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북 굴, 오천항 간재미, 대천항 물잠뱅이 보령의 대표 겨울 맛 술안주로 제격, 묵은지 넣어 끓인 물잠뱅이탕은 숙취해소에 그만
겨울은 바다가 살이 통통 오르는 계절이다. 서해, 남해, 동해를 가릴 것 없이 포구로 가면 신선한 제철 해산물이 지천이다. 그렇다고 전국을 모두 돌 수는 없는 일, 보령으로 가면 가까운 거리에서 세 가지 각기 다른 겨울 별미를 모두 맛볼 수 있다.
구워 먹는 굴 맛이 꿀맛 - 천북 굴 단지 굴 구이
찬바람 부는 겨울에 가장 이름 값 높은 해산물은 굴이다. 굴은 예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랑받았다. 풍부한 미네랄 성분으로 남성에겐 최고의 스태미나식으로, 여성들에겐 어느 화장품보다 효과 좋은 미용식으로 각광받아 왔다.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하얗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굴은 8월까지 산란기를 끝내고 가을부터 살이 오르기 시작해 겨울이 되면 가장 맛있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11월에서 2월까지 잡히는 굴을 최고로 친다. 이 시기 굴은 생으로 먹어도, 무쳐 먹어도, 밥에 넣어 먹어도 맛있다. 하지만 가장 ‘겨울답게’ 먹는 법은 누가 뭐래도 불을 지펴 그 위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구워 먹는 것이다. 지방에선 ‘굴뽕구이’라고 부르는데, 양념 하나 하지 않고 갓 딴 굴 그대로 구워 먹는 맛이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보령 천북면 장은리에는 천북 굴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홍성방조제가 생기기 전 몇 곳의 포장마차로 시작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단지를 중심으로 주변 해안까지 90여 곳의 굴 구이 식당이 몰려 있다. 요즘에는 굴이 제철이어서 조용한 포구는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통영 굴이 유명허다구유? ‘굴 구이’로 치자면 천북이 원조여유. 예전부터 여기 장은리하고 사호리 일대 해변에서 딴 굴 맛이 최고라고 소문이 자자했슈.”
단지 내 ‘민들레 굴 구이 식당’의 신성자 사장은 “천북 굴이 맛있는 이유는 낮에 햇볕이 많이 들고 해수와 담수가 번갈아 드나들며 영양분을 풍부하게 갖춘 개펄 덕분”이라 했다. 옛날에는 양식할 필요도 없이 지천에 자연산 굴이 널려 있었다고 한다.
“굴 따다가 먹을 게 뭐 있겄슈? 그냥 그 자리에서 모닥불 피워 놓고 옷 말리면서 굴을 구워 새참 삼아 먹었었쥬. 그게 세월이 지나면서 굴 구이가 되고 이렇게 굴 단지가 생겼지 뭐유.”
천북 굴 단지는 겨울에만 운영한다. 이곳 식당 주인들은 대부분 천북면에 사는 주민들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를 짓고 농번기가 지난 겨울에는 굴 단지에서 굴 구이를 판다. 예전에는 주민들만 참여해 제비뽑기로 식당 자리를 허가받기도 했는데 요즘은 외부인들도 기존 가게에 자리가 나면 운영할 수 있단다.
이곳에선 예전에 소나무 가지를 물속에 담가놓고 그곳에 굴 종패(종자)가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크는 ‘송지식(松枝式)’을 이용했다. 이 역시 양식의 한 방법이지만 따로 종패를 붙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연산이나 다름없다. 이는 요즘도 마찬가지라서 굴밭을 만들어 두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종패가 붙는 방법을 고수한다.
요즘 천북 굴 단지에 구이용으로 내는 굴은 대개 통영・여수 등지에서 올라온 양식 굴들이다. 홍성방조제가 생기면서 바닷길이 막혀 천북 굴 생산량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즈음 천북 굴은 남해에서 양식한 것에 비해 크기가 작아 구이용으로 쓰기엔 부족하단다. 사람들이 크고 매끈한 굴을 찾으니 맛은 더 좋지만 상대적으로 모양새가 볼품없는 천북 굴만을 내면 오히려 양이 적다고 항의하는 경우가 있어 적당히 섞어서 낸다는 것이다. 자연산 천북 굴을 그대로 구워 먹을 수 없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굴 구이는 겨울 최고의 별미다.
포장마차 식으로 꾸며진 식당 한쪽에 자리를 잡고 굴을 가득 올린다. 빨간 고무 대야에 수북하게 굴이 담겨 온다. 흰 장갑을 끼고 불판에 굴을 가득 올린다. “치익~” 소리를 내며 속이 부글부글 끓던 굴들이 이내 탁탁 소리를 내며 입을 벌린다.
“굴 맛이 꿀맛이네?”
