롱 했슴돠~ㅎ
김장풍경이 어떤이들께는 아욱국을 떠올리게 하나보다^^
하하하하하 .. 내가 못먹는 아욱국!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