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 in the Sun -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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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의 피보다 붉은 화염이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금씩 사그라 들었다. 피냄새와 불타는 냄새 둘다 붉은 냄새. 겐은 부모가 죽을 때도 똑같은 냄새를 맡은 적이 있다. 십수년전의 일이지만 어제있었던 일처럼 기억한다. 너무 놀라 눈물샘이 막혀버린 그 때를 겐은 잊지 않고 있다. 오늘 겐의 눈동자엔 그날이 비치고 있었다.
“ 그-으으으 ”
죽은 줄 알았던 애꾸눈은 좀비처럼 일어났다.
졌다.
세린은 이제 움직일 힘도 없다. 갑자기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위대한 바바리안으로서 싸우다가 죽는 것은 분명 영광이다. 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그 순간 애꾸눈의 칼끝은 이미 하늘에 닿아있다. 아버지, 세리오,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정말 죽는걸까...
“ 잠깐! ”
시드다. 그 역시 약간 그을렸지만, 특유의 여유는 절대로 잃지 않는다.
“ 이미 그자들은 졌다. 살려줘라. ”
애꾸는 주춤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드 상단의 상인은 모두 바바리안 전사들에게 목숨을 잃고 남아있는 자는 열명도 채 되지 않았다. 수십년간 육성해온 상인들이며 앞으로 시드상단을 이끌어 나갈 자들이다. 그들의 목숨을 다시 살리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원혼이라도 달래 주는 것이 도리다. 하지만 시드의 저 눈초리는 뭔가?
“ 살려주라고 하지 않느냐! ”
“ 그렇다면 이자의 팔이라도 자르겠습니다. ”
“ 그따위 팔은 어디에 쓰려고? 그만둬라. ”
애꾸는 시드의 말을 어기지 못한다. 세린과 싸우는 동안 내내 조여왔던 긴장감이 연기처럼 빠져나갔다. 애꾸 역시 더 이상 싸울 힘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강한 상대를 만났다.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났다. 애꾸는 칼을 바닥에 꼳더니 힘이 든 듯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린다.
“ 타아! ”
애꾸를 죽이려고 한 바바리안이 도끼를 들고 애꾸에게 달려들었다. 애꾸의 칼이 번득인 건 순간이었다. 그 바바리안은 이내 두동강이 나고 말았다. 아무리 지쳤다고는 하나 평범한 바바리안 전사를 해치우는 것 쯤이야 순식간이였다.
“ 족장님. 더 싸우시겠습니까? ”
시드가 불트를 다그치는 듯 묻는다. 불트는 차마 입을 열지 못한다. 수십년간을 전장에서 보낸 그이건만 이제는 늙은인가 보다. 목숨을 걸고 이자들에게 끝까지 대항할 힘도 자신감도 없다.
“ 우리쪽의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배상을 해주셔야죠, ”
시드는 주판을 꺼내 계산을 시작했다. 손놀림이 역시 장사꾼답다. 하지만 바바리안들의 눈엔 그것이 가증스러움으로 비쳤다. 패배 자체로도 그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인데 배상금까지 물어줘야 할 형편이다.
“ 대충 5억 제니정도 물어주시면 되겠군요. 원래는 5억하고도 10만 6천 제니지만 5억 제니만 물어주십시오. ”
“ 내 목을 가져 가시오. 수치심 속에서 살아갈 용기 따윈 없소. ”
“ 족장님의 목이야 5제니도 안됩니다. ”
“ 뭐라고! ”
바바리안들이 참아왔던 울화를 시드가 터뜨렸다. 그러나 그들은 싸울수가 없다. 그들 모두가 덤벼도 애꾸 하나를 이길 수 없음을 안다.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시드는 쓴 웃음을 흘렸다.
“ 돈이 없다면 사람이라도 받아야 겠군요. ”
시드는 뭔가 생각하고 있었던게 있는 모양이다. 결국은 노예인가...
“ 세린과 세리오를 가지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필요없습니다. 대신 5억 제니는 100년에 걸쳐 갚으십시오. 여기에 5억 제니에 관한 상세내역을 적어 놓을테니 시간나면 훑어 보십시오. ”
시드는 펜과 종이를 꺼내더니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내역을 꼼꼼히 적는다. 실제로 그런 그의 모습이 귀여워서 시드 상단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 난 누구에게도 안가. ”
실신하듯 울부짓던 세리오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리곤 다시 쓰러져서 눈물을 흘린다. 겐은 처음으로 세리오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세리오는 자신이 슬픈 것 보다도 죽은 자들을 위해서, 이 싸움에 고통스러워 하는 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는 듯 했다. 겐은 노라의 제자로써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것이 죄스러웠다. 그의 스승은 착한 자의 편에 서서 죽음을 다하라고 했는데, 첫째로 누가 착한 건지 누가 악한 건지도 모르겠다. 부족과 자신이 살기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분명 싸움을 먼저 건 것은 세린이다. 그러나 수없이 죽어간 목숨 앞에서 주판을 놀리는 시드의 모습도 착한 자의 모습은 결코 아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 독단으로 싸움이 일어난 것이니,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
세린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바바리안에게 모든 것은 절망이다. 시드는 자신의 계산대로 일이 돌아가고 있는 것에 만족한 듯 입가에 미소가 보인다.
7화입니다. 많이 읽어주세요. 언제쯤 제 글솜씨가 늘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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