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녀는 자신의 여행가방을 바라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왜?”
“아니에요.”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숙소로 들어가서 모일거야.”
“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고아되기 싫으면 내 손 놓지 마.”
“네.”
그녀가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차를 타고 호텔로 들어갔다. 주차장에서 벌써 일행을 만났다.
“여어~. 오랜만이다. 몸은 괜찮냐?”
“뭐.. 잘 지냈냐?”
“그렇지 뭐. 오랜만입니다. 유진씨.”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인사 하시죠. 이쪽은 제 와이프 김수정. 이 분은 서완 와이프 임유진씨.”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그 후로도 수십 번 같은 인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열심히 대화하는 서완 옆에 가만히 서 있자니 힘이 들었다. 그녀가 서완의 팔을 슬쩍 잡았다.
“응?”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가까이 갔다.
“잠깐 화장실 좀..”
“응. 저쪽으로 가면 있어.”
“네.”
그녀는 다른 분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 정도 멀어지자
그녀는 한 숨을 내쉬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가식적으로 미소를 짓느라
볼에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후우.. 빨리 내일 되었으면 좋겠다.. 집에 가서 한율이랑 놀고 싶다..”
그녀는 다시 한 숨을 내쉬고는 화장실을 나왔다. 그런데 뒤에서 누가 그녀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녀가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남자가 강한 힘으로 그녀를 안았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려고 하자
입을 손으로 막았다.
“자기야.. 왜 이래?”
그녀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다.. 그 남자다..’
그녀는 놀라 온 몸이 경직 된 채로 발버둥치는 걸 멈추었다.
“그래.. 그래야지.. 핸드폰 번호는 왜 바꿨어?”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았다.
“이러지 말아요..”
“큭.. 갑자기 웬 존댓말?”
“여긴 내 남편이 있어요. 어서 풀어줘요.”
“이따 밤 10시에 밖에 정원에 있는 조각상 앞에서 기다릴게.”
“싫어요.”
“싫어?”
“네. 싫어요. 그만 헤어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남편을 사랑해요.”
“그랬지.. 항상 서완을 사랑한다고 했었어. 하지만.. 날 거부하지 않았잖아.. 이러지 마. 연락이 안 되어서 내가 집으로 찾아갈 생각까지 했었단 말이야.”
“제발.. 그만 헤어져요.”
“오늘 밤 10시. 안 나오면 지난번에 보낸 사진.. 그것보다 더 한 사진들을 여기 모인 사람 모두 다 보게 될 거야.”
“제발.. 그러지 말아요.”
“날 버리지 말라고 했잖아.. 이따 봐.”
그가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고 포옹을 풀고 사라졌다. 그녀가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그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갑자기 구토가 올라와 그녀는 화장실로 갔다.
****
창백한 얼굴로 그녀가 다가가자 서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몸이 안 좋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좀 씻고 싶어요.”
“그래? 너무 창백한데..”
“내가 좀 볼까?”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연우가 보였다.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연우씨..”
“다들 부부동반이라 안 오려고 했는데.. 아픈 분이 계셔서 다행이네요.”
그가 웃으며 다가왔다. 유진이 희미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연우가 얼음물이 담긴 컵을 갖고 왔다.
“마셔요. 어지러운 게 좀 가라앉을 거예요.”
“고마워요.”
“피곤하죠? 다들 유진씨를 아는데 유진씨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네.. 배려해 주시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게 더 힘든 것 같아요.”
“나쁜 녀석들이 아니라..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네. 고마워요.”
“별 말씀을.. 노래 연습 많이 했어요? 나 기대 많이 하고 왔는데?”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주로 발라드 불렀다면서.. 왜 다들 기대 한 대요?”
“가수처럼 노래 잘 하시거든요.”
“이런.. 이번엔 트로트인데..”
“하하하.. 더 기대가 되는데요? 하하하.”
연우가 웃자 서완이 인상을 찡그리며 다가왔다.
“어때?”
“너무 긴장해서 그런 것 같아.”
“괜찮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저쪽에 가 볼게요.”
“네.”
연우가 가고 그 자리에 서완이 앉았다. 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서완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긴장 돼? 그럼 그냥 돌아가자.”
