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나마 충주호의 절경에 취해보는 신선(神仙)이 되어...
2019년 11월 16일 토요일, 오랜만에 알람벨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시간은 5시30분. 창밖은 깜깜하고 혹시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가족들이 잠을 깰까봐 조용히 짐을 싼다. 특별한 준비는 없었지만 귤 2개, 물, 빵 1개, 양말, 수건, 초콜렛 1개, 휴대용 약통 등을 배낭에 넣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서 양재동 약속장소로 향한다. 아직 11월 중순인데 새벽바람은 몹시 차갑다.
오늘의 산행지는 충북제천과 단양의 경계에 있는 옥순봉과 구담봉이다. 사실 높은 산에 오른다고 했으면 사전에 포기했겠지만 215m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최고점 374m를 거쳐 옥순봉 283m 그리고 구담봉 330m을 가는 코스였기에 만만하게 생각을 하고 산행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양재역에 6시 50분에 내려 집결지로 가는데 피플회장님의 전화가 온다. 10분전이라서 인원체크를 하는가 보다. 7시 정각에 양재동을 출발한다. 내가 탄 차에는 알대장과 멍게 전총무, 그리고 다른차에는 피플회장, 아톰, 꿈푸리 그리고 뜬구름 현총부 등 모두 7명이 오늘의 참가자다. 희용형과 만석형 대신에 마포나루 꿈푸리 멍게가 산행 멤버를 꾸몄는데 특히 전총무 멍게와는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양재역을 떠나 알대장이 운전한 차는 제2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경유해서 집결지 계란재로 향했고, 뜬구름이 운전한 차는 여주를 거쳐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거쳐 집결지로 향했다. 중간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라면을 먹고 국도로 진입했는데 짙은 안개로 충주호의 멋진 모습이 뿌옇게 가려 있었다. 11시 정도 되어 안개가 걷히면 멋진 풍광을 볼 수 있겠지 하고 점점 기대가 커지기도 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아직 다른 차(뜬구름)는 도착을 안했고, 아침식사를 하고 오는 그 시간만큼의 여유 덕분에 30분 먼저 옥순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산행에 앞서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해봤다.
#계란재...토정비결의 이지함 선생이 단양에서 기거할 때 산위에 올라 이곳을 보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여서 이 고개의 이름을 계란재라 붙였다고 한다.
#옥순봉...퇴계 선생이 배를 타고 가다가 같이 승선한 동행들이 이름을 지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은 봉우리의 이름으로 여러 개의 봉우리 모양이 죽순(대나무 싹)과 같다하여 옥순봉이라 지었다고 한다.
#구담봉...물 속에 비친 바위가 거북 무늬를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충주호 수상관광의 절경으로 꼽힌다.
옥순봉에 대한 유래는 퇴계 이황과 관련이 많다. 옥순봉은 조선시대에도 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해 있었는데 당시 단양의 유명한 기생인 두향(杜香)이 옥순봉의 절경에 감탄하여 단양현감으로 부임한 이황에게 이 봉우리를 단양에 포함시켜 달라고 부탁했고 다시 이황이 청풍부사에게 청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옥순봉 절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 새기고 이곳을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황은 부임 9개월 만에 풍기현감이 되어 단양을 떠났고 그를 사모했던 두향은 20여 년 뒤 이황이 사망하자 함께 거닐었던 강선대 아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강선대 옆에는 두향의 묘가 있고 매년 5월엔 두향제를 지낸다고 한다.
계란재 주차장은 한가했다. 관광버스 2대와 승용차 10대 정도...조용히 나홀로 산행을 즐길수 있겠구나 하고 20분 정도 잘 포장된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간다. 촉촉이 젖은 등산로에는 단풍나무 갈참나무 은행나무 낙엽들이 깔려있다. 이젠 가을도 끝자락이구나. 깊게 심호흡을 하는데 산소를 가득 품은 공기가 아주 맑다. 잠시후 약간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데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매주 일요일 마다 광교산 둘레길을 2시간 정도 걸으면서 체력을 조금씩 키워나갔는데 오늘 그 덕을 보는가 싶다. 320m언덕을 넘어 다시 한참을 내려가고 다시 374m봉우리를 오르는데 길이 미끄러워 많이 힘들었다. 돌을 밟아도 나무 뿌리를 밟아도 그리고 낙엽을 밟아도 미끌미끌했고 대여섯번 미끄러졌지만 그래도 넘어지지 않고 굳세게 걸음을 계속했다. 사실은 눈수술 이후에 발바닥과 지면이 닿는 높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조심조심 걸었다. 숲 사이로 충주호의 푸르른 강물이 보이고 커다란 바위 위(암릉)로 생긴 길을 따라 걸으니 등산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거의 다 왔나 보다. 마지막으로 힘을 더 내서 옥순봉 정상에 오른다.
청풍명월 (淸風明月)이란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을 뜻하는데 바로 잠시후에 내려다 볼 그 고장이다. 저 멀리 동쪽아래로 2척의 유람선이 지나가는데 관광안내원의 해설멘트가 20분전이나 10분전이나 똑 같은 내용으로 들려온다. 옥순봉이 이렇고 구담봉이 저렇고 두향이가 그렇고...
