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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의 의미와 상징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숫자들은 그 종류와 용례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숫자들과의 연관성을 찾는 의미에서 구약성경과 계시록에 동시에 등장하는 숫자들만으로 그 연구범위를 제한하여 살펴볼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숫자 “1”은 기본수이며 모든 다른 숫자들이 이 “1”에 의존한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 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1”은 시작을 뜻하며 그것 자체로서 완전해서 그 어떤 다른 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어떤 수와도 독립하여 홀로 서있어 독특하며 불가분을 표시한다.
“1”의 의미는 기수(基數)로써는 “통합(Unity)”을 서수(序數)로써는 “제일(Primacy)”을 의미하여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결론을 맺는다.한편, 클라렌스 라킨은 숫자 “1”은 하나님의 일치성을 상징한다(막 12:32; 요 10:30; 엡 4:4-6)고 주장한다. 그는 성경에서 한 몸, 한 성령, 한 소망, 한 분 주,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의 일곱 가지 일치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 “2” 클라렌스 라킨은 “2”를 혼인을 통한 “연합”을 상징하는 “연합의 수”로 본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단 키슬러는 “2”를 창세기 1장의 창조기사와 그 밖의 성경말씀에 근거하여 “나눔”이나 “분리”를 의미한다고 본다. 한편, 이상과 같은 “2”라는 수사는 없으나 의미상 “2”를 지시하는 내용은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창 1:7), 아담과 하와(창 3:20), 내 백성과 네 백성(출 8:32), 옛 언약과 새 언약(렘 31:31-32), 가인과 아벨(창 4:1-2), 이스마엘과 이삭(창 16:11), 야곱과 에서(창 25:25-26), 와스디와 에스더(에 1:9),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창 3:15) 등 허다하다. 이상과 같이 “2”는 “구분(division)과 분리(separation)”, “차이(difference)와 보안(replacement)”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 “3” E. W. 벌링거는 “3”은 입체적, 본질적, 전적, 완전한 것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에 의하면 “한 하나님 안에 세 분”이 계시기 때문에 “3”은 신성과 관련 있는 숫자이다. 천사들은 “거룩, 거룩, 거룩”-삼위일체의 한 분 마다 하나씩-이라고 세 번 외친다(사 6:3).
구약성경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왕상 17:21-22),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왕하 4:16-36),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진 사람의 시체(왕하 13:21) 3명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3”의 의미는 거룩한 완전수(perfect)이며 완성수(completeness)로써 “연합 및 협력(union)”, “부활(resurrection)”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삼위일체의 교리가 확립된 후 “3”이라는 숫자는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 “4” 클라렌스 라킨은 “4”를 “세상의 수”라고 말한다. 에덴 동산에서 흘러나온 강은 네 방향으로 나뉘어져 있다(창 2:10-14). 에스겔은 환상 중에 네 얼굴과 네 날개를 가진 천사를 보았다(겔 1:5-10). 환상 중에 다니엘이 본 세상의 큰 세력은 바빌로니아, 메데-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넷이었다. 놋제단은 각기 네 면과 네 뿔이 있었다. 단 키슬러에 따르면 “4”는 첫 번째 창조(創造) 혹은 육(肉)과 관련이 있다.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는 육체를 의미한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빛들에 대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창 1:14)” 4가지가 언급되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 때 창조하신 “사람, 육축, 기는 것, 공중의 새(창6:7)” 4가지와 관련하여 말씀하셨다. 창세기 7장 23절에 같은 내용이 나타나는데 육축 대신 짐승이 사용되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4”는 특별히 지상세계와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4”는 “세상 수(world number)”이며 “창조수(creation number)”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 “5” 단 키슬러는 “5”는 “은혜”를 의미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민수기 3장 46-48절에 나오는 “5세겔”은 구속(속죄)과 관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지불된 5세겔은 우리가 구속된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의미한다. 성막에 있는 놋제단은 길이가 5규빗이고 넓이가 5규빗이었으며 5가지의 기구들과 관련이 있었다(출 27:1-3). 성막 울타리는 5규빗 높이였다(출 27:8). 은혜는 성도를 사방에서부터 안전하게 안에 넣는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5”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wonderful grace)를 상징하는 “은총”과 "구속(redemption)”의 의미를 가진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 “6” 클라렌스 라킨는 “6”을 “인간(人間)의 수”라고 정의한다. 아담은 제 6일에 흙으로 만들어졌고, 엿새 동안 일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히브리인 노예의 봉사 기간은 6년이었고, 땅은 6년 경작한 후 7년째에는 휴경(休耕)하게 되어 있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기까지 6일간 기다렸다(출 24:15-18).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리고 성(城)을 얻기 위해 6일간 여리고 성을 돌고 7일째 함락시켰다(수 6:1-20).
솔로몬 보좌에는 여섯 개의 계단이 있었다(왕상 10:19).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간의 모형인 느브갓세살 왕이 자신의 형상을 본 떠 금 신상을 만들어 백성과 이방인들에게 경배하라고 명령하였는데(단 3:1-30), 이것은 장차 짐승(적그리스도)이 나타날 때에 그 앞에서 거짓 선지자가 사람을 명하여 만들게 될 “짐승의 형상”의 상징인 것이다(계 13:13-18). 단 키슬러는 “6”은 사탄과 관련된 숫자이며 사람에 대한 사탄의 영향과 사탄의 악한 행위와 거짓 예배를 의미한다고 본다. 십계명 중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출 20:13)”로 살인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은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8:44)라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그들은 6가지를 했다.