“나만.. 돌아가면 안 될까.. 생각 중이에요.”
“그런 게 어딨어. 당신 가면 나도 가는 거야. 바람 좀 쐬 주려고 온 건데.. 아니면 우리 둘이 따로 있던가.”
그녀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럴 수 있어요?”
“그래. 싫으면 다른 데로 옮겨서 우리 둘이 보낼 수 있어. 그걸 원해?”
그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당신.. 방금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지?”
“네?”
“단 둘이 있으면.. 내가 못 참을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아?”
“네?”
그녀는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
“서완씨..”
“응?”
“배배 꼬이는 거 너무 싫어요. 비밀 없는 거 맞죠?”
“응.”
“당신 상처 입힐까봐 두렵지만.. 지금은 그 사람이 더 두려워요.”
“무슨 소리야?”
“그 사람.. 여기 있어요.”
“그 사람? 누구?”
그가 잠시 그녀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가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무슨 소리야?”
“아까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누가 뒤에서 잡아 당겨 끌어안았어요. 얼굴을 못 보게 해서.. 제대로 못 봤어요.”
그가 인상을 찡그린 얼굴로 로비를 훑어보았다.
“뭐래?”
“걱정했다면서.. 핸드폰 번호는 왜 바꿨냐.. 보고 싶었다..”
“이런 젠장..”
“밤 10시에 정원에 있는 조각상 앞에서 기다린대요.”
“그래서 뭐라고 했어?”
“헤어지자고 했어요. 난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랬어?”
“그런데 이상한 말을 했어요.”
“응?”
“내가 항상 당신을 사랑한다고 했었다고.. 하지만 자길 버리지 말라고.. 만약 안 나오면..”
“안 나오면?”
“둘이 같이 있는 사진을 모두에게 전송한다고..”
그가 눈을 감고 턱에 힘을 주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괜찮아..”
“저기요..”
“응?”
“일단 샤워부터..”
“왜?”
“그 사람이.. 여기에 입을 맞췄는데.. 아까 토했는데 또.. 토할 것 같아요..”
그녀가 자신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정말 다시 토할 것처럼 그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잠시 후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테라스에 서 있던 그가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참.. 못난 놈인 것 같아.”
그녀가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결혼할 때 그랬거든. 남자 믿게 해 준다고.. 행복하게 해 준다고.. 그런데 나에게 믿음도 행복도 느끼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행복을 느끼려고 했던 것 같아.”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에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그 남자를 당신이 여기로 부른 건 아닐까, 친구들 앞에서
나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해 당신이 꾸민 일은 아닌가.. 하.. 이런 생각하는 남편을 어떤 여자가 믿고
따라와 주겠나.. 믿음을 주려면 내가 먼저 믿었어야 했는데 말이지. 나는 전혀 당신을 믿지 못하고
당신이 내 뜻대로 행동해 주길 바랬어. 이런 남자한테서 무슨 행복을 느끼겠어?”
“그러지 말아요. 절대로.. 당신 탓이 아니야. 자책하지 말아요. 제발.. 제발.. 기억이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내가 다 해결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당신한테 돌아갈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미안해요.. 이런 여자라서..”
“그 사진 봤어?”
그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봤구나.. 아직 갖고 있어?”
“지우려고 했어요. 하지만 햇살에 비쳐서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남자의 분위기라도 기억해야 할 것 같아서..”
“보여 줘.”
“시.. 싫어요.”
“보여 줘..”
“싫다고요! 싫어요. 차라리 나보고 없어지라고 해요. 이혼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라고 해요. 당신한테 그
런 사진 못 보여줘요.”
“내가 아는 얼굴인가 싶어서 그래.”
그가 천천히 다가오자 그녀는 핸드폰을 등 뒤에 숨기고 뒷걸음질을 치며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지 마요. 상처주기 싫어요..”
“나도 그래. 더 이상 당신 상처 주기 싫어. 내가 해결할게.”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벽에 등이 닿자 그녀가 핸드폰을 부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더 빨랐다. 그가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열어보았다. 그녀가 그의 등 뒤에서 안았다.
그녀의 온 몸이 떨렸다. 처음엔 자신이 떨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그녀보다 그가 더 많이 떨고 있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녀가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다.
