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올려다보기
당기소 김양순
나는 일주일 내내 집에서 일터로 다시 집으로, 그리고 교회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간다. 멀리 여행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대부분의 내 나이또래들이 즐기는 취미활동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 일상생활 속에 숨겨진 아기자기한 재밋거리를 찾아내어 즐기는 것이 내 취미생활이다. 복잡한 생각들을 접어두고 책이나 신문읽기, 클래식음악듣기, 꽃이랑 나무 관찰하기, 천천히 걸으면서 마주치는 사람들 표정읽기, 하루에 열 번 이상 하늘 올려다보기 등 날마다 겪는 일상 속에서 보물찾기 하듯 재밋거리를 찾는다. 그러다보면 뜻밖의 횡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쉽고 실속 있는 것이 ‘하늘 올려다보기’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하늘에서 가끔씩 펼쳐지는 특별한 이벤트를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가끔 예고도 없이 특별한 이벤트를 열어준다. 끝없이 파란 바탕에 갖가지 기묘한 형상의 구름그림을 그려주기도 하고, 매혹적인 노을빛으로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곱게 물들여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는 특별한 마술쇼를 이따금씩 선보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학원에 책을 읽으러 오는 아이들이 오전 11시쯤 에 왔다. 학원에 들어서기 바쁘게 “선생님, 밖에 나가보세요, 구름이 이상해요. 구름이 빠르게 어디로 달려가고 있어요.” 1~2학년 개구쟁이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니 뭔가 특별한 게 있나보다 싶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얼른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먼저 발견한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선생님, 여기서 보면 더 멋져요.” 하면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하늘을 가리켰다. 아이들 말대로 하늘이 정말 이상했다. 차가운 겨울하늘에 마치 여름바다를 옮겨놓은 것 같았다.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과, 서해바다의 하얀 파도를 생각나게 하는 구름그림이었다.
푸른색 비단에 아주 얇게 펴놓은 햇솜 같은, 고적운(高積雲)이 자꾸자꾸 모양을 바꿔가면서 북쪽하늘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이들 눈에도 신기하게 보였는지 “와, 하늘파도다. 시냇물이 흘러가는 것 같다. 구름이 행진하는 것 같다.”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한참동안 하늘을 바라보다가 학원교실로 들어갔다. 구름을 주제삼아 수업을 한 뒤 밖에 나가보니, 그 멋진 구름그림전시회는 이미 끝났다. 그 대신 언제 나타났는지 두툼한 진회색 구름이 서쪽하늘로부터 천천히 몰려오는데, 마치 서해안 곰소앞바다 갯벌처럼 보였다. 이날 하늘에 그려진 바다그림은, 겨울바다가 그리워도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해, 하늘이 보여준 특별전시회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아주 드물게 열리는 하늘의 신기한 마술쇼를 보는 것은, 행운권이 당첨된 것만큼 신나는 일이다. 작년여름(2009년 7월) 일식 때 아이들과 함께 셀로판지를 눈에 대고 보았던 태양의 경이로운 모습이나, 2007년 여름에 보았던 그 특별했던 무지개 쇼는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특히 평생토록 잊히지 않을 것 같은 그 무지개 쇼는 지금 생각해도 엊그제 본 것처럼 생생하다. 그날 오후 나는 저녁 찬거리를 사러 모래내시장에 갔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장대 같은 빗줄기가 거의 한 시간가량 쏟아지다가, 비가 그치면서 해가 비치기에 이런 날은 꼭 무지개가 떴었는데 하며 옛날 고향에서 자주 보았던 무지개 생각을 떠올렸다. 하늘을 바라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짙은 먹구름 위에 아주 커다란 무지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곧 이어 하늘에 무지개 하나가 또 생겨 아름다운 쌍무지개 홍예문이 세워졌다. 나는 집에 있는 딸아이에게 그 보기 드문 광경을 보여주고 싶어 뛰다시피 집으로 왔다. 딸아이를 데리고 집 곁에 있는 전라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서 바라본, 그 때의 신비롭고 장엄한 하늘을 내 부족한 글 솜씨로는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동쪽하늘을 가득채운 먹구름 위로 피어오른 일곱 빛깔 쌍무지개, 너무나 크고 선명하게, 그리고 손에 잡힐 듯 낮게 드리워진, 이중 홍예문을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사건 이후에 있었던 무지개 이야기가 생각났다. 다시는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징표인 무지개, 그 때 내가 본 무지개 역시 뭔가 하늘의 엄숙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같은 시간 서쪽하늘에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파란 하늘에 두둥실 흘러가는 하얀 조각구름, 빛나는 태양은 언제 비가 왔었느냐고 생글생글 웃으며 묻고 있는 듯했다. 비록 짧은 시간 안에 지나가버린 광경이긴 했지만, 그 하늘마술쇼는 어느 일류 마술단이 두 편으로 나뉘어 진기명기 대결을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그 어떤 마술쇼가 그토록 신비롭고 장엄한 광경을 연출할 수 있을까? 너무나 멋진 하늘의 마술쇼를 보면서 딸아이에게 “현아, 오늘은 동쪽하늘과 서쪽하늘이 장기자랑을 하는 날인가보다.” 라고 말하면서 같이 웃었다. 그때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딸아이는 나만큼 깊이 감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아름답고 신비로운 광경은 딸아이 마음속에 아름다운 영상으로 깊이 새겨졌으리라 믿는다.