굴 구이 한 입을 먹고 난 기자의 난데없는 ‘아재개그’에 일하던 아주머니들이 ‘빵’ 터졌다. 굴 구이만큼 ‘뜨거운’ 호응이 민망해 굴 까는 일에 집중한다.
“남자는 굴을 더 많이 잡숴야 혀유. 옛날에 그 카사노바란 사람도 굴을 많이 먹고 여자를 몇 백 명이나 만났다 허잖유. 카사노바 입에도 까서 넣어봐, 총각 입에도 까서 넣어봐.”
‘굴 맛이 꿀맛’이라더니 ‘카사노바도 까서 넣어보라’고 하신다. 아주머니들과 농담 따 먹기 하는 재미가 탁탁 소리를 내며 익는 굴 구이 먹는 재미만큼이나 쏠쏠하다.
단지 내 식당에선 굴 구이가 주 메뉴지만 굴 칼국수와 굴밥, 굴 물회도 못지않게 맛있다. 어떤 메뉴라도 소주 한 잔 없인 아쉬워 못 견딜 만큼 주당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다.
굴 단지 내의 식당에선 굴 한 바구니에 3만 원(반 바구니 2만 원)을 받는다. 한 바구니면 4명 정도가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굴 칼국수는 6,000원, 굴밥(2인 이상)은 1만 원 정도다. 민들레 굴 구이(041-641-7058)를 비롯해 비슷한 식당이 밀집해 있다. 어딜 가나 밑반찬이 조금 다를 뿐 굴은 비슷하다.
mini interview 민들레 굴 구이 신성자 사장
“보령 맛 여행은 천북 굴부터 시작혀유”
천북 굴 단지의 수많은 식당에서도 넉넉한 인심으로 입소문이 난 민들레 굴 구이 식당의 신성자 사장은 “남자한테 굴만 한 음식이 없다”고 자랑했다.
“굴은 생으로 먹어도, 구이로 먹어도, 굴밥, 굴칼국수, 물회로 먹어도 되잖유. 보령에 와서는 가장 먼저 굴부터 먹고 여행을 시작허세유”
오도독 씹는 맛이 '재미지다' - 오천항 간재미 회 무침
천북 굴 단지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오천항에 닿는다. ‘오천항’ 하면 단연 키조개다. 전국 키조개 중 60~70%가 이 일대에서 잡힌다. 하지만 키조개는 제철인 3~4월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먹을 수 있기에 ‘겨울 별미’라고 하기엔 그렇다. 키조개와 함께 오천항을 대표하는 별미는 바로 간재미다. 일명 ‘갱개미’로 불리는 간재미는 언뜻 가오리와 비슷한 생김새지만 크기가 작다.
간재미는 <자산어보>에 실린 ‘간잠어’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가오리와 홍어와 더불어 생김새가 비슷해 간재미가 어느 ‘가문’ 출신인가를 따지기도 하는데, 굳이 말하자면 ‘홍어 사촌’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국립수산진흥원이 발간한 <한국 연근해 유용 어류도감>에 따르면, 가오리 종류 중 노랑가오리와 상어가오리를 간재미라 부른다. 가오리 종류지만 형태상 분류로 볼 때 간재미는 주둥이 부분이 뾰족해 홍어와 비슷하게 생겨 홍어과로 정리되었다.
간재미는 서해안에서 주로 잡히는데, 특히 보령, 태안 등이 있는 천수만 일대에서 많이 잡힌다. 2월 말부터 5월까지 가장 많이 잡히는데 오돌뼈를 씹는 것처럼 꼬들꼬들한 식감이 일품이다.
“간재미는 홍어처럼 삭히면 금방 마르고 상해유. 몸통이 얇아서 회로 먹기에도 별로고요. 회 무침으로 먹는 게 가장 맛나유.”
식당 밖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던 오천항수산물센터 이공순 사장이 간재미 회 무침을 아주 맛있게 무쳐 주겠다고 했다.
간재미 회 무침은 포를 뜬 간재미 살을 막걸리로 치대 연하게 만들고, 여기에 미나리와 무를 채 썰어 넣고 초고추장 양념을 넣어 버무린 후 참깨를 솔솔 뿌려 낸다. 간재미 회는 연한 활어회와는 달리 다소 딱딱해 처음 먹는 사람은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포인트다. 살점과 물렁뼈가 함께 씹히는 오독한 식감, 그리고 씹을수록 기름기가 입안에 퍼지면서 고소한 맛을 내는 그 느낌 말이다.
담백하고 짭조름한 굴 구이가 소주와 어울린다면 새콤달콤한 간재미 회 무침은 막걸리와 찰떡궁합이다. 소주의 쓴 맛을 짭조름한 굴 구이가 중화시켜 주는 반면, 막걸리는 간재미 회 무침의 새콤하면서도 매운맛을 중화해 준다. 술을 위한 안주가 아니라 안주를 위한 술이 되는 것이다.