“누군지 알아.”
그가 핸드폰을 벽에 던졌다. 그녀가 움찔했다. 그가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 떼어냈다.
“집에 가서 짐 정리해서 나갈게요. 미안해요. 정말..”
그녀가 몸을 돌리려고 하자 그가 그녀를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고개를 들어
거칠게 입맞춤을 했다. 그녀가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잠시 후 그가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져 나갔다. 눈물을 흘리며 그가 그녀를 보았다.
“미안해.. 지금은 나한테서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그녀가 마음에 상처를 입고 몸을 돌리려 하자 그가 그녀의 얼굴을 감싸 자신을 보게 했다.
“틀려.. 당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저 침대에서 당신을 지금 당장 안고 싶어서 그래.
하지만 그건 옳지 않아. 난.. 부드럽게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 당신을 상처 입히고 싶어서..
당신을 힘들게, 아프게 할 거야.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래. 조금만.. 떨어져 있어 줘..
내가.. 진정할 때까지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가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그녀의 가슴을
비수로 찌르듯 아프게 들려왔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양 손바닥
안으로 눈물을 흘렸다.
연우의 방 문을 두드린 서완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문을 열고 연우가 나왔다.
“저녁 먹으려면 시간 있는데 왜? 유진씨랑 좋은 시간 보내지?”
“나 좀 보자.”
“어.. 그래.”
서완이 연우 방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잠시 후 연우가 소리쳤다.
“뭐? 진짜? 그 자식 미친 거 아니야? 누굴 건드려? 아니.. 간댕이가 부었구만. 여길 왔다고?”
서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 10시에 정원에 있는 조각상 앞으로 유진이를 내보낼 거야.”
“미쳤어?”
“그 녀석 잡으려면 별 수 있나?”
“위험해. 흉기라도 들고 오면 어쩌려고?”
“그럼 더 좋지. 감옥에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으니까..”
“인마..”
“그 녀석 부모님과 안면이 있으니까.. 그 정도에서 끝내는 거야. 안 그럼..”
“좋아. 경찰에 연락하지. 대신 나도 같이 간다. 혹시 모르니까..”
“응..”
“지금 유진씨 상태는 어때?”
“안 좋아. 불안해하고, 미안해하고.. 심지어 사진도 안 보여 주려고 하더라.. 나한테 들키는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가 상처받을까봐.. 내가 8년을 함께 산 그 여자는 아니야. 이젠 확실히 알겠어.
완전히 다른 여자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아내는 내가 보호해 줄 거야.”
“그래.. 잘 생각했다.”
연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
그날 밤. 10시. 조각상 앞에서 유진은 잘 모르는 그 남자를 기다렸다. 몇 분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그녀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 말까? 하지 말자.. 위험해.. 내가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되었었나봐..”
서완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해요. 못 할게 뭐 있어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데?”
“꼭 들어준다고 약속해요.”
“뭔데..”
“약속부터 해요.”
“알았어.”
“설령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대도 나서지 말아요. 나 때문에 당신 몸에 상처 하나라도 나면 정말 가만 안 둘 거예요. 그리고.. 한율이에게는 부디.. 이런 엄마였다는 걸 알려주지 말아 주세요.”
“무슨.. 유언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약속했어요.”
“그렇게 안 되게 할 거야.”
“네. 믿어요.”
유진이 그에게 안겨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몸을 돌려 조각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검은 그림자가 쑥 나오더니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있는 힘껏 그를 밀어냈다.
“왜 그래?”
“이제야 얼굴을 보네요.”
“무슨 소리야?”
“나 사고 났던 건 알고 있죠?”
“응.”
“사고 전의 일을 기억 못 해요.”
“뭐?”
“당신을 모른다고요. 알고 싶지도 않아요. 내가 어떻게 당신을 만나서..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싫어요. 난 남편을
사랑해요.”
“나도 널 사랑해.”
“그럼 보내줘요. 그리고 나 같은 여자는 잊고 더 좋은 여자. 남편과 아이가 없는 결혼 안 한 여자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도 해요.”