하늘은 빠르게 표정을 바꾼다. 보통 때 보게 되는 맑은 하늘, 회색빛 하늘,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도, 시간 따라 다른 표정을 짓는 것이 참 재미있다. 나는 변화무쌍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오늘 하나님의 기분은 어떠하실까?’ 하고 상상해 보기를 좋아한다. 먹구름 낀 하늘, 비를 내리는 하늘, 비온 뒤 투명한 햇살을 비춰주는 하늘의 표정이, 그때그때 하나님의 기분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감히 날씨에 대한 불평을 할 수가 없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인간의 나약함, 하늘의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한 지극히 작은 내 모습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고향집은 동쪽을 향하고 있어서. 하루의 시작을 아침노을을 보면서 하는 때가 많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붉게 물든 동편하늘에 금방 세수한 듯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그게 어린 마음에도 참 신기했었다. 그 때 노을을 자주 보면서 자랐기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노을 바라보기를 아주 좋아한다. 다행히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앞뒤로 트여있어서, 뒤 베란다 창문 너머로 저녁노을을 볼 수 있다. 하루일과를 마친 태양이 서쪽하늘에 장식된 주황색 무대 뒤로 수줍게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아, 지구촌 우리 반대편 땅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해 돋는 아침노을을 보고 있겠구나.’ 생각하면 하늘의 그 오묘한 법칙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것뿐 아니라 해가 지고 난 뒤 밤하늘을 수놓는 달과 별을 헤아려보면, 하늘에서 펼쳐지는 볼거리는 다 셀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도시의 넘치는 불빛 때문에, 밤하늘의 달과 별이 펼치는 이벤트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고향집 마당에서 보았던 북두칠성, 카시오페아자리, 영롱한 오리온자리를 이제는 가끔 꿈속에서만 보게 된다. 그렇기에 낮에 열리는 특별한 하늘의 이벤트만이라도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한다. 지구촌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관람권은 주어졌지만, 하늘을 열심히 올려다보는 사람만이 볼 수 있도록, 예고도 없이 시작해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끝나버리는 하늘의 이벤트. 돈도 시간도 들이지 않으면서 내 마음에 그윽한 평화와 햇살 같은 기쁨을 안겨주는 내 취미생활 ‘하늘 올려다보기’는 내가 지구에 사는 동안에는 늘 계속될 것이다.
(2010년 2월 1일)
첫댓글 앞만보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정말 하늘 올려다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희미 합니다.상하,좌우를 살피는일이 쉽지가 않아서 건조한 일상의 연속이지요.특히 하늘을 올려다보는일은 지극히 드문일이 되었습니다.비온뒤의 아름다운 무지개,밤하늘의 초롱한 별, 구름이 빚어내는 조각같은 작품들,저녘노을...하늘만이 우리에게 만들어주는 선물을 놓치며 살았다는 서글픈생각이 듭니다.어린시절 고향집 마당에 깔린 멍석에 누워 저별은 나의 별,저별은 너의 별...헤아릴수 없는 별을 세며 노래하던 그런 낭만과 여유로움은 어디로 갔는지...지금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시라.쏟아지는 별빛에 눈 멀어도 좋으리라.별을 노래하는 시인들이여!
땅을 굽어보면 동전을 주울 수 있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면 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동전과 꿈, 어느 것이 소중할까요? 인생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기소님의 '하늘 올려다보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습니다. 동전은 주워서 주머니에 넣으면 그것으로 상황은 끝납니다. 그러나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기에는 바다와 노을과 무지개와 달과 별과-- 갖가지 꿈과 희망을 주는 영상들이 펼쳐저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변해가는 구름을 아름다운 수사를 통하여 묘사를 하였습니다. 특히 개성적인 주관적 표현으로 글의 깊이를 더해갔습니다. 순수한 삶의 아름다움으로 읽는 이의 마음이 한없이 맑아집니다.