“①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② 번제(燔祭)를 드리고 ③ 화목제(和睦祭)를 드리고 ④ 앉아서 먹고 ⑤ 마시고 ⑥ 일어나서 뛰놀더라”(출 32:6).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6가지 식욕(食慾)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민 11:4-5)을 품었다. 느브갓네살의 신상은 광이 6규빗이었고, 6가지 악기가 연주될 때 모든 사람은 신상 앞에 절하도록 되어 있었다(단 3:1-5). 벨사살 왕과 귀인들은 6가지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했다(단5:4). 이상과 같이 “6”은 완성(完成)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부족하다. 인간은 제6일에 창조되었고 그래서 “6”은 인간의 표시 숫자가 되었다. “6”은 “인간의 불완전성(human incompleteness)”을 의미하고 인간의 미완성(未完成)의 슬픈 상태를 반영하는 “인간 수”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 “7” 클라렌스 라킨은 “7”을 “완전함” 혹은 “계시의 완성을 나타내는 수”라고 말한다. 이 수는 3과 4의 합이다. 이 수는 하나님의 수인 동시에 세상의 수로써 성경에서는 다른 어떤 수보다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클라렌스 라킨은 구약성경에 “7”이 등장하는 부분을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안식일은 한 주의 마지막 날인 칠 일이었고, 에녹은 아담의 칠 대 손이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후 칠 일간 은혜 기간이 있었으며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하여 칠 년간 봉사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칠 년씩의 풍년과 흉년이 들었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제사장이 백성들 앞에 서서 행진 했으며, 모든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서 성을 일곱 바퀴 돌았다.
성막(聖幕) 안에는 일곱 가지가 있는 금 촛대가 있었으며, 땅은 육 년간 경작한 후 칠 년째에는 휴경하였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데 칠년 걸렸으며, 완성 후 칠 일간 잔치를 열었다. 욥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으며, 욥을 방문한 친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칠 일 낮과 칠 일 밤을 땅바닥에 앉아 있었다. 후에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일곱 마리의 수송아지와 일곱 마리의 숫양을 번제물(燔祭物)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나아만은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었다. 제물의 피는 속죄소 위에 일곱 번 뿌렸고(레 16:14), 하나님이 명한 일곱 절기 가운데 몇은 칠 일간 계속되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소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레 32:15)”
"7"이란 숫자는 여리고 성의 완전한 파괴와 관련이 있다.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① 남 ② 여 ③ 노 ④ 유 ⑤ 우 ⑥ 양 ⑦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수 6:21). 스가랴서와 다니엘서에서는 “7”이란 숫자가 강조되어 있으며, 창세기 12장 2-3절에는 계약의 “7” 부분이, 그리고 출애굽기 6장 6-8절에는 이스라엘의 7중(重) 약속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7”은 “신적 충만(divine fullness)”, “만족(satisfaction)” 그리고 “완성(perfection)”과 “완전(completion)”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 “8” “8”이란 숫자는 “새로운 탄생의 숫자”라고 단 키슬러는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모든 사내 아기들은 생후 8일째 할례 받을 것을 명령하셨다(창 17:11-14).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누구나 백성, 즉 유대 민족 중에서 끊어져 버렸다. 그러면 할례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할례(割禮)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이 할례로 말미암아 옛 아담의 혈통에서 끊어져 새로운 민족이 되고,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클라렌스 라킨은 말한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 “10” 단 키슬러는 “10”이 율법 중에 십계명(출 20:3-17)과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 후에 취한 사라의 여종 하갈(바울은 하갈을 율법에 비유했다)의 예를 들어 “율법”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클라렌스 라킨도 “10”이 “율법”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출애굽기 26장 1-3절은 성막의 앙장 열 폭을 보여주는데 이 열 폭 양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또한 그렇게 하신 “율법”을 의미하며, 그렇게 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은혜를 가져왔다. 율법은 가난하여서 기업을 팔아야 하는 자의 기업 무를 친척을 허락했다.
보아스가 엘리멜렉과 그의 두 아들의 기업을 무를 때에 성을 장로 열 명 증인으로 세웠다(룻 4:1-11). 여기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하여 증인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롬 3:21).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 “12” 단 키슬러는 “12”를 “신의 능력, 다스림, 혹은 권위(權威)”를 의미한다고 본다. 심판에 해당하는 숫자 “11” 다음에 오는 숫자로써 모든 것에 대한 심판을 능가하는 능력을 하나님은 갖고 계신다. “12”는 “4”의 3배수이다. “3”은 “부활”이며 “4”는 “창조”이다. 그러므로 “12”는 “창조를 다스리는 하나님”이라는 다스림의 존칭을 표시한다. 부활이 없이는 창조를 다스리는 하나님을 가질 수 없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질서는 논리적이고, 간단하고, 쉽고, 그리고 명백하게 보인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 “40” 노아의 홍수 때 비가 사십 주야로 내렸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40년, 사막에서 40년,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다. 가나안에 들어갔던 열 두 정탐꾼은 40일 동안 정탐했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했다. 사울과 다윗, 솔로몬은 각각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블레셋 장군 골리앗은 40일간 이스라엘을 조롱했다. 니느웨 성은 40일간 회개했다. 엘리야는 40일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가 산 위에 있을 때 40일 동안 시험을 받았다(출 24:18; 32:1). “10”의 4배수가 40이다(4와 10은 자연인과 율법의 숫자이다). 율법 아래의 자연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시험에 빠진다. 성령시대(聖靈時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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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