옥순봉에 올라 셀프 카메라로 흔적을 남기고 10분 정도 멍때리기를 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들려온다. 단양에 산다는 어느 50대 남성의 이야기... 충주호에 이렇게 물이 가득 찬 경우가 별로 없었고, 저 아래 봉우리는 너무 위험해서 출입을 통제했고, 요기 옆에 있는 출입통제구역을 지나 10m만 가면 옥순대교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그런 얘기였다. 그 순간 멍게와 아톰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산행멤버들의 반가운 목소리들이 계속 들려온다. 단체 대문사진을 찍고 옥순대교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조금전에 지나왔던 삼거리를 거쳐 구담봉으로 걸음은 계속 된다.
저 멀리 구담봉이 보이는데 참 멋지다. 구담봉을 눈앞에 두고 간단히 요기를 하기위해 한자리에 모여 과일과 떡을 먹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먹어본 '김부각'의 아삭아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은 정말 좋았다. 안개도 걷히고 이제 잠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나는 조금씩 체력이 방전되기 시작해서 바로 하산을 했고 6명의 본진은 구담봉을 거쳐 주차장으로 모이기로 했다. 인터넷 블로그에 보니까 매우 가파른 급경사의 철계단을 수백개 올라야만 하는 구담봉이다. (댓글 보충설명 요망)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주차장을 향해 걸어 내려왔다. 어떤 두명의 젊은 친구들이 급하게 내려가는데 벌어 쏘여서 응급조치를 받기 위해서란다. 그러고 보니 멍게도 벌에 쏘였던 것 같다. 주차장에 도착하고 30분 후에 모든 일행들이 안전하게 산행을 마무리 했다. 이젠 오늘의 만찬을 위해 움직일 시간이다.
2시 45분 계란재를 출발한다. 역시 알대장의 차와 뜬구름의 차는 계란재로 왔던 길로 즉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핸드폰으로 식사장소를 알아보고 예약도 하고... 분주하다. 최종적으로 옥수역에 있는 해물찜 식당으로 결정을 하고 가는데 예상 못한 교통체증을 겪게 된다. 이천까지는 최고속도로 잘 왔는데 광주 초입부터 정체 시작. 5시30분 도착예정 시간이 점점 늘어지더니 6시가 넘고 6시20분이 넘고 우여곡절 끝에 6시40분 옥수역에 도착. 조금이라도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미리 번호표를 받아보는 편법(?)까지 동원하면서 특별한 저녁 만찬을 시작되었다.
문어와 낚지 그리고 새우와 곤이(鯤鮞란 물고기의 뱃속에 든 알이나 새끼를 말함. 이리가 맞는 표현이라고 함), 대구살과 미더덕 등 푸짐한 해물찜이 담긴 최홍만 만한 접시가 식탁위에 놓여진다. 게다가 바삭바삭한 파전과 해물찜 양념 비빔밥과 팥죽까지...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11월 17일은 꿈푸리의 생일이라고 이용진이 스스로 한턱 쏜다. (추카추카 감사감사)
시계바늘이 8시반을 가리키고 이제 서서히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서로 집에 가기 좋은 교통편을 정하고 다음 12월 송년 산행을 약속한다. 12월엔 북한산(?). 수지로 가는 지하철안에서 단톡방에 오른 사진을 보며 흐뭇한 시간을 갖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나마 충주호의 절경에 취해보는 신선(神仙)이 되었던 하루였다. 청구영언에 실려 있는 면앙정 송순의 시조를 남기며 글을 맺는다.
십년을 경영(經營)하야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어내니
나 한간 달 한간에 청풍(淸風) 한간 맡겨두고
강산(江山)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첫댓글 마포나루가 산행에 동행하니 마음이 든든하구만. 산행기까지 쓰느라 수고 많았네. 재미나게 읽었네. 꿈푸리와 멍게도 반갑고.
깔끔한 산행기네, 잘 읽었고..
사실, 옥순봉 구담봉 코스가 적절한 듯. 반대로 했으면 옥순봉을 안 갈 수도 있었으니. 구담봉 올라가는 길이 데크가 없었으면 상당히 힘든 코스.오르막 각도가 워낙 커서 난코스. 그만큼 조망은 좋았어요
이날 운전을 도맡은 운전자들에게 감사!
구담봉까지 가는 데 내려가는 계단 250개 남짓, 올라가는 계단 215개 합해서 465개. 진짜 힘들긴 했음. 특히 계단 폭이 좁아 내려올 땐 특히 어려웠고... 암튼 올라가서 바라본 풍경이 일품!!! 규모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도 있고, 바위도 있고, 가성비(?) 일품 산행이었음. 오랜만에 마포가 힘든 걸음 해서 반가웠어!!! 근데 꿈푸리 생일은 11월 15일이야. 하루 전에 지나간 걸 축하한 것이고...ㅎ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이번 산행은 가성비 최고의 산행이었습니다. 해발에 비해 경관은 굿!!! 산행기 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잘읽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다시 또 산행기를 읽고 있습니다 역시 문장이 좋습니다 산행기 되읽기가 취미가 되었습니다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니 세상 참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