“싫어. 나랑 도망가기로 했잖아. 잊었어? 사고 나던 날.. 나랑 도망가기로 했었다고..”
그녀는 더 이상 충격 받을 일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건..
“도망 안 가요. 지금은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남편과 아이가 있어요. 내가 뭐 때문에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당신과 도망을 가겠어요?”
“유진아..”
“제발.. 부탁이에요.”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내가 당신한테 보냈던 사진은 새 발의 피야.. 나랑 침대에 있는 당신 모습을 남편과 남편 친구들이 보면.. 어떨 것 같아?”
그가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이러지 마요.. 더 이상 그 사람.. 상처 주기 싫어요.”
“나는.. 나는 상처 줘도 괜찮을 것 같아?”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래? 그럼 나랑 키스해.”
“뭐라고요?”
“키스 해 줘. 그럼.. 보내 줄게.”
“사진은요?”
“물론 원본까지 다 없애줄게.”
“그걸 어떻게 믿어요?”
“왜 못 믿어?”
“키스해 주고 나면 나랑 자자고 할 거잖아요. 틀려요?”
그가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원본까지 다 줘요. 그러고 나면.. 못 할 것도 없어요.”
“정말?”
“내말.. 못 믿어요?”
그녀는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매력을 발산했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었다.
“이게 다야.”
“웃기시네..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잖아요.”
“그건.. 지우면 돼.”
“알게 뭐야? 뭐.. 어쩔 수 없네요. 보내요. 이혼하고 외국에 혼자 살면 그만이지. 내가 남편한테 상처주고, 아이한
테 상처주고.. 이혼당하면.. 당신한테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외국에 가면 남자가 없을까? 귀찮게 달라붙는 남자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마음대로 해. 보내든지 말든지.. 아.. 사진 보내고 나면 도망쳐야 할 거야. 내 남편이.. 나는 가만히 이혼하는 선에서 끝내겠지만.. 넌.. 아마 죽일걸?”
그녀가 몸을 돌려 가려고 하자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손을 뿌리치려고 하자 그가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미안해.. 잘 못했어. 그러니까.. 버리지 마.. 응?”
“이거 안 놔? 놓으라고!”
그녀의 비명소리를 들은 서완과 연우와 경찰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상황을 알아차린 남자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그녀를 향해 겨누었다.
“가까이 오지 마.”
“근수야.. 영화 찍냐?”
서완이 그를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형..”
“유진이 이쪽으로 보내.”
“시..싫어.”
“상황 파악 안 되냐? 인마.. 끝났다고..”
연우가 근수에게 말했다. 근수가 눈물을 흘렸다.
“형만 사랑한 거 아니야. 오히려 형은 유진이를 외롭게 했잖아.”
“알아. 그러니까 여기에서 끝내자.”
“싫어. 내가 왜 유진이를 포기해야해?”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니까요..”
유진이 서완을 바라보며 근수에게 말했다.
“뭐?”
“미안해요.. 하지만 난 다시 태어나도 저 사람만.. 저 사람만 사랑할 거예요.”
근수의 팔에 힘이 풀렸다. 유진이 천천히 서완을 향해 걸음을 걸었다. 잠시 후 근수가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서완을 겨누었다. 모두가 긴장한 모습에 유진이 고개를 돌렸다. 근수가 총을 발사하려는데
유진이 몸을 돌려 막았다. 유진의 귀에 먹먹한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달려가 근수를 결박했고,
연우의 손이 바쁘게 유진의 옷을 벗겨 상처를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셔츠를 벗어 돌돌 말아
그녀의 상처를 눌렀다. 서완은 유진을 불렀다. 유진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 정말이에요.”
“알았어.. 그만 말해..”
“다시 태어나도.. 난 당신만.. 사랑할 거예요.”
“알았다니까..”
그가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안았다.
“그런데요..”
“응?”
“다시 태어났을 때는 하나도 빠짐없이 당신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만.. 말해..”
“사랑해요.. 한율이에게도.. 사랑한다고.. 전해 주세요..”
그녀가 극심한 고통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유진아.. 유진아!”
“빨리 옮기자.”
“응.”
서완이 유진을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
유진은 다시 병실의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앞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서완의 얼굴이 보였다.