오천항에는 오천항수산물센터(041 -933-3876)를 비롯해 간재미와 키조개, 활어회 등을 내는 식당이 여럿 있다. 간재미 회 무침은 中 기준으로 3만 원 정도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대략 3~4인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키조개 코스는 1인 2만 원, 2인 5만 원선.
mini interview 오천항수산물센터 이공순 사장
“막걸리와 찰떡궁합 간재미 회 무침 드세요”
이공순 사장은 오천항에서도 손 크고 손맛 좋기로 유명한 여사장이다. 여성어업인 수산물 요리대회에서 키조개 요리로 은상을 수상했다. 이 사장은 간재미 회무침도 맛깔나게 무쳐낸다.
굴 구이에 이어 간재미 회 무침까지 천하일미 안주를 앞에 두고 소주와 막걸리로 열심히 달렸다면 이제는 속을 살살 풀어줄 차례다. 보령에서 맛볼 수 있는 ‘숙취해소의 절대강자’는 물잠뱅이다.
다소 생소한 이름의 물잠뱅이의 표준어는 물메기다. 마산·진해 지역에서는 물미거지, 미거지로 부르고 충남에선 바다미꾸리, 물잠뱅이로 부른다. 동해에선 물곰이나 곰치로 부른다. 공통적으로 물텀벙이로 부르기도 하는데, 옛날 어부들이 물잠뱅이를 잡으면 그 못생긴 생김새에 재수 없다며 버리곤 했다. 이때 흐물흐물한 몸이 바닥에 닿으며 텀벙텀벙 소리를 내어 그리 불렀다고 전해진다.
물잠뱅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 생김새가 참으로 못생기긴 했다. 무엇에 놀란 듯 똥그랗게 뜬 눈에 ‘어? 어?’ 하듯 뻐끔거리기만 하는 커다란 입은 영락없는 못난이다. 하지만 못생겨서 죄송할 필요는 없다. 이제는 어느 포구에서나 맛 좋은 음식 재료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어보>에 ‘맛이 순하고 술병에 좋다’고 적혀 있을 정도로 숙취해소엔 그만이다.
보령 대천항은 물잠뱅이가 많이 잡히는 곳 중 한 곳이다. 어느 식당이나 시장엘 가나 수족관 유리에 배의 빨판을 딱 붙이고 입을 벙끗거리며 바깥 구경을 하고 있다. 대개 11월에서 3월까지가 산란기로 이때가 가장 맛이 좋다. 물잠뱅이는 다른 물고기를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에 알아서 걸려 올라오는 ‘기특한’ 녀석이다.
물잠뱅이는 묵은지를 넣어 시원하게 끓여 내는 것이 제 맛이다. 대천항 근처 ‘바닷가 탕집’에서는 맛있게 익은 묵은지에 무와 파, 콩나물 등의 신선한 채소를 넣고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 물잠뱅이탕을 시원하게 끓여낸다.
“요즘에는 냉동해서 사철 물잠뱅이탕을 먹는다지만 그래도 가장 맛있을 때는 찬바람이 부는 겨울철이죠. 살아 있는 물잠뱅이를 바로 요리하는 것도 그렇고 몸 녹이는 데도, 해장에도 그만이거든요.”
전봉석 사장은 “물장뱅이탕은 많은 양념을 하는 것보다 묵은지의 맛으로 끓여 내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한다. 물잠뱅이의 몸값이 그리 높지 않아서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물잠뱅이는 잡은 후 내장을 발라내고 그대로 말려 찜 요리를 해 먹기도 한다.
물잠뱅이탕은 보통 4만5,000원(中 기준)이면 3명 정도가 먹을 수 있다. 대천항 해안로에 있는 ‘바닷가 탕집(041-931-0983)’은 물잠뱅이탕을 비롯해 우럭매운탕, 간재미탕, 아나고탕 등이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이다.
mini interview 바닷가 탕집 전봉석 사장
“겨울엔 누가 뭐래도 뜨끈한 탕이 최고죠”
탕을 전문으로 하는 ‘바닷가 탕집’의 전봉석 사장은 보령의 겨울별미로 물잠뱅이탕을 최고로 꼽았다. 술안주로도 그만이요, 술 마신 후에 해장탕으로도 그만이라는 것. 시원한 국물로 ‘밥도둑’인 것은 물론이다.
“물잠뱅이는 겨울철에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입니다. 보령 여행을 마치실 때쯤 언 몸을 녹이고 쌓인 숙취를 해소하는 데는 물잠뱅이탕만 한 것이 없지요. 대천항에 오시면 못생겼지만 맛은 최고인 물잠뱅이탕을 꼭 드셔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