“유진아.. 깼어?”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살았네요?”
“그래.. 살았어..”
“다행이다..”
“그래.. 정말.. 다행이야..”
그가 그녀를 안고 울었다.
“남자가.. 왜 울어요..?”
기운이 별로 없는 그녀가 힘없이 말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
“후후.. 네.. 저도.. 죽는 줄 알았어요.”
“다 나으면 혼날 줄 알아.. 어디서.. 배우출신 아니랄까봐.. 영화 제대로 찍었어..”
“그래도 다행히 해피엔딩이잖아요. 전 해피엔딩이 좋더라고요..”
그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안았다.
“야야.. 살살 해라. 상처 벌어진다.”
연우가 서완의 어깨를 툭 때리며 말했다.
“좀 어때요?”
“연우씨..”
“내 덕에 산 거 알아요? 서완이는.. 쓸모가 별로 없었어요.”
“후후... 그랬어요?”
“인마! 내가 왜 쓸모가 없냐? 이 여자 안고 달린 게 누군데..”
“재빠르게 처치하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상 치뤘어.”
“쯧.. 물론 그렇지만..”
“연우씨 고마워요..”
“나중에 갚으세요.”
“어떻게 갚아요?”
“유진씨 같은 여자 보면 재빨리.. 응? 재빨리 연락처 받아서 나한테 소개시켜 줘요.”
“그렇게 할 게요.”
“어~어? 연우한테 왜 그렇게 오래 웃어? 그만 웃어.”
“또 시작이다.. 으이구.. 그럼 쉬어요.”
“네.”
연우가 나가고 서완이 그녀를 편하게 눕혔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긴.. 감옥가고, 자료는 없어지고.. 잘 됐어.”
그녀가 씁쓸한 표정을 짓자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내가 살아있는 것이 당신한테 좋은 일일까.. 이번에는 잘 넘겼지만..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또 바람피우려고?”
“누가 그런대요? 예전에.. 예전에 상대가 또 나타나면 어쩌냐는 거죠.”
“쓸데없는 생각 그만 하고 쉬어. 얼른 나아.”
“한율이 보고 싶어요.”
“내일 데려 올게.”
“오늘은 안 돼요?”
“응. 안 돼.”
“왜요?”
“오늘은.. 내가 당신을 독차지 하고 싶으니까..”
“치.. 알았어요.”
그녀가 웃으며 대답하자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짧은 입맞춤을 했다. 그가 손을 들어 자신의 눈물을 닦았다. 유진이 손을 뻗어 그의 눈물을 닦았다. 그가 그녀의 손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어째.. 뽀뽀를 너무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요?”
“빨리 낫기나 해.. 남은 일생.. 죽도록 당신만 사랑할 테니까..”
“후후.. 정말 빨리 나아야겠네요..”
“응. 제발.. 그래 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그는 정말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했다. 심지어 회사일도 병원에서 해결할 때가 많았다.
“이젠 괜찮아요. 회사 나가세요.”
“내가 할 일은 제대로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그가 서류에서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귀찮나?”
“그건 아니지만.. 버릇 나빠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내가 막..”
“막 그래 줘. 투정도 부리고, 질투도 하고, 애교도 부리고..”
“질투.. 애교.. 그런 걸 어떻게..”
그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그의 손 위에 자신의 다른 손을 올려놓았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
“아줌마. 괜찮아?”
수혁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응.”
“대단해.. 무슨 영화처럼..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총을 갖고 있을 수 있나?”
“불법이지.”
“아하~.”
“엄마가 아줌마 우울할 때 초콜릿 먹는다고 해서 사 왔어.”
“고맙다.”
그녀가 수혁이 건네는 상자를 받았다. 뚜껑을 열자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들이 보였다.
“여자친구 솜씨가 좋구나~.”
“그렇지 뭐..”
“짜식.. 잘 해 줘.. 여자는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잘 해주면.. 끝이야.”
“아줌마.. 나도 알거든?”
유진이 수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아줌마.. 노래방은? 했어?”
“아.. 맞다.. 못했어.”
“뭐야.. 기껏 없는 시간 빼서 특별훈련 시켜줬더니..”
“미안해..”
“의상은?”
“집에.. 아주머니에게 전화해서 가져가시라고 할게.”
수혁이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말했다.
“몸조리 잘 하셔~. 나이가 있어서 상처가 금방 낫지는 않겠다.”
“이 자식이..”
수혁이 소리를 내어 웃고, 그녀도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데 병실문이 열리고 싸늘한 표정의 서완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 왔어요?”
수혁이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고는 “안녕하세요?” 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 수혁을 바라보며 유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가 수혁이구나.”
“네. 사장님. 그럼.. 가보겠습니다. 얼른 쾌차하세요.”
“그래. 다음에 보자.”
“네.”
수혁이 방을 나가는 걸 서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았다.
“그 새를 못 참고 매력발산을 해?”
“또.. 또.. 아무 때나 매력 발산 안 하거든요? 병실에 누워 떡진 머리로 무슨 매력발산.”
“그건 뭐야? 저 자식이 갖고 온 거야?”
“네. 초콜릿이래요.”
“내가 더 좋고, 비싼 거 사줄 테니까 버려.”
“어머? 이걸 왜 버려요? 다 먹을 거예요. 냉동실에 넣고 아껴가면서..”
“뭐?”
그가 다가와 그녀 옆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감쌌다.
“수혁이한테 질투하는 건 좀.. 그래요.”
“알았어.”
“치.. ”
“알았으니까.. 저건 버리자. 응?”
“못 살아.. 일부러 그러는 거 누가 모를 줄 알아요? 하나도 재미없어요.”
“그럼 뭐가 재미있어?”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뽀뽀해 줄까?”
그녀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조건이 있지.”
잠시 후 그녀는 욕조에 누워있었다.
“나보다 당신이 더 떨면 어떻게 해요? 욕조에 물도 없구만..”
“얼굴에 안 튀게 잘 할게.”
“네. 부탁해요.”
“응.”
그가 신중히 소매를 걷어 붙이고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샤워기로 적셨다. 샴푸를 손에 덜어 그녀의 머리카락에 거품을 내기 시작했다.
“상처는 어때?”
“잘 낫고 있대요.”
“그래?”
“네. 서완씨..”
“응?”
“숨 쉬어요. 기절하겠어..”
“응.”
“숨..”
“후우....”
그녀가 쿡쿡 거리며 웃자 상처가 아파왔다.
“아..”
“왜? 아파?”
그가 몸을 돌려 그녀의 상처 부위를 보느라 손을 움직이는 바람에 그녀의 눈에 샴푸거품이 잔
뜩 묻었다.
“서완씨.. 따가워요..”
“어? 어? 알았어..”
당황한 그가 샤워기를 잡지 않고 물을 트는 바람에 샤워기가 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완씨~!”
“알았어. 잡을게.”
잠시 후 그와 그녀가 모두 젖었을 때 간신히 샤워기를 잡고 물을 껐다. 그녀가 손을 들어 수건을 잡고
얼굴의 물기와 샴푸거품을 닦고 한 쪽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그를 본
그녀는 “풉..”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서완이 그녀의 두 볼을 부드럽게 감싸듯 쥐고 천천히 고개를 숙이자 그녀의 웃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사랑해.."
"사랑해요.."
서완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입술 위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하자 유진이 눈을 스르륵 감았다.
첫댓글 넘 재밌어요~~~~~
오밤순님 감사해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05 14:4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05 14:5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05 16:0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05 16:03
항상 글들을 볼때마다 다양한 소재의 글 들 감동으로 보고있어요 ^^
맑은언어님. 감사합니다. ^^ 감동이라니요. . 몸둘바를. . ^^;; 내일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오늘 정주행으로 달렸습니다^^
이번 글도 넘 재밌어용~ 작가님! 퐈이팅♡
이하은맘님.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낼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감사합니다!정주행했습니다다음화가기대됩니다
뿌꾸짱짱님. 감사해요~ 내일 올리는 소설도 재미있으실 바래용.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06 19:1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06 19:2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08 22:05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08 23:04
근무중인데 이거 읽는다고 지금 일을 못하고 있어요..ㅜㅜ
아 이런. . 그러지 마세요. . 괜히 혼나시면 어쩝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